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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인정하는 내각제론자’
김준성 정치부장은 우윤근 의원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우 의원실에서 만났다. 우윤근 그는 성실한 평소의 태도처럼 흐트러짐이 없이 의원회관 내 의원실에서 국정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내놓고 의회와 대통령이 권한을 나눠 갖는 그런 정치체제로의 변한을 희망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의 응접실로 안내된 먼저 얼음물을 한잔 마시고 그와 인사 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안녕하십니까. (제가) 구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의원님은 로멘티스트이자, 여행을 아주 좋아해서 70 국가를 여행한 경험을 가진 다채로운 인재로 기억하더군요. 의원님의 고향과 왜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된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예 고향은 구례입니다. 선거구도 그렇습니다. 구례를 생각하면 자연 그대로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일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일생을 만들어 가고자 사법시험 합격을 한 후 변호사로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했습니다. 이시기에 무려 50일간을 여행을 한적이 있답니다.
Q. 사모님이 불평이 없었나요.
A. 불평을 심하게 들으면서 여행단의 등산 팀장이 되어 히말리야 산은 5천 미터 됩니다. 등정한 추억이 납니다. 가족은 처가에서 있다가 여행 50일후 귀가하니 그렇게...저는 여행을 좋아 하게 되었답니다.”
Q. 그런 자유주의자가 국회에 왜 입문을 할 의향을 가지게 되어 3선의원이 되셨나요...
A. 사회에 대한의무, 고향의 발전에 대한 역할. 국가에 대한 헌신성을 발휘하고 싶은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봉사하고자 고향에 출사표를 내고 새정치 민주연합의 의원이 된 것입니다. ||Q. 선거당시, 초선에서의 구례 지역구 선거에서 무슨 전략으로 선거 운동 하셨는가요. 어느 시기가 되니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다가 온 것인가?
A. 선거 초반에...
Q. 유연성이 많고 여당 야당에 친구를 의원들이 많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하여 본인은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는 중인가요 의원 내각제 예찬론자로 알고 있다. 의원님이 왜 의원 내각제를 신봉하는가? 우리나라 여건상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프랑스 같은 나라가 하는 정치 체제로 변화를 줘야 한다고 본다. 정치에서의 자유로운, 멀티한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으로서 내각제가 시작을 검토할만한 제도로 보시는지요
A. 그렇습니다. 이제 다양한 정치 소비와 공급이 정치 마켓에서 유통중이다. 대통령제의 여러 피로 증후군이 권력이 작동하는 한국의 최근 정치 정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대통령제의 피로 증후군을 더욱 체감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내각제를 원하는 비중이 대통령제선호 정치소비자들과 비슷하게 등장하는 중이다.
Q. 한국 헌법이 1948년 7월 12일날 제정 공포, 8차의 개정된 헌법을 1987년 10월 29일에 다시 개정GO 소위 '87년체제'가 등장한후 25년의 정치세월이 지나간다. 87년 체제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5년 임기를 대통령에게 주는 87년 체제는 여러 문제점에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집권의 기회를 주는데 역할을 다한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서 피로증후군을 갖지 않게 정치 리더쉽을 하나둘 활성화 시키는 시스템으로서 내각제를 한국이 받아 드리는 것이 국리 민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A. 너무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Q. 구체적으로 프랑스형 내각제인가. 일본형 내각제인가, 오스트리아 형 내각제를 선호 하는가
A. 오스트리아, 프랑스 내각제 형은 안정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다. 오스 트리아 내각제가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 것이라서 좋다.
Q. 일본식은 책임 정치를 구현하다고 하지만 사건 후 너무 자주 수상이 바뀌는 형이다. 전자. 안정적인 프랑스식을 원하는가. 자주 수반들 사이에 리더쉽 교체를 하면서 새로운 인재들이 통치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유형을 의원님은 좋아하는 가. 그 이유와 더불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A. 나는 오스트리아의 내각제를 원한다. 이 제도는 안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에서 임기조항을 가져온다.
Q. 왜 그렇게 생각 하는가. 대통령은 통치자라기보다는 조정자로서 그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 경험을 지니고 의회의 해산문제를 절제력으로 다뤄온 이가 바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으로 안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특히 1981년과 1988년 의회해산의 역사에서 1,2차 임기의 후반에 정치적인 인내를 시작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2년 3개월을 반대파인 그 수상으로 집권한 동거체제를 감수하면서 손쉽게 보이는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지 않은 미테랑의 정치적인 인내는 받을 만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분열을 원하지 않은 그런 당에의 충성의지가 발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더 이상의 분열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것이 좋지 않을 것인가?
A. 헌법 전문가 린쯔(Linz)는 말한다. 이원정부제의 정상적인 운영은 순수 대통령제보다는 대통령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여하에 달린 일이다. 그렇다. 개인이 지닌 대통령의 퍼스넬리트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원 정부제는 프랑스를 정치적으로 성공한 나라로 성숙 시키는데 기여 한다...본인도 린쯔의 그런 견해에 동의 한다.
Q. 그래서 우리나라의 미래의 정치체제를 일본식이 아닌 오스트리아 내각제 식으로 가져가자고 주창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대통령에게 수상 임면권을 주는 프랑스식 이원 정부제는 한국과 같이 분단된 국가로서 민족 통일을 이뤄가야 하는 나라에서의 통치 체제로는 더 낫다고 보는데 의원님의 생각은?
A. 제가 보기에는 일본의 내각제는 한국인들이 불안정감을 줄이는데 기여하지 못할 그런 정치 제도라고 확신한다. 일본은 국회의 신임이 없는 경우, 헌법상 의회 해산을 하거나, 내각의 총사퇴가 일어나서 수상이 너무 빈번하게 바뀐 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일본의 제도 취약점은?
A. 국회 해산후 일본의 제 정당은 과반수의 국회의원이상을 자기 당이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할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투표가 빈번하면 일할 시간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여건이 도래 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내각제를 하면서도 천황은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조약승인권, 국정 조사권, 입법권을 가진 존재로 규정중입니다. 일본정치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재모으고 정당에 입문하면서 일단 정치인의 일을 하려는 이들에겐 여론 조사, 현실 적합성이 풍부한 언행(言行)의 정책화 등이 대통령제 보다는 더 잘 투영되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의 이원정부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특히 한국 국민들에게는 생소 하게 다가 오는 이슈라는생각입니다.
Q. 특히 2014년 4월 16일 정신, 즉 국가는 가장 적극적인 안전체제를 만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대한민국 헌법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생각은...
A. 프랑스 내각제 초대 대통령은 에버트였답니다. 그런데 의원님이 보시기에 왜 사람들이 프랑스 헌법에서는 강한 메시지의 권한을 대통령을 다양하게 주는가. 이것이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이 발동해 인권을 침해하되,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한 것이 진실이랍니다.
Q. 헌법상 국가 긴급권남용, 이에 대한 대비책은?
A. 1919년부터 1925년까지 163건에 불과해서 기우에 그친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힌댄 브르크 대통령은 1923년 브리닝 수상을 해임한다. 이런 대통령의 수상임면권은 프랑스의 대통령의 리더쉽을 극대화 하는데 도움이 된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58년 드골은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든 후 이를 국민들이 지지하자, 자신에 대한 지지로 간주하고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로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다. 그 후 그에게 헌법상 주어진 드골 대통령의 프랑스 헌법상 16조의 국가 긴급권 발동권은 절제된답니다. 그 발휘가 말입니다.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인 1961년 1월, 1962년 4월, 1962년 등, 알제리 폭동시기에 발동한적이 있답니다. 국민의회 해산권이 주어진 프랑스 헌법은 다소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면 절제해서 운영 하면 됩니다. 국가 긴급권은 이원 정부제 헌법에 포함 안 시켜도 됩니다
Q. 끝으로 만약 귀의원이 헌법을 이원 정부제의 내각제로의 개정을 한다면 추가해서 첨가, 연구 할만한 것은 무엇이 존재 한다고 보는지요
A, 전문에 4.16 정신을 4.19 민주 이념다음에 넣는 방식의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아울러 본인이 보건데 앞으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하여 헌법 119조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신설하자. 한 문장으로 '헌법 119조 3항을 신설' '대한민국은 경제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가 되어도 됩니다. 영토규정을 새롭게 두고 한국의 영토는 독도와 한반도, 대마도 근해, 마라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가는 통일을 위해 대통령의 령으로 통일세를 거두고, 이를 민족 통일이 어느 순간에 오면 이비용으로 충격을 수용하는 데 그 비용으로 활용한다는 조항의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Q. 하실 말씀 한 마디 더하신 다면.
