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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란?
#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란?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란 비정상적으로 높은 혈중 황체 자극 호르몬과 정상 범위의 난포 자극호르몬의 분비로 인하여 무배란성 월경 이상과 양측성 다낭성 난소 낭종화(난소에 여러 개의 물혹이 생기는 것), 또는 조모증(여성에서 남자같이 체모가 돋아나는 현상)을 동반하는 질환입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스타인-르벤달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 증상50%에서 무월경이나 희발월경, 75%에서 불임증, 50%에서 비만을 동반합니다. 고안드로겐(남성호르몬)증에 의한 다모증, 여드름, 지루성 피부 등이 70%에서 나타납니다. # 진단환자의 병력과 검진을 통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내릴 수 있습니다. 혈중 호르몬 수치 검사와 초음파로 확진하기도 합니다. 초음파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과, 난소에 여러 개의 낭이 생기는 다른 질환들을 구별하는 데에 쓰입니다. 월경이 오랫동안 불규칙하거나 아예 없다면 자궁 내막의 상태를 평가하고, 전암성(암이 생기기 전 단계) 세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궁 내막 생검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치료 비만시에는 체중감량을 하면 자연치유가 될 수 있으며 배란유도로 불임치료, 수술로서 난소부분을 절제하거나 전기소작술이 있습니다. 호르몬 제제를 투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건강을 해치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1. 혈중 트리글리세리드(triglyceride)가 높습니다.2. 혈중 고밀도 지단백질(HDL-cholesterol)이 낮습니다.3. 인슐린과다혈증을 동반합니다.4. 비만을 동반합니다.따라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관상동맥 질환, 당뇨병, 고혈압, 자궁내막암, 유방암 등의 여러 가지 질병이 잘 발생하므로 매년 1-2회 정도 정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이러한 질병이 발병하는가를 감시하여야 합니다.다모증이나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대처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힘든 문제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여러 사람이 모이는 상황을 피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거나, 불편해하거나, 과다한 털의 성장에 대해 자기 의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의사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의논하여 산부인과적, 성형외과적 치료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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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58열전(12)] 음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가장 밝은 곳이 된 ‘경화동’
[한부길 기자]기계공업의 메카로 불렸던 창원시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 마련에 전력을 쏟고 있다. 창원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구조고도화를 통한 제조업의 첨단산업화와 함께 공업도시라는 명성에 상대적으로 잊혀졌던 문화, 관광자원을 통해 관광도시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이와 연계해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관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기획을 연재한다. 그 열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음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가장 밝은 곳이 된 진해구 경화동’이다./편집자 주 (12) 경화동은 ‘빼앗긴 자의 도시’ 였다진해는 1910년대 일제가 건설한 군항도시다. 애초 일제는 마산 외곽지역 ‘진해현’에 속하던 진동.진전.진북 일대에 군항 배후도시를 계획했다가 장복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름도 ‘진해’를 가져왔다. 진해는 일본인의 설계로 일본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일제의 야욕이 계획대로 진행되면서 장복산 자락에 터를 잡았던 11개 마을 2,000여명의 원주민들은 강제토지매수 방식으로 시 외곽으로 내쫓겼다. 이들이 강제로 이주하게 된 곳이 지금의 진해구 경화동이다. 당시 경화동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이곳에 일제는 감시가 쉽고 군항건설에 인원동원을 위해 바둑판같은 형태의 주거단지를 만들어 한국인들만 살게 했다. 어느 언론의 표현대로 중원로터리 일원은 ‘빼앗은 자의 도시’, 경화동 일원은 ‘빼앗긴 자의 도시’가 됐다. # 치열한 삶터이자 진해 근현대사의 산실이 되다일제에 의해 강제이주지가 된 경화동은 치열한 삶터이자 진해 근현대사의 산실이 되어갔다. 조선시대 말까지 진해에서 가장 큰 장터였던 풍호동의 풍덕개장이 경화동으로 터를 옮겨 경화시장이 열렸다. 일제가 풍덕개장 자리에 비행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화시장은 1924년에 공설 1호 시장으로 분류됐고, 1955년에 시장 승인을 받았다. 경화시장은 한국인들만의 거주지에 있었던 장이었고 시대상황도 그렇다 보니 그곳에서 오간 얘기는 미뤄 짐작된다. 그때부터 였을까? 평소 조용했던 경화시장 거리에 장이 서는 날이면 온 진해가 떠들썩하다. 현재 매월 3.8일, 13.18일, 23.28일에 정기적으로 개장되는 경화시장에서는 진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에서부터 채소, 과일 등 육해공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봄날의 경화시장의 벚꽃내음은 덤이다.진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도 경화동에 있다. 1912년에 개교한 경화초등학교는 사립 대정학교로 출발해 1920년 진해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5년 경화국민학교, 1996년 경화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꿔오면서 지역인재의 산실로 자리매김 해왔다. 2012년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역사관도 개관했다.벚꽃터널로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화역이 등장한 것은 1926년이다. 경화역은 진해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진해선은 일제 강점기에 해군 기지의 유지와 진해항의 연결을 위해 마산~진해 간에 연결된 철도다. 경화역은 창원방면의 성주사역과 진해역, 통해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오다 1987년에 지역 주민 등이 역에 근무하면서 승차권을 발매하는 을종 승차권 대매소로 격하됐고, 2000년 역사 철거, 2006년 해군 통근 열차 폐지로 역 기능을 상실했다.경화역이 여객운행을 하지 않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역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800m 길이의 벚꽃터널에 서 있는 기차 풍광에다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화역은 2012년에 여좌천 벚꽃길과 함께 CNN이 선정한 한국의 관광명소 50곳 중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겨울 문턱에 찾아간 경화역은 어색함이 앞섰다. 벚꽃은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동면에 들었다. 벚꽃이 잠든 사이 한쪽에서는 경화역공원 조성이 한창이었다. 기차실물을 가져다 기차역사박물관으로 만들고, 미니어처이기는 하지만 경화역사도 들어서고 있었다. 새로 들어선 공중화장실과 버스승강장도 기차모형을 했다. 공원을 둘러보자니 내년 봄 이곳을 가득매울 사람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진해의 대표적인 주전부리인 진해콩 생산지가 경화동이다. 진해콩은 1915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해 100년을 훌쩍 넘었다. 첫 생산은 일본인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진해콩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으로 현재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진해콩은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해 콩모양으로 만든 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직접 불에 굽기 때문에 유해지방 걱정이 없다고 알려지면서 현재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1960, 1970년대에는 최고급 과자로 명성을 날렸고, 진해콩 인기가 높아지자 마산, 부산 등지에서 경쟁업체들이 성업하기도 했다. 지금도 진해콩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경화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생산공장을 직접 찾기도 한다.옛 진해시는 근대 역사와 함께 경화동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속천 해안도로변에 해변공원을 조성했다. 해군교육기지사령부의 경내로 관리돼 오던 곳에 교통 소산과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해군의 협조를 받아 정지, 매립 등을 거쳐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새로운 랜드마크 건물로 진해루를 지었다. 진해루는 연면적 477㎥에 높이 15.2m, 주심삼포양식의 팔각지붕으로 2005년 8월에 착공해 2006년 4월에 준공됐다. 명칭은 공사착공과 함께 일반시민들에게 누각명칭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진해루는 아름다운 진해만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인기가 높고, 진해지역의 해맞이와 해돋이 명소로도 자리를 잡았다. 이와 함께 총 30km에 이르는 ‘진해바다 70리 길’ 7개 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경화역 한켠엔 주민들이 함께 만든 덕주동산도 눈에 들어온다. 덕주동산은 지난 2011년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에서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으로 경화동 조천마을에서 출생한 김덕주 이인(異人)을 기려 지역주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키 위해 이야기가 있는 테마공원으로 조성됐다. 지난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시설물을 보강해 재개장 했다. 김덕주 이인은 일제강점기 실존인물로 축지법은 물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지역민들이 그를 이인이라고 불렀다 한다. 경화동엔 해발 602m의 장복산 덕주봉의 유래와 덕주바위, 텃밭, 샘터, 쉼터 등 이인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아가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는 지난 2013년 이인의 전설을 담은 ‘덕주 할아버지와 꽃순이’ 동화책 500권을 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벚꽃이 흐드러진 경화역만을 떠올렸던 경화동은 벚꽃 뒤에 가려진 음지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아픈 역사를 씩씩하게 이겨내고 이내 가장 밝은 곳으로 올라섰다. 경화동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니 왜 그토록 진해주민들이 경화동을 애지중지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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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여주세종문화재단 KBS미디어 HJ컬쳐의 김선미 극본 임세영 작곡 음악감독 김은영 작곡 연출 뮤지컬 ‘1446’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여주세종문화재단 & KBS미디어 & HJ컬쳐 제작의 한승원 김종석 프로듀서, 김선미 극본, 임세영 작곡 음악감독, 김은영 작곡 연출의 을 관람했다.김선미(金善美)는 시나리오 작가다. 은행나무 침대, , , , 그 외의 방송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김은영은 음악감독 작곡가 연출가다. 파리넬리, 유메토모 한국 특별콘서트, 사의 찬미, 배쓰맨, 찰리찰리, 문스토리, 배니싱, 파가니니, 1446 등에서 작곡, 편곡, 음악감독, 연출 등을 맡았다.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관련 뮤지컬이다. 조선 세종(朝鮮 世宗, 1397~1450년은 조선의 제4대 군주이며 언어학자이다. 그의 업적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명칭인 세종대왕(世宗大王)으로 자주 일컬어진다. 성은 이(李), 휘는 도(祹),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정(元正), 아명은 막동(莫同)이다. 세종은 묘호이며, 시호는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고,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는 장헌(莊憲)이다. 존시를 합치면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 된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며, 왕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의 딸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이며, 조선의 왕 중에서 왕세자에게 양위를 하지 않고 훙서한 최초의 왕이다. 