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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이야기]독도는 어떤 섬인가(2)?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지증왕13년(서기 152년) 여름에 우산국(于山國:현재의 울릉도)이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곤 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에 복속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의종 때 김유립이 울릉도를 현지 답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지(地理志)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凌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볼 수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凌島) 두 섬이 현의 정동(正東) 바다에 있다. 두 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않으며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하였다. 위의 삼국사기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가 있고 또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가리킨다고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영의정이던 남구만(南九萬)은 숙종15년(1689년) 희빈 장씨 소생인 균(均)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자 망상동 약천마을로 1년여 간 유배돼 권농가 시조를 남겼다. 학식이 깊고 고매한 인격의 정치인이던 남구만은 “울릉도와 독도 지키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임금인 숙종이 우리땅 지키기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특히, 숙종20년(1694년)엔 “삼척첨사를 보내 울릉도 등지의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는 한편,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진을 설치토록 해 달라”는 국토수호 대책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숙종은 장한상(張漢相)을 삼척사로 삼아 울릉도 등지를 관리, 주민들이 왜적들의 해적행위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숙종22년(1696년)인 울릉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던 안용복이 사사로이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자 선처를 호소, 극형을 면하게 하기도 했다. 일본 군도에서 158km나 떨어져 있는 독도는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섬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욕심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일본인 스스로도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자인(自認)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일본정부가 1693년 작성한 1차 서계(書契)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어 1696년에도 안용복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맞다”고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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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포커스1]대장암의 씨앗 ‘대장용종’, 제거했는데 재발하는 이유
대장용종은 대장내시경 검사 중에 가장 흔히 발견되는 병변으로 대장 점막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혹이 되어 장의 안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대장암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종양성 용종(선종성 용종, 유암종, 악성용종)은 대장내시경절제술이나 수술을 통해 용종을 반드시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 3명 중 1명이 대장용종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용종의 50% 정도는 대장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종양성 용종으로 크기와 상관없이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 대장용종이 있다고 해서 절제를 했는데 나중에 다시 대장내시경을 하면 용종이 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장용종이 한번 생긴 사람이 다시 재발할 확률이 약 30~60% 가까이까지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대장용종을 제거했는데도 다시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인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대장용종의 재발 원인은 처음 발견된 용종의 크기 및 개수가 가장 큰 위험인자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그 이외에 고령, 남성 및 음주, 흡연, 비만, 운동 여부 등이 용종의 재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실제 국내 한 연구에서 대장용종 재발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용종의 크기가 1cm 이상이거나 3개 이상의 선종이 발생한 경우 선종성 용종의 재발률이 57%로 나타났으며, 1cm 미만의 선종이 2개 이하일 경우 46%의 재발률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용종이 발견된 사람 중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가운데,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을 하는 사람에 비하여 9.24배, 음주자는 비음주자에 비하여 5.22배,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하여 2.35배 가량 용종 발생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박병관 교수는 “대장용종의 재발 원인은 앞선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발견된 용종의 크기 및 개수와 나이, 성별, 흡연, 음주, 비만, 운동 여부 등의 생활습관이 용종의 재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사와 함께 절주, 금연, 규칙적 운동 및 저지방 고섬유 식이 등 건강한 식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대장용종의 재발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대장암의 예방 및 대장용종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하루 전체 열량 중 지방질 섭취에 의한 열량을 30% 이하로 줄이고, 일일 섬유소 섭취량을 30g까지 높이는 한편,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을 매일 섭취하고, 비만을 피하고, 절주와 금연과 함께 적어도 하루 800mg 이상의 칼슘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한편, 대장용종 재발의 또 다른 요인으로 이전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미쳐 용종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초기에 용종을 절제할 당시 대장용종 자체를 충분하고 매끈하게 잘 떼지 못하고 용종이 커 용종과 정상 대장점막 조직과의 여유가 거의 없이 제거되어 떼어낸 가장자리는 깨끗하지만 암이 점막아래 층 깊은 곳까지 침범하였거나 암 주위 림프관이나 혈관에 암 세포가 있는 경우 대장용종이 재발할 수 있다. 실제 중앙대학교병원에서 대장용종을 제거하고 대장암으로 진단되어 대장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약 16%의 환자가 수술 후 대장암 주위 림프절에서 암 전이가 발견되었고, 약 32% 환자는 대장에 여전히 종양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앙대병원 대장항문외과 박병관 교수는 “대장내시경으로 용종을 때어냈더라도 혹의 뿌리가 상대적으로 깊다던 지, 떼어낸 부분에 암 조직이 여전히 남아있거나, 암 조직 유무가 불분명하면 대장암 조직 근처의 림프절에 암이 전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대장용종이 계속적으로 재발하면 그 부위 대장을 수술로 절제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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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해외로/터키 편5]2018년 터키로 떠나실래요?
-지난호에 이어 [심종대 기자]게코와 섬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랑스러운 도시 카쉬에 다다른다. 카쉬 주변의 맑고 청명한 바다는 수영과 다이빙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경기가 아름다운 칼칸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코발트 빛 해안의 끝에 아름다운 비치를 간직하고 있는 카프타쉬를 만난다. 서쪽으로 조금가면 작은 만을 굽어보고 있는 언덕 위에 칼칸이라는 작고 사랑스러운 마을이 있다. 지금은 크늑 마을로 불리는 고대 리키아의 수도 산토스와 리키아의 종교 중심지였던 레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이다. 산토스-레툰의 초기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 크늑과 그 주변의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을 리키아의 고대도시 산토스라고 불렀지만, 오늘날 산토스하면 리키아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카쉬와 페티예 사이에 있는 고대유적지 레툰은 산토스에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있다. 산토스와 레툰에서는 리키아의 전통 양식과 이들이 영향을 받은 고대 그리스 양식이 혼합된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무덤 양식이 그런데, 고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리키아들은 비석의 비문에 자신들의 역사를 새겨 넣었다. 그 언어는 인도-유럽어였다고 한다. # 하루에 두 계절을 즐길 수 있는 곳/멋진 코스에서 스키를 즐긴 직후 영겁의 순간과 같은 선탠을 즐기는 것은? 안탈리아에서 50km 덜어진 바크를르 산맥 북사면에 있는 해발 1750-1900m의 사클르켄트는 겨울스포츠의 메카이다. 3월과 4월에는 아침에 스키코스에서 스키를 즐긴 뒤 낮에는 안탈리아 항구에서 신선한 생선 요리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바다에서 선탠과 수영, 윈드서핑 등을 즐길 수 있다. 안탈리아 북쪽에 있는 뒤즐레르차므 공원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사슴이나 산양 같은 야생동물도 관람할 수 있다. 인근에는 115m 깊이의 귀웨르 계곡이 있다. 안탈리아 동쪽은 서쪽만큼이나 볼 것이 풍성하다. 동쪽으로 12km를 가면 라라 비치가 나온다. 안탈리아에서 북동쪽으로 14km 떨어진 상류 쪽 뒤덴 폭포에서는 폭포수 뒤편을 걷는 스릴 넘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하류 쪽 뒤덴 폭포는 바로 바다로 떨어진다. 주변에는 폭포를 조망하기 좋은 휴식처도 있다. 물론 폭포의 경관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 가장 멋지다. 안탈리아에서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쿠르쉰르 폭포와 닐뤼페르 폭포는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안탈리아 일대는 화려한 최신 시설을 갖춘 관광지와 잘 보존된 역사 유적지를 갖추고 있는 만큼 즐길 거리도 수없이 많다. 페르게(안탈리아에서 18km 거리)는 성 바오로가 첫 번째 전도여행 당시 들르기도 했던 팜필리아라는 중요한 고대도시였다. 안탈리아에서 50km 떨어진 베렉은 현대적이고 화려한 휴양지와 골프장을 많이 지닌 곳으로, 수영과 선탠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아스펜도스로 가는 길에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셀축 다리가 쾨프루 강 위에 걸려 있다. # 눈길을 빼앗는 대리석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선 고대 도시를 따라 걷는 동안에는 카메라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아스펜도스 고대 극장은 가장 잘 보존된 유적으로, 1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지금도 사용되는 이 극장의 관람석과 무대장식, 그리고 음향 시설은 이 극장이 얼마나 잘 건축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인근에는 성당과 아고라, 그리고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큰 수도교 유적이 있다. 안탈리아 북동부 타샤으을과 베쉬코낙으로 가는 갈림길에는 쾨프륄뤼 계곡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멋진 도로가 나온다. 구불구불 휘어지며 산속으로 이어진 이 도로 주변으로는 천연 삼나무 숲이 있다. 이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구비마다 지나온 곳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주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탈리아에서 92km 떨어진 이 국립공원은 다양한 동식물이 번식하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 터키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적지인 시데는 석류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고대 항구도시이다. 오늘날은 예쁜 리조트 타운이 됐다. 시데는 고대 유적과 두 개의 해변, 많은 기념품점과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어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시데 동쪽, 우거진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있는 휴양지 소르군, 티트레연괼, 크즐라아츠 등은 멋진 해변과 생동감 있는 바다로 유명하다. 또한 휴식을 취하기 좋은 환경과 수마노은 숙박시설, 그리고 즐길거리가 끝이 없는 곳이다. 시데 서쪽으로는 또 다른 휴양지인 쿰쾨이, 초라클르, 카멜리아 등이 있다. 고대 유적지와 인접한 이들 휴양지는 멋진 태양과 바다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시데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팜필리아의 셀레우지아(부작슈흐라르)에는 잘 보존된 로마 시대의 온천과 신전, 교회, 영묘, 극장, 아고라 등이 있다. 아이든켄트(이브라드) 남동쪽으로 12km, 마니브카트에서 북쪽으로 55km를 가면 터키에서 가장 신비로우면서 가장 유명한 동굴이 있는 알튼베쉭 동굴 국립공원이 나온다. 동굴 주변의 호수와 기암괴석, 온천 침전물과 개울은 환상적인 경치를 이루고 있다. 알튼베쉭 동굴은 마나브가트강계곡 서쪽 언덕에 있으며, 이 일대를 여행할 때 반드시한번은 두러볼만한 우륀위 마을을 통해 갈 수 있다. 알라라 강변에는 1230년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라에 딘 케이쿠바트가 건설한 알라라한 캐러밴 숙소가 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있는 알라라 요새에 오르면 주변의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변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는 리조트 알란야 리조트는 암벽으로 된 곶 끝에 있다. 이 곶은 지중해 바다를 끼고 솟아 있다. 양편으로는 긴 해변이 두 곳 있다. 곶 위에는 1231년 셀주크 제국 시절에 보수된 요새가 있다. 이 요새는 인근에서 가장 높아 해안을 내려다보기에 좋은 장소다. 성벽은 이 중으로 건축됐다. 잘 보존된 150개 가까운 탑이 곳곳에 있다. 외벽 안에는 모스크 터와 캐러벤 숙소, 시장이 있고, 시장이 있고, 내벽 안에는 허물어진 저수조와 비잔티움 시대의 교회가 있다. 알란야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번성한 것은 1220년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리에딘 케이쿠바트가 겨울 휴양지와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부터이다. 남아있는 건축물들을 보면 셀주크 시대에 이 도시가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인상적인 요새 외에도 독특한 선박 건조 시설과 팔각형의 붉은 탑(크즐 쿨레)도 둘러 볼 만하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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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1}독도는 21세기 보물섬