A. 우리가 지금 경제 순위 15위 국가입니다. 국가수 200개가 넘는 구조하에서 말입니다. 이제 2만 4천불의 국민 소득구조를 넘어서서 3만 불시대로 전진 중입니다. 이민족이 이미 100만명이상이 들어와서...이들 위한 헌법조항의 신설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저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부드러운 내각제를 입안하는 준비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오스트리아 식 내각제로 대통령이 수상과 권력을 나눠 행사하는 그런 나라가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김준성 대기자의 진지하고 정치 철학을 내포한 질문에 감사드린다.
우윤근 의원님도 일취월장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그의 방을 나오면서 그가 참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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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입법을 동시에 아는 리더쉽 강한 의원’
Q. 안녕하세요, 저는 한강 일보 정치부장입니다. 의원님께서 걸어오신 길,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 유성엽은 어땠나요? 꿈 많은 어린 시절 얘기부터 좀 해 주시죠.
A. 제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이라고 하는, 정읍에서도 작고 척박한 면(面)입니다. 옹동면은 상두산.비봉산 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전학가기 전까지의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죠. 비록 가난했지만, 부지런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굶지는 않았고, 장손자를 끔직이 사랑하신 할머니의 배려로 넉넉한 마음만큼은 부잣집 아이들 못지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별난 개구쟁이였습니다. 마을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골목대장 노릇하면서 온갖 말썽은 다 부렸던 것 같아요. 그나마 공부를 곧 잘 해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정도였으니깐요. 지금도 그때 개구쟁이 친구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 시절을 이야기 하며 웃곤 합니다. 그 시절 기차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가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신기해 하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갖기도 했지요.
Q. 처음에 내무부 공무원으로 행정에 입문해서 민선 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중앙 지방, 행정과 정치를 넘나든 경력이나, 탄탄대로를 걷다가 한 순간 무소속이 되서 골리앗과 외로운 싸움을 전개한 이력들은 다른 정치인한테서는 쉽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데요, 정계 입문 과정을 좀 말씀해 주시죠. 나름대로 고생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A. 대학시절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죠. 저 또한 당시 대학생들과 의식을 함께 하면서도 학생운동에는 깊게 참여하지 않고 혼돈과 방황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친구들과 뭉쳐 다니며 막걸리 마시고 떠들고 그랬습니다. 막연히 방송기자를 꿈꿨었습니다만 제 작은 아버지께서 기자도 제대로 하려면 뭔가 머릿속에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면서 목표를 정하고 책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아주 빠른 시간내에 쉽게 합격했습니다. 숙명처럼 주어진 제 길이 공무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무부를 지원했습니다. ||사실 저는 행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구현되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분명히 구현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발령 희망부서를 내무부로 신청했습니다.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을 두루 섭렵할 수 있고, 또 운이 좋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명직 시장이나 군수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죠.
결과적으로 저는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42세 때인 2002년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민선 시장에 취임하면서 다진 각오는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정체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어 보자였습니다.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시민의 힘과 역량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정읍을 제일의 축산도시로 만들고, ‘단풍미인’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정읍의 한우와 쌀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관광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산간 오지로 인적이 드물던 산내면 옥정호변에 구절초를 심어서 이제는 매년 10월이면 ‘옥정호 구절초 축제’를 내방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산내면에 전략적으로 재배를 권장했던 ‘노랑고구마’를 구절초 축제와 같은 시기에 수확, 관광객들께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구절초 축제’와 ‘노랑고구마’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성공적인 관광 컨텐츠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입니다. 정읍시장을 역임하면서 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자산 즉 향토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내생적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면 분명 돌파구가 있다는 평소 지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중공업 중심의, 국토의 수도권과 동남권 중심의 성장 전략의 결과물은 지역간에 심한 불균형으로 나타났고, 상대적 폐해는 고스란히 지방, 농촌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악순환의 연속인거죠. 적어도 농촌이 도시와 공생공존 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시장(市長)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정책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권능을 찾아 나섰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시장을 역임했고 또 당시 50% 내외에 이르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민주당의 공천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고, 부득이 정읍시민의 뜻을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읍발전을 위해 한번 열심히 뛰어보라는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61%)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두 번에 걸쳐 민주당 복당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당에서는 구체적인 이유조차 얘기해 주지 않고 복당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로지 시민만 바라보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의정활동에 매진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내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전북도청 공무원을 거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되기까지 비교적 주류(主流)의 입장에서 승승장구해 왔다고 평가한다면, 본격적인 중앙정치를 시작하면서는 본의 아니게 비주류(非主流) 입장이 되어 외롭고 험난한 길을 헤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선 국회의원이 되어서야 민주당에 복당하게 되었고, 복당해서도 계속해서 당의 개혁과 정치 혁신을 위해 비주류의 입장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과 정치, 중앙과 지방, 주류와 비주류 등 그 동안 제게 주어졌고 감내해 왔던 상황이야 말로 제가 앞으로 정치를 계속해 나가면서 예상되는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될 큰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을 때 당에서 공천장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때 아마 경선을 위한 배수 압축 과정에서 배제됐던 것이죠? 당시 심정은 어떠했나요?A. 공천문제는 지금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고질병입니다. 공천과정의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 확보야 말로 정당개혁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우리 야당은 몇 차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당대 당 통합, 시민단체 수혈 등 이합집산의 연속이다 보니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공천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저 자신이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호남에서 연거푸 무소속으로 두 번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제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천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유권자가 심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 참패 또한 공천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 아닙니까. 우리 야당의 공천파동이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일 수 없게 만드는 독소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어떤 경쟁자들보다 정읍과 대한민국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천에서 탈락하고 보니 그 실망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차기 총선 공천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천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당원과 국민들께 돌려드리려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Q. 한 동안 지방분권이 큰 흐름을 이루다가 최근에는 목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민선 정읍시장을 경험한 유 의원께서는 평소 지방자치에 대한 신념이 강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소신을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A.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차고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하나는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명박 정부 이후 현재까지 신중앙집권적 정치행정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지방자치에 대한 저의 신념은 큰 틀에서 분권(分權)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권이야 말로 지방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이고, 지방의 성장이 곧 국가경쟁력 강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가 제각각 특색 있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 나간다면 종국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철학을 구현함으로써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피폐한 농업과 농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과 지방간의 분권, 입법과 행정간의 분권, 행정부 내부의 분권 등 한곳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권능을 과감하게 풀어야 짐도 덜고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서로가 짐을 나눠지고 가볍게 훨훨 날아보자는 뜻입니다. 앞으로 개헌을 할 때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지 말고 큰 틀에서 나라 전체의 분권을 담아내야 합니다.Q. 중앙 정치에 큰 꿈을 가진 인재라는 유권자들의 평가도 있습니다. 그 만큼 유 의원께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일 텐데요, 지역에서 유권자도 많이 만나시죠? 의정 활동은 어떻게 준비하는지요A. 정읍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세상을 향해 도전한 이후 다시 정읍에 돌아온 것이 2002년 정읍시장에 출마하면서 입니다. 29년 만이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정읍을 떠나지 않고 국회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정치발전 과제 중에 중요한 하나가 정치와 국민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제 의정활동 근간은 지역주민과 함께 문제나 현안을 고민하고, 즉시 국회에 가서 의정활동에 반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민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지역민과의 만남 자체가 제게는 소중한 배움의 장인 셈이죠. 시장 4년과 국회의원 6년, 그리고 중간 공백기 2년을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고 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직능적인 분야 말고 세대별로 즉 젊은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은 개선해 보고 싶습니다.
|| Q.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함께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를 맡고 계신데요, 주요 역할은?
