-
변화와 갈등의 시대, 왕릉 통해 본 17세기 조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지난 2006년부터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로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Ⅳ.Ⅴ)’를 발간했다.두 권으로 발간된 보고서에는 총 8기 왕.왕후릉에 대한 조사내용이 수록됐다. ▲ 제Ⅳ권에는 효릉(孝陵, 인종.인성왕후), 강릉(康陵, 명종.인순왕후), 목릉(穆陵, 선조.의인왕후.인목왕후), 장릉(章陵, 원종.인헌왕후) 4기를 수록했고, ▲ 제Ⅴ권에는 장릉(長陵, 인조.인렬왕후), 휘릉(徽陵, 장렬왕후), 영릉(寧陵, 효종.인선왕후), 숭릉(崇陵, 현종.명성왕후)을 실었다.보고서에 실린 능은 16세기 왕릉 양식을 마지막으로 계승한 효릉(1545.1578)과 강릉(1567.1575)을 제외하고 모두 17세기에 조성됐다. 인조의 장릉은 1731년 천릉(遷陵, 능을 옮김)된 것이나 1636년 조성 당시의 석물을 대부분 옮겨다 썼으므로 당시 왕릉조영 경향을 간직하고 있다.이러한 왕릉 조성 배경에는 치열한 당쟁(黨爭) 속에서도 제도와 문물, 사상이 성숙해 가던 17세기의 과도기적인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동원삼강릉제(同原三岡陵制,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이웃한 세 언덕에 능을 조성)과 동원상하릉제(同原上下陵制, 같은 언덕에 위 아래로 능을 조성)이라는 새로운 능제(陵制)의 출현, ▲ 정치적인 논쟁 끝에 2개월 이상 소요된 영릉의 장지(葬地) 선정, ▲ 조선왕릉 최초로 건립된 영릉의 표석, ▲ 원(園)에서 왕릉으로 승격된 원종 장릉 등은 유독 천릉이 잦았고 능제 논의가 활발했던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는 각 능의 조성 경위, 천릉 과정에 대해 사료와 유물을 토대로 시간 순으로 복원해 막연하게 알려져 왔던 이 시기 왕릉의 역사와 위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특히 목릉 정자각(보물 제1743호)과 숭릉 정자각(보물 제1742호), 영릉 재실(보물 제1532호) 등 중요 건축물의 현황을 상세하게 소개해 각 구성물이 담고 있는 시대적.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하는데 주력했다.또한 왕릉의 부재별 용어에 대해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와 능지(陵誌) 등을 참고해 가장 보편타당한 사례를 정리해,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용어 사용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했다. 또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멸실되거나 파괴된 연지(蓮池), 재실(齋室), 어정(御井) 등 왕릉 구성 요소의 위치, 국장(國葬)과 제례 동선(動線) 등을 각종 문헌사료 대조를 통해 위치를 파악해 능제 복원 계획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조선왕릉 조사보고서를 조선왕실 원.묘(園.墓)까지 확대해 순차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라면서, “이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한국 문화원, 한미 보자기 7인전 ‘Bojagi &Beyond’ 개최
주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원장: 최병구)은 오는 13일부터 2014년 1월 17일까지 한국 전통 문화를 넘어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 되고 있는 보자기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담은 전시회 ‘한미 보자기 7인전: Bojagi & Beyond’를 개최한다.이번 전시에는 한국과 미국의 대표 보자기 작가 7인 김순희, 박기옥, 김지희, 차지선, 이정희, 메리 루스 스미스(Mary Ruth Smith), 낸시 크래스코(Nancy Crasco) 등이 참여해 한국 보자기의 다양한 전통 기법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김순희는 서울 소재 초전 섬유 박물관 관장으로 전통 보자기부터 현대 보자기까지 광범위한 범위의 보자기를 다뤄왔고, 김지희는 대구 소재 자연 염색 박물관 관장으로 보자기에 자연 염색을 접목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박기옥은 서울 소재 '쉼' 박물관 관장으로 한국 정서가 배어 있는 고감도의 섬유 작업을, 차지선은 보자기 전업 작가로 2000년부터 작품 모두를 수작업으로 창작해오고 있다.미국 작가인 메리 루스 스미스는 미국 텍사스 베일러大 교수로 학생들에게 보자기 문화를 전파하고 있고, 낸시 크래스코는 전업 보자기 작가로 지난해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보자기 포럼에 스웨덴, 사우스 아프리카 작가들과 함께 독특한 보자기 작품들을 선보인 바 있다.전시 개막 행사는 12월 13일 오후 6시 30분 한국 문화원에서 열리고 워싱턴 소재 텍스타일 박물관 큐레이터인 리 탈봇(Lee Talbot)의 ‘문화적 맥락에 본보자기’ 강의와 객원 큐레이터인 이정희씨의 ‘보자기 투데이(Today)’란 주제의 강연이 준비됐다.큐레이터 탈봇은 현재 워싱턴 DC 텍스타일 박물관의 동반구 컬렉션(Eastern Hemisphere Collections)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고, 한국 숙명여대 정영양 자수박물관에서 2년 6개월간 큐레이터로 근무했다.객원 큐레이터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정희는 지난 30년간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 보자기의 전시, 강연, 워크숍 등을 통해 한국 보자기 문화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문체부-미래부, 콘텐츠코리아 랩 공동세미나 개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 이하 미래부)는 5일 오후 2시 서울 역삼동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 디캠프(D.CAMP) 6층에서 콘텐츠코리아 랩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홍상표)에서 지난 8월부터 추진한 콘텐츠코리아 랩 설립 및 운영방안 세미나의 일환으로, 콘텐츠 분야에서 꿈을 키우는 창작자들을 위한 ‘콘텐츠코리아 랩’의 설립을 앞두고 진행되는 최종 점검의 자리다.
제1세션에서는 ‘창조경제 시대, 콘텐츠코리아 랩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부처 협력방안’을 주제로 문체부의 최보근 대중문화산업과장이 발제를 하고, 미래부의 이충원 디지털콘텐츠과장, 동국대학교 이영달 교수, 홍익대학교 고정민 교수가 토론했다.
문체부 최보근 과장은 문체부의 문화융합형 콘텐츠코리아 랩과 미래부의 디지털선도형 콘텐츠코리아 랩의 차별성을 설명하고, 인프라 공동 활용, 인력 교류, 지역사업 연계추진 등 부처 간 협업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최 과장은 “문체부는 아이디어 융합 활성화를 통해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하고, 미래부는 디지털콘텐츠 분야의 콘텐츠 제작 지원을 통해 열매를 맺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 지속가능한 콘텐츠 창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면서 양 부처 협력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강조했다.
이에 미래부 이충원 과장은 “문체부와 협력을 강화해 콘텐츠코리아 랩이 콘텐츠산업의 발전과 창조경제를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2세션에서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창업생태계 조성 및 스타트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구글코리아 서황욱 총괄상무와 기업가정신센터 양석원 운영팀장이 발제를 하고, ‘대도서관TV’로 유명한 콘텐츠 창작자(creator) 나동현 방송진행자(BJ), 정현욱 비석세스 대표, 고경환 아트앤테크놀로지 홀딩스(Art&Technology Holdings) 대표가 토론을 했다.
서황욱 총괄상무는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의해 새롭게 조성되는 창작자 생태계에 대해 다양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1인방송진행자(BJ) ‘양띵’과 같은 창작자(creator)가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양석원 운영팀장은 미국, 영국, 칠레 등 다양한 해외사례를 들어 콘텐츠 창작자 스타트업 관계망(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창조경제의 필수요소로 3C(Connect-Community-Collaboration)를 주장했다.