한성 준수방(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고을에서 아버지 정안군 이방원과 어머니 민씨 부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종 8년(1408년)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다가, 태종 12년(1412년), 둘째 형 효령군 이보와 함께 대군으로 진봉된다. 1418년 첫째 형 양녕대군이 왕세자에서 폐위되면서 세자로 책봉되었고 얼마 후 부왕의 선위로 즉위하였다.즉위 초반 4년간 부왕 태종이 대리청정을 하며 국정과 정무를 주관하였고 이때 장인 심온과 그의 측근들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주변의 소헌왕후 폐출 주장을 일축했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김종서, 맹사성 등을 등용하여 정무를 주관하였는데 이 통치체제는 일종의 내각 중심 정치제도인 의정부서사제의 효시가 되었다. 세종은 과학, 예술, 문화등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왕이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농사에 관한 책을 퍼내었지만 글을 읽지 못해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1443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였다. 이것은 20세기 주시경에 의해 한글로 발전되어, 오늘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롯한 한반도에서 공식 문자로서 널리 쓰이고 있다. 10월 9일은 한글날로 기념한다. 과학 기술에도 두루 관심을 기울여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의 발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신분을 뛰어넘어 장영실, 최해산 등의 학자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국방에 있어서는 이징옥, 최윤덕 등을 북방으로 보내 평안도와 함길도에 출몰하는 여진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으로 국경을 확장하였고,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실시하여 국토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또한 이종무를 파견하여 왜구를 토벌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이밖에도 법전과 문물을 정비하였고 조세 제도의 확립에도 업적을 남겼다.한글은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력 9월에 이를 반포하면서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하여 문자와 천지인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지나치게 강한 학구열과 과로로 인해 젊은 시절부터 시력이 많이 좋지 않았다. 결정적인 타격은 자치통감훈 편찬이었다. 세종은 이 작업에 굉장한 열의를 보이며 임했는데, 결국 책의 편집과 자신의 안과 질환을 맞바꾸었고, 말년에는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무대는 대궐전각의 문을 본뜬 가리개 여덟 개를 가로 세로 이동 배치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전각의 기둥 네 개를 무대 좌우에 세로로 배치한다. 옥좌가 중앙에 배치될 때에는 천정에 대궐천정 문양의 조형물이 경사로 배치되고, 중간 막을 사용한다. 사각이 등 여러 개를 무대 여기저기 배치해 독특한 분위기 창출을 연출해 낸다. 의상도 궁중복식을 재현하고, 선왕과 왕 그리고 왕비의상이나 대신들의 의상 부채 같은 소품도 완벽에 가깝고 백성들의 의상 무사들의 복장이나 장검은 물론 무예대결도 완벽을 기했다. 배경 뒤에 자리한 연주석과 극 분위기 창출에 따르는 연주와 출연자의 노래에 따른 반주도 일품이다. 장면전환이 빠르면서도 자연스럽고 출연자의 고른 연기력과 열연 또한 수준급이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극이 진행되고 태종의 대리청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권창출을 해 보이는 세종, 그리고 대신들의 왕비 심 씨의 폐출을 논란을 단호히 차단하는 과정, 여진족의 침입을 막고, 외지인 장영실을 등용해 천문기구, 측우기를 발명토록 하는 과정, 한글창제과정이 노래와 춤, 무용 그리고 무술대결이 어우러지면서 빠른 장면전환과 함께 펼쳐진다. 왕과 왕비는 물론 대신들이 점차 나이가 들면서 대사와 발성에 이르기까지 노역으로의 변화 또한 제대로 연출된다.세종으로 정상윤과 박유덕, 태종으로 남경주와 고영빈, 소헌왕후로 박소연과 김보경, 대신 전해운으로 박한근 이준혁 김경수, 양녕대군과 장영실로 최성욱 박정원 황민수, 운검으로 김주왕 이지석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으로 극을 수준급으로 이끌어간다.백성들과 무사들 그리고 신하들로 백종규, 김진식, 문지훈, 김수영, 김태민, 슨승윤, 정일현, 김진식, 오형규, 하웅환, 진대웅, 홍윤영, 조은서, 이연주, 우미나, 김미미, 오유민, 김은서, 이다슬, 김하인 등 출연자 전원의 기량이 음악연주와 조화를 이루어 열창과 무용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프로듀서 한승원 김종석, 안무 채현원, 무술 김은정, 무대디자인 김대한, 소품디자인 김정란, 조명디자인 김준범, 음향디자인 김주한, 의상디자인 이호준, 분장디자인 김숙희, 프로덕션무대감독 김유신, 무대감독 진정민 등 기술진의 기량도 드러나, 여주세종문화재단 & KBS미디어 & HJ컬쳐 제작의 한승원 김종석 프로듀서, 김선미 극본, 임세영 작곡 음악감독, 김은영 작곡 연출의 을 세계시장에 내보여도 좋을 수준작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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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이야기15]독도는 어떤 섬인가?
-지난호에 계속# 울릉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3년(광무 7년)~1906년에 걸쳐 고종의 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문헌비고(文獻備考)를 바탕으로 상고 이래 대한제국까지의 우리나라 문물제도의 전고를 총망라해 수록한 책이다. ‘여지고(與地考)’ 편에서 우산도와 울릉도의 연혁과 역사적 사실 등을 총망라해 기록했다. 우산국 점령, 고려 때의 울릉도 관리, 조선 초기의 공도정책, 안용복의 활동, 울릉도의 수토(搜土) 등을 빠짐없이 수록했다.# 우산국 점령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사기는 1145년에 김부식 등에 의하여 편찬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에 관한 기전체의 가장 오래된 정사이다. 이 기사는 512년 지증왕 13년에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점령해 독도를 신라에 복속시킨 사실을 적은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지배했던 해상왕국이었다. 이사부 장군은 우산국을 점령키 위해 나무상자를 만들어 배에 싣고 울릉도에 도착해 그곳 주민들을 위협해 항복을 받았다.# 이규원(李奎遠) 울릉도검찰사 ‘고종실록’조선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3년마다 1회씩 수토관을 파견해 관리했다. 19세기 말경에 이르면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입도해 삼림을 남벌하는 등 피해가 많았다. 조정에서는 1882년에 이규원(李奎遠)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해 울릉도의 실태를 파악케 하고 행정구역을 설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해 보고토록 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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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이야기14]옛 지도들에서 본 독도(4)
-지난호에 계속 #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의 명에 의하여 맹사성 등이 편찬한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보완해 1454년 단종 2년에 세종실록을 편찬하면서 부록으로 수록했다. 전국의 인문 지리적 내용을 수록했는데 권153의 강원도 울진현 조에 ‘운산 무릉 두 섬은 울진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었다.’라고 기록해 우산도(于山島)가 독도임을 분명히 하고 우리 땅임을 밝혔다. # 울릉군수 심흥택 일본은 1905년 2월에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를 통해 독도를 불법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한 후, 독도를 시찰코저 했으나 선박 사정과 거센 풍랑으로 몇 차례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그 이듬해인 1906년 3월에 비로소 50여 명의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 조사단은 독도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 했으나 풍랑이 심해 울릉도에 기착하고 군수 심흥택과 대화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심흥택 군수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라서 그 이튿날 바로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서 심 군수는 ‘독도’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울릉군수 심흥택은 시마네현의 대표인 진자이유타로(神西由太郞) 사무장과 나란히 찍지 않고 그 뒤쪽에 당당히 버티어 서 있고, 대형 태극기를 두 명의 아동들에게 펼쳐 들게 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과시하고 있다. # 칙령(勅令) 제41호 1894년 고종 31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의 모든 칙령을 의정부에서 모아 만든 책이다. 칙령 제41호는 제9책에 수록돼 있는데 제목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郡守)로 개정한 건’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1조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정한다.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고, 제2조는 울도군이 관할하는 행정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는 것이다. 죽도는 오늘날의 죽서도이고 석도는 독도를 말한다. 독도는 바위섬이기 때문에 ‘독섬’이라고 불러왔다. 음역하면 ‘독도(獨島)’이고 의역하면 ‘석도(石島)’가 된다. 황제의 칙령으로 독도를 울릉군의 행정구역에 편입시켰다. # 이사부(異斯夫)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삼국사기는 1145년에 김부식 등에 의해 편찬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에 관한 기전체(紀傳體)의 가장 오래된 정사이다. 이 기사는 우산국을 점령해 독도를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킨 이사부(異斯夫) 장군의 개인 역사를 적은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이다. # 가지도(可支島) ‘정조실록(正祖實錄)’ 정조실록은 1776년 3월부터 1800년 6월까지 정조 재위 연간의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1794년 정조 8년 울릉도를 수토하러 갔던 수토관 월송만호(越松萬戶) 한창국(韓昌國)의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울릉도에 있는 방패도(防牌島), 죽도(竹島), 옹도(翁島)를 살피고 그 다음날 가지도(可支島)에 가서 가지어(可支漁)를 보았는데 가지어의 모양이 물소와 같다고 했다. 가지어가 살고 있는 가지도는 오늘날의 독도를 말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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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도자기4]인생
그릇마다각양각색모양새로물을담고인생담아생김새로살아가니재능대로능력대로만들어서목적한바귀한그릇천한그릇선택되어쓰여지듯한평생을사는동안어떤자를만나느냐마음대로선택하여인생삶이성공실패좌우된다.작가약력/1990 -현재 소정도예연구소 소장 손유순,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2 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재단법인 경기도세계도자기 엑스포, 2004 경기으뜸이 도자기부문 선정- 경기도지사, 2012 이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지정기념 초대작가전- 손유순 도자전, 2014. 10. 1 계간 가온문학 가을 창간호 신인상 -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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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도자기3]합盒
짝이 맞아야두 몸이라도한 몸 되고틀어지면한 몸이라도두 몸 된다.용광로의불길 속에 둘이 있어도짝이 맞아야한 몸 되어보화걸작으로 살아난다.작가약력/1990 -현재 소정도예연구소 소장 손유순,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2 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재단법인 경기도세계도자기 엑스포, 2004 경기으뜸이 도자기부문 선정- 경기도지사, 2012 이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지정기념 초대작가전- 손유순 도자전, 2014. 10. 1 계간 가온문학 가을 창간호 신인상 -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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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58열전(11)] 옛 마산의 중심지 오동동, 그리운 사람들이 돌아온다.