A.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이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농업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농민 없는 국가는 없다”면서 중농주의 정책을 펼쳤고, 프랑스가 오늘날 요리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원동력을 농업의 발전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인 리더들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주요한 지도자들은 농업에 대한 개념이 전무합니다. 그저 공산품 수출을 위해 내주어야 할 시장으로 밖에 인식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농해수위 야당 간사로서 김우남 위원장님, 그리고 여당 간사인 안효대 의원님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소관하는 정책의 주요 안건과 일정 등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WTO 체제에 이어 각종 FTA에 따른 개방화로 우리 농업과 농촌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박근혜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추진으로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마련 통보한 관세율을 어떻게 관철시켜 낼 것인가, 또 앞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 아주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우선 성난 농심을 달래고, 정부정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서 국제협의 기구 대표단에 농민대표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쌀 관세율 법제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추진해 가려 합니다. 나아가 지금 논의 중인 한중FTA는 우리 산업구조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파급효과가 예상됩니다. 충실한 보완, 보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농업의 붕괴는 명약관화합니다. 정부가 어떠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면밀히 짚어보고 충실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새길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정치 메시지를 지닌 전북의 다크호스에서 전국의 다크호스로 우리나라 야당의 초석을 하고 싶어나는데, 유 의원께서 가지고 계신 장기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A. 우리 전북은 야당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신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정읍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신 백봉 라용균 선생님, 그리고 유신정권 하에서 야당당수를 역임하신 소석 이철승 선생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스승이시자 17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역임하신 김원기 의장님, 전북출신의 최초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동영 상임고문님, 당 의장을 역임하신 정세균 상임고문님 등 기라성 같은 정객의 산실이 바로 우리 고장 전북입니다. 이 분들의 큰 뜻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몫은 바로 우리 후배 정치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 몫을 맡아 나가야 한다면 저 또한 주저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통일을 이루어 가면서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20세기 정치경제 시스템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정치·경제발전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대폭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극복해서 ‘21세기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정립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고 있는 국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과감히 풀어내고, 남북통일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문명서진론(文明西進論)’에 발맞춰 세계사 흐름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한․중․일 공동체를 선제적으로 주창하고 견인해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가겠다는, 세계사적 책무도 기꺼이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Q. 즐기는 스포츠나 여가는?
A.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은 즐겨하지만, 직접 참여할 기회는 많이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주요 명산을 답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산의 좋은 기운도 듬뿍 받고,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죠. ||Q. 외교학을 공부 하신 걸로 압니다. 또한 선거 유세때 보면 대중 연설을 탁월하게 하신다고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혹시 강습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주제와 현안에 대해서 요점과 맥락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요.
A. 사실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입니다. 처음에 정치 시작하면서 대중연설을 할 때는 아주 어색하고 낯설었죠. 긴장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마이크를 잡고 제 자신의 소신을 목청껏 피력할 때는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의 속내를 긁어주고, 누군가를 향해 대신 실컷 욕도 해 주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연설이 매우 선동적이라고들 하시더군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란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는 것 요점을 잘 짚어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시원하게 내 뱉어 주는 것. 물론 지적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은 충실히 마련해야겠죠.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 현장을 얼마나 다니고 공부했는지는 대중 연설을 해 보면 바로 알수 있거든요. 아는 만큼 보이고 또 그 만큼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G2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아주 전략적인 외교관계를 성립해 나가야 할텐데요, 유 의원 생각을 말씀해 양강의 중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스탠스에 대한 생각을 밝혀 주십시오.
A.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상징인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시소게임의 중간에서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한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경도된 인식과 사고를 한다면 우리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왜와 명 사이에서, 정묘호란은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 잃은 외교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립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500년 조선의 역사가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게 되었고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엄중한 시기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소한 실수로 큰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을 향한 전략적 접근을 위해서 남북간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 마련된 신뢰의 토대가 이명박 정부를 거쳐 풍비박산되면서 아주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돈독히 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안정된 정세를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외교 수완이 모색되는 것이죠. 우리 한반도가 유럽의 성공적인 중립국 스위스와 같은 완충지가 될 것이냐, 아니면 화약고 발칸반도와 같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Q. 유 의원은 문화, 농업, 경제, 통상 등 두루 섭렵한 몇 안되는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그리고 앞으로 유성엽 의원 개인의 정치적 목표와 로드맵을 간략히 밝혀 주신다면.
A. 21C는 문화와 생명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문화와 복지를 향유하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또한 문화와 생명이 산업의 주요 컨셉이 되어 국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우선 이러한 문화와 생명의 21C를 효과적으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지방 분권이 필수적입니다. 지방분권을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현재 비율(8대 2)을 5대 5까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치를 위한 재정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지방의 내생적 발전전략이 가능하게 하고, 이를 국가 경쟁력으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재정권을 중앙이 틀어쥐고 지방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조례의 위상을 법률과 같이 높임으로써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법률로 전국을 획일화하고 규제하는 것은 자치입법권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자치단체를 서열화하는 ‘Number 1’을 지향할 뿐 특색있는 ‘Only One’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안됩니다.
만일 제가 지금 안전행정부 장관이라면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재정권과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해서 제도적인 혁신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앙정치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문화와 생명으로 우뚝 일어서는 분권화된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안으로 탄탄하고 밖으로 유연한 국가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것이 제 중앙정치의 최종 목표점입니다. 제가 어느 역할을 맡든 이러한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작정입니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은 제 고향 정읍시에서 시의원을 한번 하면서 정치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런 후 정읍 땅에서 살다가 정읍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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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란 영혼에 불을 켜지는 것이다'
만나는 순간,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활짝 웃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만드는, 배우 정욱진을 만났다.
Q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정욱진입니다.
Q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희망했었는지.
A 원래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학예회나 소풍을 가면 사회도 보고 장기자랑도 했는데 친구들이 나 때문에 웃는 것이 무척 좋았다.(웃음)내가 서 있는 곳이 무대가 되고 날 향한 웃음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 온전히 집중되는 순간이 참 좋았다.
Q 그럼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언제부터인가?
A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하는 것이 내 꿈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자란 여수는 문화적인 혜택이 거의 없어서 연극도 본 적이 없었고 뮤지컬이란 장르는 있는지도 몰랐다. 대학 입시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었는데 그 때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고 꿈꾸기 시작했다.
Q 혹시 주위에 권유가 있었는지?
A 그렇진 않고 사촌 누나가 뮤지컬 배우이다. 서울에 올라와 있을 때 지냈던 친척집이었는데 누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누나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주인공인 페기 역을 했던 정단영 배우이다. 그렇다고 누나가 해보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부모님은 많이 응원해주시는 편이다.
Q 배우로서 무대에 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배우 자신으로 연기하는 것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란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그걸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스며드는, 좀 더 정의롭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선한 영향력이라면 선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인가?
A 아니다. 아주 나쁜 성격을 가진 역할이라도 “저 사람처럼은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면 되니까. 그 작품에서 내가 해야 하는 부분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우문에 현답이다. 그럼, 장면마다의 연기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편인가?
A 물론이다.(웃음) 내가 나오는 모든 장면을 다 적어두고 어떻게 하면 작품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인물을 표현할지 씬 별로 계산하는 편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대사 톤은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지 미리 염두 해두는 편이다.
Q 미리 생각한데로 연기가 가능하다니 대단하다.
A 잘 안 돼서 매일 바꾼다.(웃음) 오히려 분량이 많지 않은 작품에서는 잘 맞아떨어졌는데 지금하고 있는 ‘쓰릴 미’는 절대로 안 되더라. 그래서 지금은 계산 같은 건 아예 포기했다.(웃음)그러다 보니 오히려 한 단계 발전한 느낌이다.
Q ‘쓰릴 미’는 여러 가지로 늘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참여하고 있는 소감은?
A 네이슨 역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인물 자체가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가서 어려웠다. 정동화 배우가 이번에 같은 역이고 또 나처럼 처음 이 작품에 참여해서 둘이서 많이 연구하고 의논했다. 굉장히 의지하고 따라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로가 가진 이미지가 달라서 좀 더 나다운 네이슨이 되려고 노력했고 아직도 많이 연구 중이다.
||Q 재 관람 관객이 많아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A 신기하다. 이런 작품은 처음이기도 하고. 일처럼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조금씩 다른 디테일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걸 다 알아봐주신다. 그게 너무 재미있다.
Q 일처럼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 그냥 똑같은 대사를 하고 똑같이 연기하다보면 자꾸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대사를 다르게 하면서 ‘내 말’이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상대배우와 새로운 디테일을 의논해서 시도해보기도 한다.
Q 상대배우에 따라서 디테일이 많이 달라지나?
A 기본적인 틀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 연기하기 때문에 감정이 미묘하게 다르고 그에 따른 대사의 느낌도 다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끔 목이 잡히거나 패대기쳐질 때 아픈 연기를 하는데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혼나기도 한다.(웃음)
Q 쓰릴 미에서 많이 화제가 되었다.
A 감사하다. 사실 작년에 다쳐서 쉬다보니 욕심 부리던 걸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욕심을 버리니 좀 더 여유로워지고 편해졌고 형들이랑 하면서 많이 도움 받고 배우고 있다.