문체부와 미래부는 이번 세미나에서 나온 논의들을 정리해 사업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고, 앞으로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콘텐츠코리아 랩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한편 문체부는 내년 5월에 융합선도형 콘텐츠코리아 랩 제1센터를 대학로에 개관하고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 랩 2개소를 선정, 지원할 계획이다. 미래부는 올해 디지털선도형 콘텐츠코리아 랩 2개소를 선정 완료(경기콘텐츠진흥원, 한성대학교)하고, 내년도에는 3개소를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 확정
제 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12.2-7, 아제르바이잔 바쿠)는 ‘김장문화(Kimjang :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키로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이번 ‘김장문화’ 등재 결정으로 아리랑(2012), 강강술래(2009), 판소리(2008),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8) 등 총 16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특히,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24개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국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가정에서 전승된 김장이 △ 동절기에 대비한 한국인들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고, △ 사회 구성원들간 결속과 연대감 강화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또한, 지난해 2월 문화재청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약 90%의 한국인이 직접 김장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김장문화’가 공동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도 이번 등재 결정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외교부와 문화재청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식문화인 ‘김장문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유네스코 사무국 및 위원국들과의 접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번 ‘김장문화’ 등재는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은 “이번 등재 결정을 계기로 ‘김장문화’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의 일부이자 국민 생활문화로서 계속 확대.전승될 수 있도록 ‘무형문화유산 보호 및 진흥에 관한 법률’제정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초강력 액션 어드벤처 ‘R.I.P.D. : 알.아이.피.디.’ 티저 예고편 최초 공개
2013년 05월 09일 -- 올 하반기 극장가를 화끈하게 뒤집어버릴 초강력 액션 어드벤처! 라이언 레이놀즈, 제프 브리지스, 케빈 베이컨 주연의 가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티저 예고편을 최초 공개했다. (원제: R.I.P.D.│주연: 라이언 레이놀즈, 제프 브리지스, 케빈 베이컨│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수입/배급: UPI Korea)
헐리우드 대표 스윗가이 라이언 레이놀즈, 고스트 캅으로 돌아오다!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의 2013년 야심작!
, TV 시리즈 [CSI: NY][24] 제작진의 참여로 기대감 폭발!
헐리우드의 대표 스윗가이에서 , 등의 SF 액션 블록버스터 등에 출연하며 최고의 액션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초강력 액션 어드벤처 로 돌아온다. 는 , , 등 로맨스, 스릴러, 액션 등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탁월한 연출을 선보인 바 있는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의 2013년 새로운 야심작. 여기에 영화 , , 그리고 인기 TV 시리즈인 [CSI: NY]과 [24] 등 액션과 범죄수사물에 일가견이 있는 제작진이 의기투합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더욱 기대감을 불어 넣고 있다.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영상, 화려한 액션으로 무장한 신개념 액션 어드벤처
티저 예고편 네이버 최초 공개!
는 ‘Rest In Peace Department’의 약자로, 영화에서는 세상을 위협하며 떠도는 악령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은 중간 세계의 경찰을 뜻한다. 이번에 네이버 영화를 통해 최초 공개된 의 티저 예고편에서는,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한 경찰관 ‘닉’(라이언 레이놀즈)이 죽은 후 R.I.P.D.의 고스트 캅으로 배치되어 노련한 파트너 ‘로이’(제프 브리지스)와 함께 난폭한 악령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이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괴물의 형체를 띈 거대한 악령, 눈이 수십 개 달린 흉악한 얼굴의 악령,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악령 등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들에 맞서는 ‘닉’과 ‘로이’가 과연 자신들의 임무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지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티저 예고편에서 눈길을 끄는 재미 요소들 중 하나는 바로 만의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영상. 예고편 초반 모두가 일시정지 상태로 멈춰버린 범죄 현장에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홀로 걸어가는 장면이나 하늘로 순식간에 빨려 올라가는 장면, 미국 도심을 초토화시키는 폭파씬 등 화려한 시각 효과들은 3D 액션 영화에 걸맞게 기대감을 자아낸다. 또, 주인공들이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이승 세계에서는 인간들에게 다른 외모로 보여지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이 관심을 불러 모은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허름한 모습의 중년 남성으로 위장하게 된 ‘닉’과는 달리, ‘로이’는 섹시한 몸매를 자랑하는 20대의 젊은 여자로 변신해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된 후 네티즌들은 “와 액션이랑 시각효과 쩐다 ㅋㅋㅋㅋㅋㅋ 스케일 지젼!!!!! 영화관에서 꼭 봐야 될 영화인 듯”(mee****). “예고편만 봐도 빵빵 터지네ㅋㅋㅋ 제프 브리지스 섹시녀로 변신ㅋㅋㅋㅋ 아 엄청 재밌을 것 같다!”(own****), "라이언 레이놀즈 왤케 멋짐여? ㅜㅜ 멋진데 웃기고 웃긴데 멋짐...ㅋㅋㅋㅋㅋ 액션 빠방해 보여서 예고편이 시원시원하네. 기대기대”(jsun******) 등의 댓글들을 남기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로 극장가를 점령할 액션 어드벤처 는 2013년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출처: UPI코리아
-
다음 ‘마이피플’, 1천 만 가입자 돌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유무선 메신저 서비스 ‘마이피플’이 1천만 가입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5월 700만 명을 돌파한지 한 달 만에 300만 명의 이용자가 신규 가입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피플은 천만 가입자 돌파를 계기로 연내 2천만 가입자를 무난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다음은 지난 5월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폰용 마이피플 애플리케이션의 UI와 편의성을 대폭 강화한 마이피플 3.0 버전에 이어 최근 통화 안정성 향상 및 클라우드 연동 등을 골자로 한 마이피플 3.1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마이피플 3.1 버전은 mVoIP 기능 업그레이드를 통해 통화 성공률과 통화 안정성이 대폭 높아졌으며, 개성있고 재미있는 스티커 33종, 문자 아이콘 기능, 대화방별 스킨 설정 기능, 그리고 새 메시지 도착 알림 안내를 보강해 이용자들이 마이피플을 더욱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PC앱 원격 로그아웃 기능을 도입했으며, 마이피플에서 받은 파일을 다음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백업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이용자 편의성이 대폭 업그레이드 됐다.
마이피플 3.1 버전은 애플 앱스토어 및 안드로이드마켓 등을 통해 업데이트 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다음 김지현 모바일본부장은 “1천만 가입자를 돌파한 마이피플은 차별화된 기능으로 국민 유무선 메신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마이피플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전달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용자들이 더 재미있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5월 선보인 마이피플 PC앱은 스마트폰용 마이피플을 사용 중인 이용자가 PC에서도 자유롭게 메신저를 이용할 수 있어 PC 사용이 많은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SK텔레콤, 스마트 금융사업 본격 추진 위해 국내 1위 ATM업체 노틸러스효성(주)과 제휴 체결
SK텔레콤(대표이사 사장 하성민, www.sktelecom.com)이 스마트 금융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개발을 위해 국내 1위 금융 자동화기기(ATM ; Automatic Teller Machine) 업체 노틸러스효성㈜(대표이사 손현식)과 9일 제휴(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스마트 브랜치는 SK텔레콤의 ICT 기술을 활용해 기존 은행 지점(Branch)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점을 관리하면서 화상상담 등을 통해 기존 은행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소규모 지점(Mini-Branch)이다.
스마트 브랜치는 금융 자동화기기(ATM 등) 규모의 공간에서 입출금, 자동이체, 통장 정리 등의 단순 은행업무뿐만 아니라, 금융 컨설팅(상담)과 은행 대출, 적금 등 각종 은행서비스 가입/해지, 계좌 개설 등 은행 지점에서나 가능한 거의 모든 업무를 편리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정예화된 소수의 상담인력 운영만으로도 금융상품 판매를 증대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지점 운영을 위한 부동산 차입 규모 축소에 따른 비용 절감 등 다양한 편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텔레콤은 국내 최고 수준의 ATM 개발 및 운영 노하우와 생산시설 등을 갖춘 국내 1위 ATM 업체인 노틸러스효성㈜과의 제휴를 통해 3분기내에 스마트 브랜치 전용기기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원활한 생산을 통해 올 연말부터 주요지역을 대상으로 외환은행과 성공적인 시범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과 외환은행은 지난 2010년 4월 스마트 브랜치를 비롯해 스마트폰 뱅킹, 스마트 페이먼트(Payment) 도입 등 통신과 금융이 접목된 스마트 금융사업 추진에 대한 포괄적인 제휴를 체결하고, 올 연말 스마트 브랜치 시범사업 추진을 목표로 최적화된 서비스 개발에 매진해 왔다.
현재 SK텔레콤이 추진 중인 스마트 브랜치 사업은 금융업무에 최적화된 전용기기를 개발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금융 시스템에 연동되는 보안 및 인증 솔루션 개발과 고해상도 영상상담 지원 시스템 구축 등 금융과 통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노하우가 필요한 고난이도의 금융 서비스이다.