[한부길 기자]창원시가 공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전사적으로 관광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31일부터 시작돼 열전을 펼쳤던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창원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연계해 창원시는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관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 열 한 번째 시간으로 ‘옛 마산의 중심지 오동동’을 소개한다./편집자주(11)옛 마산의 중심지 오동동, 그리운 사람들이 돌아온다.2017년 1월 1일부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동, 성호동, 오동동이 통합해 탄생한 오동동은 창원의 어느 곳과 비할 때 없는 이야기가 풍부한 곳이다. 창동, 부림동, 신포동, 추산동 등 마산의 내로라하는 지역이 오동동의 깃발아래 모였다. 옛 마산의 수식어들인 어시장의 먹을거리와 민주성지,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발자취까지 하나 빠짐이 없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 ‘오동동 타령’은 휴전된 시기인 1954년에 술집 많던 옛 마산의 오동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져 발표된 노래다. 노래가 발표된 이후 어지간한 트롯 가수는 물론이고 지금도 가끔씩 TV에서 들을 수 있는 대중가요다. 언제, 어디서 접했던지 절로 박수치면서 불렀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마냥 신기하다.일제강점기와 6.25를 전후해 오동동에 요정이 집결되고 화려한 유흥가 뒤에 숨겨진 아낙네의 애환은 노래로 불려졌다. 그 시절 항구를 낀 오동동은 배에서 막 내린 선원들이 자연스레 술집과 밥집을 찾는 곳이 되면서, 옛 마산의 3대 먹거리인 아귀찜, 복어, 통술집이 모여 골목길을 형성했다. 오동동은 전국 7대 도시 마산의 중심으로 자리하면서 돈이 모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고,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사건의 중심에도 섰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가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서 시작됐다.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은 3.15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규탄시위를 벌였고, 시위진압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시위는 4월 11일 당시 고등학생 이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앞바다에 떠오르자 이를 보고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마산 시위를 발단으로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국 단위로 확산됐고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인 마산앞바다의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는 2011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 됐고,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선 지난 2005년에 세워진 3.15의거 발원지 동판과 벽면 조형물, 청동부조도 만날 수 있다. 무학초등학교 인근에는 3.15의거 기념탑도 우뚝 서 있다. 또 오동동은 10.18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의 발원지이기도 하다.오동동에는 문화예술인들의 발자취도 풍부하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오동동의 하숙방에서 ‘고향의 봄’을 창작했다. 또 시인 천상병, 이선관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의 선술집에서 놀며 술 마시며 창작을 했다고 한다.부침도 있었다. 1970~80년대 자유무역지역이 봉암동에 조성되고 한일합섬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명동 부럽지 않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한일합섬이 문을 닫고 수출지역의 성장세도 한풀 꺾이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면서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 갔다.오동동 지역이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은 창원시가 원도심 재생사업을 하면서 부터다. 2012년 창동예술촌, 2013년 부림창작공예촌을 개촌하면서 개발에 밀려 감춰졌던 골목이 예술의 옷을 입고 조금씩 되살아났다. 이곳은 도심형 예술단지로 태어나, 기존 건물을 활용한 재정비에 집중했기에 세련된 멋은 없지만 좁고 오래된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정취가 있다. 또 예술작품으로 가득 메워진 곳곳을 다니면서 보물찾기하듯 예술인들의 흔적과 작품을 찾는 재미도 있다.또 2015년엔 2만 3천명의 세계인들의 이름이 바닥에 새겨진 ‘상상길’, 2016년엔 오동동 문화광장도 들어섰다. 불종거리를 중심으로 한쪽엔 상상길과 창동예술촌, 그리고 반대쪽엔 오동동 통술골목과 문화광장이 자리하면서 마주보고 경쟁하듯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마산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에는 문신미술관과 시립박물관이 있다. 조각의 본고장답게 이곳들은 자체가 하나의 조각공원이다. 문신미술관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1994년 설립한 곳으로, 문신 타계 후 2003년에 시립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지난 4일부터 창원시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 무대 중 하나 역시 문신미술관으로 이곳에는 3개의 전시관과 야외조각전시장으로 구성돼 문신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또 시립박물관은 2001년 마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설립된 곳으로, 박물관 광장과 추산공원 일대 산책로에는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에 초대된 작가들의 작품 10점이 숨은 그림처럼 배치돼 있다. 박물관 아래 100년 전 생겨난 달동네는 꼬부랑길 담장마다 벽화를 입으면서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도시의 흥망성쇠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더 흥하려 노력하는 곳이 있기에 쇠한 곳은 기운을 차려 재생을 위해 땀을 흘린다. 다행히 오동동은 성공적인 재생에 다가서고 있다. 사람들이 돌아오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도심 전체가 활력을 되찾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동동 통술집에서 한 상 받기 좋은 가을, 그리운 사람과 추억 한 잔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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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수능 후 다이어트, 건강하게 하세요
수능 후 다이어트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고도비만의 경우 수술을 고려하기도 한다. 고도비만 수술법으로는 위의 용적을 줄이는 장치를 체내 삽입하거나, 위의 일부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위우회술이다. 작은 위 주머니를 만들고 영양소를 흡수하는 십이지장을 건너 뛰어 이 주머니를 하부 소장으로 우회시키는 수술이다. 섭취하는 음식의 양이 크게 줄고 섭취한 음식물의 소화 흡수가 잘 되지 않으면서 식욕 관련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쳐 체중을 줄이는 방법이다. 식이나 운동, 약물 치료만으로는 어려웠던 많은 양의 체중 감소가 가능하고 비만으로 인한 질병도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의 수술 후 사망으로 수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바뀌었다.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신진영 교수는 “고도 비만 수술은 수술 부작용 외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면서, “수술은 철분, 칼슘, 비타민 B12 등의 흡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골다공증, 빈혈 등의 예방을 위해 영양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소장 우회술의 경우 위 내용물이 빠르게 소장으로 유입돼 오심, 허약감, 발한, 설사 등이 식후에 나타날 수 있다. 신진영 교수는 “이 수술은 미용적 목적이 아니라 건강상의 위험을 줄이는 목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면서, “수술로 인한 건강상의 이익과 위험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도비만이라고 해서 수술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식사요법, 운동요법, 행동수정요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방은 총 열량의 25% 내외로 섭취하고, 포화지방과 트랜스 지방의 섭취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탄수화물 섭취는 총 섭취 열량의 50~60%로 줄이고 열량 제한에 따른 체단백 손실을 막기 위해 단백질을 적당량 섭취할 필요가 있다. 운동은 무리하게 하기보다 본인에게 맞는 운동의 종류를 선택하고 그 강도와 지속시간을 결정해야 한다. 중강도 운동을 30분 이상 지속하고 최소 주 3회 이상 하고, 체중 감량 목표를 설정하되 단계별로 계획하고 목표한 체중 감량 시 보상을 통해 계속 운동할 수 있는 동기를 강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신진영 교수는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도 도움이 된다”면서, “식사 일기와 운동 일기를 통해 자기 관찰을 하는 것도 고도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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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도자기2]찻그릇