Q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A ‘이정은’배우. 관극을 하면서 정신없이 눈물이 난 게 두 번 있는데 한번은 ‘야끼니꾸 드래곤’이라는 극에서 고수희 선배님이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표정 때문이었고 뮤지컬‘빨래’에서 주인 할매로 연기하는 이정은 선배를 봤을 때였다. 첫 데뷔작에서 선배를 엄마로 만났는데 진짜 많이 물어보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직도 그 때 써 둔 노트가 있다. 선배처럼 계산하는 게 보이지 않고 온전히 그 인물로서 같이 배우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장 해제시키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10월 26일에 뮤지컬 쓰릴 미 1차가 끝난다. 그리고 뮤지컬 원스가 12월 14일부터 시작된다. 아직 젊으니까 돈이나 인기보다는 많이 배울 수 있는 작품으로 무대에 서고 싶고,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김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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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 ACI엔젤클럽, ‘투자 감각 부족’”
소니스트(대표 김경태)는 계산 학습 게임 앱 ‘블랭키스트’ 출시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소니스트 김경태 대표는 현재 경운대학교 모바일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으로, 1994년 1월 31일(만 20세)생. 한국 최연소 법인 벤처기업으로, 계산 학습 게임 엡 ‘블랭키스트’ 출시 이후 해외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경태 소니스트 대표는 “초등학교 때, 캄퓨터 게임을 좋아해 밤새 게임을 즐기면서 그만의 세계를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그림을 그렸다”면서, “그 속에서 만족을 느꼈지만, 부모님께서 그런 그를 걱정하셨고 끝내는 게임하기를 원하는 그의 생각에 크게 반대하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부모님의 반대에 부딛치자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만, 학생 신분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면서, ”그 당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휴대폰에 있는 게임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자연히 휴대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슬라이드 폴더 슬라이드 바 터치형 등 다양한 종류의 휴대폰을 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2010년 2월 경에 스마트 폰이 출시된다는 기사를 보고 이것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게임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며, “그 당시 삼성전자에서 출시했던 스마트 폰에 대해 연구하면서 QA테스터로 활동했다. 그것이 (저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하지만 테스터로 활동하는 것도 학생 신분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휴대폰과의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미국 산호세 시티 실리콘벨리에서 마케팅 미디어 전문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Varazo. Inc 회사와 게임관련 북미마케팅을 MOU하기로 계약했고, 19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특허전문기업 e4TechHub.Inc과 기능성 게임관련 특허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어 20일에는 미국에서 한인 300여 명의 석.박사 회원 단체(미주 한인과학자협회) Korean Life Scientists in the Bay Area(KOLIS) 기능성 게임 공동개발과 MOU를 체결했다. 이들을 통해 마케팅/특허 관리/기능성 게임에 대한 검증 및 테스트 발굴할 수 있도록 논문자료 등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기술력에 대해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창업주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반면, 국내 투자자인 대구 대경 ACI엔젤클럽은 현재의 재무평가, 사업성에 비중을 두고 ‘자금 활용 및 개인과 기업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판단’이라는 명분으로 자금 지원을 거절한 것은 현실적인 한국 투자자의 감각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김 대표는 “대구 엔젤투자클럽에 회사의 지분 20%를 담보로 3억을 요청했으나 거절, 1억원의 자금으로 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직원 8명의 급여 및 운영비로 충당했다”면서, 부족분에 대해서는 “회사의 이사(친구와 친구 어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금의 압박은 여전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동분서주 최근 서울의 한국전통의학연구소 황성연 박사와의 미팅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김 대표는 “24일 증자신청을 마치고 한국전통의학연구소로부터 오는 25일까지 1억원을 지원받아 운영 자금으로 활용키로 했다”면서, “올 4분기까지 매출 발생시 대주주인 의학연구소 지분을 매입해 공익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컨설팅의 지원을 약속받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김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제품들이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신 제품을 출시해 최단기간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IT융합 분야의 대표 전시회인 ‘2014 대한민국 IT융합엑스포’에서 수학 교육용 어플인 블랭키스트, 영어 교육용인 별따다줄래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어플인 커뮤니티 맵핑을 선보였다.
수학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인 ‘블랭키스트’는 사칙연산 학습을 위한 콘텐츠로 빈칸에 알맞은 부호, 숫자를 채워 넣어 수식을 완성시키는 게임으로 두뇌 활동 증진에 도움을 주는 어플이고, 영어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별따다줄래’는 알파벳을 모아 영어 단어를 만드는 게임으로 게임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러운 기초 단어 학습이 가능토록 기획됐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 맵핑’은 시각 장애인들에게 신호등의 위치 정보를 전달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신호등의 위치를 음성으로 안내해 이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복지 콘텐츠이다.
한편, 김 대표는 2012년 7월 17일 창업진흥원애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고, 이어 지난해 7월 스마트벤처창업학교에 입교, 10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캠퍼스CEO로 선정된 바 있다. 또 삼일회계법인 창업지도사, 한국기술거래사회 기술사업가치평가사를 취득했다.
특히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터키, 크로아티아, 중국 등 기능성 게임에 대해 재미와 동시에 기능적인 부분에 우수성을 인정받고 글로벌 진출에 협력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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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축구 지소연 인터뷰, "북한 강하지만 꼭 이길 것"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은 4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이 당찬 각오를 밝혔다. 지난 22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소연은 23일 파주 NFC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의 결승 진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결승전 출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출전할 수 있는) 두 경기에 집중해 결승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소연의 소속팀 첼시 레이디스는 대승적 차원에서 지소연이 아시안게임 8강 및 4강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단 입장에서 아시안게임은 선수 차출 의무가 없는 대회임에도 지소연과 대한축구협회의 뜻을 존중해 지소연을 아시안게임에 보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지소연은 소속팀 일정상 결승전에는 출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한국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협회 차원에서 지소연의 결승전 출전 여부를 구단 측에 문의할 수 있지만 첼시 레이디스도 리그 막바지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어 협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지소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아시안게임 8강과 4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4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반드시 이기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지소연은 “북한이 우리 팀만 만나면 이상하게 잘 하더라. 그래도 결승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북한을 꺾어야 한다. 북한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뒤처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싸워보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북한과의 A매치 상대전적에서 1승1무12패로 뒤져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네 차례 만나 모두 패했다. 다음은 지소연과의 일문일답.
Q. 결승전 출전 여부는.
“아직 결승에 올라간 것도 아니다. 아시안게임 최고 성적이 3위인데 첫 목표는 결승 가는 것이다. (결승전 출전 여부는) 그 다음에 생각하려고 한다. (소속팀과의 협의는 대회 기간 내내 이어지나) 그렇다. 결승 가게 된다면 협회에서 잘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Q. 하룻밤을 동료들과 지낸 느낌은.
“중간에 들어왔지만 같이 해왔던 동료들이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예선전을 잘 치러 분위기도 좋고 나도 하루 밖에 안 됐지만 잘 적응했다.”
Q. 지소연 합류가 대표팀에 큰 힘이 된다고들 한다. 본인의 생각은?
“동료들이 저를 신뢰해줘 기쁜 일이다. 저도 아시안게임 때문에 여기 왔다. 4강에서 북한과 만날 수 있는데 꼭 이기고 싶다.”
Q. 국내에서 지소연의 플레이를 볼 기회가 없다. 어떤 모습 보여줄 것인가.
“한국에서 오랜만에 뛰는데 제 경기를 못 보셨을 것이다. 저도 한국에서 경기를 하게 돼 기대되고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Q. 윤 감독의 주문 사항은.
“예선을 잘 치렀다. 하지만 예선 상대는 한 수 아래다. 이제 그 분위기는 잊고 목표한 대로 결승 진출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감독님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좀더 예민해지고 집중하고 있다. 선수들도 집중해서 운동하고 있다.”
Q. 북한전 영상을 봤나. 가장 신경 쓰이는 상대는.
“북한과 작년 동아시아대회에서 해봤다. 한국은 이전보다 경기력이 많이 올라왔다. 북한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뒤처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한번 싸워보려 한다.”
“역시 북한이다. 어느 팀이 올라와도 우승하려면 다 이겨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한국을 만나면 왜 그런지 모르지만 강하다. 우리도 홈이니 만큼 결승 가려면 북한을 이겨야하는 만큼 최선 다할 것이다.”
Q. 세번째 아시안게임이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때는 나이도 어리고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은 나이도 찼고, 아시안게임이 홈에서 열린다. 우리가 잘 한다면 팬들이 여자축구에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Q. 개인적인 목표는.