[심종대 기자]독도 하면 그냥 막연하게 우리 땅이고 울릉도 옆에 있는 2개의 작은 섬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독도가 대단한 가치가 있다던데? 하고 독도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은 이 섬 독도를 왜 그토록 탐낼까? 도대체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의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독도는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87.4㎞ 떨어진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이다. 독도는 우리의 영해를 넓히는데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해저자원이 풍부하며 소설에 나오는 보물섬처럼 곳곳이 보물이다. 독도에 대한 가치는 군사적, 해양 과학적, 지리적, 경제적인가치도 대단하지만 특히 독도주변 해역에 메탄 하이드레이트인 천연 가스층은 실로 엄청나다.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 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 하여 차세대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석유가 고갈되어가면서 미래의 연료로 주목 받고 있는 친환경 연료중 하나이다. 하지만 숫자로 안 나타내고 말로만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최근 신문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독도의 연 가치는 11조원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해저 광물만 해도 10조원이 넘으며 특히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개발하면 대한민국은 산유국이 될 것이다. 산유국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상승하겠는가? 독도에 대한 가치는 무궁무진하게 잠재되어 있고, 무공해 저 자본고수익 바로 관광 사업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 사업은 제주도이다. 독도의 관광가치가 연 541억 원에 이르고 해양생물자원이 풍부한 어장이 약9천오백만원상당의 가치가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1조 하고도 이천억 원이다. 이러한 수치를 모두 합치면 11조 오천억 원이다. 11조원이 얼마나 엄청난 숫자일까? 이런 경제적인 가치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구에 대한 역사적 지질학이다. 독도는 약 460만 년 전 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해저에서 용암이 솟구쳐 나와 생성된 화산성 해산으로 크기는 작아도 울릉도와제주보다 약 1만년정도 앞섰고 최고 450만년이나 오래된 것이며 수면아래는 울릉도의 6배나 크다.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은 각종 고문서에서도 우리나라의 영토로 기록이 되어있다.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군사용으로 쓰이던 연합국 최고사령부 관할지도와 영국의 왕실 지리학자 존 세넥스가 1721년 제작한 인도와 중국지도는 동해를 ‘Eastem Sea’ 로 표기해 서양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바다라는 의미로 동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1750년 프랑스의 왕실 지리학자 길 로베르 드 보곤디가 제작한 “일본왕국도”는 한국연안을 한국해(MER DE COREE)로 일본연안은 일본해(MER DU JAPON)으로 병기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지증왕 13년 서기 512년에 이미 우리는 독도를 우산도라 불러왔다. 그러기에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도를 욕심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외로운 섬, 사람이 살기 힘든 섬, 고기가 잘 잡히고 가치가 좀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땅이며 우리민족의 핏줄이고 우리의 숨결이다. 우리 조상이 물려준 우리의 영토이니 만큼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것이다. 독도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11조원이 넘지만, 독도가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 가치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독도의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 21세기 보물섬으로 바뀌고 있다. 독도의 실 가치는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약 150조원~200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21세기의 보물섬이라 말을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독도 영유권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말씨름하는 것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앞으로 독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일로 양국 간에 두 번 다시 얼굴 붉히는 일 없길 바라며 이웃나라로서 서로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고 때로는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경쟁을 벌이는 친숙한 이웃나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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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삼성서울병원, ‘미세감압술 4000례’
[김광섭 기자]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박 관 교수팀이 최근 반측성 안면경련증과 삼차 신경통 질환 ‘미세감압술 4000례’를 달성했다. 지난 1997년 4월, 미세감압술 첫 시행 후 2008년 2월 1000례, 4년 만인 2012년 2월 2000례, 2015년 10월 3000례를 달성했다. 2016년에는 국내에서 진행된 미세감압술 1,536건 중 박관 교수팀이 417건(27.1% / 심평원 자료)을 실시했다. 특히 4000례 실시한 미세감압술 대상 질환 중 3600례 이상의 반측성 안면경련 질환에서 ‘93%에 달하는 수술 성공률’, ‘1% 미만의 청력 소실’ 등 낮은 합병증 발생률, ‘0% 사망률’ 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수술 성적 중 하나로 인정돼 국제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관 교수팀 연구업적 중 임상진행 단계, 혈관압박 유형, 수술 소견에 의한 혈관압박 정도, 수술 중 감시장치 활용법, 뇌척수액 비루 방지를 위한 수술 기법 등의 지침은 ‘미세감압술 시의 국제적 표준’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박 관 교수는 “뇌신경센터 미세감압술팀이 쌓은 수많은 경험과 강력한 팀워크 덕분”이라면서, “앞으로도 미세감압술 임상, 연구 분야 모두에서 국제적 선도 역할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관 교수팀은 세계 처음으로 경두개골 운동유발전위검사(두개골을 통해 뇌간의 안면신경핵을 자극해 신경흥분도를 확인하는 검사)를 반측성 안명경련에 적용, 아직까지 불분명했던 이 질환의 발생기전을 밝힘으로써 진단과 수술결과 예측을 매우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수술 중 청력소실을 최소화하고 성공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시간 뇌간청각유발전위검사(청각자극을 통해 청신경과 뇌간으로 전달되는 신경계 경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검사), 지속적 근전도 검사(이상근육반응의 소실로 수술 중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등 수술 중 감시장치에 대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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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해외로/터키 편4]2018년 터키로 떠나실래요?
-지난호에 이어 [심종대 기자]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안탈리아 벨렉은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휴양지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밀월을 즐겼다는 고대 그리스 신전들과 로마의 유적지를 관광하고 호텔에서 스파를 받으면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거나 산책을 즐겨도 좋고 세련된 부티크와 레스토랑을 기웃거려도 좋다. # ‘신들의 휴양지를 품은 지중해, 안탈리아에서 여유 있게 즐기는 럭셔리한 힐링 휴가~ 1년에 300일 이상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한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온화한 기후로 최성수기인 여름휴가 기간을 피해 여행을 떠나면 더 저렴한 요금으로 훌륭한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다. ■ 기후: 터키는 한반도의 3.5배크기, 남한의 약 8배 크기로 지방에 따라 기후가 크게 다르다. 대체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봄가을이 짧고 여름은 고온건조하며 겨울은 우기에 해당해 비가 많이 내린다. 안탈리아의 2월~3월은 아침 최저 기온 10도 내외, 낮 최고 기온은 15~20도 사이로 한국에 비해서는 따뜻하나 일교차가 크므로 옷차림에 주의해야 한다. ■ 항공: 한국에서 이스탄불까지 약12시간 소요되고 터키항공 주11회 운항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각각 주4회와 3회 직항편을 운항한다. ■ 국내 교통: 이스탄불에서 앙카라 등 국내 40여개 지역으로 운항하는 터키항공편이 있고, 장거리 버스노선이 잘 발달돼 있어 오토갈(Orogar)이라 불리는 버스터미널에 가면 각지로 이동하는 여러 등급의 버스를 쉽게 탈 수 있다.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내에서는 전철이 운행된다.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안탈리아로 가는 국내선 항공기를 탈 수 있고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안탈리아 국제공항까지 하루 10편 정도 운항한다. 비행 시간은 약 1시간 15분 정도이다. ■ 시차: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느리지만 서머타임이 실시되는 3월 마지막 주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주 일요일까지 7개월간은 6시간 느리다. ■ 환율: 화폐단위는 터키리라(TL)이고, 1리라는310원 (2017년6월 기준), 1달러는 3.52 터키리라, 1유로는 3.95 터키 리라 정도. 유로와 달러 대비 환율이 차이가 나지만 현지에서는 유로와 달러가 거의 동일하게 취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은행을 제외한 타 은행에서는 리라 환전이 안되니 유로나 달러를 준비한다. 현지에서 은행이나 환전소에서 제약 없이 환전이 가능하고 ATM기기가 잘 보급되어 있어서 해외용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편리하다. 환전은 공항이나 호텔보다 시내 환전소가 더 유리하다. ■ 쇼핑 팁: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 사는 것보다는 안탈리아나 카파도키아 같은 주요 관광지가 더 싸다. 상인이 부르는 값의 절반 이상을 깎으면서 흥정하는 것은 기본. 쇼핑의 재미를 더한다. 악귀를 쫓아내는 푸른 악마의 눈 액세서리 (나자르본주), 수공예로 만든 팔찌와 목걸이, 열쇠고리, 수제비누, 핸드메이드 레이스제품, 카펫, 파시미나 스카프, 터키석 악세사리 등이 기념품이나 선물용으로도 많이 구매하는 품목. 핸드메이드 도자기 류도 예쁘고 종류가 많은데 비용은 싼 반면 포장이 부실해서 깨지기 쉽다. 도자기로 만든 냄비 받침, 컵 받침 등도 좋은 아이템. 터키젤리로 유명한 로쿰 (피스타치오나 헤이즐넛이 들어간 것이 맛있다), 건과일(무화과 등), 올리브유, 꿀 등도 싸고 품질이 좋다. 안탈리아 인근 으스파르타는 전세계 장미추출 생산량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한 장미의 도시로 장미수로 만든 화장품과 향수, 로즈 오일 등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 면세점: 터키항공은 기내 면세점을 운영하지 않는 대신 입국장의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10시에 문을 닫는 곳이 많고 일부 코스메틱류와 술, 담배 코너만 운영되므로 자정 무렵 출발하는 터키항공을 이용할 경우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하려면 서둘러 체크인을 해야 한다. ■ 물가: 물가는 한국보다 싼 편이지만 관광지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 전기, 전압: 우리나라와 같은 220볼트, 콘센트 모양이 같아서 편리하다. ■ 금연법: 터키에서는 음식점, 커피숍,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실내 공공장소 내 흡연을 금지하고, 담뱃갑이나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다가 적발될 때도 20리라 (한화 약 1만 3000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 이슬람 사원 방문 시 유의사항: 이슬람사원에서는 신발을 벗고 입장한다. 보통 관광지에 있는 이슬람사원에는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봉투를 개인에게 나눠 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노출이 심한 경우 입장을 제지 당할 수도 있다. 여성의 경우, 제공되는 스카프 등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 기타정보: 관광목적 방문의 경우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다.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식수로 부적합하므로 사서 마시는 것이 좋다. ‘안탈리아 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안탈리아 주변에는 지중해와 나란히 뻗어있는 녹색의 평원이 펼쳐져 있다. 푸른 바다, 맑은 하늘, 끊임없이 변하는 타우루스 산맥의 빛깔, 그리고 우거진 녹색 숲으로 인해 안탈리아는 마치 색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아탈리아의 지명은 기원전 158-138년 페르가몬을 통치했던 아탈루스 2세가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 아탈레이아라고 지은 데서 유래했다. 이 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 도시에는 로마 시대 때 튼튼한 성채가 지어졌다. 로마가 물러난 두l에는 비잔티움과 셀주크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로 변모한 안탈리아는 수많은 5성급 호텔은 물론 다양한 휴양시설과 여가시설을 갖추고 있다. 산에서 스키를 탄 뒤 곧바로 바닷가로 가 수영을 즐길 수 있고, 수많은 고고학적 유적지 또한 산재해 있다는 것이 안탈리아의 또 다른 매력이다. 도시 곳곳에서 고대부터 내려져 오는 다양한 문명이 남겨놓은 예술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옛 시가지의 오래된 칼레이치 거리,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골목, 나무로 지어진 집들, 그리고 고대의 도시성벽도 만날 수 있다. 