일상의 삶속에서아름다움멋과 꿈을 찾았다.그 속에는소박한 감정과생활이 꾸밈없이담겨져 있고,대자연의 일부인흙의 숨결과온몸으로 만든도공의 마음이함께 녹아들어 있다.잔에 차를 따르면물소리와 바람소리가한데 어우러져차의 정취를 새삼 더 느끼게 한다. 작가약력/1990 -현재 소정도예연구소 소장 손유순,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2 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재단법인 경기도세계도자기 엑스포, 2004 경기으뜸이 도자기부문 선정- 경기도지사, 2012 이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지정기념 초대작가전- 손유순 도자전, 2014. 10. 1 계간 가온문학 가을 창간호 신인상 -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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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국립극단의 이성열 예술감독 최용훈 연출 ‘텍사스 고모’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이성열 예술감독, 윤미현 작, 최용훈 연출의 를 관람했다.윤미현은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출신이다. 2004년 세계의 문학 중편소설등단, 2012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 2012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작품 선정, 2012년 서울연극협회 공모당선, 2013 한국문화예술위 차세대예술가선정 , 2014 문화예술위 우수작품지원 제작지원 , 2015 대전 창작 희곡 당선 , 2016 전국창작희곡당선 서울문화재단 지원 서울연극제 희곡선정 ,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2017 국립극단 등을 집필 발표 공연한 발전적인 앞날이 기대되는 여류작가다.최용훈 연출은 의 대표로 1986년 를 창단하여 진지한 자세와 열정을 생명으로 순수 연극만을 지향하며 30년간 극단을 이끌어 왔다. 또한 우리 창작극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우리연극 만들기, 실험 단편연극제인 자유무대, 고전을 새롭게 해석함과 동시에 그 가치를 발견하는 고전 넘나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극단을 운영하면서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연극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2016년 2월 공연된 을 연출하며 변기 타고 탈출한 탈북난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부조리 하고 모순에 찬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으며 10월에 공연된 을 통해 현대사회 상류층의 속물근성과 이기주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고, 2017년 국립극단의 등 활발한 연출 활동으로 한국연극연출가협회로부터 올해의 연출가 상을 수상한 중견 연극연출가다. 무대는 크고 작은 궤짝을 여기 저기 세워놓고 그 중 한 개는 수확한 양배추를 잔뜩 담아놓았다. 궤짝은 혼자 사는 여인의 잠자는 방으로 설정이 되고, 상수 쪽에는 살림집과 안방 그리고 공부방이 있고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방 밖으로 좁은 마루가 놓였다. 배경 쪽으로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주한미군을 따라 텍사스로 시집을 간 고모가 30여년 만에 귀국을 해 충북 괴산에서 농사를 짓는 친정 오라비 집에 가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텍사스 고모가 과거 한국을 떠나 미군을 따라 갈 때에는 한국에서보다 호강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가보니 옥수수 농사와 목화밭을 고되게 가꾸고 일꾼 노릇을 하는 멕시코 여인과 별반 다름이 없는 생활을 하다가 미군인 남편이 딴 여자에게 빠져 자신을 거들떠보지를 않자 그만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자신의 귀국을 알리지 않다가, 현재 시골에서 농사짓는 청년이나 홀아비들을 국내 여인들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동남아 여인이나 외국여인을 돈을 주고 사다가 처로 만들듯이 자신의 오라비도 키르기스스탄 여인을 돈 주고 사왔다는 소식에 비로소 오라비의 집으로 찾아온다. 오라비가 색시로 사온 여인은 오라비의 딸처럼 어린나이인데다가 색시노릇보다는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이고, 농사는커녕 밤잠자리까지 거부를 하니 오라비의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오라비의 딸과 이웃의 학생들이 학교를 가자고 오면, 키르기스스탄 여인도 학교를 가겠다며 방에서 나오고, 오라비가 따라 나와 등교를 막는 장면이 반복된다. 딸이나 학생들은 외국여인과 함께 학교 가기를 원하지만, 동네 나이든 아낙은 오라비의 편을 들며 외국여인의 향학열을 당치 않다며 핀잔을 준다. 텍사스 고모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오라비 곁에 있는 외국여인을 비교 생각하며, 현재 동남아 각국의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에 한국으로 시집을 온 젊은 여인과 북의 6 25남침으로 야기된 국토파괴와 경제파탄으로 외국 군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키르기스스탄 여인을 도와줄 결심을 한다. 박혜진이 텍사스 고모, 윤안나(Anna Elisabeth Rihlmann)가 키르기스스탄 여인, 김용준이 오라비, 주인영이 딸, 이기현이 이웃학생, 홍승만이 이웃학생, 이수미가 멕시코 여인과 이웃 나이든 아낙, 김은아 아줌마, 이웃학생 엄마, 이정은 마을부녀회장 등으로 출연해 성격창출에서부터 호연과 열연으로 극의 수준을 상승시킨다. 키르기스스탄 여인으로 출연한 윤안나(Anna Elisabeth Rihlmann))의 호연이 기억에 남는다.무대 이엄지, 조명 김성호, 의상 강기정, 음악 이형주, 음향 강수룡, 분장 백지영, 소품 노주연, 조연출 김정민 백창하, 무대감독 문원섭, 무대기술총괄 신용수 그 외의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국립극단의 이성열 예술감독, 윤미현 작, 최용훈 연출의 를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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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58열전(10)] 사람과 철새들의 보금자리 ‘동읍’
[한부길 기자]기계공업의 메카로 불렸던 창원시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 마련에 전력을 쏟고 있다. 창원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구조고도화를 통한 제조업의 첨단산업화와 함께 공업도시라는 명성에 상대적으로 잊혀졌던 문화, 관광자원을 통해 관광도시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이와 연계해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관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기획을 연재한다. 그 열 째로 찾아간 곳은 ‘사람과 철새들의 보금자리’ 동읍이다./편집자 주 (10) 사람과 철새들의 보금자리 동읍조선시대 창원대도호부의 읍성 동북방에 위치한다 해 동면으로 불리기 시작한 창원시 의창구 동읍은 북쪽으로 낙동강에 접해 있고 오랜 기간 농업용수를 공급해온 주남저수지에다 땅은 평야지대로 땅을 일구면서 정착지를 꾸리기에 제격인 곳이다. 따라서 아주 오래전부터 창원사람들의 삶터가 돼 왔다. 동읍에 얼마나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그 흔적은 다호리 고분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1988년에 사적 제327호로 지정된 다호리 고분군은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고분군이 밀집돼어 있는 곳으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됐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해발 20m 정도의 야트막한 구릉으로 동읍행정복지센터에서 주남저수지로 연결되는 도로의 양쪽 편에 위치해 있다. 현재도 고분군이 품고 있는 거대한 역사를 캐내어 보려는 듯 한쪽에서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특히 이 고분군이 관심을 받은 것은 부장품 중에 문방구인 붓(오늘날의 연필)과 손칼(오늘날의 지우개)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문자사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물증이라 한다. 또 목관을 비롯해 철제농구, 칠기, 청동기, 철기로 된 생활용품과 무기류 등이 원형대로 출토돼 기원전 1세기(원삼국시대, 삼한시대)의 생활문화상도 밝혔다. 비록 현지에서 고분이나 부장품을 감상할 수는 없지만 이곳의 역사를 고이 품고 있는 고분군마을에서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다. 현재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이곳엔 4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고분군 유적지 및 주남저수지 탐방, 주말농장, 조릿대터널탐험, 야생화체험 등의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마을 길가엔 모조품이기는 하지만 고분의 부장품을 진열해놓은 아담한 유물전시관도 들어서 있다. 동읍이 오랜 역사를 가진 고장인 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용잠리엔 경전선 덕산역이 있었다. 덕산역은 1922년부터 여객업무가 시작돼 2010년까지 완행급 여객열차가 다녔다. 덕산역 청사는 1931년에 건축된 근대건축물로 역 건물의 지붕이 건물 외벽높이와 동일할 정도로 높다. 다른 역에 비해 역사와 승강장이 약간 멀리 떨어져 있다. 역사는 한국철도공사 선정 준철도기념물로 지정됐다. 현재 민간에 임대돼 사용됨에 따라 근대건축물로서의 자태를 잃은 것은 조금 아쉽다.동읍 길가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신방초등학교 옆 언덕에 자리 잡은 신방리 음나무군이다. 음나무는 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큰 음나무가 무리지어 자라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1964년에는 천연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됐다. 원래 7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었으나 지금은 4그루가 있다. 주변에는 어린 음나무들도 함께 자라고 있다. 나무 나이는 약 400년 쯤 됐고, 높이는 15m 정도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을 쫓는 나무라 해 음나무 아래에서 풍물을 치면서 마을의 액운을 쫓았다고 한다. 또한 나무를 훼손하면 재앙을 받는다 해 극진히 보호하고 있다. 지금의 동읍은 주남저수지가 간판이다. 봄의 전령이 벚꽃이라면 가을의 전령은 억새라고 한다. 주남저수지엔 은빛 억새의 향연이 한창이다. 또 철새 때의 군무도 시작됐다. 주남저수지는 오랜 옛날부터 동읍, 대산면 농경지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던 자연 늪으로 산남, 주남, 동판 3개의 저수지로 이뤄진 배후습지성 호수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관심 밖의 거대 저수지일 뿐이었고 ‘주남저수지’라는 명칭 또한 쓰지 않고 마을 이름을 따 산남 늪, 용산 늪, 가월 늪이라 불렸다. 실질적으로 저수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고 인근 낙동강의 잦은 범람을 막기 위해 지대가 낮은 곳에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탄생했다. 그러다 철새도래지로서 각광받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들어서 가창오리 등 수 만 마리가 월동하면서다. 이는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이야기와 연결 된다. 주남저수지 이전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에 1980년대 초 하구언 둑이 들어서면서 철새들이 주남저수지를 월동지로 택했다고 한다.주남저수지는 매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만, 역시 백미는 가을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만개하는 물억새와 함께 기러기, 재두루미, 고니 등 다양한 철새를 탐조할 수 있다. 해마다 주남저수지를 찾는 철새가 120여 종 8만여 마리에 이른다고도 한다. 