“결승에 가는 것만, 나에게 주어진 두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역시 지소연은 다르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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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신구, “헨리 폰다는 잊어라”
미국의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의 대표작 ‘황금연못’이 오는 19일부터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1관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은 1979년 초연 당시 토니상을 수상한데 이어 1981년 마크 라이델 감독에 의해 영화 ‘황금연못’으로 제작돼 이듬해인 1982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여주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했다.
인생 황혼기를 맞은 노부부의 삶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면서, 아버지와 딸 역에 실제 부녀인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특히 애증이 뒤섞인 부녀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 두 부녀(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를 비롯해 걸출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농익은 연기는 잔잔하고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 바 있다.
독설을 일삼는 까칠한 고집쟁이 노인 노만은 꿈같은 청춘이 지나고 죽음이 멀지 않음을 깨닫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그의 까다로운 성미를 모두 받아주는 따스한 성품의 아내 에셀이 함께한다.
‘황금연못’으로 불리는 호숫가의 별장에서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기위해, 남자친구의 아들 빌리를 맡기기 위해 외동딸 첼시가 찾아온다.
80세 노인 노만과 13세 소년 빌리 사이에서는 결코 어울릴 수 없어 보이던 이들 사이에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꽁꽁 얼어붙었던 첼시의 마음이 녹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격하고 무뚝뚝한 모습에 상처받아 연락을 끊었던 첼시는 아버지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다. 이들에게 마법 같은 일을 가능케 만든 주인공은 까칠한 속에 숨어 있는 노만의 진심을 헤아릴 줄 아는 유일한 사람 에셀이다.
청춘에 대한 상실감과 예전 같이 않은 기력 탓에 고집과 까칠함만 늘어가는 남편을 위해 에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할아버지는 너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야. 세상에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는 늙은 사자와 같단다. 아직도 자신이 건재하게 으르렁거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거든”이라면서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빌리가 이따금 언성을 높이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할까봐 들려주는 에셀의 이야기는 빌리는 물론 관객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S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이종한 연출은 “상업적이고 기형적인 저급 연극이 횡행하는 무대에서 명작의 감동을 생생히 재현하는 현실 속에서, 재미, 감독, 예술성을 모두 겸비한 국민연극을 만들겠다”면서, “노령화 사회 속 노인들의 아름다운 역할과 가족 간의 바람직한 소통방식을 제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8일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순재는 연극 ‘황금연못’에 대해 “일상성의 연극이라 큰 기복은 없다. 다만 지루해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은 아기자기 하면서 재미있게 넘어간다”면서, “노이든 사람이 나온다고 흥행이 안 되라는 법이 없다. 신구와 손숙이 나온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는 관객이 꽉찼다. 잘만 하면 젊은 관객들도 많이 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신구는 “(이 작품의 주인공 노만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들을 안은 채 죽음을 앞둔 모습이 제 모습과 비슷해서 선택한 작품”이라면서, “우리 나이가 되면 항상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한다. 5분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노만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문희는 “연극은 땅에 발이 잘 닿아야 한다. 기운이 있어야 하고 호흡도 좋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든다”면서, “그 만큼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관객들과 호흡이 좋아지고 스스로의 힘도 많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내년이면 60살을 바라보며 어는 촬영이나 무대에 가도 나이에 대해 밀리지 않던 성병숙은 이 무대에서는 막내다. 성병숙은 “막내가 참 편하다. 선생님들이 잘 봐주시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하는 천둥벌거숭이인데 모두 잘 챙겨주신다”면서, “남편 두 분이 너무나 다르다. 이순재 선생은 다들 알지만 직진이고, 신구 선생님은 회오리다. 두 분이 무대 위에서 너무 달라서 노만을 두 번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만 세이어 주니어 역에는 이순재, 신구가 더블 캐스팅됐고, 까다로운 남편을 받아주는 따뜻한 성품의 에셀 역에는 나문희와 성병숙이 출연한다. 이 외에 이도엽 우미화 이주원 홍시로가 함께한다.
황혼에 접어든 노부부가 세대갈등과 가족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모습을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연극 ‘황금연못’은 이달 19일부터 11월 23일까지 공연한다.(문의 02-76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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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촌장만의 브랜드 만들고 싶다”
“탁촌장은 변함없는 장인의 손맛으로 고객들에게 품질 좋은 제품만을 공급합니다”
경북 안동의 특산물인 참마를 주원료로 사용해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삶을 추구하면서 전국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마 생산농가의 시름을 덜어주면서 기부회사로 알려진 기업 ㈜ 탁촌장 사무실에서 탁상훈 대표를 만났다.
# ㈜ 탁촌장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 탁촌장 탁상훈 대표는 ‘탁촌장’을 설립한 계기에 대해 “지난 2007년 일반사업자로 시작해 지금은 법인 두 개를 설립한 탁상훈 대표의 처음 시작은 안동 참마 보리빵 한 가지로 시작했다. 탁촌장은 이 사업을 하기 전에 농업을 20년 정도 했고, 유통업을 10년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부채가 10억 이상의 부채가 발생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농업 쪽에서 특히 버섯 쪽으로 특수한 미생물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이 사업을 시작한지 7년 반이 됐다. 4년 만에 부채 10억을 다 갚았고, 지금은 부채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탁촌장 타워 설립을 위해 땅 대지 설정을 위해 약간의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탁 대표는 이어 “농업을 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농업과 유통업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농협 가공제품을 대신 팔아줘서 수수료를 받으면서 경험을 쌓았으나, 남의 제품을 파니까 재미가 없어 우리 지역의 농산물을 가지고 내 브랜드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했다”면서, “우리 지역의 특산물인 마 생산은 전국의 70%를 차지한다. 마는 무색무취로 (제가 생산하는) 어떠한 제품에도 다 접목된다. 원래 향을 깨지 않고 원래 마의 장점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탁촌장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제품은 ‘참마 보리빵’으로, 첫 해인 지난 2007년 매출이 3억 7천만 원을 올렸다. 오전에는 빵을 굽고 오후에는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빵을 직접 팔러다녔다. 1년 반 동안 (제가) 직접 빵을 만들어 팔고 현장에서 자료집을 만들어 몸으로 직접 뛰고 시식과정을 통해 제품을 알렸다”면서, “각종 축제행사에는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지금도 (축제에) 나간다. 지금 이 맛이 하루 아침이 나온 것이 아니라, 5차례의 반죽 작업을 통해 지금의 맛이 나왔다. 2년차의 매출은 배로 늘어났고, 3년차부터 직원을 보충하면서 제품의 다양화를 꾀했다. 현재 안동국수(4종류), 하회탈쵸코릿, 안동참마차(4종류), 안동참마 보리빵이 야심작”이라고 덧붙였다.
||탁 대표는 제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하회탈쵸코릿’은 지난 2010 서울 G20 정상회의 상품으로 선정된 문화관광상품으로, 사공일 위원장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롯데, 해태 등은 다 떨어졌다. 이유는 대기업의 제품들은 외국의 제품들과 차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의 하회탈 모양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이고, 사과, 포도, 감귤은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동결건조원료와 안동 참마가 함유된 달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에 부담이 적은 세계인의 기호식품이자 건강초코릿으로, 지난해 7월에는 산업자원부 선정 GOOD DESIGN에 선정됐고, 농어촌공사에서 스타상품에 선정해 별 3개를 받았다.
‘안동의 맛’은 안동국수, 쌀국수, 쌀떡국, 떡볶이로 구성된 세트상품으로 저칼로리, 방부제 0%, 트랜스지방 0%의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웰빙식품으로, 안동참마가 들어있어 면발과 떡이 쫄깃하고 퍼지지 않고 기름에 튀기지 않아 국물 맛이 시원하다. 또한 비빔국수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와 계통계약을 체결했다.
탁 대표는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를 27회를 방문했고 담당자들이 3번이나 바뀔 정도로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다. 처음에 방문했을 때에는 담당자들로부터 문전 박대를 당했고, 만나주지도 않아 담당자와 싸우기도 했다”면서, “이후 2년여에 걸쳐 검토를 거쳐 지난 7월에 등록을 마쳤고, 오는 10월초에 전국 2400개 농협중앙회에 납품 예정이다. 현재 안동 영양 농협 인근에서는 시판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제품이 ‘탁촌장’의 주력 상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동참마가 든 건강한 우리 차’ 안동참마분말 함유로 더 부드러워진 건강한 우리차 종합세트로, 호두, 율무, 아몬드, 마차, 생강, 오미자차, 한차, 복숭아차로 구성돼 입맛 따라 즐길 수 있는 온가족을 위한 선물세트제품이다.