도시성벽 한 가운데는 서기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아름다운 3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아치로 장식해 만든 하드리아누스의 문이 서 있다. 이 문은 당시 도시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 구실을 했다. 그 옆에는 역시 성벽을 구성하는 2개의 성벽을 구성하는 2개의 탑이 성문을 에워싸고 있다. 이 탑들은 좀더 항구와 가까운 곳에 있다. 성문 광장에는 옛 시가지의 탑 구실을 하던 시계탑이 서 있다. 옛 시가지 중앙에는 우아하게 세로로 홈을 새긴 이블리 모스크 미나레(첨탑)가 서 있다. 13세기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라에딘 케이쿠바트가 건설한 이 미나레는 지금은 안탈리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칼레이치 거리에는 셀주크 제국 시대의 정교한 석고 조각 기술을 알 수 있는 카라타이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도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건설된 중요한 모스크도 두 곳이 있다. 하나는 16세기에 지어진 무라트 파샤 모스크로, 타일 장식의 진수를 볼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18세기에 지어진 테켈리 메흐메트 파샤 모스크이다. 항구 인근에는 19세기 말 천연 샘 위에 돌을 깎아 만든 4개의 기둥으로 장식한 이스켈레 모스크가 있다. 흐드를 륵 쿨레시(탑)은 2세기 경 등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를 개조해 만든 게식 미나레 모스크도 오애 전부터 도시를 지키고 있던 건물이다. 남쪽 해안 지역의 대부분은 안탈리아 시에 포함돼 있다. 곳곳에 위치한 고대 유적, 녹음이 짙은 평원, 풍부한 산소를 내뿜는 울창한 숲, 다양한 트레킹 루트와 아름다운 해변을 갖춘 안탈리아는 이처럼 기대한 것 이상을 만날 수 있는 휴양의 천국이다. # ‘완벽한 시설릏 갖춘 케메르 마리나에서는 훼손됮지 않은 천혜의 만과 해변을 오가는 요트를 이용할 수 있다.’ 안탈리아에서 벗어나 지중해 해안으로 향해도 얼마든지 멋진 곳을 마날 수 있다. 안탈리아에서 벗어나 장엄한 산맥을 뚫고 서쪽으로 42km를 가면 케메르라는 휴양도시에 닿는다. 이곳은 이상적인 휴양 환경을 위해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세심하게 다듬어진 휴양지이다. 완벽한 시설을 갖춘 케메르 마리나에서는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만과 해변을 오가는 요트를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가격대의 고품질 기념품을 쇼핑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마리나 북쪽으로는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한 산책하기 좋은 케메르 해변이 있다. 이 해변은 블루 플래그(친환경 휴야지) 등급을 받은 해변이다. 케메르 북쪽으로는 크즐테페, 괴이뉙, 벨다비, 남쪽으로는 차마우바, 테키로바 등 또 다른 멋진 관광지가 있다. 케메르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2575m 높이의 타흐탈르(올림포스)산 기슭에 위치한 파셀리스는 한때 주요 무역항이었다. 수도교, 아고라, 목욕탕, 야외극장, 하드리아누스의 문 등이 이곳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려준다. 올림프스 산 남쪽 사면에는 올림포스라는 고대 도시가 있다. 바다와 육지를 통해서 갈 수 있는 올림푸스 산 계곡에는 올랜더와 월계수가 그늘을 만들만큼 우거져 있다. 츠랄르 비치에서 올라갈 수 있는 올림포스 산 북사면의 해발 300m 지점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야나르타쉬가 있다. 리키아의 영웅 벨레로폰이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타고 올라가 불을 내뿜는 괴물 카메라를 죽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는 카라인 동굴은 아나톨라안에서 인간이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동굴로 전해지고 있다. 마치 햇살이 입구를 지닌 이 동굴은 서로 연결된 커다란 세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동굴 입구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일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대부분의 유물의 터키 전역의 여러 박물관으로 이전돼 전시되고 있다. 그 중에는 기원전 16만 년 전의 유물도 있다. 안탈리아 북쪽 귈뤽 산악국립공원 내에 있는 귈뤽(솔리모스)산 서쪽 사면의 1050m 고지에는 고대 도시 테메소스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지 주변으로는 거칠면서도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있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암벽을 파고 만들어진 무덤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자가 될 것이다’ 리키아의 고대 도시 리미라는 피니케에서 투룬초바를 거쳐 내륙을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10km 정도 가면 도착한다. 이 도로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면 또 다른 리키아의 고대 도시 아리칸다도 만난다. 최소의 기원전 500년부터 사람이 거주한 이 도시는 수 차례의 화재와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됐다. 지금은 뎀레나 칼레로 불리는 고대 도시 미라는 피니케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미라는 4세기경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가 주교를 지낸 곳으로, 그는 미라에서 서기 345년 숨을 거뒀다, 차야으즈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게코와 선에 도착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이 섬에는 수많은 만과 고대 도시들이 있다./다음호에 계속 *집필진의 변경으로 인해 그동안 연재되지 못한 점 양지바랍니다. 빠른 시일내에 터키편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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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미세먼지, 코만 막으면 되나? 선글라스도 착용해야"
[김광섭 기자]미세먼지와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이제는 외출 시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다.그런데, 미세먼지, 황사로 인한 호흡기 건강뿐만 아니라 마스크를 써도 지킬 수 없는 눈 건강에 대한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철에는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꽃가루, 황사, 미세먼지 등 각종 오염물에 눈이 자주 노출되면서 알레르기결막염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황사나 미세먼지는 콘택트렌즈 착용자에게 건조감과 이물감을 악화시키고, 눈물이 적은 안구건조증 환자들은 먼지를 희석시키는 능력이 감소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심한 증상을 느끼게 된다. 실제 미국 보건당국은 스모그가 발생하면 안구건조증 환자가 최대 40%까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대만에서 대규모로 이뤄진 연구에서는 황사가 발생하는 기간에 결막염의 빈도가 미취학 아동에서 1.48%, 취학 아동에서 9.48%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또한, 대한안과학회에 의하면, 동물실험 연구에서도 미세먼지에 노출된 그룹이 안구표면의 손상이 더 심했고, 반복 노출 시 안구표면 보호물질(뮤신)의 분비량이 줄어든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염증을 증가시키는 물질들이 눈 뿐만 아니라 목 림프절에서도 증가해 눈에 염증을 유발하고 손상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인했다. 중앙대학교병원 안과 전연숙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세먼지는 눈, 코, 입, 기관지 점막 등 공기와 만나는 인체의 부분에 들러붙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면서, “특히, 미세먼지는 단순 먼지가 아니라 규소, 납, 카드뮴 등의 중금속과 질소 및 아황산가스와 같은 대기 오염물질들이 포함돼 있어 알레르기성 각결막염, 독성 각결막염, 안구건조증을 일으키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눈물의 양이 부족해 이물질을 희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안구건조증 환자들은 미세먼지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또한, 콘택트렌즈 착용자는 눈에 들어간 이물질이 렌즈 표면에 달라붙어 계속 눈을 자극하게 되므로 렌즈 착용 시간을 줄이고 렌즈 세척과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라식, 라섹 등의 각막 수술을 받은 경우 수술 후 일시적인 안구건조증과 각막신경이상 등이 발생하므로 실제로 눈에 심한 이상과 증상이 생겨도 잘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세먼지로 인한 알레르기 결막염의 경우 눈꺼풀 부종, 가려움, 이물감, 눈물흘림, 충혈, 통증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각막염이나 각막 궤양이 발생한 경우, 심한 통증, 눈부심 및 시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의 경우, 조기에 치료하면 알레르기 치료제와 인공 눈물 등으로 1~2주 내에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눈을 자꾸 만지고 비비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치료하지 않는 경우 염증이 심해져서 각막혼탁이 남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미세먼지로 인한 안구건조증의 경우, 이물감과 통증뿐만 아니라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눈 주변이 무거운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시야가 뿌옇게 보이거나 반사적 눈물 분비로 인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미세먼지가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최대한 미세먼지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중앙대병원 안과 전연숙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지만, 외출 시에는 되도록 콘택트렌즈보다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만약 렌즈를 사용할 경우에는 외출 후 바로 렌즈를 빼서 세척하고, 렌즈에 먼지가 끼어 흠집을 내거나 각막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회용 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전연숙 교수는 “시력이 나쁘지 않아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마스크와 함께 선글라스, 고글, 보호안경 등을 착용하고 외출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면서, “실제 안과에서 안구건조증 등 안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보호안경 처방을 하면 약 70% 정도의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한 외출 후에는 손을 반드시 씻어야하고, 오염된 손으로 눈을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눈이 가렵다고 비비면 알레르기 염증이 심해지고, 각막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비비지 말고, 차가운 인공눈물로 눈을 세척해주는 것이 좋다. 가려움이 심할 경우 깨끗한 수건에 찬물을 적시거나 얼음을 감싸 냉찜질을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안구건조 증상을 느낄 경우 평소보다 더 인공눈물을 점안하되, 자주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일회용 무방부제 인공 눈물을 점안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가습기로 실내습도를 유지해 바이러스나 먼지가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가라앉히는 것이 눈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간혹, 충혈을 감소 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안약 중에는 장기간 사용할 경우 녹내장, 백내장, 각막 상피세포의 상처 치료 지연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안과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 후 안약을 처방받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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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무좀, 레이저로 치료하면 완치 효과 높다
[김광섭 기자]발톱무좀은 발톱에 생기는 흔한 진균 감염 질환으로 일반적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데, 흔히 사용되는 경구 항진균제는 효과는 좋은 편이지만 장기간의 약물 복용이 필요하고, 환자가 고령이거나 다른 전신 질환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나 간 기능이 나쁜 상황에는 복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바르는 항진균제는 무좀에 의해 두꺼워진 발톱에 깊숙이 침투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레이저를 이용해 발톱무좀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효과가 입증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앙대학교병원(원장 김명남) 피부과 김범준.박귀영 교수팀은 발톱무좀 치료에 대해 ‘1064nm 단파 Nd:YAG 레이저’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확인한 임상시험 결과 연구 논문(Randomized Clinical Trial to Evaluate the Efficacy and Safety of Combination Therapy with Short-Pulsed 1,064-nm Neodymium-Doped Yttrium Aluminium Garnet Laser and Amorolfine Nail Lacquer for Onychomycosis)‘을 최근 발표했다. 김범준.박귀영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발톱무좀 환자 128명을 대상으로 항진균제 도포제만 단독으로 사용한 군과 도포제와 함께 레이저 치료를 받은 군으로 나눠 효과를 평가한 결과, 16주 후 레이저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군에서 약 70%의 호전된 결과를 확인했다. 이와는 반대로 도포제만 단독으로 사용한 군에서는 20%의 호전만 보인 것을 확인했다. 또한, 항진균제 도포 치료와 함께 레이저 치료를 함께 받은 그룹의 환자 만족도가 도포제 치료만 받은 환자 그룹의 만족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81.25% vs 23.44%). 이로써, 손발톱 무좀치료에 있어 도포제와 레이저 치료의 병용 치료가 도포제 단독 치료나 약물 복용 치료에 비해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안전한 치료법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1064nm 단파 Nd:YAG 레이저(Short-pulsed 1064nm Nd:YAG Laser)’ 치료는 기존의 치료법과 병행 시 치료의 효과를 높이고 치료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며, 항진균제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환자에게도 비교적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방법으로, 10분 이내의 짧은 시술시간이 소요되고 통증이 적어 별도의 마취 없이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앙대병원 피부과 김범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경구 항진균제를 장기간 복용하기 어려운 무좀 환자들이나 바르는 약만으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 레이저 치료와 바르는 항진균제의 병합 치료는 좋은 치료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범준․박귀영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SCI-E급 저널인 대한피부과학회 영문학술지(Annals of Dermat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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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부터 시작된 일본의 독도침탈사