SK텔레콤 육태선 IPE사업본부장은 “ATM 개발 분야에 있어 글로벌 수준의 기술과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노틸러스효성과의 제휴를 통해 최적의 기능을 갖춘 스마트 브랜치 전용기기 개발을 기대한다”며 “SK텔레콤은 올 연말 시행될 외환은행과의 시범사업을 통해 노하우를 축적하고, 스마트 브랜치를 현재 추진하는 스마트 금융사업의 주축으로 삼아 해외시장을 공략함으로써 글로벌 금융혁신 사업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예술가들의 사랑방 “순풍에 돛을 달고”
“통기타 가수들의 모임 장소?” 하면 흔히 ‘세시봉’을 떠올린다. 또한 시인들의 예술가들의 쉼터는? 이라고 하면 과거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인 고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인사동의 “귀천”을 떠올릴 것이다.이런 사랑방이 현재에도 근 18년간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인사동길을 거닐다보면 인사동사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30여미터 지난 곳에 명동칼국수와 전북지업사 사이길인 인사동 7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20여미터 들어가면 그곳에 문인들과 예술인들의 사랑방 “순풍에 돛을 달고”가 반갑게 맞아준다.시인들이 만나 시를 논하기도 하고 시인으로 입문하려는 이들의 배움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는 “순풍에 돛을 달고”는 갤러리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예술가들이 차를 마시거나 술을 권하는 수준을 넘어 화가들의 작품을 편히 앉은채 감상할 수도 있고 즉흥적으로 그림을 보며 시를 읊는 낭만이 서려 있는 모습과 일회성 감상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열고 감상함으로서 즉석에서의 거래도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난 1993년 김윤희 대표에 의해 문을 연 “순풍에 돛을 달고”에서는 주 2회 시낭송회가 정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이생진 시인의 시 낭송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화가이기도 한 김윤희 대표는 가게 한쪽 공간에 마련된 자신의 작업실에서 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장소가 시인들의 정기모임의 장소이기도 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또한 일반 갤러리처럼 서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차와 술을 마시며 천천히 감상하다보니 작품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서 거래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휴식처이며 사랑방 역할과 갤러리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담당하고 있는 “순풍에 돛을 달고”가 영원하기를 기대해 본다.
-
외규장각 의궤 297책 모두 프랑스에서 돌아오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의궤가 5월 27일(금) 4차 귀환을 끝으로 297책 전체가 한국에 돌아온다.
지난 4월 14일 1차분 75책 귀환을 시작으로 4월 29일 2차분 73책, 5월 12일 3차분 75책이 돌아온 바 있으며 남은 4차분 73책이 27일 오전 8시 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오전 10시 30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관된다.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조선왕실 의궤는 대부분 임금이 보기 위하여 특수하게 제작된 이른바 ‘어람용’ 의궤이며, 전체 297책 중에는 국내에 없는 유일본 30책이 포함되어 있어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번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범국민적으로 환영하고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여 오는 6월 11일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 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환영 대회 개최를 위해 해외문화재 귀환 환영위원회(위원장: 김의정)가 박병선 박사,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 등 관련 인사 및 학계·박물관계·도서출판계 등의 민간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총 14명: 명단 붙임.)되어 지난 5월 13일 첫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행사 준비 활동에 들어갔다.
5월 13일 1차 회의에서는 환영 대회를 6월 11일 개최키로 하고 행사는 오전 강화도에서의 고유제를 시작으로 오후에 경복궁에서 이봉행렬, 고유제(환영 행사 포함), 축하 공연 등을 갖기로 하였다.
앞으로 동 위원회에서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들을 검토하고 확정해 나갈 것이며 구체적인 행사 계획은 6월 초에 발표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에 돌아온 조선왕실 의궤를 국민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7월 19일부터 9월 18일(62일간)까지 특별 전시전(145년 만의 귀환-외규장각 의궤)을 개최할 계획이며 외규장각 의궤를 누구나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접근하여 볼 수 있도록 금년 내로 유일본(30책)에 대해서는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한다.
2013년까지 전책(297책)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국내 전문 학자 연구팀 구성 및 학술 심포지엄 개최, 논문집 발간 등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의궤의 영인본을 제작하여 보존과 활용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의궤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 상품도 개발, 보급할 계획이다.
4차분 의궤 도착 장면의 취재는 5월 27일 10시 30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할 수 있다.
-
삼성전자, 용지 걸림 줄이고 출력 속도 개선한 B2B 모노 레이저 프린터 출시
삼성전자가 문서 출력이 많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모노 레이저 프린터 ‘ML-4510/501X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 시리즈는 분당 43매를 출력하는 기본형 ML-4510ND, 분당 48매를 출력하는 표준형 모델 ML-5010ND, 프리미엄급 ML-5015ND 3종으로 구성됐다.
세 제품은 빠른 출력 속도 뿐만 아니라 고성능 600MHz Dual Core CPU, 1GB 네트워크를 기본으로 탑재해 처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여러 명이 대용량 문서를 동시에 출력할 수 있다.
첫 장 출력은 대기 모드에서 7초만에 가능하며, 실제 50장의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출력하는데 86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최대 620매의 용지 보관 및 월 최대 20만매 출력 지원, 메인 급지대에서 최대 100매까지 봉투 출력을 기본으로 지원하여 유지비를 줄였고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였다.
또한 ‘삼성 안티잼 기술(Anti-jam technology)’은 용지 걸림 발생을 기존 대비 50% 수준으로 낮췄고 소음은 54dB 이하로 조용한 출력을 구현했다.
PC 없이 USB를 통한 Direct USB 출력을 지원하며, 특히 ML-5015ND은 4.3인치 터치스크린을 탑재하여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600 Mhz의 듀얼코어 CPU는 1Ghz의 일반 싱글코어 CPU 대비 전력을 40% 절감한다. 대용량 분리형 소모품과 에코 모드 지원 및 사전 결과 예측 기능으로 경제성과 친환경성도 향상시켰다.
또한 고해상도 출력 품질을 위해 중합토너 기술이 적용되었다. 일반 토너 대비 더 작고 균일한 크기의 중합 토너는 보다 선명하고 뚜렷한 이미지와 선을 구현한다. 왁스 성분이 포함되어 이미지 광택과 보존성이 향상됐고, 폐토너의 양도 줄이고 낮은 온도로도 정착이 가능하여 경제적이다.
ML-501X 시리즈는 기본 7천매 용량의 토너 외에도 2만매 용량의 대용량 토너를 판매하여 잦은 교체로 인한 번거로움을 줄이고, 토너/드럼 분리형 소모품으로 장당 출력 비용을 낮췄다.
전면 패널에는 에코 버튼이 있어, 버튼 터치만으로 토너 세이브 모드와 자동 양면 인쇄 설정이 가능하고, 에코 시뮬레이터 기능을 통해 절감된 토너량과 종이량을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또한 원거리에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소모품 잔량, 기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사용자별 과금 설정이 가능한 삼성전자 솔루션을 통해 관리자의 편의성이 향상되었다.
삼성전자 IT솔루션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엄규호 전무는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듀얼코어 CPU를 탑재한 비즈니스 전용 프린터를 출시하여 출력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며, “막힘 없이 빠르게 출력하는 B2B전용 ML-4510/501X 시리즈는 탁월한 성능과 경제성, 친환경성을 모두 갖춘 제품으로 비즈니스 고객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고 밝혔다.
-
나는 아이패드 2 액세서리다…쇼핑몰 MD들이 꼽은 인기 액세서리들
스마트탭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애플 아이패드 2의 인기몰이가 지속되고 있다. 아이폰 액세서리 열풍에 이어 이제 자연스럽게 아이패드 2의 주변기기 및 액세서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들 찾고 있을까? 고객 피드백을 최전선에서 읽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 담당자들을 통해 최근 주목받는 아이패드 2 액세서리 제품들에 대해 알아봤다.
제품을 고르는 키워드 ‘스마트커버’, ‘가죽’, '아이디어‘
사실 아이패드 2의 액세서리 시장은 자동으로 전원을 껐다 켤 수 있는 애플 자체제작 ‘스마트커버’가 거의 동시에 발매되면서 큰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했었다. 그러나 ‘스마트커버’는 아이폰 4와 함께 등장한 ‘공식 범퍼’처럼 유료 번들 액세서리 이상이 아니었다는 판단 아래, 액세서리 업체들은 서둘러서 아이패드 2 케이스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패드 2 케이스는 특수마그네틱이 포함된 것과, 전후면 카메라의 사용, 스피커 후면 매립, 더욱 얇아진 두께 등을 고려한 점이 주된 특징이다.