탁 대표는 “그동안 생마를 이용해 특유의 향, 분말이 물에 잘 풀리지 않는 문제와 신세대인 젊은층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면서, “기존 제품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개선한 스틱포장으로 물 없이 용기 없이 먹을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하고, 시간이 지나도 열화, 색변, 수분흡수로 변질되거나 굳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6차 산업의 기술 집약 산업의 제품으로 유산균은 생리활성이 높고 흡수율이 증강된 생약발효물로부터 분리된 유산균 중 장내 생존율이 높고 장기 저장시 사멸 율이 낮은 우수한 유산균만을 선별한 제품이다.
이 제품에 대해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손호용 교수 연구팀과 경북 바이오산업연구원 조재현 팀장과 3년의 연구 끝에 기존의 분말제품에 비해 유용성분함량이 높다. 시료 100g당 플라보노이드는 5.4mg보다 높은 10.2mg, 폴리페놀은 300.5mg보다 높은 388.4mg, 환원당의 경우 1,241mg보다 높은 1,833mg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현재 홈쇼핑 준비중으로, 지난주 LS MD가 사무실을 방문해 홈쇼핑 런칭 금액까지 합의가 다 됐고, 올해 10월 중순 경부터 납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생산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재 ‘경북바이오 벤쳐프라자’에 공장등록을 마쳤고, 제반 문제는 다 끝났다. 주 판매처는 (안동)매장 판매뿐만 아니라, 쇼핑몰 대행업체 등 10여 군데가 있다.
‘참마 보리빵’은 설탕대신 올리고당, 물 대신 생우유와 계란을 넣어 반죽한 무방부제, 무트랜스지방 제품으로 안동참마와 100% 국산 찰보리로 만들어진 웰빙 영양간식이다.
탁 대표는 “‘참마 보리빵’은 빵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빵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특산품으로 설득했기 때문에 매장에서도 제법 많이 팔린다. 동대구, 하회마을 안동터미널 등지에서 일 평균 300상자 약 5백만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면서, “지난 7년 반 동안 새벽 5시부터 반죽실에서 직접 반죽을 한다. 이는 (자신에게) 일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탁촌장’의 경영 철학은?
탁 대표는 인터뷰 동안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탁 대표는 “현재 매장이 40평 정도로 규모가 조그마하지만, 특별한 영업방법은 없다. 대기업이라면 모델 등을 통해 홍보할 수 있겠지만...규모가 작다보니득별히 홍보할 방법이 없어 뭐든지 들이댔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자신감이 더 붙더라. 그 방법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을 만들어 놔도 팔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 사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안되면 끝까지 찾아가는 ‘끈기’와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향토 기업 특산물 업체 30개 업체 중 매출 규모로만 볼 때 안동에서 5위권 안에 들어 갔다고 덧붙였다.
# 앞으로의 계획은?
탁 대표는 “앞으로 탁촌장 타워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탁촌장 브랜드를 인식시켜, 탁촌장 캐릭터로 6차 산업이라는 정부사업을 지원 받아 설계가 마무리되면 올해 안에 착공해, 내년 설 전에 입주해 6차 산업 원스톱 미니 복합을 만들어 쇼핑하고, 체험 등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지도록 짜놨다”면서, “탁촌장 브랜드를 건물 내부 안에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또 광역권 도시에는 탁촌장 타워를 이용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저가로 많은 고객들이 올 수 있도록 해 마와 관련된 차를 팔고, 음식도 팔고, 마와 관련된 가공제품도 판매해 매출 신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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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경, 협조와 양보 필요”
천태종은 중국 천태산의 이름을 따서 만든 종파로, 중국 진나라 말과 수나라 초의 유일한 고승 ‘자자대사’에 의해 천태종을 개창했고, 고려시대 문종의 넷째 왕자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해 47세 입적할 때까지 오직 구법과 전등을 발원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됐다.
이후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은몰해 있던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 대각국사’가 불교 중흥과 중생구제에 진력하면서 1945년 소백산 연화지에 초암(현 구인사)를 짓고 천태지관으로 수행정진에 진력하면서 회삼귀일, 원융삼제, 진속불이의 법화교지로써 새불교운동을 전개키 위해 단절된 종맥을 계승, 천태종을 중창했다.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 원각대조사’는 칡덩굴을 얽어 만든 산가초암을 짓고 뼈를 깎는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 감로법우의 새 교화문을 열어 그 미묘한 법력과 도풍덕화를 쫓아 수많은 문법제자들이 그를 산부처라 부르면서 운집하기 시작해, 현재 250만 성도가 찾는 사찰이 됐고, 말사도 생겼다.
# 도정스님이 구인사에 출가 동기
도정스님이 출가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당시 부모님이 구인사에 다니셨는데 (제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함께 구인사에 와서 설법을 들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대중설법을 하시다가 제자 3분이 릴레이 방식으로 설법을 하셨는데 정말 신통방통했고 경이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도 하면 될까’라는 생각으로 출가하게 됐다” 말씀하셨다.
이어 “부모님은 재산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제가) 출가를 하면서 전 재산을 종단에 기부했다. 그리고 1968년 구인사로 출가했을 당시에는 첫 출발하는 시점이라 불교의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았고, 또 제대로 배울 수 도 없었었고 길도 없었고, 식생활 해결도 큰 문제였다”면서, “당시 초가집을 포함해 3-4채 정도 있었어요. 이후 지금의 집과 도량을 비롯해 박물관을 건축하게 됐지요.”라고 회고했다.
||# ‘주경야선’으로 일궈낸 ‘구인사’
도정스님은 “손수 산비탈을 깎아 길을 만들고 조금씩 법당을 지어가면서 상상하지 못할 환경 속에서 오늘을 만들었지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정신수행으로 자립경제의 기반을 갖추는 ‘주경야선’을 통해 의식주의 해결과 함께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면서, “천태종은 결집력이 가장 좋은 종단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할 수 있지만 짧은 역사 속에서 오늘까지 만들어진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과거를 돌아보면 ‘세월이 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정스님의 구인사를 이루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겨울에 나무를 하러갔는데 부자집에서 자라서 나무를 한 경험이 없었지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무를 했는데 하나도 하지 못해 그냥 빈 지게로 내려온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또 돌을 깎아 길을 만들고, 수레를 한 번씩 움직여야 하는데 힘에 부쳐 넘어지기도 수 없이 많았지요. 한번은 수레를 밀고 내려오다 언덕에 쳐박혔는데 마을 사람들이 수레가 망가지는 일만 걱정했지 (저를) 걱정해주지 않아 화가 나 산을 내려가려고도 했지요, 그때 큰 스님께서 아시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에 힘을 얻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었지요. 어려울 때마다 큰 스님의 미래에 대한 꿈과 격려가 지금까지 견디어 올수 있었던 버팀목이 됐다. 당시 큰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했다”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천태종이 가야할 3대 지표는, 대각국사에 의해 개립됐던 고려 천태종은 역사의 비운속에 자취를 감췄다가 상월 원각대사에 의해 다시 빛을 드러낸 천태종은, 일제의 암흑시대가 종말을 고한 8.15 광복 후 국토양단 민족분열의 액운으로 인해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오게 된 민족적 수난을 크게 개탄하고 불교 중흥과 호국제중의 대원을 세웠다.
이를 위해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3대 지표로 세웠다. 우선 일제 시대에 이리 저리 쫓겨다니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상월 원각대조사는 “나라 없이는 종교는 없구나”하는 생각 속에 항상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불교’를 주창했다.
||이어 과거 시찰하면서 생각하는 잡소리 세속의 소리가 없는 산중에 사찰을 지어 생활하는 산중불교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어울려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생활불교로 지표로 내세운 ‘생활불교’,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모든 사람이 같이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생활 대중과 함께 살 수 있는 새불교인 실천불교를 지향하는 ‘대중 불교’를 말한다.