영유권 분쟁은 특성상 식민지배 처리과정이나 전쟁 후 점령지의 처리과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주로 역사적 근원이 주요한 쟁점이 되기 마련이고 이는 결국 역사논쟁과도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동북아 지역 내 영토문제 역시 식민지역사 또는 제국주의 침탈사와 무관하지 않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러.일 간 북방도서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정에서, 중·일 간 센카쿠(조어도) 도서 영유권문제는 청일전쟁 과정에서, 그리고 일본의 영유권 도전이 제기되고 있는 독도 역시 러일전쟁 과정에서 초래된 침탈사와 무관하지 않다. # 문제의 본질은 일제의 침략사와 러일전쟁사 독도문제의 본질은 바로 일제의 침략사 및 러일전쟁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1904년 2월 23일의 한일의정서, 1904년 8월 22일의 제1차 한일협약으로 시작되는 일제의 한국침략 와중인 1905년 2월 22일 일본은 소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라는 것을 통해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편입조치하게 된다. 이어 1905년 11월 7일에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과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조약)을 거쳐 1910년 8월 마침내 한일병합에 이르면서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도 침탈이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다. 일제의 침략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에 의거 일본은 한반도에 일본군을 주둔시키면서 군용지를 마음대로 수용·징발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어 반년 뒤인 1904년 8월 22일에는 제1차 한일협정서를 체결해 일본은 스티븐스 외교고문 및 메가다 다네타로 재정고문을 임명하는 등 조선의 외교권과 재정권을 사실상 박탈한 셈이었다. 1904년 8월경까지 조선에 대한 군용지 사용권한과 외교권 및 재정권을 확보한 일본은 같은 해 9월부터 11월에 걸쳐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 본격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 설치 및 이를 위한 현지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 1904년 ‘독도 영토편입 청원서’→이듬해 시마네현 고시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독도 침탈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여순항의 러시아 군함 2척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이 발발했으나, 불과 몇 달 뒤인 5월경만 해도 일본 해군은 전력의 3분의 1을 상실할 정도로 러시아 발틱함대에 비해 열세였다. 이를 극복하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일본군은 9월 1일 울릉도 서쪽과 남쪽에 감시망루를 각각 설치하였고, 이어 9월 24일에는 일본군함 ‘니타카’호가 독도망루 설치를 위한 현지조사를 떠났다. 그로부터 5일 뒤인 1904년 9월 29일에 일본의 어업가인 나카이 요사부로가 ‘독도 영토편입 청원서’를 제출하게 되었는데, 당초 그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고 일본 정부를 통해 ‘독도 임대청원서’를 제출하려던 참이었으나 당시 일본 해군성 수로국장 기모쓰케 가네유키 등의 사주를 받아 결국 ‘독도 영토편입 청원서’를 제출케 되었던 것이다. 1905년 1월 1일에는 일본군이 여순을 함락시킴에 따라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최종 결전을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1월 10일 내무대신(요시카와 아키마사)은 총리대신(가쓰라 다로)에게 ‘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이라는 비밀공문을 보내 독도 편입을 위한 내각회의 개최를 요청했으며, 불과 2주일여 지난 1월 28일 일본 내각은 전격적으로 독도 편입을 결정했고 뒤이어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침탈을 완료한 셈이다. # “주인이 없는 빈 집에 들어가 귀중품을 들고 나오는 것” 따라서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조치는 러일전쟁 중인 한반도 강점기에 이뤄졌으며 당시 무주지가 아닌 한국의 영유권에 대해 행해진 불법, 무효한 조치이다. 1905년의 불법 편입조치에 대해 일본은 처음에는 ‘무주지 선점’이라고 주장했다가 추후에는 ‘일본의 고유영토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번복하는 등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고유의 영토라고 하면서 1905년에 편입시켰다고 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며 자국의 영토에 대해서 영유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근거도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해서는 일본의 소수 양심적 학자들도 이미 인정한 바 있다. 일본의 나이토 세이츄 시마네 현립대학교 명예교수는 “주인이 없는 빈 집에 들어가 귀중품을 들고 나오는 것”으로 비유했고, 호리 가즈오 교토대학교 교수 역시 “(당시 한국은) 나라 전체를 빼앗겨 소멸된 지경인 가운데 하나의 바위섬인 영유문제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기술할 정도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독도침탈사를 일제의 한반도 침략사 및 러일전쟁사의 맥락에서 연표로 도식화하여 재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이와 같은 일본의 대한반도 침탈 양상은 동해 바다의 명칭이 그간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로 그릇 알려지게 된 배경에서도 잘 나타난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인 1929년에 국제수로기구(IHO)는 세계 각국의 해로 안전 등을 위해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초판을 발간했는데, 당시 일본에게 주권을 침탈당한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바다의 명칭이 ‘동해’ 대신 ‘일본해’로 표기됐고 이후 지금까지 국제사회에 잘못 인식되어 온 것이다.즉, 일본의 침탈로 인한 또 다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미국과 쿠바의 ‘후벤투드’ 도서영유권의 귀중한 사례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조치가 자행되던 1905년과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오히려 식민국가가 스스로 피식민국의 영유권을 인정해 주면서 되돌려 준 귀한 사례가 있어 국제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미국과 쿠바의 ‘후벤투드’ 도서영유권 사례이다. 1898년 스페인의 통치권이 미국에게 양도된 이후 1902년까지 미국의 군사적 관할권 아래 있던 쿠바는 1902년 ‘플라트 수정안'(Platt Amendment)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그러나 ‘플라트 수정안’은 후벤투드 섬의 사항은 쿠바 독립국의 법적 영토 경계에 포함된다고 규정할 수 없으며 이는 차후 협정에 의해 조정될 것 이라고 밝혔다. 1904년 미국의 해이(John Hay)와 쿠바 측 쿠에사다(Gonzalo de Quesada)는 후벤투드 섬 문제에 대한 논의를 거쳐 해이-쿠에사다 협정(Hay-Quesada Agreement)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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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지도 속의 독도(4) 강원도 ‘팔로지도 八路地圖’-강원도 ‘동국지도東國地圖’-강원도 ‘여지도 與地圖’-강원도 ‘지도 地圖’
[심종대 기자]강원도 ‘팔로지도 八路地圖’한국 | 작자미상 | 19세기 | 58.1cm×69.3cm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정상기의 ‘팔도분도’ 류의 도별지도이다. 서북강계 지도가 추가돼 9장으로 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강원도지도에는 총석정과 해금강을 크게 그렸다. 울릉도를 표기하고 우 추측 상단에 우산도(독도)를 표기해 두 섬이 우리 땅임을 분명히 밝혔다. 강원도 ‘동국지도東國地圖’ 한국 | 작자미상 | 18세기 후반 | 60.5cm×75.0cm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정상기의 ‘팔도분도’ 류의 도별지도로 8장으로 구성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강원도지도는 산맥과 하천 도로망이 자세하다. 울릉도를 표기하고 그 우측 상단에 우산도(독도)를 그렸다. 강원도 ‘여지도 與地圖’ 한국 | 작자미상 | 19세기 | 76.8cm×73cm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정상기의 ‘팔도분도’ 류의 지도로, 황해도, 경상고 전라도 충청도 지도의 하단부에 백리척 형태의 눈금이 가로로 그려져 있다. 울릉도를 산맥과 함께 그렸고 그 동쪽에 있어야 할 우산도(독도)를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하단에 충분이 띄워서 표시해 독도가 한국 땅임을 밝히고 있다. 강원도 ‘지도 地圖’ 한국 | 작자미상 | 18세기 중반 | 45.8cm×66.6cm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팔도의 도별지도와 만주의 오라영고탑(烏喇寧古塔)을 합쳐 그린 9장으로 구성된 지도책에 수혹된 것으로 강원도의 도별지도에서 울릉도를 그리고 그 서쪽에 우산도(독도)를 표기했다. 백두산에 정계비가 표시된 점으로 미뤄 1696년의 안용복 사건 이후에 제작된 지도임에도 우산도(독도)를 울릉도의 동쪽에 그리지 않고 서쪽에 그린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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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지도 속의 독도(3)울릉도도 ‘팔도여지도 八道與地圖’-울릉도 ‘조선지도 朝鮮地圖’
[심종대 기자]울릉도도 ‘팔도여지도 八道與地圖’ 한국 | 작자미상 | 18세기 중반 | 33.5cm×38.0cm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5책으로 된 채색 필사본 전국 군현 지도책으로 경기도와 전라도의 군현이 결본이다. 이 지도는 강원도 군현에 수록된 지도이다. 도로 표시가 없고 하천은 청색 쌍선으로 그렷다. 대부분의 섬 지도가 방위를 표시하듯 이지도도 동서남북으로 방위를 표시했다. 산을 내부 쪽을 향하도록 그렸고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를 표시했다. 독도를 표기하고 ‘소위우산도’라고 적었다. 울릉도 ‘조선지도 朝鮮地圖’ 한국 | 작자미상 | 18세기 중반 | 38.5cm×49.8cm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7책으로 구성된 채색 필사본의 방안 지도책으로 비교적 정확하고 비변사에서 소장했던 지도이다. 강원도는 제3책에 수록돼 있고 강원도지도에는 하천은 자세히 표기했으나 산은 각 읍의 진산만 표시하고 산맥을 표시하지 않았다. 각 군현 지도를 그릴 때 울릉도의 중요성을 강조해 울릉도는 군현이 아니지만 독립해 그렸고 우산도(독도)를 그 동쪽에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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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도 關東圖 ‘좌해여도 左海與圖’-관동도 關東圖 ‘여지도 與地圖’
[심종대 기자]관동도 關東圖 ‘좌해여도 左海與圖’한국 | 작자미상 | 19세기 중반 | 59.8cm×91.4cm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총도와 8도 도별도 등 9장으로 구성된 채색 필사본 지도책으로, 정상기의 ‘팔도분도’류의 지도임에도 백리척의 표시는 없다. 산맥과 하천 도로망을 자세하게 표시했고, 좌측 하단에 각 군현에서 서울까지의 일정을 기록했다. 울릉도를 표시하고 그 동쪽상단에 우산도(독도)를 표기해 두 섬이 우리나라 영토임을 밝혔다. 관동도 關東圖 ‘여지도 與地圖’한국 | 작자미상 | 18세기 중반 | 19.1cm×26.5cm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여지도’는 6책으로 구성된 전국의 군현 지도책이다. 제6책에 ‘관동도’라는 강원도의 도별지도가 수록돼 있다. 이 지도에서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합쳐 그린 후 ‘울릉우산양도’라고 기록했다. 강원도 군현지도 끝 부분에서 울릉도는 군현이 아니지만 단독으로 그려 울릉동와 독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울릉도의 산맥과 하천 등을 상세히 그렸다. 민간인들이 살고있는 곳을 하나하나 표시하고 몇 집이 살 수 있는가를 적어 놓았다. 또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섬들을 모두 표시하고 특별히 독도를 그리고 ‘소위 우산도(독도)’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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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바로알기1]옛지도 속의 독도(1) 울릉도내도 鬱陵島內圖, 울릉도외도 鬱陵島外圖
[오재곤 기자]울릉도 안쪽에서 바다쪽을 보았다고 가정해 그린 지도로 ‘울릉도외도’와 한 짝이 된다. 1882년(고종 19)에 왕명을 받은 이규원(李奎遠)이 울릉도를 탐사한 후 정부에 올린 보고서인 ‘울릉도검찰일기’와 함께 제작된 지도이다. ‘울릉도검찰일기’는 울릉도와 독도에 행정구역을 설치키 위해 미리 조사시킨 보고서이다. ‘울릉도외도’는 해안선의 형편을 자세하게 그린 데 비해 ‘울릉도내도’는 성인봉을 비롯해 울릉도의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그렸다. 이와 함께 ‘울릉도외도 鬱陵島外圖’는 울릉도를 바다쪽을 보았다고 가정해 그린 지도로 ‘울릉도내도’와 한 짝이 된다. 1882년(고종 19)에 왕명을 받은 이규원(李奎遠)이 울릉도를 탐사한 후 정부에 올린 보고서인 ‘울릉도검찰일기’와 함께 제작된 지도이다. 울릉도 해안의 형편을 24방위를 이용해 자세하게 표기했다. 도방청(道方廳)이나 저포(苧浦) 그리고 왜선창(倭船艙)등을 표기했고, 촉대암, 형제암, 죽도, 장군암 등 울릉도 주변의 자그마한 섬이나 바위등도 모두 표시하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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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해외로/터키 편3]2018년 터키로 떠나실래요?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지난호에 이어
[오재곤 기자]“마르마라 해에 있는 9개의 섬으로 이뤄진 왕자 군도는 비잔티움 시대 때 왕자들이 귀양을 살던 곳이다. 지금은 여름철 이스탄불 시민들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거나 19세기에 자어진 우아한 자택을 관람키 위해 자주 찾는 명소이다”
왕자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뷔윅카다에서는 마차를 타고 소나무가 우거진 도로를 달리거나 성 주변에 산재한 바닷가 동굴 중 한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 다른 인기 섬들은 크나르, 세데프, 부르가즈, 헤이벨리아다 섬이다. 유럽 쪽이든 아시아 쪽이든 보스포루스 해안의 각 선착장에서는 이 섬들까지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유람선이 있다. 여름철에는 보다 빨리 섬에 닿을 수 있는 수상버스가 카바타쉬 선착장에서 운항된다.