온라인 쇼핑몰 아이플러스모어(iplusmore.co.kr)의 전상현 팀장은 “기존 아이패드 케이스들의 큰 특징은 거치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며 “많은 업체들이 기존의 제품 그대로 아이패드 2 규격에 맞게 다운사이징하고, 사용 시간을 확장 할 수 있는 스마트 커버 기능을 포함시켜 출시하고 있다”고 최근의 흐름을 짚었다.
전 팀장이 꼽은 최근 주목받는 제품은 국산 ‘아이루(iRooo)’ 아이패드 2 케이스이다. 우선 다채로운 색상의 신서틱 가죽을 독자적인 염색기법으로 착색 처리하여 산뜻한 느낌을 주며, 애플의 스마트커버와 동일한 기능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사실로 요즘 신진 브랜드 제품들은 애플의 그것들과 품질 차이가 없지만 가격은 20~30% 정도 저렴하다고 귀뜸했다.
또 다른 온라인 몰인 아이폰베이(iphonebay.co.kr) 채송화 대리는 ‘유니크(Uniq)’의 아이패드 2 케이스 제품을 인기 브랜드로 꼽았다. 채 대리는 “유니크 역시 스마트 커버 기능을 제공하지만 인기 비결은 ‘가죽’ 소재의 ‘고급스러운 느낌’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가죽 표면에 미세한 패턴을 줘서 안정적인 그립감과 만족스러운 심미감을 전달해준다”고 밝혔다. 채 대리가 손꼽은 유니크의 제품은 ‘단테(Dainte)’시리즈와 코트(Coat)라는 새로운 형식의 포맷을 적용한 ‘스마트코트’ 제품들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 제품들을 꾸준히 수입, 공급하고 있는 온라인몰 아이온코(ionco.kr)의 김성철 대리는 ‘스파이더 포듐’의 아이패드 2 버전을 손꼽았다. 영국 ‘브레포(Breffo)’의 일명 ‘거미거치대’로 알려진 이 제품은 이미 아이폰 4 처럼 소형 모바일 제품들의 규격에 맞게 나와 눈길을 끈 바 있고, 플렉서블 와이어(Flexible Wire)에 피복을 입혀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한 대표적인 아이디어 상품이다.
김 대리는 “스파이더 포듐은 국내에 출시되어 있는 모바일 제품 중 가장 획기적인 발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면서 “이 제품이 판매되는 최대의 강점은 모바일 제품 뿐 아니라 규격과 무게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을 응용하여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고 소비자들의 구매 포인트를 분석했다.
아이패드 2 액세서리가 늘어나는 이유는?
한편 애플, 아이패드 2와 관련된 액세서리 아이템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대한 분석도 있다.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는 김원석 씨는 “때로는 애플이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완고한 경영 정책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면서도 “제품 패키지에 잡다한 액세서리 제품들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애플의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필요한 주변 기기는 다른 회사들이 만들게끔하여 국내외 액세서리 시장의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 했다.
액세서리 제품들이 난립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는 “필요한 수요보다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업체간 담함이 없다면 소비자들이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과열 경쟁은 마케팅 및 부대 지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하게 만들 수도 있다”면서 “키워드 및 온라인 마케팅 회사들이 부추기려고만 하지 자정하려고는 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
칭화대, 하남정보산업고등학교와 교육협약(MOU)체결
중국 칭화대학 한국캠퍼스가 하남정보산업고등학교와 방과 후 중국어 교육과 활용, 교육용 언어 콘텐츠 개발 연구 및 취업 등을 위한 상호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중국어 언어 교육, 교육용 콘텐츠 개발, 학생의 국내·외 취업 협력 등 다양한 영역을 갖춘 칭화대 한국 캠퍼스와 인재 양성을 위한 기술 정보 및 장소를 제공하는 하남정보산업고와의 공동 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남정보산업고등학교 박명윤 교장은 “학교에서 배우는 IT와 디자인이, 중국을 통해 발돋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하남정보산업고등학교와 칭화대 한국 캠퍼스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기술 역군으로서의 미래를 꾸려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칭화대 한국 캠퍼스는 중국어 교육과 관련,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형식의 다자간 학습 콘텐츠로 언어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특히 방과 후와 방학기간을 이용한 집중교육과 어학연수로 IT와 디자인능력을 기본소양으로 갖춘 인재들의 중국어교육까지 책임지겠다는 계획이다.
하남정보산업고등학교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로서 1995년 3월 개교 이래 전자상거래과, 디지털콘텐츠과, 광보홍보디자인과를 운영하면서 5,92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전문 교육기관이다.
-
우리민족의 문화창조 역사(3)
지난호에 이어...
그 후 이들 대표들이 세상을 떠나면 후인들이 묻어주고 제사 지내는 풍속은 존경의 표현으로“고인돌”을 만들었든 것이 후세에까지 알려지고 있다.(영국의 “스톤핸지”도 고인돌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는 외국학자들이 많다.)전 세계 약 70% 이상의 고인돌이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삼성, 산동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보통 기원전 8000년과4000년 사이가 많다.
“말 과 문자“의 시작이 여기 이듯이 인류 문명의 시작도 이곳이 아닐까?
유럽에서는 청동기시대를 기원전3000년을 기준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민족의 역사시작 시점이 얼마나 앞서고 훌륭했든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광복 전 조선시대 때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 중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민족을 세뇌 시켰던 말 중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조센 진 은 명태처럼 패야 맛이 난다”, “엽전처럼 앞뒤가 다른 놈”,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다른 놈”, “당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반도인” 등....
이 같은 말들은 본래 우리들의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써, 우리는 친구가 월 셋방으로 이사를 해도 집들이를 하였고, 사촌이 출세하면 마치 자기가 잘된 것처럼 느끼며 집안(가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당파가 많았던 조선조 때에는 서로 조심하여 청백리가 가장 많았으며, 삼족을 멸하느니 구족을 멸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귀양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귀양 가서 동의보감(허준), 추사체(김정희), 자산어보(정약전)등 공직생활 중에 시간이 없어 못했던 귀중한 일들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많은 사화가 있었지만 정작 직접 처형당해 죽은 사람은 모두 28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는 홍익 인간정신이 남아 있었다는 증거 이기도하다.
모함을 받은 주인집 자식을 자기 자식과 바꿔서 등에 업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평생을 살다 죽기 전에 실토하며 양 아들의 성씨를 밝혔던 사실 등은(사륙신의 한사람 박팽년 아들), 주인과 하인 관계 이상의 가족 같은 신뢰와 사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세에 일제강점기 35년을 견디며 민족정신 이 파괴되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는 불신과 살아남기 위해 남을 헐뜯는 비굴한 나쁜 습관만 남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6.25 동난 까지 겹치게 되니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려 알몸이 된 우리민족의 수난은 단군 이래 최악의 비참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지혜의 민족으로서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앞선 유럽의 몇 백 년 발전을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안에 따라잡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다이나믹하고 신바람의 민족, 아세아의 종갓집답게, 우리의 드높은 긍지, 거대한 저력으로, 다함께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이끌어 나가며, 힘차게 한민족의 웅지를 펼쳐나가자 !
-
“昔氏王族의 600年 秘史”
지난호에 이어...
김춘추와 담소하며 상대해 준 사람들, 과연 그들은 누구였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부드럽게 말문을 열자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누구였을까?
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김춘추가 동반하고 간, 다까무꾸노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가 신라에 온 것은 서기 646년 9월이다. 김춘추 일행이 왜국으로 간 것은 서기 647년 12월. 그러니까 적어도 15개월 동안, 김춘추와 사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까무꾸노는 당나라 태종마저 매혹시킨 김춘추의 인품에 흠뻑 심취되어 갔으리라.
한편 김춘추는, 그로부터 왜국 조정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요새도, 각 나라가 외국에 보내는 특사는, 그 나라의 元首(원수)가 절대적인 신뢰를 하는, 유능한 인물이다. 하물며, 왕정시대의 왜국으로부터, 신라로 특파된 ‘다까무꾸노’가 아닌가? 그는 학식이 매우 높아, 國博士(국박사)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며, 당나라에도 여러 차례 파견됐던 인재라고 “일본서기”는 전하고 있다.