이와 함께 람사르문화관, 생태학습관, 탐조대, 주남환경스쿨 등 다양한 시설물도 위치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를 따라 조성된 탐방로는 억새와 갈대가 어우러져 차분한 가을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전체 7.5km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동읍에선 주남저수지와 함께 간판을 다투는 것이 창원의 대표특산품인 단감이다. 창원은 온난한 기후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비옥한 토양덕분으로 단감농사에 최적지로 손꼽힌다. 특히 우리나라의 단감 시배지이기도 하다. 단감은 일본에서 1897년 부유라는 품종이 최초로 발견되면서 재배가 시작돼 1910년대에 일본전역에 보급됐고,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이후 창원에는 2,000여 핵타아르에 2,600여 농가가 단감을 재배하고 있어서 전국 최대 면적과 최고 생산량을 자랑한다. 2016년에는 창원단감의 역사적 가치와 우수성을 홍보하고 시민들에게 체험휴양 공간을 제공키 위해 화양리 일원에 창원단감테마공원이 들어섰다. 테마공원에는 북면 연동마을에서 온 수령 100년이 넘은 단감 시배목이 입구에 자리하고 있고, 여러 곳을 전전하던 창원단감축제도 2016년부터는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17년에는 전국 최고 농촌테마공원으로 선정됐고, 농업체험과 가족휴양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휴일에는 4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조상들은 동읍에서 삶터를 꾸려왔고 이곳이 최고의 보금자리였음을 알리는 흔적을 남겼다. 또 철새들마저 주남저수지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동읍을 가꾸고 지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사람들과 철새들은 계속해서 보금자리 동읍을 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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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도자기1]도자기
자기는조각이 갖고 있는 양감회화가 갖고 있는 평면성두 가지를 융화融和하는도공의 시적 감성이펼쳐내는 한편의 수필과 같다.그 속에는도공의 전 생애를 바친삶의 숨결이형태, 무늬, 평면의 질감, 유색손끝이 남긴경탄驚歎할 무늬들로고동치고 있기 때문이다.작가약력/1990 -현재 소정도예연구소 소장 손유순,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2 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재단법인 경기도세계도자기 엑스포, 2004 경기으뜸이 도자기부문 선정- 경기도지사, 2012 이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지정기념 초대작가전- 손유순 도자전, 2014. 10. 1 계간 가온문학 가을 창간호 신인상 -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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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극단 자유 최치림 예술감독 권병길 작 출연 서영석 연출 ‘1인극 푸른 별의 노래’
정동 세실극장에서 극단 자유 & 국제극예술협회 창립 70주년기념공연으로 권병길의 배우 50주년기념 모노 뮤직드라마 권병길 작, 서영석 연출의 를 관람했다.권병길(權炳吉, 1946~)은 1968년 차범석(작) 박완서(연출) “불모지”로 연극계에 데뷔했으며, 무엇이 될꼬 하니(1978), 족보(1981), 거꾸로 사는 세상 1일극(1988), 동키호테(1991), 햄릿(1993), 꽃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2014) 등 100여 편의 작품 출연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그때 그 사람들, 공공의 적, 식객 등 30여 편의 영화와 공룡선생, 종이학, 어른들은 몰라요 등 다수의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일본과 네덜란드 공연으로 주머니 속의 탱고(1979) , 프랑스 NANCY세계연극제(1983), 튜니지아 하마메트 국제연극페스티벌(1983), 스페인 바로셀로나, 말라가 페스티벌(1984), 독일에서 햄릿(1994) 등 많은 해외 초청공연에 참여했다.대한민국 연극제 신인 연기상(1981) 수상을 비롯하여 올해의 연기자 선정 연출가 그룹상과 서울연극제 연기상(1995) 수상, 동아연극상 연기자상(1996), 국제극예술협회 영화연극상(2003), 최우수예술가상(2010), 연극을 빛낸 사람(2017) 수상 등을 하고 2018년 현재 경기도 문화의전당 이사장이다.최치림(1944~)은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출생해 서울 양정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와 뉴욕대학교에서 석사학위, 박사과정을 이수하였고 귀국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해 2010년에 정년퇴임한 후 극단 자유 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 연출작으로 ‘세빌리아 이발사’ ‘프로랑스는 어디에’ ‘여인과 수인’ ‘승부의 종말’ ‘둥둥 낙랑 둥’ ‘갈매기’ ‘결혼’ ‘우리 집 식구는 못 말려’ ‘안나 클라이버’ ‘메디아’ ‘동승’ 등 70여 편을 연출하였다. 수상으로는 연출작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동아연극대상(1973)을 수상했고, ‘프로랑스는 어디에’로 한국일보 연극상 신인연출상(1972), ‘승부의 종말’로 유네스코 청년협회 선정 그 해의 최고작품상(1977)을 받았고, 1979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해외연수대상자로 선정되어 뉴욕연극계를 시찰한바 있다. 그동안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원장, 사회교육 본부장을 거쳐, 전국예술대학 교수연합회 회장, 연극학회 회장, 국립극단 예술 감독,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회장, 씨어터올림픽스 국제위원, 월간지 한국연극 편집주간, 광화문 문화포럼 부회장을 역임했다. 서영석은 대구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일본어교육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과 박사과정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로 현재 ‘예술극단 판’의 대표다. 1987. ‘극단 로뎀’ 창단공연 조연출, 1988. ‘극단 로뎀’ 번역, 1993, ‘극단 예우’ 번역, 1997. ‘극단 무성’ 창단공연 각색/연출, 1998. ‘극단 무성’ 극작/연출, 1999. ‘극단 예현’ 극작/주호성 연출, 2003. ‘극단 예현’ 구성/연출, 2007. ‘극단 예현’ 극작/장연희 연출, 2008. 연출(총감독, 제주 중문해수욕장 야외공연장), 2011. ‘극단 예현’ 극작/연출, 2015. ‘예술극단 판’ 극작/연출, 2016. ‘예술극단 판’ 윤색/연출, 2016. ‘예술극단 판’ 앵콜 공연 극작/연출을 했다.동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세명대학교 방연과 겸임교수, 연극영화과 교수협의회 이사, 연극교육학회 이사, 대학로문화발전협의회 사무총장, 월간골프에세이 편집국장, (사)대한기자협회 문화예술위원장, Kns 뉴스통신사 문화부장, 아트 앤 컬처 문화부 기자, 월간 (가수협회지) 편집국장, (사) 한국극작가협회 감사인터뷰 365 문화부장 겸 기획이사을 역임했다. 모노 뮤직드라마 는 배우 권병길의 50년 연극인생으로 구성되었다. 무대는 배경에 여러 개의 휘장을 드리우고, 그중 백색 휘장에는 영상이나 영화장면을 투사하고, 무대 뒤에는 연주석이 있어 연주로 극적 분위기 창출과 극적 효과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수 쪽에 연극의상을 걸어놓고, 바꿔 입으면서 연기를 펼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영화배우 문정숙의 흑백사진이 배경에 투사되면서 극이 시작된다. 권병길이 출연했던 연극의 명대사와 함께 당시에 유행했던 대중가요와 방송드라마 그리고 영화의 주제가가 효과음으로 흘러나와 관객을 과거로 이끌어 가는가 하면, 김승호, 김진규, 허장강, 황정순, 신상옥, 최은희, 한은진, 박진, 복혜숙, 이해랑, 이진순, 오영진 같은 1세대 연극영화인들의 사진과 영상이 배경에 투사되면서 故 이병복 극단 자유의 대표의 영상으로 마무리를 하기 까지 관객은 저마다 회상에 젖는다. 그리고 극단 자유에서 초창기에 열연을 펼쳤던 故 함현진과 추송웅, 장건일을 비롯해 현재까지 활동을 벌이는 박정자. 손숙, 박웅, 손봉숙이 소개가 되면서 분위기는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권병길의 명대사와 명연기가 노래와 함께 무대를 채우고, 정치적 소신과 철학적 사고가 깃들어지면서 관객은 사색과 감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원래 효자였던 권병길의 모친에 대한 사랑이 눈물과 함께 무대 위에 구현이 되고, 대중예술가에 비해 순수예술가의 어려운 현실과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차이를 벌리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대단원에 이르러 리어왕의 충신 글로스터 백작이 눈이 먼 상태에서 실성한 리어왕을 만나 통곡을 하는 명장면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권병길의 열연과 열창에 완전히 빠져드는 공연이다. 영상감독 이지완, 무대미술 이경표, 의상 정경희, 음향감독 한 철, 조연출 조현철, 홍보 양동균, 디자인 백수영, 음악감독 한도영, 연주 낯선오케스트라, 드라마투르기 김광주, 조명 강병주 최영환, 무대감독 김광렬, 분장 박팔영, 기획 홍지담, 인쇄 동방인쇄공사 등 스텝진의 열정이 어우러져, 극단 자유 & 국제극예술협회 창립 70주년기념공연, 권병길의 배우 50주년기념 모노 뮤직드라마 권병길 작, 서영석 연출의 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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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관악극회의 존 홋지 작 김일호 번역 김시번 연출 ‘협력자들’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관악극회의 존 홋지(John Hodge) 작, 김일호 번역, 김시번 연출의 을 관람했다. 미하일 불가꼬프 (Mikhail Bulgakov, 1891~1940)는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불운한 작가이자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미하일 불가코프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이던 도시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러시아인으로 양가 모두 사제 집안이었으며 아버지는 키예프 신학교 교수였다. 1909년 키예프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1916년 소아과 전공의로 대학을 졸업한 뒤 내전 시기에 여러 정권의 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1919년 신문 「그로즈니」에 논설을 게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품들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1920년대 전반기에 희곡 「자기방어」, 「투르빈의 형제들」, 장편소설 『백위군』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부르주아를 옹호한다는 비판과 함께 결국 1929년 모든 작품의 출판 및 공연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오랜 세월 강요된 침묵 속에서 살아가던 불가코프는 신장 경화로 시력을 잃는 등의 고통을 겪다가 1940년생을 마감한다. 그 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죽기 직전까지 몰두했던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비롯해 『몰리에르 씨의 생애』 등의 장편소설과 풍자적 중편소설 「비운의 달걀」, 희곡 「조야의 아파트」, 「아담과 이브」, 「질주」 등이 있다. 