이스타불에서 25km 떨어진 유럽 쪽 흑해 연안에는 여름철이면 많은 이스탄불 시민이 찾는 킬리오스라는 길고 넓은 비치가 있다. 유럽 쪽 흑해 연안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면 이스탄불 인근에서 가장 큰 베오그라드 숲이 나온다. 주말이 되면 이곳으로 소풍을 나온 이스탄불 시민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부터 있던 7개의 저수지와 수많은 샘들이 이곳의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이 일대에는 16세기 오스만 제국 때 시난 에 의해 건설된 모을로와 수도교의 일부가 남아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전경을 만들어준다.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역시 이스탄불에서 25km 떨어진 아시아 쪽 흑해 연안에 있는 폴로네이쾨즈는 19세기에 폴란드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지역이다. 이스탄불 시민들도 이곳을 찾아와 산책이나 승마를 하면서 목가적인 풍경을 즐기면서, 이민 1세대의 후손들이 만드는 폴란드 요리를 즐기곤 한다. 위스퀴다르에서 70km 떨어진 흑해 연안의 쉬레 비치에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있어 이스탄불 근교에서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휴양지 역할을 한다. 쉴레 베지라고 불리는 얇고 시원한 면 옷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이곳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스탄불에서 38km 떨어진 바이라모을루 조류군락지 및 식물공원은 휴식을 취하기에 최상의 장소로 손꼽힌다. 전 세계에서 온 각종 조류와 식물을 관람할 수 있는 이 초대형 공원 안에서 많은 레스토랑과 산책로도 있다. 이스탄불 남동 쪽에 위치한 매력적인 어촌마을 에스키히사르는 마르마라 해에서 하루를 보낸 요트들이 많이 정박하는 장소이다. 마을 안에는 지금은 박물관 역할을 하는 19세기 터키의 위대한 화가 오스만 하미 베이의 집이 있다. 에스키히 사르와 게브제 사이에는 한니발 묘와 비잔티움 시대의 성곽도 있다.
이스탄불에서 65km 떨어진 인기 있는 휴양지인 실리브리에는 이스탄불 시민들의 여름 별장이 많이 있다. 대규모 리조트 단지이기도 한 이곳은 스포츠 및 헬스 관련 시설을 물론,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바쁘게 오가는 도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회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이곳까지는 정기적으로 해상버스가 운항한다.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 이스탄불 인근의 관광지
1.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수도 ‘부르사’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던 이 도시는 1326년 오르한 가지에게 정복돼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수도가 됐다. 따라서 부르사에서는 오스만 시대의 주요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린 부르사’로 알려질 만큼 이 도시에는 정원과 공원, 녹지가 많고, 주요 과수 재배지역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물론 지금도 복숭아 재배, 비단 무역, 수건 생산,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가면 빵과 토마토 소스, 구운 고기, 녹인 버터, 요구르트에서 맛을 낸 유명한 이스켄테르 케밥을 맛 볼 수 있다. 자생 밤은 이곳의 또 다른 특산물이다.
도시 관광은 예쉴 튀르베(녹색 영묘)가 있는 동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타일로 된 외부 인테리어가 독특한 정원 안의 영묘에는 술탄 메흐메트 1세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반대편 거리에 있는 예쉴 모스크에는 1424년에 건축한 것으로, 셀주크 시대의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른 탐미주의적인 오스만 양식을 보여준다. 부근에 있는 부속건물 메드레세는 민속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일대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부근에 있는 전통찻집에서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언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면 애교스러운 에미르 술탄 모스크가 나타나고, 이어 옛 가옥들이 많은 거리를 지나면 이을드름 베이지트 모스크(1391)에 도착한다.
여기서 줌후리예트 광장(이곳에선 헤이켈로 불린다)과 아타튀르크 거리를 거쳐 코자 공원에 이르면 꽃밭과 분수 주변에 노천카페가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공원 뒤쪽으로는 비단 짜는 누에고치를 거래하던 코자 한(1490)이라는 긴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좁은 길이 시장과 캐러번숙소, 베데스텐(쇼핑몰)까지 이어진다.
코자 공원 반대편에는 부르사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 오르한 가자 모스크(1339)가 있다. 그 옆에는 셀주크 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울루 모스크(율루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에는 호두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민베르(설교대)와 달필로 새겨진 명판이 장식돼 있다. 20개이 돔까지 지닌 멋진 모스크지만, 샤드르완(기도 전 몸을 씻는 세정대)은 별 특징이 없다.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울루 모스크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리면 오래된 그림같이 아름다운 히사르라는 지역에 이른다. 계곡을 내려다보는 이 공원에는 오스만 제국을 세운 오스만과 부르사 점령군을 지휘한 아들 오르한 기지의 영묘가 있다. 톱하네의 카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무라디예 지역에 있는 이을드즈 공원의 티가든에선 무라디에 모스크 단지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조용한 공원처럼 조성된 무라디예 모스크 단지에는 예실 모스크와 같은 형태의 무라트 2세 모스크(1426)와 무라트 2세 및 쉐흐자데젬, 쉐흐자데 무스타파의 묘지가 있다. 이 묘지들은 멋진 오스만 양식의 타일로 장식돼 있다. 옆에 있는 오스만 하우스 박물관은 17세기에 보수된 저택으로 당시 제국의 부유함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부르사에서 둘러 볼만 한 곳으로는 고고학 박물관과 최근 문을 연 아나톨리아 자동차박물관, 체키르게로 가는 길에 있는 아타튀르크 박물관 등이 있다. 부르사 서쪽 외곽에 있는 체키르게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온천욕탕을 갖춘 현개적 호텔들이 많이 있다. 물론 옛날 방식의 하맘(목욕탕)도 있다. 예니 카프르자(온천)는 쉴레이만 대제의 재상인 뤼스템 파사에 의해 1552년에 지어진 곳이다. 옛 비잔티움 제국 시대 때의 목욕탕 터 위에 지어진 에스키 카프르자(구 온천)는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카라무스타파 파샤 온천은 미네랄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유명하다.
체키르게에서는 무라트 1세의 모스크와 영묘, 종교 시인인 쉴레이만 첼레비의 무덤들도 방문해 볼만하다. 이곳은 지금도 터키 꼭두각시 인형극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희극 인물 카리괴즈를 기념하는 유적도 있다. 오스만 시대의 역사가 깃든 주말르크즉 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 마을에 들어서면 곧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역사지구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부르사에서 36km 떨어진 울루 산은 터키에서 가장 큰 거물스포츠센터로 숙박시설은 물론 다양한 오락거리가 있다. 스키 코스까지는 다양한 차량과 케이블카(텔레페릭)가 다닌다. 스키 시즌은 12월에서 5월까지지만, 아름다운 전경과 깨끗한 공기를 지닌 울루 산 국립공원은 1년 내내 가볼 만하다.
부르사에서 87km 떨어진 이즈닉은 고대 니케아라는 이름을 지닌 도시였고, 이즈닉 호수의 동쪽 끝에 있다. 기원전 316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장군인 안티고나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대왕의 또 다른 장군인 리시마쿠스에 의해 통치됐다. 그는 아내의 이름을 따 이 도시를 니케아라고 불렀다. 이 도시는 이후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 시절 중요한 역할을 하다 1078년 셀주크 제국, 1331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됐다.
이곳의 로마 시대 극장은 트라야누스 황제(249-251)에 의해 건설됐다. 이즈닉 호수 옆에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로마원로원 건물이 있다. 도시 중앙에는 787년 성상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의를 벌인 또 다른 중요한 공의회가 열렸던 성 소피아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오스만 통치 하에서 모스크로 개조됐다.
이즈닉은 기독교계에서 예루살렘이나 바티칸 못지않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내의 이슬람 양식 건물 중에서 터키석 타일로 장식된 예쉴 모스크와 뉠뤄페르 하툰 이마레트 박물관을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이즈닉은 로마 시대 때 건설된 114개의 탑을 지닌 4227m 둘레의 성곽에 둘러싸인 여전히 작은 도시이다. 도시로 들어오는 4개의 관문도 여전히 서 있다. 16세기와 17세기 때 이즈닉은 터키 각지의 모스크와 궁전을 장식하던 아름다운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였다. 박물괸에는 인근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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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해외로/터키 편2]2018년 터키로 떠나실래요?
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지난호에 이어
# 영광스러운 보물들
이스탄불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로마, 비잔티움, 오스만 제국 시절의 궁전과 모스크, 교회, 수도원, 기념물, 성벽, 그리고 유적지를 만나게 된다. 종교 건물과 정부 기관 및 무역 관련 건물, 그리고 오락거리가 즐비한 구시가지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위대한 건축물이 가장 많은 지역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마르마라 해와 북쪽으로 흐르는 골든혼 만으로 둘러싸여 있는 역사지구로,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의 매우 잘 정돈된 모습에 매료될 것이다. 이 역사지구의 중심은 술탄 아흐메르 광장으로, 주변에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서로 인접해 서 있다.
1. 살아 숨 쉬는 비잔티움의 유산||바실리카 시스턴/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비잔티움 시대 대 도시의 중심에는 히포드롬과 그 부속건물들이 있다. 궁전은 권력의 산실이었고, 하기아 소피아(아야소피아)는 종교 활동의 중심지였다. 히포드롬은 대중들이 오락을 즐기는 중심지였고, 예레바탄 사라이(바실리카 시스턴)는 도시에 공급할 물을 저장하던 곳이다. 이 건축물들은 지금도 이스탄불의 중심에서 만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히포드롬이 서있던 광장에서 술탄의 왕자들이 할례 의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비잔티움 시대의 가장 영광스러운 건축물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하기아소피아로, 1500년 이상 된 이 건물은 이스탄불의 상징이기도 하다. 박물관으로 전환된 뒤 발견된 하기아 소피아의 모자이크들은 9-12세기 비잔티움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카리예 박물관(초라 교회)도 비잔티움 시대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네베 살롬, 아흐리다, 아쉬케나지 유대회당은 이스탄불에 있는 3대 유대회당이다. ||아야소피아박물관/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톱카프 궁전은 특히 이슬람 성물(무카데스 에마네틀러 다이레시)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성스로운 의복(흐르카이-사아데트)과 성스러운 깃발(산자크이 쉘리프)이 금궤 안에 보관돼 있다. 블루 모스크로도 알려져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1609-1616년에 건축됐다. 이곳에는 이 모스크를 건축한 술탄 이흐메드 1세의 영묘와 함께 메드레세(이스람 학교), 의료시설이 있다.