신라로부터 귀국한 그는, 동반하여 온 김춘추를 고도꾸 천황에게 謁見(알현)시켰다. 그 공식 회견 자리에는, 여러 大臣(대신)들만 참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儀禮(의례)가 끝나고, 국빈을 대접하는 宴席(연석)이 벌어졌을 때는, 신라의 왕족을 만나 보려고 모인, 왜국 황족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고도꾸 천황의 누나이며, 그보다 먼저 황위에 있었던 皇極天皇(고교꾸천황)도 있었을 것이다.
후일, 고도꾸천황이 죽은 후, 그녀가 다시 등극하여, 齊明天皇(제명천황)이라고 일컫게 된다. 당나라에서 백제를 치기 위한 대군이 몰려 왔을 때, 천황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그녀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다까무꾸노’의 來羅(내라)와, 그녀의 再執權(재집권)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여러 증거가 있다.
“일본서기”에, “김춘추가 담소하기를 좋아했다”라고 특기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춘추가 왜국에 체재하는 동안, 준수한 인품과 탁월한 사교술을 겸비한 그를 둘러싸고, 황족들과 重臣(중신)들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했을 것이다.
다양했을 그들의 화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공석에서의 화제와 사석에서의 화제는 그 내용이나 범주가 매우 달랐을 게 아닌가?
김춘추가 그 어려운 왜국방문 동안에 이룩한 성과는 무엇이었을까?
김춘추가 다녀간 2년 후, 그러니까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직후인 서기 649년 12월, 沙?(사찬)의 官位(관위)에 있는 金多遂(김다수)라는 사람이, 10명의 才伎(재기;광대)를 포함한, 37명이나 되는 從者(종자)를 거느리고 왜국을 방문했다고 “일본서기”는 전한다.
사찬은, 신라 17官位(관위) 가운데 8위인 직위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외교교섭이라는 것은, 하위사람들끼리 먼저 만나서 기초를 닦은 다음, 단계적으로 고위급 회담으로 발전돼 나가는 것이 순서다.
大阿?(대아찬)인 김춘추는 그보다 3급 위인 5위였다. 김다수보다 훨씬 상위인 김춘추의 외교가 실패였다면, 그보다 하위급인 김다수를 다시 파견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게 뻔하다.
다시 말하자면, 김다수의 방일은, 김춘추와 왜국 황실 사이에 某種(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후속 실무협의를 위한 행차였던 것임을 짐작케 한다.
더구나, 김다수가 거느리고 간 37명의 종자 가운데에, 10명이나 되는 광대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도, 그들이 예사로운 외교사절단이 아니었음을 시사해 준다.
① 왜 김춘추는 이 시기에 왜로 갔을까?
② 왜 倭(왜)는 신라를 건국 초부터 신라만을 공격했을까?
③ 왜 김내물왕이 즉위한 이후부터 신라에 대한 왜의 공격이 격화됐을까?
④ 왜 김다수는 37명이나 되는 종자를 데리고 왜로 갔을까?
이 숱한 “왜?”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자면, 모든 의문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왜의 정체를 밝힘으로서만 가능할 것 같다.
-
황칠명인 구영국교수의 전통문화산책(11)
6백 년 동안의 전통, 60일에 한번 씩 그러니까 1년에 여섯 번에 걸쳐 밤새도록 술에 취하고 여흥을 즐기며 신나게 놀았던 날, 한 나라의 임금에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밤잠을 안자고 밤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잔치를 벌여왔던 밤샘연회인 역사 속 백야의 잔치가 있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경신수야(庚申守夜)이다. ‘고려사’엔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1265년 고려24대 원종 6년) 나온다. 궁중에서 열리는 경신대회가 그것이었는데 훗날 고려 25대왕으로 등극하는 충렬왕이 연회의 주최를 주도했던 태자 심(諶) 이었다 한다. 그리고 자주 환락에 빠졌던 충렬왕은 몽고에 충성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라의 재정이 바닥이 날 정도로 사냥과 놀이와 연회를 좋아했던 왕으로도 유명하다. 국가의 재정이 거덜 날 정도의 사치라니 지금 같은 세상의 국가 경영이었다면 왕이라도 당장 쫓겨나 버리고 말 일이다. 도교적 전통에서 시작된 이 밤새기는 인간의 몸에서 아무 형체도 없는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사람이 잠들면 슬그머니 나와서, 옥황상제에게 사람의 죄지은 것을 일러바친다고 믿었다. 지금의 과학적인 생각으로 접근하여 보면 전혀 말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 이지만 당시 도교적 사상에선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도교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120년 산다고 보았고 또 그 수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옥황상제가 사람마다 이 삼시충을 다 심어놔서 감시하고 통제하며 60일에 한번씩 이 삼시충 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 생명기간을 자르는 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따라서 120년을 살 수 있는 인간수명이 죄를 지으므로 해서 적게는 3일, 많게는 300일의 수명이 무섭게도 많이 단축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의 의심도 없이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애기지만 그때 그 시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더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과거에나 지금에도 끝이 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 옛날로 치면 얼마나 더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변하지 않고 절실 했겠는가. 생명의 욕심은 끝없다. 궁의 임금도 만백성들도 60갑자로 세어서 그 날이 경신일에 해당하는데, 이 60일은 옥황상제가 사람 전부 삼시충을 심어 놓고, 60일에 한 번 벌의 유무를 판단하여 벌이 있는 자에게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생명의 벌을 주었기 때문에, 이 벌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자신의 몸에 숨어 지내면서 벌의 있고 없음을, 고자질하는 삼시충이 몸 밖으로 아예 나오지 못하도록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이다. 잠자는 틈을 타고 삼시충이 나온다고 믿어 날을 하얗게 새면서 잠을 전혀 자지 않았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다.이것은 고려로 시작하여 조선 성종 때 까지 무려 600년 정도의 밤새기 전통이다. 도교적 전통으로 시작되었던 이 전통을 지금의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아주 오랜 전통 중에 200년 전 까지만 해도 매 년 계속 왕과 신하, 온 백성이 지속적으로 해마다 잊지 않으며 해왔던 우리의 풍속이자 전통 이었다. 우리들은 지나온 역사의 많은 것들을 너무나 빨리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상이나 이념, 집착이나 해체는 우리의 사고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풍속과 전통은 그냥 이 시대에 이해가 안 되는 세월을 맞이하더라도 편하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가끔은 따지지 않고 받아 주는 것도 좋을 듯싶다. 더러는 바보스러움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인간이 너무 똑똑하면 피곤하고 사람이 너무 진지하면 재미가 없다. 산꽃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틔우기 위해 추운 겨울과 긴 시간을 제 스스로 참는다.이제 꽃을 봄에 보이고 봄이 웃는데 하지에 시원한 잎을 드리워 주기 위한 연유로 이 순간 이름 모를 나무 가지는 바람을 몰고 와서, 또 다른 튼튼한 생명으로 가을을 다듬고 있다. 사람들이 알아야 시대차이로 작금의 또 다른 우리가 역사 안에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전통의 고마움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도 세월에 좋게 썩어서 문명에 거름이 되는 나무이어야 한다. 계승하는 문화의 밑거름으로 싱싱한 전통이 나무의 물이 되어 필요하다. 밤을 새운다는 것은 작업을 하는 소설 작가나 전통장인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허망한 세월로 시간을 떠나보내며 후회로 숨죽이는 일은 이제는 하지 말아야겠다. 실로 존재하지 않는 사실로 인해 조선조 성종이후의 날밤세기 전통은 없어 졌지만 왜 그런가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최소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것이 그 시대의 시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실로 실존하지 않은 신화나 설화를 대한다고 해서 부정 할 수많은 없다. 실제 있었으나 기록이 없어 나중에 신화로 남거나 우화로 남을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해도 볼 수 없고 역사가 흘러와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을 만질 수 없고 조상의 혼을 만질 수 없다.-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
우리민족의 문화창조 역사(2)
지난호에 이어...