스탈린(Stalin, 1897~1953)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양면을 지닌 독재자다. 소련의 초대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자 소련 장관회의 주석을 역임했다. 블라디미르 레닌 휘하에서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소련 건국에 일조했다.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해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대숙청을 벌여 정적과 반대자들을 숙청했다. 동시에 러시아 제국 시절 낙후된 농업 사회 기반의 소련을 5개년 계획으로 중공업과 화학공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 전환시켰다. 세계에 전운이 감도는 와중,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는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발 짝 물러서려 했지만,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으로 독소전쟁이 일어나면서 연합국에 가입,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대숙청으로 말미암은 소련 내부의 혼란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초기엔 큰 피해를 입었지만, 2,000만을 훌쩍 넘기는 인명 손실을 견뎌내며 끝끝내 승전하였고, 인민을 희생해 이룩한 공업화는 소련을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의 자리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강철의 대원수 혹은 조지아의 인간백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존 호지(John Hodge, 1964~)는 영국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극작가로 2012년 로렌스 올리비에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Shallow Grave (1994), Trainspotting (1996) , Life Less Ordinary (1997), The Beach (2000), The Final Curtain (2002) 및 단편 영화 Alien Love Triangle (2002)가있다. 스코틀랜드 글라스 고우 에서 태어나 에딘버러 대학교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1991 년 에딘버러 영화제 에서 프로듀서 Andrew Macdonald를 만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Shallow Grave (1994), Trainspotting (1996), A Life Less Ordinary (1997), The Beach (2000), The Final Curtain (2002), 단편 영화 Alien Love Triangle (2002) 등이 있다. 그의 영화의 대부분은 Danny Boyle 이 감독했고 Shallow Grave , Trainspotting , A Life Less Ordinary는 모두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김일호는 관악극회 창단멤버로 서울대 문리대 출신이다. 유민가, 시련, 법대로 합시다. 하얀 중립국, 과부들에 출연해 호연을 보이고, 금번 불가코프와 스탈린(원제;협력자들)을 번역한 열정적인 관악극회 회원이다. 김시번(1971~)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협동과정 석사출신의 연출가로 극단 성난발명가의 상임연출이다. 작품으로는 협력자들, 오빠 나랑 사귈래요. 제3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안진사가 죽었다. 100페스티벌 2011 – 갑냐우, 결혼한 여자, 안 한 여자, 까마귀 등을 집필 연출했다.무대는 불가코프의 집이다. 상수 쪽에 침대가 있고, 하수 쪽에 탁자와 의자 그리고 축음기를 올려놓은 낮은 탁자가 있고, 상수 쪽에 전화기를 올려놓은 탁자도 있다. 아래 위층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고 정면에 이층의 창이 그려져 있다. 장면이 바뀌면 정면 벽이 상승하면 크렘린 궁정 그림이 배경에 그려져 있고, 그 앞에 높은 단이 있어 양쪽 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되었다. 옛 소련국기의 상징물이 매달려 있다. 연극은 1938년에서 1940년까지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설정되고 미하일 불가코프와 그의 아내 옐레나가 사는 저택이다.불가코프가 ‘몰리에르의 생애’라는 희곡의 집필을 끝내자 친구들은 그 작품이 걸작이라고 칭송한다. 첫 공연을 끝낸 밤, 두 명의 비밀경찰이 불가코프를 찾아온다. 그들은 불가코프에게 작품의 공연이 금지되었으며 조셉 스탈린의 젊은 시절에 관한 연극을 쓰는데 협력하지 않으면 다시는 그 작품을 공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처음에 불가코프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협력을 거부한다. 불가코프에 대한 협박이 갈수록 심해지자 하는 수 없이 그는 작품을 쓰는 척한다. 하지만 아무리 타자기 앞에 앉아있어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가코프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비밀스러운 그 목소리는 어느 장소로 오면 불가코프의 집필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불가코프가 그 장소로 가니 거기에서 스탈린을 대면하게 된다. 스탈린은 그동안 불가코프의 작품에 감동을 받아 왔다며 희곡을 쓰는데 도움을 주겠노라 이야기 한다. 스탈린은 자신을 제정 러시아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이고 명예로운 지도자로 묘사되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장면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직접 타자를 치기도 한다. 그동안 불가코프는 공문서 작업이라든가 필요한 문서작성을 스탈린 대신 해주기도 한다. 그 일이 불가코프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 되어, 스탈린 치하의 대숙청을 초래한다. 희곡작업이 끝나면서 대숙청은 러시아에 관계한 인물들, 문화계, 과학계, 산업계, 기타 여러 인물들이 반역자, 파괴자, 반혁명분자, 또 트로츠키 식 자본주의나 부르주아 짜르 추종자로 몰려 살해당한다. 스탈린은 완성된 희곡에 불카코프에게 서명을 하라고 한다. 볼가코프는 거절하지만 권총위협을 받는다. 그래도 응하지 않자 아내 옐레나의 생명까지 위협을 한다. 하는 수 없이 불가코프는 희곡에 서명을 한다. 스탈린은 노래르 부르며 돌아간다. 아내 옐레나가 비밀경찰에 이끌려 돌아오니 불가코프가 침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불가코프는 선천성 질환의 악화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비밀경찰이 돌아가고 아연실색해 침대 앞에 서있는 옐레나. 그때 전화의 벨이 울린다. 옐레나가 전화를 받으니 스탈린의 음성이 들려온다. “불가코프가 죽은 게 사실이야?” “그게 정말이야?” 라고 묻는 전화다. 옐레나가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최기창이 불가코프, 지주연이 옐레나, 김명곤이 스탈린, 심양홍이 바실리, 김인수가 바실리로 더블 캐스팅, 나호숙이 프라스코비야, 박재민과 염인섭이 블라디미르, 이주미가 에바, 조항용이 의사, 이순재가 라그랑주, 이솔우, 조희성, 민아람, 문성용, 고용석, 이유빈, 이기원, 김수영, 허은영, 차주영, 백영호, 맹주원, 김유덕, 박용형, 정인범, 고예린, 장동일 등 출연자 전원의 고른 연기력은 극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고, 성악가의 노래는 관객을 감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제작총괄 윤완석, 예술감독 이순재, 공동제작 이태식, 제작책임 소품 조인경, 기획 홍보 조연출 김은자, 무대감독 양동근, 무대디자인 최종률, 조명디지인 박원근, 의상디자인 김시정, 음악 및 음향감독 박상철, 분장감독 지병국, 화술지도 김선애, 홍보물기획 하종운, 홍보물디자인 정완영, 안무 김유덕, 사진 홍성기, 공연사진 변준성 권애진, 영성 이세영, 홍보물 제작 AK디자인 등 스텝진의 기량이 일치되어, 관악극회의 존 홋지(John Hodge) 작, 김일호 번역, 김시번 연출의 을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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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창작집단 싹의 곽시원 작 박성찬 연출의 ‘행 맨 Hang Man’
알과핵 소극장에서 창작집단 싹의 곽시원 작, 박성찬 연출의 을 관람했다.곽시원은 서울예대 출신의 극작가다. 면회, 버티고, 행 맨, 10분희곡 등을 발표 공연한 발전적인 장래가 예측되는 청년극작가다.박성찬은 극단 잘한다 프로젝트의 상임연출로 극작가 겸 연출가다.2007 국제뮤지컬페스티발 대상, 전주 및 제주 월드컵문화행사 총감독, 현 전주대학교 영상 예술학부 연극전공 겸임교수다. 그 외 다수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행 맨(Hang Man)은 고층건물에서 유리창 청소나 페인트칠 그 밖의 작업을 하는 노무자의 이야기다. 만약 55층짜리 무역센터의 유리창청소를 하려면 짧아도 2개월이 걸리는데, 밧줄에 매달려 고공에서 작업을 하고, 시간당 40만~50만 원 정도 받으니, 하루에 서너 시간 유리창을 닦는다고 쳐도 일당 200만원을 받으니. 한 달이면 4천이나 5천 만 원 이상을 버는데, 그나마 일손이 부족해 딸리는 형편이다. 무대에는 여러 군데 천정에서 밧줄을 늘어뜨려 놓고 끝은 교수 목의 올가미처럼 만들어놓았다. 무대중앙에도 똑 같이 천정에서 늘어뜨린 밧줄과 올가미가 있다. 밧줄 옆에는 의자를 배치해 앉도록 했다.연극은 고공에서 일하던 노무자가 15m 아래로 떨어졌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다치지도 않은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후 노무자는 늘 자기 목에 밧줄이 감겨져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주변 사람이나 연인에게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이야기 하지만, 동료들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밧줄이 보이지를 않으니,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정신감정을 시키게 된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나 기상이 나쁠 때에는 고공작업을 하다가 중단하고 내려오지만, 고공 노무자를 구하기가 힘이 드는 연실이고, 그나마 목숨에 위협을 느껴 고공에서 하던 일을 때려치우는 노무자가 많기에 일손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노무자에게 다른 건축업자가 일을 맡기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 동료 노무자나 연인 그리고 누이는 주인공이 일을 하면 사고를 당할 수 있기에 걱정을 하며 말리려 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동료와 연인은 자신들도 모르게 가까워지는 것으로 설정된다. 건축업자가 주인공을 독려하기 위해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주인공은 흠뻑 취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고공높이에서 떨어졌지만 생존한 것을 상기하며, 자신을 불사신처럼 생각하고, 마치 링 체조를 하는 선수가 링에 매달리듯, 주인공도 고공에서 서커스를 하듯 곡예를 벌인다. 그리고는 결국.....손진영이 주인공으로 출연해 운동선수와 다름없는 기량으로 고공에서 줄에 매달리며 연극을 이끌어 간다. 정주호, 강래현, 이장순, 정혜원, 신민경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움직임 이정은, 음악 엄덕환, 기획 정혜원, 조명 김기성, 에어리얼 감독 서상현, 디자인 전우현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창작집단 싹의 곽시원 작, 박성찬 연출의 을 작가의 창아기발(創雅奇拔)한 소재와 연출가와 연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한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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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가슴 중앙 부분에 느껴지는 압박감, 쥐어짜는 듯한 느낌 ‘협심증’환자,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가 중요