이스탄불에는 골든혼 건너편에 또 하나의 역사지구가 있다. 바로 옛 페라 거리로, 그 뜻은 ‘또 하나의 해안’이다. 이곳은 중동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만, 12세기경 제노바인들과 베네치아인들이 정착했던 탓에 서구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다. 국제적인 도시로서 이스탄불의 면모는 여러 건축물에서도 드러난다. 제노바인들이 건축한 갈리타 타워는 수도가 앙카라로 천도될 때까지 이곳에 설치된 자치지구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보스포루스 다리/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이스티크랄 거리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있고, 세계 각국의 신실한 종교인들이 많이 찾는 성 안토니우스 성당도 이 거리에서 가장 조용하고 평온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때 건축된 여러 궁전과 여름 궁정, 성곽, 대저택들도 이스탄불의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 이을드즈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은 한떼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톱카프 궁전을 떠나 거주하던 곳이다. 이스탄불은 또 보스포루스 해협에 늘어선 우아한 목조주택 얄르도로 유명하다.
2. 보스포루스 해협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며 흐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잊을 수 없는 보트 유람을 하지 않았다면 이스탄불을 모두 경험한 것은 아니다. 해협 양편으로는 과거와 현재, 화려한 광채와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쾌하게 뒤섞어 놓은 풍경이 펼쳐진다”||보스포루스 해협/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현대식 호텔이 얄르(해안가 몾조주택) 옆에 서있고, 대리석 궁전이 투박한 돌로 쌓은 요새와 맞붙어 있고, 우아한 주택단지가 볼품없는 어촌과 이웃해 있는 이곳이 바로 보스포루스 해변이다. 보스포루스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협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여객선에 오르는 것이다. 애미뇌뉘 항에서 여객선을 탔다면, 아시아와 유럽 해안의 어느 선착장에서든 하선할 수 있다. 해협 전역을 유람하는 데 드는 시간은 6시간 정도이고, 비용도 저렴하다. 원한다면 여행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배를 빌릴수도 있다. 여행사들은 하루 종일 야간에만 운항하는 미니선박 투어도 갖춰놓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여객선을 타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나 녹색의 공원과 이을드즈 궁전의 부속건물까지 감상할 수 있다. 녹색공원이 있는 해안에는 1874년 술탄 압윌라지즈에 의해 재건돼 지금은 그랜드 호텔로 변모한 츠라안 궁전이 서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300m 가량 길게 뻗어있는 이 호텔의 화려한 대리석 외벽에 반사되는 부드러운 해협의 물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르타쾨이/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이어서 나타나는 오르타쾨이에서는 일요일이면 예술가들이 길거리 갤러리에 모여 오고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함께 생생한 삶의 현장을 형성한다. 이 거리의 노점상에서 맛있는 쿰피르(구운 감자)도 먹어 보길 바란다. 이 거리를 걷다보면 수 백년 전부터 서로 이웃해 서 있는 교회와 모스크, 유대회당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 통해 터키인들이 지닌 관용의 정신이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르타쾨리이에는 이스탄불의 오래된 건축물들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 보아지치(보스포루스)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이 다리를 지나면 곧 아시아 쪽 해안에서 아름다운 베일레르베이 궁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궁전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언덕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참르자 언덕이다. 이 언덕에 오르면 웅장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이스탄불과 아름답게 꾸며진 녹지지역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반대편 해안을 바라보면 오스만 양식의 목조빌라 아르나부트쾨이가 이웃한 베렉 지역의 화려한 현대식 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수 킬로미터 정도 가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치 감시라도 하듯 마주보고 서 있는 루멜리 히사르 요새와 아나돌루 히사르 요새가 나타난다. 아시아 쪽 해안의 아나돌루 히사르 요새 옆으로는 퀴췩수 궁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괵수 궁전이 해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피에르 로티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경/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두 요새에서 조금 더 가면 두 대륙을 연결하는 두 번째 다리인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 다리가 나타난다. 유럽 쪽 해안의 두아테페 언덕에서 바라보는 이 다리와 보스포투스의 전경에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두아테페 언덕 아래 있는 아름다운 에미르간 공원에서는 만개한 튤립이 장관을 이룬다. 반대편 아시아 쪽 해안에는 칸르자라고 하는 어촌마을이 있다. 지금은 이스탄불의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변한 이 일대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이곳의 유명한 요구르트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칸르자와 추부클루에서 조금 더 가면 인기 있는 쉼터인 베이코즈 코루스(아브라힘 파샤 산림)가 나타난다. 이 일대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멋진 전망을 감상하면서 맑고 깨끗한 공기도 마셔보길 권한다.
가끔 반대편 유럽 쪽 해안의 타라비야 만 선착장에서 많은 배들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타르비야에서 사르예르와 뷔윅데레까지 이어지는 해안가의 선술집과 레스토랑들이 활기를 띨 시간이 된다. 사르예르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어 시장이 있는 곳으로, 다양하고 달콤한 밀크푸딩과 뵈렉(페이스트리)으로도 유명하다. 사스예르에서부터는 해협 폭이 넓어지면서 흑해로 이어진다.
# 골든혼;할리츠||갈라타 다리에서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소의 뿔처럼 생긴 골든혼 어귀의 물길은 이스탄불의 유럽 지역을 두 곳으로 나누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최적의 자연 항구 역할을 하는 이곳은 비잔티움 시대와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석양이 질 때마다 황금 빛 물결로 출렁이는 해안선을 따라 지금은 멋진 녹지와 산책로로 들어서 있다. 골든혼으로 올라가는 이 산책로의 중간쯤에 있는 페네르와 빌랏 인근에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목조건물과 교회, 유대회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페테르에는 동방정교회 교구가 있다. 조금 더 위에는 재건된 오스만 양식의 건축물들과 에윕의 묘지가 있는 에윕이 나온다. 묘지 주변에는 언덕을 덮고 있는 짙은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이 있다. 이슬람의 많은 신자들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면서 에윕의 묘지를 참배한다. 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정상의 피에르 로티 카페에서는 이스탄불의 변화무쌍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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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볼까2]사또, 포졸, 거지와 함께 조선 시대로 떠나보자.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드라마에서 종종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는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조선 시대라서 놀라는 주인공이 나오거나,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해서 좌충우돌하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 시간 여행을 꿈꾼다. 과거나 미래로 떠나는 시간 여행은 특별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국민속촌이 으뜸이다. 조선 시대 마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공간으로, 그 시대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개성 만점 캐릭터까지 만날 수 있다.
한국민속촌을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나 소풍, 가족 나들이 등 추억의 장소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민속촌을 다시 방문한 이들은 추억의 그곳과 배경은 같은데 내용은 확 바뀐 모습에 놀란다. 최근 3~4년 사이 한국민속촌이 달라졌다. 변화의 중심은 콘텐츠. 고풍스러운 옛 모습은 유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콘텐츠를 보강해 관람객이 훨씬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난 2012년부터 봄에 한시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 ‘웰컴 투 조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캐릭터로는 사또와 포졸, 무사와 거지, 악사와 화공, 부잣집 대감과 기생, 구미호, 황진이, 장옥정, 관상쟁이, 장금이 등 조선 시대 사람과 드라마 속 인물 등이 곳곳에서 관람객을 기다린다.
주어진 캐릭터에 맞게 적절한 연기까지 곁들여 관람객을 드라마 장면으로 초대한다. 사약을 받는 장면에서 장옥정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도 죄가 있다면 여기 앉아 사약을 받으라고 불러들이기도 하고, 나무 아래 누워 낮잠 자던 거지는 구걸하거나 농담을 던지면서 즉흥 연기를 펼친다. 관아에서는 관람객을 상대로 포졸 선발 대회를 하거나 범인을 잡으러 가는 미션을 수행하게 한다.
완벽하게 분장하고 옛날 옷을 갖춰 입은 캐릭터가 말을 걸자, 처음에는 당황하던 관람객도 차츰 조선 시대 사람이 된 듯 상황을 즐긴다. 사극에서 흔히 보던 장면을 실제로 겪고 눈앞에서 지켜보니 생생하고 즐겁다. 민속촌이 그저 옛 모습을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곳으로 변하니 찾는 계층이 젊어졌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이곳에서 자주 촬영했기 때문에 돌아다니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대장금〉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별에서 온 그대〉, 영화 〈역린〉 〈관상〉 등 수많은 작품이 한국민속촌을 배경으로 했다. '사극드라마축제'가 열리면 한국민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관련 전시, 사극 특수 분장 체험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국민속촌에는 99칸 양반가를 비롯해 관아, 서당, 초가 등 조선 시대 각 지방의 실물 가옥을 이건·복원했다. 골목이나 텃밭, 장터, 다리 등 공간 구성이 자연스러워 촬영장으로 인기다.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의 가옥 차이를 비교하고, 너와집이나 제주도 민가도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현장 학습 효과 또한 인기 ‘짱’!||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봄에 ‘웰컴 투 조선! 조선문화축제’, 여름에 ‘시골 외갓집의 여름’, 가을에 ‘사극드라마축제’, 겨울에 ‘겨울冬冬 시골집 이야기’ ‘추억의 그때 그 놀이’ 등 계절별로 재미있는 축제가 벌어진다. 설날이나 대보름, 단오, 한가위, 동지 등 명절과 세시 풍속을 챙기고, 농악과 마상 무예, 국악 비보이, 전통 혼례 등 매일 혹은 주말 공연도 큰 볼거리다.
한국민속촌에 놀이마을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많다. 조선 시대 가옥이 모여 있는 공간이 민속마을, 놀이동산처럼 꾸민 곳은 놀이마을이다. 정문에서 상가마을을 가로질러 내삼문을 지나면 그 안쪽이 모두 민속마을이다.
민속마을 공방거리를 지나 오른쪽 평석교를 건너면 놀이마을이 나온다. 바이킹에 회전목마, 범퍼카, 순환열차, 귀신전까지 놀이동산의 주요 어트랙션을 대부분 갖췄다. 어트랙션은 겨울에 운영하는 눈썰매장을 포함해서 모두 15개 정도 된다. 시설 규모가 작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무서운 놀이기구에 도전하기 힘든 어른이라면 오히려 이곳에서 더 즐겁게 놀 수 있다. 줄 설 필요 없이 바로 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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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힐링1]'은둔의 삶이런가, 풍류이런가'
[오재곤 기자]보길도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고산 윤선도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에 좌절과 울분을 품고 제주도를 향하다 발견한 이상향의 섬이 보길도였다. 13년간 머무르면서 세연정, 곡수당, 동천석실 등을 짓고, ‘어부사시사’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던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천천히 만나보자.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 선조 때인 1587년에 태어나 현종 때인 1671년 8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효종의 스승이기도 하면서, 서인과의 격한 당쟁으로 20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했다.
한양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남인 최고의 반열에 올랐던 윤선도가 멀고 먼 보길도까지 찾아든 이유는 뭘까?