중국학자(서량지 교수)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중국역사 이전의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는 유일하게 조선족 뿐이며 이러한 기록들은 중국의 제일 오래된 풍속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과 명나라 사람 오명제의 “조선세기”와 청나라 때 7만9천여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사고전서(四庫全書)”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주변국에서 우리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으며, 우리 기록들이 불에 타고 도난당하여 부족한 사료들을, 그들이 증명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도리어 고마울 따름이다. 또 중국의 삼국시대(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 때 기록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부여(동이. 동호) 에 관계된 기록들을 확인하면 부여의 국력이 나타난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사람들은 흰옷, 밝은 옷, 을 즐겨 입고(목화. 무명. 실크) 외출할 때는 금, 은 보화로 치장을 하며 신은 가죽으로 만들어 신고 10월이 되면 일주일을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무음곡 을 즐기고 국중 대회를 하는데 이것을 영 고 라고 하더라”. 이때부터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였으며 주변 나라들의 부러움에 찬 기록들을 볼 수가 있다. 또한 한나라(한고조 유방)가 중원을 통일하고 난 후에도 매년 흉노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심지어는 공주 까지도 조공 하였다.
중원의 패자인 “한“나라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상상해 보시라 !그러한 막강흉노까지도 “부여”에게 조공 하였는데, 흉노 왕이 가장 아꼈던 천리마와 왕비(알씨)까지 바쳤다고 기록 되어있다.(사기 권 백십 흉노전)이러한 부여도 단군조선으로부터 생겨난 나라이니 단군조선이 얼마나 강력하였을까? 여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단군이 나라를 세운 때가 “치우천왕”보다 약400년 후의 일인데, 중국의 상고시대 나라인 “하. 은(상). 주” 까지도 단군조선에서 국가 성립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은나라의 마지막왕인 주왕이 “달기”에게 빠져서 정치를 타락하게 하여 그 국민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주” 나라를 세운 무왕을 도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해주었으니 이 모두가 단군조선 때의 일이었다.
기원전 1766~1123년경의 “은” 나라에는 단군의 영향으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누가 잘하느냐가 기준이 되었는데, 단군조선의 제후국 중에 “고죽국” 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고죽국은 동이족들의 나라이기도 하였는데, 아버지인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셋째아들인 “숙제”를 보고 임금을 하라고 하였다.
숙제가 생각할 때 큰형인 “백이”가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한데 왜 아버지가 나를 임금을 하라고 하셨을까?
형인 “백이”에게 왕을 양보하니 형 또한 동생 “숙제”에게 “아버지께서 너를 임금 하라고 하였으니 동생이 임금이 되어야한다”면서 서로 양보하다가 “부끄럽다”고 하며 둘 다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백이숙제) 그래서 산에서 나물을 캐먹으며 살다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후세인들의 입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이렇게 “왕”도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는 우리민족의 근본 마음인 것이다.
그 후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말하길 “중국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면” 조선(동이)에 가서 배워오고 , 조선(동이)의 세제는 1/20(5%) 세제라서 백성들이 전혀 세금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임금이나 백성이 서로 한 몸의 손발처럼 아끼고 위하며 정치를 하였기에 그때의 정치를 이웃나라에서도 “진성인의 정치” 라고 하였다.(사기 진 본기. 맹자.....)이렇듯 단군(계급의 명칭)은 왕 이라는 명예를 떠나 백성과 한 몸 한 뜻이 되어 생활하였으며 유럽이나 이집트의 왕이나 진시황처럼 백성을 노동으로 괴롭히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모든 건물들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짓고 살았기에 지금도 특별한 건물들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昔氏王族의 600年 秘史”倭(왜)로 간 金春秋(김춘추)<1>
신라 제29대 太宗武烈王(태종무열왕)의 이름은 金春秋(김춘추)다.
그러나 신라사에 있어서의 그의 이름은, 즉위한 다음의 치적보다,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풍전등화 같았던 신라의 社稷(사직)을 온존케 한, 그의 탁월한 외교수완으로 빛난다.
그가 당나라에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 그의 준수한 용모와 뛰어난 언변은, 당나라 太宗(태종)을 심취시켰다. 그의 품격에 매혹된 태종은, 신라를 괴롭히는 고구려에 출병하여, 고구려를 견제하는 한편, 13만의 대군을 바다 건너로 보내어, 백제를 응징했다.
그 덕분에 신라는 오랜 숙적인 백제 뿐 아니라, 고구려마저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런 사실은 새삼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신라가 累卵(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轉機(전기)는, “삼국사기”가 밝히지 않는 김춘추의 訪日外交(방일외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김춘추가 왜국에 다녀온 사실조차 전하지 않는 “삼국사기”다. 그러니, 김춘추가 왜 왜국에 갔었는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그들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조차 없는 것 같다.
다행히 그가 찾아 갔던 왜국에는, 비록 짤막하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남아 있다.
“孝德天皇(고도꾸천황)의 大化(대화) 3년 12월(서기 647년), 신라의 大阿?(대아찬) 김춘추가, 전해 9월에 신라로 보냈던 高向黑麻呂(다까무꾸노구로마로)들을 동반하고 와서, 孔雀(공작)과 鸚鵡(앵무)새 각각 한 쌍을 바치므로, 그를 인질로 잡았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담소하기를 좋아했다”
김춘추는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킨 서기 642년, 백제에 보복하기 위한 지원을 얻고자, 고구려로 간 적이 있다. 그 때, 고구려왕은 도움을 청하러 온 김춘추를, 60일이 넘도록 가두어 두었다. 그렇게 되자, 김유신 장군이 1만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구출에 나섰다. 김유신이 한강을 넘어 달려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고구려왕이, 그를 풀어 주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그 때는 구사일생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가 김춘추를 잡아 둔 것은, 신라가 몇 년 전에 竹嶺(죽령) 이북의 고구려 땅을 탈취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국과 신라의 관계는, 고구려와의 그것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고 복잡하다.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왕이 즉위한 직후부터 왜국이 침범해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라를 공격한 왜국은, 백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적대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왜 그들은 신라만을 그다지 괴롭혔을까?”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왜국은, 김내물왕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그들의 공격을 격화시키고, 서기 393년에는 王城(왕성)을 5일 동안 포위한 일조차 있다.
“삼국사기”에는 그 시기의 절박했던 신라의 사정이 전혀 적혀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그 무렵의 한반도 정세와 격전상황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集安(집안)에서 好太王碑(호태왕비)가 발견된 다음부터다.
“辛卯年(서기 391년) 이래, 倭寇(왜구)가 바다를 건너 와… 신라를 격파했다”
이런 문구가 들어 있는 그 비문에는, 호태왕이 5만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왜군을 격퇴한 사실이 적혀 있다.
實聖王(실성왕) 때가 되자, 견디다 못한 신라는 내물왕의 아들 未斯欣(미사흔)을 왜국으로 볼모로 보내어, 한동안 그들의 예봉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모가 되어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미사흔을 구하기 위하여, 왕손인 박제상이 왜로 갔다. 그는 미사흔을 빼어 내기는 했으나, 자신은 잡혀서 焚身刑(분신형)을 당하는 희생을 치렀다.
이런 끔찍한 과거사를 모를 리 없는 김춘추다.
이렇듯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줄곧 원수로 지내오는 왜국….
더구나, 육지로 이어져 있는 고구려와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일본서기”가 말하듯, 만일, 왜국이 김춘추를 인질로 잡아 두었다면, 제 아무리 김유신이라 할지라도, 바다 건너에 있는 왜국으로, 구원대를 끌고 갈 수 있었겠는가?
그런 極惡(극악)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춘추가, 왜국으로 향했다.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는 왜국으로 갔을까? 당태종이 매혹당할 정도로 사려가 깊은 김춘추다. 그런 그가, 무작정으로 왜국에 갔을 리는 없다. 단신으로 바다를 건너 간 그의 가슴 속에, 대체 어떤 묘책이 있었을까?
이렇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우리의 의문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거기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앞에서 소개한 몇 줄 안 되는 “일본서기”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서기”는 왜국 朝廷(조정)에 간 김춘추가,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담소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제 아무리 話術(화술)에 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대해 주는 사람 없이는 담소할 수 없다. 즉 김춘추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응대해 준 사람이 있었음을, “일본서기”는 짐작케 해 준다.