[강병준 기자]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김용익)은 2012년~2017년까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협심증(I20)’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지난 2012년 55만 1천 명에서 지난해 64만 5천명으로 매년 약 3.2%씩 증가했다.같은 기간 건강보험 적용인구 10만 명당 진료인원을 계산하면 2012년 1,110명에서 2017년 1,267명으로 나타났고, ‘협심증’ 진료에 지출한 총진료비는 2012년 5,660억 원에서 2017년 7,701억 원으로 약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연도별 건강보험 연령대별 ‘협심증’ 질환 진료현황 2017년 기준 연령대별 진료현황을 살펴보면, 70대 이상(27만 4천 명, 42.4%)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 60대(19만 7천 명, 30.6%), 50대(12만 1천 명, 18.8%) 순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70대 이상(13만 5천 명, 36.3%)이 가장 많았고, 60대(12만 명, 32.3%), 50대(7만 9천 명, 21.4%) 순이었고, 여성은 70대 이상(13만 9천 명, 50.8%)이 가장 많았고, 60대(7만 7천명, 28.3%), 50대(4만 2천 명, 15.3%) 순으로 나타났다. # 2017년 건강보험 ‘협심증’ 관련 질환 연령대별 / 성별 진료인원 >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오성진 교수는 노인 70대 이상이 환자가 가장 많은 이유에 대해 “협심증은 기본적으로 만성 혈관 질환이기 때문에 연령이 증가하면서 발병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협심증’ 질환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 시 문제에 대해 “협심증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은 협심증의 위험인자들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혈관질환이 지속적으로 악화돼 효과적인 치료가 불가능 하게 되어 흉통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수 있다”면서, “심한 경우 급성관동맥증후군으로 발전해 심근경색, 급사 등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2017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협심증 진료환자를 분석해 보면, 50대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7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70대 이상이 7,228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60대 4,494명, 50대 1,902명 순으로 많았고, 여성의 경우도 70대 이상이 5,154명, 60대 2,762명, 50대 1,009명 순으로 많았다. # 2017년 연령대별 인구 10만 명 당 ‘협심증’ 진료인원심장내과 오성진 교수는 50대부터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에 대해 “협심증의 위험 인자들이 50대 이후부터 증가하기 때문이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고령화에 의해 자연적인 증가분이 있을 것이고며, 현대인의 생활 습관이 여러 가지 협심증의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면서, “한국인에게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건강검진 등에 의해 정밀진단 검사가 조기에 이뤄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참고자료]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오성진교수는 ‘협심증’ 질환의 증상 및 원인, 치료법 및 치료 시 주의사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협심증’ 관련 질환의 증상.원인가슴 중앙 부분에 느껴지는 압박감, 쥐어짜는 듯한 느낌, 또는 통증, 걷거나 뛰거나 층계를 오르는 등의 운동 시 발생하고 갑자기 발생하기 보다는 서서히 심해지면서 대개 5분 이내로 지속되고 휴식이나 약물 치료에 의해 소실된다. 가끔 소화불량이나 더부룩한 느낌으로 오인될 수 있고, 왼팔이나 등으로 뻗치면서 아플 수 있다. 원인은 심장 근육이 필요로 하는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 생기고 주로 관상동맥의 협착이나 폐쇄로 인해 생긴다. # ‘협심증’ 질환의 예방법협심증의 전통적인 위험 인자인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에 대한 치료와 관리를 적극적으로 하고, 흡연을 하지 않고, 정기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협심증’ 질환의 진단.검사 위에서 기술한 전형적인 흉통이 있을 경우 의심해 볼 수 있고 심전도와 혈액검사 등의 기본적인 검사를 거친 후에 운동부하검사, 부하심초음파검사, 핵의학검사, 그리고 관상동맥 컴퓨터 단층촬영 등의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협심증’ 질환의 치료방법대부분의 안정형 협심증의 경우 약물치료로 증상이 소실되면 정기적인 외래 방문 및 투약으로 관리가 된다.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거나 급성관상동맥 증후군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관상동맥 중재시술을 조기에 시행하는 것이 좋은 예후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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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문화산책]극단 경험과상상의 류 성 작 연출 ‘진숙아 사랑해’
당산동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 블랙홀에서 류 성 작 연출의 를 관람했다.류성(1975~)은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으로 극단 경험과상상의 대표인 작가 겸 연출가다. , , 뮤지컬 , 연극 그 외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생활연극협회 충북 영동 심천공연에도 참가했다.는 1970년대의 청소년들이 일을 하던 공단이 배경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전국 각 지역에 공단이 들어서고, 공단 산업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근로청소년 중 50%가 겨우 초등학교를 마쳤을 뿐이었다. 그래서 1976년부터는 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 청소년들에게 학력과 교양 그리고 근로의욕을 북돋워주며, 나아가 산업 활동에 필요한 진보적인 직업 기술을 습득하도록 ‘산업체 특별학급’을 설치해 수업료와 입학금, 기타 공납금을 일체 내지 않고 중등교육을 받도록 했다. 말 그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신파 같은 이야기지만 여동생이 구로동이나 평화시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오빠를 대학에 보내는 근대적 남성우월주의 시대를 그대로 답습하는 시절이었다. 오늘날의 노동법이나 여권 신장 같은 것은 사회적으로 ‘사치’에 불과했다. 당시 근로 청소년들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야근과 특근은 기본으로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것이 일과였고, 잠 안 오는 약을 먹어가며 밤을 새워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예사였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생기는 법. 국가는 조국 근대화를 이루며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산업화의 그늘은 더욱 짙어만 갔고 그 바탕에는 근로청소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바로 당시의 근로 청소년 중 여공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세미 뮤지컬로 연출된다.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유신시대이고, 경상도지방의 한 방직공장이다. 여공들이 주인공이고 당대 인권의 사각지대나 다름없고, 노조조차 결성되지 않은 여공들의 수난을 연극에 그렸다. 당시의 시대적 풍조와 여공들의 생활상, 그리고 여공의 사랑과 그 주위를 맴돌던 건달의 행태와 당대의 대중가요가 연극 속에 맥을 이룬다. 그러다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유신시대의 종말과 함께 연극도 끝이 난다.연극은 도입에 1970년대 저녁의 일정한 시각에 애국가와 연주소리와 함께 국기계양대의 태극기가 하강하던 정경이 그려지고, 행인들이 정지해 국기에 경례를 하던 모습이 연출된다. 주인공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김진숙이다. 배경 쪽 뚫린 공간에서 재봉 일을 하는 동료들이 소개가 되고 각자의 집안 사정이 소개가 된다. 재능과 교육과는 별개문제이듯 여공들의 노래솜씨가 직업가수에 못지않게 펼쳐진다. 공장 측에서 제때에 월급을 지급하지 않았던 상황도 묘사가 되면서 도난사건이 발생하고 형사가 등장을 해 혐의를 받는 여공을 다그친다. 여공은 부정을 한다. 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해직을 당한 여공은 유곽에 나가 일을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유곽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는 여공들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여공들 주위를 배회하는 건달이 등장을 하고, 주인공은 건달과 가까워진다. 건달이라고 진정한 사랑이 없으랴?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주인공 진숙은 책을 가까이 한다. 그런 모습에 관객까지도 주인공에게 살포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때 학생시위소리가 들려온다.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고함이 천지를 진동한다. 시위하던 학생이 군경을 피해 진숙에게 도망쳐 온다. 진숙은 친동생처럼 시위학생을 돌봐준다. 건달이 등장해 학생을 피신시킨다. 계엄군이 들이닥쳐 학생이 두고 유인물 가방을 가지고 있는 진숙을 체포해 간다. 끌려간 진숙은 유인물로 해서 고문을 당한다. 고문뿐이 아니라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도 설정이 된다. 바로 그때 갇혀있던 방문이 열리고 밝은 광선이 비추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방송을 통해 들려온다. 마지막 장면은 진숙을 심문하던 형사가 벽에 걸려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내며 자신의 가족에게 일을 끝내고 여행을 가야겠다고 전화를 하는 장면과 주인공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희망찬 합창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류 성, 이영매, 한덕균, 신현경, 이상희, 김한봉희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1인 다 역으로의 열연 그리고 열창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조명 무대디자인 류 성, 음향오퍼 오희진, 조명오퍼 박다솜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극단 경험과상상의 류성 작 연출의 를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 세미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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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창원 58열전(9)’] 삶의 현장과 숨터를 함께 가진 ‘풍호동’