1637년 병자호란으로 조선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라는 치욕적인 의식을 치르면서 항복한다. 이 일이 있기 전 윤선도는 가노를 이끌고 한양으로 향하다가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가지만, 제주도로 가던 도중 빼어난 자연환경에 반해 발을 디딘 곳이 보길도다.||윤선도는 보길도에 13년을 머무르면서 격자봉 아래 부용동이라 이름을 짓고 원림을 조성했다. 연못을 파고 세연정을 지어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즐기고, 세연정에서 시와 풍류를 즐겼다. 윤선도가 머물던 낙서재, 사람들과 함께 보길도의 자연을 내려다보면서 교유했던 동천석실 등도 윤선도가 남긴 흔적이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남긴 흔적은 보길도 윤선도 원림으로 명승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윤선도 원림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세연정으로, 윤선도의 놀이 공간으로 생각하면 쉽다. 격자봉에서 발원해 흐르는 물줄기를 돌을 쌓아 막고 연못을 만들고 그 물을 끌어들여 네모진 인공연못인 회수담을 만들었다. 두 연못 사이에는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 세연정을 지었다.
세연정에 오르면 자연과 인위적인 풍경이 대비가 되면서도 잘 어우러진다. 세연정 동쪽에는 동대와 서대의 단을 쌓고 그 위에서는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했다고 전한다. 연못에는 배를 띄워 풍류의 절정을 이뤘다. 과연 윤선도의 삶은 은둔자의 삶이었을까? 아니면 풍류를 실천한 자연인이었을까?
[TIP]윤선도의 정적, 송시열의 흔적이 보길도에?
윤선도와 송시열은 각각 남인과 서인으로 치열한 당쟁을 벌인 정적관계였다. 보길도가 윤선도의 섬이지만, 정적이었던 송시열의 마지막 발걸음과 흔적이 남은 곳이기도 하다. 송시열은 장희빈 아들(훗날 경종)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제주로 유배됐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도중 보길도에 들렀는데, 80세 노구였던 그는 회한의 글을 섬 기암절벽 한켠에 남겼는데 그곳은 송시열의 글씐바위다./글.사진-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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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해외로/터키 편1]2018년 터키로 떠나실래요?
이스탄불 전경/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오재곤 기자]장거리여행은 긴 비행 시간과 일정 탓에 엄두 내기 늘 어렵다. 무더운 여름과 일상에 지쳐 그 부담을 무릅쓴 여행자들에게 그 이상의 보상을 안겨줄 여행지를 추천한다.
터키는 수천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유산과 천혜의 경치는 물론, 넓고 풍요로운 땅과 복합적인 문화 덕분에 탄생한 발달된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고 유럽에서 가장 많은 쇼핑 센터를 가지고 있는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또 요트투어, 패러글라이딩, 스노클링, 래프팅, 하이킹 등의 스릴만점 액티비티도 할 수 있어 여행객이 여행지에서 바라는 다양한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일석다조의 여행지이다.
터키하면 흔히 이스탄불만을 떠올리지만 이스탄불 외에도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다채로운 여행지들이 아주 많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자연이 손으로 빚어낸 기암괴석과 박해를 피해 땅 밑과 바위 속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적이 어우러져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지녔다. 동굴 호텔에서의 숙박도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 모스크/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열기구 투어는 절대 빼놓아서는 안될 코스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내려다보는 카파도키아의 절경은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은 경이로움마저 준다.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터키 서남부 지역에는 갈 곳이 무궁무진하다. 터키의 관광수도로 유럽 여행객들의 인기 휴양지인 안탈리아(Antalya)는 타우르스 산맥과 푸른 지중해의 조화로 유명하며 인근에는 시데(Side), 아스펜도스(Aspendos), 페르게(Perge) 등 고대 국가와 로마 시대 유적들이 모여 있어 관광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이다.
안탈리아 인근의 벨렉(Belek) 지역에는 숙박비에 식음료를 비롯 모든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 올인클루시브 호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더욱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 올인클루시브 호텔들은 2016년 트립어드바이저가 뽑은 유럽 최고의 올인클루시브 호텔 상위권에 상당수 선정되면서 고품격 서비스와 시설을 인정받기도 했다.
안탈리아 외에도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름 높은 여행지들이 많다. 바닷거북 서식지로 유명한 이즈투주 비치(Izutuzu beach)가 있는 달얀(Dalyan), 역시 고급 휴양지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고향이기도 한 보드룸(Bodrum),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히는 욀뤼데니즈(Oludeniz), 지중해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터키에서 액티비티로 가장 유명한 페티예(Fethiye), 요트 투어로 유명한 요트의 도시 마르마리스(Marmaris),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긴 해변과 백사장이 일품인 알란야(Alanya) 등 서남부 지역 어디를 가도 맑고 푸른 지중해가 펼쳐져 있고 대리석으로 만든 고대국가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즐비하다. 지중해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경치가 기다리는 곳 터키 여행을 떠나보자.||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찬란한 영광의 도시, 이스탄불 Istanbul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품은 ‘제국의 수도’
동서양이 만나는 문명의 고향.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모두 품고 있는 도시이다. 세계를 지배한 세 제국, 로마와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의 수도였다. 이로 인해 수천 년간 전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기도 했다. 지금도 수많은 유적들이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증언하며 고스란히 남아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유적들 너머로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고 1200만 명의 인구가 북적거리면서 일상을 보내는 대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탁심 광장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늘어선 고층 빌딩 사이로 그 고고함을 잃지 않고 그 위용을 자랑하는 하기아 소피아와 흔히 블루 모스크로 잘 알려진 술탄아흐멧 모스크, 술탄의 화려한 궁정생활을 엿볼 수 있는 톱카프 궁전 등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오스만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쉴레마니예 모스크와 예니 자미(뉴 모스크), 고고학 박물관 등의 갖가지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현대적인 도심 속에서 수백 년, 수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는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다.||이스탄불-탁심-플램/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여행의 추억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데는 기념품 쇼핑이 빠질 수 없다. 과거 무역의 활기를 짐작하게 하는 그랜드 바자르는 250년의 역사 동안 꾸준히 발전해온 시장으로, 앤틱 소품이나 각종 기념품부터 심지어 황금까지 없는 물건이 없고 시장 안에는 무려 3천 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하기아 소피아의 유지 비용을 감당키 위해 이 곳에서 세금을 걷었다는 옛 이야기도 전해진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이스탄불답게 세련되고 편리한 쇼핑도 물론 가능하다. 탁심 광장 근처나 이스티크랄 거리 등의 번화가에서는 세련된 상가나 외국 디자이너 브랜드샵들, 대형 쇼핑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유적들과 옛 유물들뿐 아니라 현재의 문화와 예술도 여전히 이스탄불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세계적인 오페라와 발레, 연극 공연은 물론 콘서트와 전시회, 각종 페스티벌과 크고 작은 국제회의 등이 현재도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 이스탄불에서 관광을 즐기고 싶다면?
먼저, 술탄아흐멧 지구(Sultanahmed)를 가보자.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술탄아흐멧 모스크(블루 모스크),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톱카프 궁전 등이 위치해 있다. 트램의 선로를 따라 늘어선 맛집들과 기념품점들도 꼭 들러보길 바란다. 특히 이슬람 사원인 술탄아흐메트 모스크와 비잔틴 제국의 걸작 건축물인 하기아 소피아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술탄아흐메트 모스크에는 기도시간만 제외하면 방문할 수 있으며 여성 관광객들을 위한 히잡도 비치돼 있다.
두 번째로, 탁심(Taksim)을 둘러보자.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번화가 탁심은 다양한 먹을거리와 쇼핑몰 등이 있다. 탁심의 이스티크랄 거리(Istiklal Street) 한가운데를 지나다니는 빨간색 트램이 인상적이다.
세 번째로, 갈라타 다리 / 갈라타 타워(Galata Bridge/ Tower)는 어떨까? 갈라타 다리는 항상 낚시를 하는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갈라타 다리 입구의 선착장에서 케밥을 먹은 후 길을 따라 걸으면서 보스포루스 해협의 풍경을 즐겨 보자. 갈라타 다리를 지나 언덕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갈라타 타워가 보이는데 갈라타 타워에 직접 올라가서 보는 이스탄불의 전경도 멋지다. 또한 주변의 2층짜리 카페에 가면 이스탄불 전경은 물론, 보스포루스 해협과 갈라타 타워를 마주보며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갈라타 타워를 배경으로 해가 질 때쯤 사진을 찍는 것이 포인트이다. 언덕을 따라 있는 기념품 가게들도 꼭 들러볼 것.||이스탄불 시장/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끝으로, 바실리카 시스턴(예레바탄 사라이/ Basilica Cistern)의 여행도 해 볼만 하다. 비잔틴 제국 때 건설됐다. 건설에만 무려 7,000여명의 노예가 동원됐다고 한다. 전쟁에 필요한 물 공급을 위한 저수지로 쓰였지만 그 내부 장식이 매우 아름다워서 궁전이라 불린다. 특히 기둥 아래 거꾸로 놓인 메두사 얼굴 조각이 인상적이다.
# 이스탄불에서 휴양을 즐기고 싶다면?
베벡(Bebek)을 둘러보자.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로 옆에 두고 카페들과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요트들과 멋진 집들이 가득하고 관광지를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잇는 곳이다. 특히 베벡의 스타벅스가 예쁜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근처 카페라면 어디든 풍경은 최고.
또 오르타쾨이(Ortaköy)도 볼만 하다. 아기자기한 벼룩시장, 에스닉한 정취가 듬뿍 묻어나는 골목, 악마의 눈을 비롯한 액세서리와 기념품, 사람들로 가득한 오르타쾨이는 터키의 감자요리 쿰피르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와플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브런치로 유명하다.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골목을 걸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이스탄불 갈라티타워/사진.자료 제공-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또 다른 멋을 즐길 수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Bosphorus Cruise)을 추천한다. 에미뇌뉴 선착장에서 보스포루스 해협 투어를 할 수 있다. 한 시간 정도의 투어만 해도 보스포루스 해협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늘어선 예쁜 집들과 학교,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다. 한 시간 만에 유럽과 아시아를 오갈 수 있는 재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쇼핑을 원한다면,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 (Grand Bazaar/Egyptian Bazaar)를 둘러보자. 쇼핑이 빠질 수 없는 여행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쇼핑할 수 있는 곳. 술탄아흐메트 지구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와 갈라타 다리 근처의 이집션 바자르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사기 위해 꼭 들르는 곳이다. 그랜드 바자르에는 스카프와 팔찌, 도자기 등 없는 것이 없고, 이집션 바자르에선 주로 향신료와 차, 로쿰 등을 구입하면서 다양한 로쿰을 시식해볼 수 있다. 다소 심한 호객행위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특히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터키의 음식과 차, 커피, 디저트’이다.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인 케밥과 아이스크림(돈두르마)도 꼭 먹어봐야 하겠지만 길거리에 파는 터키식 베이글 시미트와 터키식 아침식사, 홍차, 커피 등도 꼭 맛보고 올 것을 추천한다. 돈두르마는 길거리 어디나 팔지만 터키의 돈두르마 프랜차이즈 ‘MADO’에서는 더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돈두르마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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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볼까1}“강릉이 가까워진다”
경강선 KTX/사진제공-코레일
[오재곤 기자]꼭두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는 강릉 여행은 이제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강릉이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정동진역까지 6시간 걸려서 갔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지난 22일 개통한 서울엮과 강릉역을 오가는 경강선 KTX이 개통되면서다.