-
황칠명인 구영국교수의 전통문화산책(10)
한국의 활쏘기는 언제부터였을까 한국의 활쏘기가 왜 세계를 제패했는지에 대하여 아는 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온 세계를 놀라게 하는 위대한 한국양궁의 근원과 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역사는 이 답을 말해주고 있다. 임진왜란 중 선조는 훈련도감에서 여섯 가지의 무기를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곤봉, 쌍수도, 등패(등나무로 만든 방패와 칼 표창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말함), 삼지창(당파), 낭선(9~11개 가지가 만들어진 창), 장창 이었다. 당시 이 무기들은 근접전에서 쓰여 진 무기였는데 많은 군사들이 이를 잘 다루지 못하여 미숙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선 이 단거리의 무기다루는 훈련과정의 재검토를 신중히 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일상적인 풍속중 하나가 바로 활쏘기였는데, 활쏘기보다 새로이 도입한 가까운 거리의 전투 시 창검을 다루는 훈련을 하다 보니 ,숙련돼지 못한 전투력으로 인해 훈련의 성과와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므로, 병조에서는 앞서 애기한 여섯 가지 무기를 다루는 것보다 활쏘기를 주 전력전술로 교육할 수 있도록 임금에게 간해서 다시 활쏘기를 주 훈련교육으로 바꾸게 된다. 이로서 새로운 무기를 잘 다루지 못한 것은 나중에 근접전투의 역사 속 약점이 되기도 하였다.
중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동이족(동(東夷族)이라고 불렀다. 동이족의 본뜻은 ‘오랑캐’란 뜻이 아니라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이의 이(夷)자를 풀어보면 큰 대((大)자에 활 궁(弓)자임을 풀어서 알 수 있다. 흔히 우리들은 동이족의 개념을 잘 못 알고 있는 듯하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 고려를 세운 왕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모두 활을 귀신처럼 잘 쏘았던 인물들이다. 이렇게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신궁(神弓)이라 불렀는데 신의 경지에 이르렀던 활쏘기의 명수들이었다. 왕이 되려면 활을 잘 쏠 줄 아는 민족적 특징과 더불어 리더의 필수 기량이 필요 했다. 아무나 왕이 되는 일은 역사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악지형이 지배적이어서 근거리전투보다 원거리전투에 용이한 궁술이 특히 발달 하게 된다. 평평한 땅위에서의 평 전투보다 산을 둘러싸고 거리를 두고 싸웠던 산성전투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궁술은 군사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제일 중요한 전쟁의 기술이었고, 힘 이었고, 무관의 벼슬길이었다. 우리는 온 백성이 활쏘기에 전념한 활의 민족이다.
우리는 칼의 민족이 아니다. 활의 명수인 활의 최고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의 활쏘기는 세계양궁대회에서 금메달을 꼭 걸고 오는 위대한 활의 최고민족이며 후손이며 자손이다. 이것이야말로 태초의 역사와 함께 진정으로 자랑스러워 할 일이다.
삼국시대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활쏘기는 활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이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기능을 보존해가고 있다. 역사는 지금도 이처럼 계속 이어 진다.
일본은 화살촉에 금칠(일본에서는 ‘황칠’을 ‘금칠’이라고 부른다)을 하여 무기를 만들었는데 정확히 화살 끝부분인 촉에 0.026mg을 칠했다. 촉이 부식되어 망가지면 화살로서의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이 황칠을 그야말로 담궜다 빼는 정도의 소량을 입히었다.
황칠이 아주 귀하다보니 마음대로 많이 칠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려니와 이 황칠은 전쟁의 도구보다는 어느 면에서 천황의 기물에 더 많이 사용되어 졌으리라 여겨진다. 선조가 가슴을 쳤던 일제시대 우리의 보물인 황칠이 수탈되고 통 크게 흔적 없이 사라진 역사의 아픔을 뒤로해보아도 전쟁의 중요한 무기였던 살상무기 화살에, 우리의 황칠을 일본 군졸들이 사용했다는 사실은 비극을 뛰어 넘어 웃지 할 통한의 변이다. 많은 우리 황칠의 유실은 알고 보면 결국 일본의 화살촉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수년 전 필자의 분당 집으로 일본 옻칠장인과 경영자들이 다녀간 적이 있다. 몇 년 전엔 미국, 독일, 중국, 이태리, 프랑스, 인도, 포루투갈등 각국 나라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단정한 귀빈실에 전시된 황칠 작품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장면을 보고 한국의 황칠은 활쏘기만큼 큰 우리의 자랑으로 됐다는 것임을 생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세상엔 훌륭하고 귀한 것이 각 나라마다 많이 있다. 또 각기 나라마다 자랑은 다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전통기술은 세계인을 충분히 감동시키고 남음이 있다. 뛰어난 한국인의 기예와 예술정신은 하나뿐인 지구의 행복도 살릴 수 있다.
이젠 그런 시대가 왔다. 켜켜이 세월의 때가 묻은 선조들의 고문서를 보면서 민족은 잘 화합하고 절절히 묻어나는 조상의 종묘와 사직에서 이제 피어나는 봄꽃이 경건해진다. 왕비의 머리장식인 떨잠은 분노로 떨지 않으며, 국왕의 익선관은 슬픈 역사위에서 화산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우리의 백성들은 전통과 역사와 문화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새 역사를 이어간다. 힘들고 지치고 커다란 통증이 와도 그 누군가 말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길이라면 전통의 장인은 그 길을 역사와 함께 가고 있다.
-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
우리민족의 문화 창조 역사
세계 역사상 문자를 공식적으로 4번씩이나 만든 민족은 우리민족 밖에 없다. 세종대왕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창제 하실 때, 가림토문자 38자에서 20자나 모방 하였다는 사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서 밝혀져 있으니 입증된 셈이다.
이두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니, 더 이상 신라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이두문자의 총 정리자 “설총”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일본의 오래된 절인 이세신궁이나 중국의 오래된 사찰 등에서 가끔 발견되기도 하는 가림토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든 문자이다.
가림토문자(38자)를 그대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한글 28자를 옛날처럼 전부 사용하게 되면 짐승의 소리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 한. 중. 일이 같이 사용하는 한자(漢字)도 기록에 의하면 동이족인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契)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호상 박사가 문교부장관 시절 대만을 방문하여 “임어당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민족은 한글을 사용하여 너무나 편하다고 하며 한글은 세계의 어떠한 문자도 마음대로 발음할 수 있는 편리한 문자임을 자랑하면서 한자의 어려움을 한글과 비교하며 말 했더니, 임어당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하길 “한문도 동이족인 그대들의 선조가 만든 문자인데 왜 한글 만 자랑하느냐”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 은 공식적으로 네 번(한글. 이두문자. 가림토문자. 한자)씩이나 문자를 만든 세계 최고의 문화민족 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선조들의 후손됨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현재 일본의 극우세력들 즉 황국사관에 젖은 사람들이나 수십 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정권을 쥐고 있던 자민당에서는 마치 일본 사람들이, 섬에서 자생 하였거나, 중국이나 유럽 부근으로부터 와서 일본을 건국하였고, 지금 사용하는 말 또한 우랄알타이계와 다른 것으로서 독특하다고 선전하며 천황도 만세일계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정치인들이 일본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해의 뿌리라는 뜻의 한자표현이며, 국기 또한 붉은 태양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대략 서기 670년경에 정해졌다고 일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당시에는 이라고 표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이라고 읽은 것이 아니라, 라고 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서기 750년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 萬葉集(만엽집)에 실려 있는 노래에 한자로 이라고 표기돼 있는 모두가 라고 읽혀져 있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인다면, 는 지금의 경북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번창했든 우리의 고대부족국가(우가야)의 국호로,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지금의 지방에 정착하고, 그 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 우리조상들이 붙인 이름인 것이다. 지금 그 지역을 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우리조상들이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가야인은 슬프다”중에서: 박병식 저)
참고적으로 말하면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로 태양을 좋아하고 숭배하며, 태양 그 자체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스스로를 “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원래는 “라”였다.
“라”에서“ㄹ”이“ㄴ”으로 소리 바꿈 하여 “나”로 되었다. 즉 “라(나)”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이집트” 에서는 태양신을 말한다. 태양의 옛 표현 말은 “아. 하. 라”였는데 아버지의 “아”와 같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인 “아리랑”은 바로 “태양처럼 높으신 님, 즉 하나님” 을 뜻하는 순수 우리 고어인 것이다.