# 사회를 던지는 메시지
도정스님은 오늘을 사는 현세대에게 “경제와 의식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면서, “60-70년대는 경제는 어렵지만 마음, 인심은 후덕하게 이해하고 협조하면서 살아왔는데, 경제가 갑작스레 성장하다보니 모든 면에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공격성을 띠고 혼돈한 세상이 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윤리 양심은 경제가 갑작스레 성장하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지적하고, “살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인간성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교육하고 정서적인 훈련으로 인간이 지켜야 될 인간성이 있는 세상이 돼야 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살아야 하는 상생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남을 이해하고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을 깔보면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또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경, 그리고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때 행복해지고 국가가 행복해진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협조와 양보 등을 통해 이뤄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도정스님은 “이 정도 만들어놨다는 자부심 수행을 통해 견디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눈을 떳다고 생각한다”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편, 도정스님은 서울, 인천 등 총무원 서기부터 시작해 총무부장, 종회의장,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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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예술단체, 시즌제 프로그래밍 도입 통한 창.제작 역량 강화
국립현대무용단 제2대 안애순 예술감독이 지난달 28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한국적 컨템퍼러리의 탐색’을 표방하면서 무용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키 위해 노력해 온 안애순 예술감독은 지난 1년 간 시즌제 프로그래밍 도입,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 초청 등의 굵직한 성과를 일궈내면서, 국립예술단체 중 가장 막내인 창단 4년의 국립현대무용단을 본격적인 성장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취임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국립예술단체로서의 대표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무용의 예술적 역량을 강화하고, 참여와 경험을 위한 매개체로서 동시대적 춤이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안 예술감독은 시즌제 프로그래밍의 도입과 체계적인 제작시스템 구축을 통해 창작과 제작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한편, 지역순회공연 확대와 무용학교 개설 등을 통해 계층과 지역, 세대를 아울러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현대무용의 환경을 조성해 왔다.
특히 국립예술단체로서는 최초로 도입한 시즌제 프로그래밍은 한해의 프로그램을 미리 계획해,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창작환경 속에서 작품 제작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객 확보를 통한 현대무용의 저변확대를 도모키 위한 것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올해의 시즌 주제를‘역사와 기억’으로 잡았다. 이는 한국 현대무용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한 사전 단계이자 한국적 컨템퍼러리의 탐색을 위한 작업으로, 정기공연과 기획공연, 전시와 퍼포먼스, 인큐베이팅과 레지던스, 강연과 토크 등 연 50여 회에 달하는 공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2014년 사업이 꾸려졌다.
또한 안 예술감독은 우리 전통장례에 등장하는 ‘꼭두’를 소재로 신작 ‘이미아직’도 ‘역사와 기억’이라는 시즌제 프로그래밍의 성과물로, 유럽 무용평론가 토마스 한(Thomas Hahn)으로부터 “한국적 감수성을 가로지르며, 타자에 대한 인식과 존재들 사이의 교류에 관한 대화이자, 전통과 현실적 삶 간의 대화”를 성취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15-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에 초청됐다.
지난달 25일과 26일 양일간에 걸쳐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우회공간’과 오는 10월과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서 개최될 ‘결정적 순간들-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 전시 역시 1980-90년대 ‘공간사랑’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한국 현대무용사의 역사와 기억을 되짚어보는 작업이다. 이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작품 공모전인 ‘전통의 재발명전’도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기억을 동시대적 관점과 해석으로 재발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즌제 프로그래밍을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안예술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전문적인 창.제작시스템의 구축과 프로덕션 관리의 효율화이다. 이를 위해 안애순 예술감독은 작품 제작에 있어 리서치, 드라마투르기, 창작, 제작, 아카이빙에 이르는 전 과정에 내.외부의 전문적인 제작인력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창.제작 프로세스에 대한 단체의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동시다발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전문적인 창.제작시스템의 구축과 프로덕션 관리의 효율화는 우수 레퍼토리의 축적과 유통 활성화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초연이 전석매진 사례를 일으켰던 ‘11분’ ‘춤이 말하다’ 등은 올해 서울에서의 우수 레퍼토리 재공연을 거쳐 수원SK아트리움, 부산LIG아트홀 등의 지역 공연장 초청공연과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순회공연이 9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안애순 예술감독의 신작 ‘이미아직’이 4개 지역문예회관들과의 공동제작도 앞두고 있어, 올해 총 13개 지역에서 지역순회공연이 이뤄졌다.
안애순 예술감독의 취임과 함께 신규로 진행되는 또 하나의 사업은 아카데미.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아카데미사업은 동시대의 인문학 및 인접 예술양식의 흐름을 연구, 컨템퍼러리의 이슈와 한국 현대무용의 현주소를 탐색하는 동시에 창작 작업과의 상호작용 및 피드백을 통해 창작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안애순 예술감독의 남은 과제는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한국 현대무용의 전위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동시대 문학, 음악, 시각예술, 건축 등 다양한 타 장르와의 적극적인 협업 및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다각화하고, 또한,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해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과 해외시장에서도 두루 통용될 수 있는 국가브랜드형 대표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이를 국제무대에 활발하게 유통시켜 한국 현대무용의 성과를 해외에 알려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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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신임 기술위원장, “9월 A매치 전 대표팀 감독 선임하고파”
“내.외국인 30여명을 포괄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하되 가급적 9월 A매치에 감독이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
신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을 면밀히 살펴 가급적 빠르게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린 신임 기술위원장 취임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술위원회 업무 및 운영방향을 설명하면서 차기 국가대표팀 선임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이 위원장은 “기술위원회가 대한민국 축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술방망이는 아니다”면서, 기술위 권한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아쉬운 경기력은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술위원회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대표팀 지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5년에서 10년, 길게는 20년까지 바라보고 질적인 차원에서 바꿀 수 있는 고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차기 대표팀 감독과 관련해, “개인적인 욕심은 적어도 9월 A매치에 감독으로서 경기를 준비하지는 못해도 관중석이나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라면서도,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선임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 다음은 이용수 신임 기술위원장의 일문일답.
-기술위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모이나.
상근위원 중심으로 당분간 국가대표팀 감독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거의 매일 모인다. 잠정적으로 30일 오후 처음 기술위원들을 모두 모아 1박2일 정도 논의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감독 선임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야하고, 또한 앞으로 상근위원이 파주에 상주하면서 여러 일을 할 수 있기에 기술위원들은 틈나는 대로 자주 모이겠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은 무엇인가.
아직 기술위원들과 논의를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국내외 감독을 포함해 기술위에서 심도있게 검토하겠다. 어떤 감독이 리스트에 올랐다는 내용은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다. 이상적인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의 변화, 대표팀 경기력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축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유소년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분이면 좋겠다.
-9월 A매치 이전에 선임하는가. 차기 감독은 장기계약이 필요할 것 같다.
제 욕심은 9월 A매치에 적어도 감독으로서 경기를 준비하지는 못해도 관중석이나 본부석에서 대표팀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했으면 한다. 대표팀 감독의 계약기간은 지켜지기 어렵다. 모든 경기 결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계약기간을 설정해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 전체기간은 2018년까지 가지만 중간에 단서조항을 넣을 것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월드컵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다면 2018년까지 맡기는 조항을 넣고 싶다. 그러나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면 계약기간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기술위 독립성에 대해 협회와 교감은 이뤄졌나.
기술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기술위원장으로 일하면서 협회에 어떤 조건을 내걸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술위원장을 안 하겠다는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기술위에서 좋은 생각을 만들어낸다면 협회가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술위가 어떤 위상으로 변화 줄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고 조직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위에서 하는 것들은 이미 독립성 보장돼있다. 권한은 협회와 기술위원장, 기술위가 조율하면서 해나갈 것으로 본다.
-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 대비는.
어떤 감독이 선임되든 한경기 결과로 거취를 묻기에는 시간이 짧다. A매치가 계속 있고 아시안컵은 K리그가 시즌 끝난 이후라 프로연맹과 협의하면 준비 기간은 다른 대회보다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감독이 선임되면 선수단 구성하고 9월부터 11월 A매치 통해 아시안컵 엔트리를 좁히고 대회 직전 훈련할 수 있는 시간 최대한 확보하면서 대표팀 감독과 협의하면서 준비하겠다. 아시안컵 자체만으로 신임 감독을 경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시간적 여유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 임시감독 체제도 고려하나.
생각은 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생각은 못해봤다. 적어도 9월 A매치 시간에 쫓겨서 감독 선임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 발전 위해 도움 안 된다. 여유 가지고 좋은 감독을 모시는 게 좋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급하게 선임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인 감독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국내 감독과 외국인 감독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경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또는 클럽팀 감독으로서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다. 두 번째로 대표팀 감독은 리더십과 인성이 병행돼야 한다. 리더십이나 인성은 수치화할 수 없지만 최대한 알아내 기준으로 삼겠다.