서울역을 출발해 강릉역까지 약 2시간이면 도착한다. 용산역과 청량리역, 양평역 구간까지는 기존 경원선과 중앙선 철로를 달리기 때문에 최고 속도까지 내지 못한다. 이 구간에서는 시속 150-230km로 달리지만, 서원주를 지나면서 경강선 KTX 운행을 위해 건설한 철로로 들어섰다. 만종역부터 속도가 높아져 시속 250km로 달린다. 물론 최대 시속 330km까지 달릴 수 있지만 강원도 지형의 특성 때문에 속도를 조절했다.
천천히 경강선 KTX 내부는 앞좌석 아래에는 기차여행 중 노트북PC나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설치해 뒀고, 와이파이도 잘 잡혀 인터넷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앞뒤 좌석 간격도 넓다. 특실에는 잡지를 비치했고, 열차 칸 사이에는 음료 자판기도 운영 중이다. ||강릉시 선교장(船橋莊)/사진-한국관광공사
경강선 KTX 구간에는 만종과 횡성, 둔내, 평창, 진부, 강릉 등 6개 역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긴 대관령터널(약 21.7km)을 비롯해 터널 34개와 교량 53개도 새로 만들었다. 서울에서 경강선 KTX를 타기 위해서는 서울역, 청량리역, 상봉역을 이용하면 된다. 강릉역까지 열차 운임은 서울역 기준 2만 7600원, 청량리역에서 탑승했을 때는 2만 6000원, 상봉역에서는 2만 5600원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인천공항에서부터 강릉역까지 운행할 예정이다. 인천공항에서 올림픽 경기장이 있는 진부역까지 운임은 3만 4400원, 강릉역까지는 4만 100원이다. 기차역에 내려서 경기장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렸을 강릉에 2시간이면 강릉에 도착할 거란 코레일 담당자의 말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강릉역을 중심으로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비롯해 강릉 주요 여행지가 매우 가깝다.||열화당에서 행랑채를 따라 이동해 안채로 들어갔다./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강릉역에 도착해 첫 걸음을 옮긴 곳은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으로,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족제비를 잡기 위해 지금의 선교장 자리까지 왔다 명당자리를 알아보고는 집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선교장을 세운 이후 지금까지 약 300여 년 동안 후손들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가문과 집을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명당을 고른 이내번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드넓은 평지에 자리한 선교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주변을 둘러싼 낮은 산등성이가 보였는데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이가 봐도 집을 짓기에 썩 괜찮은 위치라 느껴진다.
열화당에서 행랑채를 따라 이동해 안채로 들어갔다. 열화당에서 행랑채를 따라 이동해 안채로 들어갔다.
본채에서 시작했했다. 사대부 집안답게 담장 위로 올라간 솟을대문이 여행객을 맞았다. 대문을 들어서 왼쪽으로 돌아 열화당 마당에 섰다. 햇볕을 가려주는 차양이 눈길을 끌었다. 선교장에 잠시 머물던 러시아공사관 직원들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1815년 만들어 준 것으로, 차양과 처마 주변에 연꽃과 구름 문양으로 마감한 나무 기둥이 눈에 띈다.||선교장 동별당/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시선을 조금 높이자 열화당과 행랑채 지붕 위로 고개를 내민 나무가 보였다. 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 머리카락처럼 삐죽하게 뻗친 모양이다. 열화당을 비롯해 선교장에서 눈길을 건물에만 고정해서는 이곳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지붕의 곡선과 너머에 자리한 산자락, 또는 너른 평지까지 두루 살피고 즐길 자세가 필요하다. 열화당은 선교장의 남자 주인이 살던 사랑채다.
열화당을 둘러보고 행랑채를 따라 안채로 이동했다. 여성들이 머물면서 선교장 살림을 돌보던 장소다. 안채에서 동별당 뒤쪽으로 걸어가 얕은 언덕 위에 생각지도 못한 소박한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선교장 사당인 오재당(吾在堂)으로, 조상들 신주를 모시는 곳이다.
본채를 지나 활래정(活來亭)을 관람한다. 활래정은 인공으로 판 연못에 돌기둥을 박고 세운 정자로,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뤄 선교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다. 선교장 집안은 대대로 만석꾼 소리를 들을 만큼 대지주였다. 정자와 연못 풍경을 감상하면서 선교장 후손들이 재물만큼 풍류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을 거라 짐작해봤다.||활래정(活來亭)/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선교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조선시대 건축물로 유명한 장소가 한 곳 더 있다. 조선시대 예술가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본가, 신사임당의 아들이자 조선 최고 학자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장소, 바로 강릉 오죽헌이다. 집 주변에 줄기가 까만 대나무가 많아 이름을 오죽헌으로 지었다.
이곳에는 문성사를 비롯해 몽룡실, 어제각, 안채, 바깥채 등이 있다. 조선시대 중기 예술과 학문의 꽃을 피운 두 주인공이 머물던 장소라 그런지 오죽헌의 의미가 남다르다. 최근에는 율곡의 어머니로서만이 아니라 스스로 천재 예술가로 재평가 받는 신사임당이 머물던 집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가장 안쪽에 있는 어제각부터 둘러봤다. 율곡이 지은 ‘격몽요결’이란 책과 어린 시절 직접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는 집으로, 어제각과 담장을 하나 두고 연결한 바깥채 주변에 서 있는 감나무 몇 그루가 겨울 운치를 더한다.||오죽헌 어제각(御製閣)/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바깥채 건물에 새겨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정조 때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새긴 시구로, 나무 기둥 열 군데에 글씨를 새겼는데 이를 발견하고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자가 어려워 포기하려는 순간, 건물 앞에 글씨의 위치와 뜻을 표기한 해설을 발견했다.
어제각과 바깥채 구경을 마치고 문성사와 몽룡실이 있는 마당으로 이동했다.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았던 방으로, 신사임당이 아들을 낳을 때 용꿈을 꾸었다 해서 몽룡실이라 지었다. 지금은 신사임당의 영정을 보관 중으로, 마당 정면에 자리한 건물이 문성사다. 율곡의 영정이 있는 사당이다.
강릉 하루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안목항 커피거리를 둘러보았다. 이날의 여행을 은은한 커피 향과 바다 경치를 즐기면서 마무리하고 싶어서다. 커피 맛을 잘 몰라도 분위기에 취할 마음만 있다면 안목항 커피거리는 여행지로 매우 훌륭하다. 안목항에 처음 온 여행객은 어느 카페에 들어가야 할지 몰라 살짝 당황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관광지에서 유명한 맛집 찾듯 스마트폰을 꺼내 이름난 카페를 검색하지는 말자. 정보보다 자신의 감성을 따라 마음 끌리는 곳, 걸음이 이끄는 커피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곳이 어디인들 좋지 않을까.||안목항에서 영업 중인 카페들/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안목항 커피거리 안목항 커피거리안목항에서 영업 중인 카페들 안목항에서 영업 중인 카페들안목항에서는 커피를 마시다 해변 산책을 즐겨도 된다. 안목해변 안목항에서는 커피를 마시다 해변 산책을 즐겨도 된다.
안목항에 있는 카페는 대부분 바다 쪽으로 좌석을 두고 영업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순간, 해변 산책을 즐기기 위해 일어서는 연인들의 자리를 발견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좌석에 앉았다.
안목항에서는 커피를 즐길 장소로 카페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도로 중간에 설치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셔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설탕커피, 블랙커피, 밀크커피뿐 아니라 대추생강차, 코코아, 율무차 등 여행자의 기호를 고려해 판매품목도 다양하다.
안목항 커피 향을 뒤로한 채 강릉역으로 출발했다. 서울역으로 출발하는 오후 5시 30분 기차에 몸을 실은 채 강릉에 올 때처럼 서울로 돌아오는 귀갓길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눈이라도 와 길이 막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을 마친 후 밀려오는 피곤함에 기차에서 잠시 단잠에 빠졌다. 어렴풋하게 꿈속에서 강릉의 하루를 다시 여행한 것도 같다. 달콤한 잠에 얼마나 취했을까.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글-사진, 한국관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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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창업시대3]성공점포 대박시장을 향하여!
사진/상인대학원 제5기 졸업식
[하선빈 기자]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최하는 제5기 상인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의 졸업식이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대전대학교 30주년기념관 5층 하나컨벤션홀에서 주임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상인대학원과정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전통시장 상인 중 상인대학이나 점포대학을 수료한 상인 및 각 시장의 간부상인 등을 대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이끌어 갈 인재와 리더를 양성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이번 교육과정은 올해 5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20회(80시간)에 걸쳐 대전대학교와 서산동부시장(서산캠퍼스)에서 수업했다.
전통시장의 상권활성화 전략, 대형마트 대응전략, FTA이해와 대응방안, 상인의 리더십, 창조경영과 목표관리, 성과향상을 위한 비전공유, 충성고객 만들기, 고객감동경영, 대박점포의 비밀, 성공사례 연구, 선진시장 견학, 사업계획서 작성실무, 멘토링프로그램 등 상업경영인과 상인지도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진행했다.
||사진/격려사 장면
이날 졸업식에는 주최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이병희본부장과 대전남부센터장 지용하, 김경오 주임이 참석했다. 교육을 수행한 대전대학교에서는 대전대학교 총장 이종서, 충남상인 연합회장 박형래, 대전대학교 산학협력단장 황석연, 상인대학원장 김희수교수, 유창권교수가 함께했다. 또한 내빈으로는 양종환 1기 원우회장과 1기~4기 선배 원우, 졸업생 가족 친지 등이 참석해 졸업을 축하했다.
이종서 총장은 격려사에서 “수업을 듣는 상인들의 얼굴표정이 밝고 좋아서 보기가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5기 졸업생 여러분께서는 이 번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꼭 실천해 성공하는 시장.대박나는 점포를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어 “졸업 후에도 우리 대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고 상호 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공단 이병희본부장은 격려사에서 “장사하면서 주경야독으로 공부하시느라 노고가 많았다”면서, “상인대학원 수료하신 졸업생들께서 전문상업경영인으로서 전통시장의 발전을 이끄는 지도자(리더)가 되어 주실 것”을 당부했다. ||사진/졸업하는 원우 모습
이 날 졸업식에서는 총 82명의 원생이 졸업해 입학인원(90명)대비 91%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상, 대전대학교 총장상, 산학협력단장상, 상인대학원장상, 공로상, 개근상 등 약 83명의 원생이 표창을 받았다. ||사진/학사보고시간 그간의 수업을 회고하는 원생
동영상을 통한 학사보고시간(4분)에는 입학장면부터 시작해 워크숍, 수업, 멘토링, 토의시간 등의 장면들을 방영했다. 그 간의 회고와 고생했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을 훔치는 원우들이 많이 보였다. ||사진/소감문 발표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인 소감문발표에 나선 유승문, 이춘자 원생은 “이 번 상인대학원은 현장에서 꼭 필요한 내용과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많이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지도해 준 교수님들이 우리 상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잘 설명해주고 적절한 사례들을 통해 원생들 입장에서 눈높이를 맞춘 방식으로 풀어주어 우리들에게 딱 맞는 교육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졸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는 ‘솔개’처럼 변신해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면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전략’을 세우고, 토끼를 이긴 거북이처럼 ‘승리의 도구’를 활용한다면 우리도 성공시장으로 멋지게 태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상인대학원 졸업생들이 동문회를 구성해 1,2,3,4기 선배들과 함께 시장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면서, “이제 우리가 그 저력을 보여 줄 시기가 왔다. 다같이 힘을 내자”면서 파이팅을 외쳤다.||사진/2부 연회행사중인 원생
2부 행사에서는 김희수 대학원장과 원우회장단은 함께 샴페인 잔을 들고 모두에게 건배를 외쳤다.
김희수원장은 격려사에서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면서 상호 도울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