[한부길 기자]기계공업의 메카로 불렸던 창원시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 마련에 전력을 쏟고 있다. 창원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구조고도화를 통한 제조업의 첨단산업화와 함께 공업도시라는 명성에 상대적으로 잊혀졌던 문화, 예술, 관광자원을 통해 관광도시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이와 연계해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관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을 연재한다. 그 아홉 번째로 소개할 곳은 ‘서마산의 관문 석전동’이다.# 서마산의 관문 석전동, 그곳엔 언제나 사람내음 한가득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은 면적 1.61㎢(창원시 면적의 0.21%)에 주민은 1만4500명으로 도심 면적에 비해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지금도 지역 중심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한창 건설 중에 있어 더 많은 주민 수의 증가도 예정돼 있다. 이렇게 넓지 않은 지역을 많은 사람들이 부여안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석전동의 지리적 위치와도 관계가 있었다. 석전동은 마산역과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나들목이 있어 서마산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등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리고 석전동은 원래 돌이 많은 지역이라 돌밭 또는 석전(石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는데, 이곳 일대에 자리 잡았던 근주마을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근주역(近珠驛)이 지금의 석전동 일원에 있었다. 공무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키 위한 목적으로 조선 시대에 실시됐던 역제(驛制)는 근대적인 교통수단이나 통신 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교통로의 형성과 운영 등 교통 체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지금도 석전동 일원에는 근주역의 흔적이 남아있다. 북쪽 야산에는 근주역 역참의 찰방(察訪)을 지낸 관리의 찰방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 근주마을의 이름을 딴 근주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마산역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철길 밑에 마련된 공원이름도 근주공원으로 명명됐다.근주역의 명맥은 마산역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열차가 발착하는 곳이라 해 예전의 역과는 의미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마산역에는 타지를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또 마산역은 오랜 역사와 함께 마산시민들의 애환도 함께 해왔다. 마산역은 원래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신마산’이라고 불리는 마산항의 일본인 거주지에 있었다. 일제의 물자수탈 등 화물운송을 위해 역이 들어섰고 1927년 4월에 여객운행이 시작되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마산을 오가기 시작했다. 이후 마산역은 1977년 12월에 구마산역, 마산역, 북마산역을 통합해 현재의 석전동에 자리하게 됐다. 마산역 통합에 따라 옛 선로는 임항선으로 존치됐다가 상당수 구간은 철거돼 ‘임항선 그린웨이’라는 공원길로 변모했다.석전동엔 늘 사람들로 붐비다보니 자연스레 지역기반 은행의 본점도 위치해 있고, 또 많은 공공기관과 각급 병원, 은행 등도 자리하고 있다. 또 마산역 인근의 번개시장과 통합역전시장, 그리고 근주공원 인근 서마산시장 등 석전동 내에 전통시장도 세 곳이나 된다. 특히 마산역번개시장은 1977년 마산역이 지금 위치로 옮겨오면서 생긴 새벽시장이다. 새벽 열차를 타고 인근 함안, 진주 등지에서 할머니들이 잡곡이나 텃밭에서 직접 키운 야채를 팔러오면서 시작돼 지금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KTX가 운행되고 2013년 시설 현대화 사업을 통해 상권이 현대화됐지만 그래도 새벽이면 값싼 채소들을 판매하는 좌판이 주를 이루면서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인다. 석전동 외곽엔 무학산의 지맥인 봉화산이 자리해 있다. 봉화산(265m)은 석전동과 인근 회성동, 회원동으로 이어지는 주택지에 둘러싸여 있고 정상까지의 거리가 0.8km에 불과하다보니 평일에도 운동복차림의 주민들이 산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또 둘레길도 잘 정리되어 있고 가파르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봉화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봉국사(1949년에 창건된 사찰) 입구에는 봉화산으로 오르는 무학산 둘레길의 출발점이 있다. 이곳에서 보통걸음으로 봉화산 정상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둘레길을 따라 봉화산 정상에 다다르기 전 둥근모양의 석벽으로 쌓인 봉수대가 눈에 들어온다. 경상남도기념물 제157호인 봉화산 봉수대는 언제 쌓은 것인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고려 말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상황을 서울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쌓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는 ‘성황당 봉수대’로 표기되고 있다고도 한다. 창원 지역을 자주 침범해 노략질했던 왜구에 대비하고자 봉화산 봉수대를 세웠고, 조선 시대까지도 계속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봉수대에선 석전동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또 봉수대 인근엔 잠시 여정을 풀 수 있는 쉼터도 두 곳이나 된다. 그곳에선 마산앞바다도 훤히 보인다. 적의 침입을 알리려 한걸음에 올랐을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오른 봉화산은 산 아래의 바쁜 일상과 달리 한적함마저 든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문득 이곳은 어느 명소 못지않게 해돋이를 보는 장소로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별다른 반대급부 없이도 숨을 쉬도록 해주고 있기에 그 소중함을 잘 몰랐다. 마산역과 서마산 나들목을 들락거리면서도 그곳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는 생각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이들의 삶터가 되고 이야기가 있고 사람내음이 가득한 곳. 석전동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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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안전한 출산 위해 알아야 할 자궁경부무력증 증상은?
최근 출산률은 감소하고 있지만 고령임신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어 그에 따라 조산과 유산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 중 임신 중기에 주의해야 할 질환 중 하나가 자궁경부무력증이다.자궁경부무력증은 자궁경부에 자체적 결함이 있어, 임신 유지가 되지 않고 유산되는 경우를 말한다.자궁경부는 분만 시 아기가 나오는 산도 중 하나로, 임신 중에는 딱딱하게 유지되면서 닫혀있어야 태아 및 태아를 둘러싸는 양수와 양막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궁경부가 선천적 또는 후천적 원인으로 강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풀어져 버리면 태아 및 양수의 무게 때문에 자궁경부가 열려서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유산 또는 조산을 하게 된다.자궁경부무력증은 원인도 진단방법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임산부 스스로 본인의 병력과 증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며, 정기적인 산전 진찰 및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임신 중에 질초음파 검사로 자궁경부 길이를 측정하는 것으로 자궁경부무력증을 진단할 수 있다.특히, 조산 또는 유산 경험이 있거나, 첫 임신에서 짧은 경부 길이를 가진 여성일 경우 자궁경부무력증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정기적인 추적관찰이 매우 중요하다. 임신 중 질 분비물의 증가와 출혈, 생리통과 비슷한 골반 통증이 나타난다면 자궁경부가 변하는 증상일 수 있으니 즉시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자궁경부무력증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산전 진찰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황한성 교수는 “자궁경부무력증은 임신 20-24주에 잘 생기지만 그 전이나 후에도 생긴다”며 “유산과 조산을 막기 위해서 임산부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또 황한성 교수는 “맑은 냉과 출혈이 조금씩 섞여 나오는 증상, 하복부의 불편감이나 통증이 있는 경우,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서 자궁경부무력증의 징후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증상에 대해 설명했다.첫 임신 때 자궁경부무력증이 진단된 임신부의 경우 다음 임신 때 임신 14주를 전후로 예방 차원에서 자궁경부 주위를 묶는 자궁경부봉축술을 권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프로게스테론을 질정제로 투여해 자궁경부가 약해지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개발되어서 임신부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치료법을 잘 선택해야 한다. 자궁경부무력증의 치료로 선택되는 자궁경부봉축술은 감염, 출혈, 유산의 위험성이 있고, 프로게스테론 질정제 투여로 모든 자궁경부무력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치의와 신중히 치료방법에 대한 상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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