일본사전에 국호 “일본(日本)”(태양의 뿌리라는 뜻) 이 말은 “삼한에서 사용하던 말로써 그 뜻이 아름다워 만년에 변치 않을 국호로 삼는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니 일본말 전체가 우리의 옛 가야 말인 것은 분명하며 우리말과 똑같은데,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모음이 3개(ㅡ,ㅐ,ㅢ) 빠져 탈락함으로 인하여 변화된 것이다.
예:1.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日本: 조로 조로
2.물건을 슬슬 끌어당긴다.=日本: 스루 스루
3.터벅터벅 걸어간다. =日本: 도보 도보
요즈음 중국 공산당정권이 우리민족의 상고역사를 훔쳐가서 자기네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과 “탐원공정”등 몇 가지 공정들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밑작업을 해왔다는 것이 최근에서야 들통 난 것이다. 왜 그들은 그들만의 역사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족들이 아무리 땅이 넓고 큰 나라라고 잘난 척해도, 역사가 훨씬 길고 오랜 문화선진국인 조선족의 수준으로 보면 항상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역사를 알고, 자부심이 강하며, 언제 또 그들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다음호에 계속....
-
황칠명인 구영국교수의 전통문화산책(9)
달포 만에 숲속에 들어서니 귀여운 작은 박새가 봄으로 녹는 대지위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 나무 저 나무를 계속 옮겨 다니며 구역의 경계로 텃새 질을 한다. ‘거리’라는 헬기를 타고 바라본 먼 남해 바다 밑에선 푸르게 시린 정어리 한 떼가 맨 앞 주장인솔자를 필두로 우리나라 바다 밑을 재미있게 어종조사인 듯 순찰하고 다닌다.
깊고 고요한 산 속 잔잔한 사기 장인이 빛은 백자도자기 옆에선 화금청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불그무레하여 수줍은 홍매가 꽃망울을 힘차게 터트리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 궁궐 옆에선 노란 개나리가 바람을 가르며 사르륵 사르륵 피어나고 있다.
국보1호인 남대문 복원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보물1호인 동대문 앞길엔 반원형을 돌아가며 앞으로 줄줄이 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각자 제 갈 길로 오가며 오늘도 하루 내 내 숨 쉴 겨를 없이 매우 분주하더니 국토의 하단아래 목포의 야간 멸치잡이 그물처럼 바쁘다.
분주하긴 궁중연회에 등장했던 우리의 학(두루미)도 매한가지이다. 3월초면 궁의 천정 그림에서 떠나 시베리아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학은 십장생 중에서 유일한 아름다운 새인데 전 세계 14종류가 있다고 한다. 현재 지구상엔 몇 백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 전만하여도 수천마리가 11월 하순에 겨울을 나려고 해마다 시베리아나 몽골등지에서 먼 거리를 날아서 우리나라에 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개체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관심을 갖고 지극히 보호해야 할 희귀 조류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인간의 못된 욕심 때문에 머리가 빨간 피부를 가진 역사적인 새가 희생되고 사라진 결과이다.
무자비한 사냥총에 의해서 그러하고, 극한 독극물 농약에 의해 그렇고,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을 놓은 올가미에 의해 수없이 죽고, 무자비한 개발에 의한 서식지의 잠식으로 말미암아 상당수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두루미가 척박한 땅위에 죽었다. 이럴 즈음 멸종 위기를 염려했던 일본은 오래전부터 인공부화를 통한 연구를 활발히 지속해 오고 있었기에 두루미 보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그나마 겨우 빛을 찾고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랜딩기어에 가해지는 압력은 무려 100톤에 가깝다. 두루미가 지상에 착지할 때는 발을 밑으로 쭉 뻗어 몸을 세우고 긴 날개와 꽁지를 펴서, 날라 오던 바람의 막강한 저항을 삭이며 가속도를 줄여 천천히 내려앉는다. 비행기 역시 땅에 착지 할 때에는 큰 양쪽 날개를 밑으로 내린다. 이렇게 바람의 저항을 이용하는 것은 두루미나 비행기나 매 일반이다.
몸이 무거운 두루미는 여느 작은 새처럼 자신의 날개 힘으로만 날 수 없기 때문에 바람을 이용하는데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목을 앞으로 빼고 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움직여 반복적 추진력을 통한 전력질주로 이륙한다. 그 무겁고 커다란 우리의 비행기의 이륙원리도 매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일하다. 이는 동물의 행동이나 인간의 기계적 생태행동학이 같다는 애기이다. 따라서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의도되지 않은 자연행위와 의도된 행동이 틀리지 않단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무려 3km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알이 태어나 기뻐서 소리 질러 우는 울음소리하고 암수 짝짓기 할 때 서로 좋아 죽고 못 살아 우는 울음소리는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또 두루미의 암 수 구별은 울음소리로 알 수 있다. 수컷이 한번 울고 나면 바로 이어서 암컷이 두 번 울기 때문인데 구별법은 그 소리가 한번 ‘뚜룹’ 하고 두 번 ‘뚜르르’이다.
두루미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장수의 개념인 십장생의 관점에서 보는 수명이 150년이지만 실제 150년을 살고 죽었는지는 아직 확인 된 바가 없는데, 인공적으로 최적의 환경을 보호한 동물원에서는 82년을 산 적이 있다하나 대략 야생 두루미의 수명은 30년에서 50년의 수명으로 보고 있다. 만약 자신이 새라면 어떤 새 이고 어떤 자태이고 싶을까.
두루미의 자태는 신선의 자태라고 했다. 신선이 학을 타고 있는 그림은 천상의 세계에선 무릉도원이 아니런가.
두루미는 봉황처럼 절대 썩은 먹이를 먹지 않는다. 썩는 다는 것은 병이 드는 것이고 병이 들면 생명이란 것을 심장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관료의 관복 흉배에, 궁중 그림과 민화와 십장생그림에, 샤머니즘의 이해 논리에 접하면서, 국왕의 집무실 천정에, 사찰의 엄숙한 공포에도 학은 늘 살아 있으며 존재해 왔음을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잊지 않고 있다.
봄이 이처럼 연민으로 전통 가슴속을 파고드는 지금 우리가 학(두루미)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보니 행복해 진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사랑하는 이웃 지인들 모두 어느 좋은 길일에, 슬픔이 없는 천상의 이상세계로 학과 동무하며 순수하게 소풍 갈 수 있는 저 하늘 길에, 천년을 같이 가야하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잘 여며가는 사람들이었으면, 이 봄 정말 좋겠다.
-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 최신뉴스더보기
-
-
- 유한대학교, 2024년도 경기도 평생 배움 대학 GCC 필수 공통과정 ‘경기학 현장실습’ 진행
- 유한대학교(총장 김현중)가 경기도 평생 배움 대학 GCC 캠퍼스 필수 공통과정인 ‘경기학 현장실습’을 진행하였다고 20일 밝혔다.경기학 현장실습은 경기도 지역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다루는 수업으로써 인문학적 소양의 증진과 경기도의 사회·자연·지역 등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증진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기도 평생 배움 대..
-
- 제2회 다 함께 마음 나눔 바자회, 무안군에 수익금 기탁
- 전남 무안군(군수 김산)은 지난 10일 관내 기업과 사회복지기관이 협력하여 개최한 ‘제2회 다 함께 마음 나눔 바자회’의 수익금 182만원을 무안군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전달된 성금은 지난 4월 26일 무안읍 불무공원에서 사단법인 미담 외 9개 곳(열린가정상담센터, 무안지역자활센터, 무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 행복마을장기요...
-
- 무안스포츠파크 실내수영장·골프연습장, 개보수 공사로 임시휴장
- 전남 무안군(군수 김산)은 군민들에게 안전한 체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무안스포츠파크 실내수영장과 골프연습장 시설물 개보수 공사를 5월 말부터 진행한다. 이에 실내수영장은 5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43일간, 골프연습장은 5월 27일부터 6월 27일까지 31일간 임시 휴장할 계획이다. 실내수영장은 지난해 시설물 정기...
-
- 담양군의회, 제328회 임시회 운영
- 담양군의회(의장 최용만)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동안 제328회 임시회를 운영한다. 이번 임시회에서는 「담양군 실종자 발생 예방 및 조기 발견 지원 조례안」 등 민생관련 조례안 19건(의원발의 10, 집행부 9)을 심사, 처리할 계획이며 각 상임위원회별로 의회운영위원회 3건, 자치행정원회 8건, 산업건설위원회 8건이다. &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