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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3-25 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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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 년 동안의 전통, 60일에 한번 씩 그러니까 1년에 여섯 번에 걸쳐 밤새도록 술에 취하고 여흥을 즐기며 신나게 놀았던 날, 한 나라의 임금에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밤잠을 안자고 밤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잔치를 벌여왔던 밤샘연회인 역사 속 백야의 잔치가 있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경신수야(庚申守夜)이다.

‘고려사’엔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1265년 고려24대 원종 6년) 나온다. 궁중에서 열리는 경신대회가 그것이었는데 훗날 고려 25대왕으로 등극하는 충렬왕이 연회의 주최를 주도했던 태자 심(諶) 이었다 한다. 그리고 자주 환락에 빠졌던 충렬왕은 몽고에 충성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라의 재정이 바닥이 날 정도로 사냥과 놀이와 연회를 좋아했던 왕으로도 유명하다. 국가의 재정이 거덜 날 정도의 사치라니 지금 같은 세상의 국가 경영이었다면 왕이라도 당장 쫓겨나 버리고 말 일이다.

도교적 전통에서 시작된 이 밤새기는 인간의 몸에서 아무 형체도 없는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사람이 잠들면 슬그머니 나와서, 옥황상제에게 사람의 죄지은 것을 일러바친다고 믿었다. 지금의 과학적인 생각으로 접근하여 보면 전혀 말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 이지만 당시 도교적 사상에선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도교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120년 산다고 보았고 또 그 수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옥황상제가 사람마다 이 삼시충을 다 심어놔서 감시하고 통제하며 60일에 한번씩 이 삼시충 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 생명기간을 자르는 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20년을 살 수 있는 인간수명이 죄를 지으므로 해서 적게는 3일, 많게는 300일의 수명이 무섭게도 많이 단축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의 의심도 없이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애기지만 그때 그 시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더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과거에나 지금에도 끝이 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 옛날로 치면 얼마나 더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변하지 않고 절실 했겠는가. 생명의 욕심은 끝없다.

궁의 임금도 만백성들도 60갑자로 세어서 그 날이 경신일에 해당하는데, 이 60일은 옥황상제가 사람 전부 삼시충을 심어 놓고, 60일에 한 번 벌의 유무를 판단하여 벌이 있는 자에게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생명의 벌을 주었기 때문에, 이 벌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자신의 몸에 숨어 지내면서 벌의 있고 없음을, 고자질하는 삼시충이 몸 밖으로 아예 나오지 못하도록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이다. 잠자는 틈을 타고 삼시충이 나온다고 믿어 날을 하얗게 새면서 잠을 전혀 자지 않았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다.

이것은 고려로 시작하여 조선 성종 때 까지 무려 600년 정도의 밤새기 전통이다. 도교적 전통으로 시작되었던 이 전통을 지금의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아주 오랜 전통 중에 200년 전 까지만 해도 매 년 계속 왕과 신하, 온 백성이 지속적으로 해마다 잊지 않으며 해왔던 우리의 풍속이자 전통 이었다.

우리들은 지나온 역사의 많은 것들을 너무나 빨리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상이나 이념, 집착이나 해체는 우리의 사고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풍속과 전통은 그냥 이 시대에 이해가 안 되는 세월을 맞이하더라도 편하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가끔은 따지지 않고 받아 주는 것도 좋을 듯싶다. 더러는 바보스러움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인간이 너무 똑똑하면 피곤하고 사람이 너무 진지하면 재미가 없다. 산꽃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틔우기 위해 추운 겨울과 긴 시간을 제 스스로 참는다.

이제 꽃을 봄에 보이고 봄이 웃는데 하지에 시원한 잎을 드리워 주기 위한 연유로 이 순간 이름 모를 나무 가지는 바람을 몰고 와서, 또 다른 튼튼한 생명으로 가을을 다듬고 있다.
사람들이 알아야 시대차이로 작금의 또 다른 우리가 역사 안에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전통의 고마움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도 세월에 좋게 썩어서 문명에 거름이 되는 나무이어야 한다. 계승하는 문화의 밑거름으로 싱싱한 전통이 나무의 물이 되어 필요하다.

밤을 새운다는 것은 작업을 하는 소설 작가나 전통장인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허망한 세월로 시간을 떠나보내며 후회로 숨죽이는 일은 이제는 하지 말아야겠다.
실로 존재하지 않는 사실로 인해 조선조 성종이후의 날밤세기 전통은 없어 졌지만 왜 그런가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최소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것이 그 시대의 시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실로 실존하지 않은 신화나 설화를 대한다고 해서 부정 할 수많은 없다. 실제 있었으나 기록이 없어 나중에 신화로 남거나 우화로 남을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해도 볼 수 없고 역사가 흘러와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을 만질 수 없고 조상의 혼을 만질 수 없다.

-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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