내국인은 대표팀 감독으로 준비하고 적응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빨리 대표팀 분위기를 만들고 원하는 경기력을 만들 수 있지만, 외국인은 세계축구의 새로운 변화, 우리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세계무대서 잘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안다.
-현 대표팀이 전술적으로 보완할 과제는. 현 대표팀 자원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특징 중 큰 변화는 예전보다 더 수비 지향적인 경기 운영을 하면서 공격 상황에서는 공격수의 빠른 스피드와 절묘한 개인기, 결정력을 조화한 팀들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한 변화는 지난해와 재작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에서 나온 결과와 비슷하다. 수비와 미드필드에 많은 숫자를 두면서 수비 중심으로 하다가 공격 상황에서 아리연 로번, 로빈 판 페르시,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가레스 베일 등의 스피드, 파워, 개인기, 결정력으로 판가름나는 게 최고 수준의 경기다.
우리 선수들은 스피드는 좋지만 개인기는 좀더 세밀하게 다듬고 결정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세계 수준에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선수들은 체력 준비가 잘 될 때 결과가 좋았다. 수비 때 더 많은 숫자가 가담하고 공격시 빠른 역습을 추구하는 전술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런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공격수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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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2012 제5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호프만의 이야기’로 대상을 수상한 누오바 오페라단의 강민우 단장을 만났다. 참신한 레퍼토리와 독특한 무대, 신인성악가의 발굴로 호평을 받는 그는 활달하고 웃음 띤 얼굴로 그간의 근황을 털어놓았다.
“ 한국 오페라도 이제 50년 역사를 맞이했잖아요. 척박한 여건에서 기초를 일군 1세대 단장님과 오페라 중흥을 위해 애쓰셨던 2세대 단장님이 계셨다면, 이제 저는 3세대 단장의 대열에 든 것 같아요. 그런 한국 오페라의 역사를 잘 융화해서 자기 마인드와 색깔이 확실한 오페라단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요.”
민간 오페라단만 120개가 넘는 상황에서 누오바 오페라단이 걸어온 길은 새로운 세대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추측하게 만든다. 2004년 성악가들이 모여 차한잔하다가 ‘한국에는 너무 유명한 작품만 무대에 올린다. 우리가 합심하여 새로운 작품을 한번 해 보자’라는 취지로 이태리어로 ‘새롭다’를 뜻하는 누오바 오페라단이 창단되었다. 2005년 1월, 한전아트홀의 무대에 올린 누오바 오페라단의 첫 작품 ‘베르테르’는 이에 부응했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한 예산초과로 고생을 많이 했다.
“100원이면 만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200원 이상 들어가더라고요. 그래도 작품을 올리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2010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는 음악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2009년도에 오페라대상에서 금상을 수상한 ‘호프만 이야기’도 이를 계기로 한국 오페라의 레퍼토리로 당당히 자리매김했고요. ”
이탈리아에서 13년 동안 성악공부를 한 바리톤 출신이기도 한 강민우 단장은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오페라도 볼거리를 많이 줘야하고, 의상과 무대에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오페라도 공연예술인만큼 주목적은 관객과의 소통입니다. 오페라 관객 마니아층이 생겨야하고, 어느 오페라단이 무슨 작품을 올린다하면 전석 매진사례도 이어져야 하지요. 그러려면 예전 무대로는 오늘날의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오페라단은 원전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011년 공연된 ‘라보엠’은 이러한 강 단장의 철학이 구현된 무대였다. 2막의 보헤미안 카페장면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나이트클럽으로 바꾸었고 미미와 루돌프, 마르첼로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이 춤추고, 싸우는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런 창의적인 시도가 저항도 많이 받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흥미로운 무대, 재밌는 오페라라는 평을 들었다. 덕분에 누오바 오페라단은 새로운 무대에서 참신한 연출로 오페라를 구현하는 단체라는 홍보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강 단장에게 오페라는 과연 무엇일까?
“ 오페라는 사랑과 열정이에요. 음악을 사랑하는 가수들의 뜨거운 열정이 무대를 장악하고, 진실한 마음의 표현인 사랑의 힘이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감동시키지요. 그러한 사랑과 열정이 없다면 아마 음악으로 평생을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거에요.”
오페라는 모든 것이 축적되어있는 공연예술의 거대한 덩어리이지만, 역시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드라마인 것이다. 갈수록 사회가 험악해지고, 사람들의 정서가 메말라가는데에는 이러한 예술이 고갈된 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짚어본다.
“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아이들의 정서가 메말라 로봇처럼 사고가 기계화 되는데에는 감성의 부족이 큰 원인입니다. 예술은 이러한 감성에 새로운 싹을 틔워 성장하게 만들어주지요. 그만큼 한 사회에 있어서 예술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예술이 상업화되고 자본이 프로덕션 과정을 잠식하면서 생기게 되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고 진단한다.
||“한번은 기업에서 후원제의가 들어왔는데 프로덕션 과정에서 지휘자와 출연진 인선에 지나치게 개입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깝지만, 그 제의를 거절했어요. 협찬은 감사하지만 자본을 지원한다고 오페라 제작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라 트라비아타를 올리는데 뭐가 필요해? 연출자? 지휘자? 성악가? 다 사버리면 되지.’ 이런 마인드로는 예술의 자발성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이 주체가 아니라 고용인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올해 3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무대에 올리는 ‘카르멘’ 역시 누오바 오페라단의 새로운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 모던과 고전을 섞을거에요. 의상도 신경을 많이 쓰고, 특히 주인공 카르멘을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카르멘은 야하고 천박한 여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상 그녀는 사랑과 열정이 있는 여자에요. 사랑도 그런 마음의 본능이구요. 그런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
앞으로는 오페라 가수도 배우들처럼 연기연습을 철저히 하여 작품의 정서적인 면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강민우 단장은 강조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단장뿐만 아니라 연출자, 가수, 스텝, 엑스트라까지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 ‘왜 누오바 오페라단은 외국가수들을 데려오지 않느냐’고 물어요. 그 이유가 꼭 개런티 때문은 아닙니다. 외국 가수들의 경우에는 일정상 자기 할 일만 하고 가기 때문에 앙상블에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가수들과는 함께 연습하고 밥도 먹고 그러는 과정에서 동료애가 생겨서 무대에서 앙상블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요. ”
오페라가 상류층, 부유층의 예술이라는 데에 강민우 단장은 공연예술의 총합체인 오페라의 역량을 일반대중들에게 더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 오페라를 접하면 음악도 생소하고, 외국어로 진행되어 내용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그럴수록 오페라 관람 전에 작품에 대해 조금만 더 공부해오면 새로운 재미로 오페라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일반 관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요. 전문가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더 실질적인 평가일 때가 많거든요. 항상 관람객의 눈높이로 무대를 보려고 객석에 앉아서 공연도 체크합니다. ”
마지막으로 누오바 오페라단의 단장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 저희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좋은 오페라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투자자들도 인기 레퍼토리의 영역에서 벗어나 이러한 행보를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
오페라라는 무한한 바다에서 건져 올릴 작품들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고, 널리 공연되지 않았지만 가치를 지닌 작품을 발굴하여 보석으로 다듬는 일, 그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의 오페라 단장으로서 강민우 단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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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시대를 위로한다.
제4대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이자, 다음 달 선거의 단독출마로 연임이 확실시되는 정대경 이사장을 대학로 소극장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전에는 추대방식이었던 대표선출을 정관에 의거해 투표방식으로 바꾸고 소극장협회의 역할을 새로이 정립하였다. 한국 연극의 메카이자 150개의 소극장이 밀집하여 문화예술의 거리로도 알려진 대학로에서 소극장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발전대책을 알아본다.
대학로가 문화의 거리로 지정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서울대가 관악구로 넘어가고 명동의 문화시설이 이전되면서 대학로에 샘터 사옥이 생기고 문예회관이 들어왔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로에 모여들어서 자연스럽게 문화의 거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게되었다.
“그때는 매주 토요일에 교통을 통제하여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콘서트도 활발히 열리는 등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몰리다보니 지금의 홍대나 청담동처럼 상업화되어 유흥관련 시설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이것을 우려한 서울시가 ‘극장을 지어라, 극장을 지으면 그 면적만큼 한층 더 지어도 된다’ 해서 공연장을 지을 경우 원래 5층 건물을 6층까지 용적률을 올려 허가를 내주게 된 것이지요. 용적률뿐만 아니라, 주차공간 면적도 반으로 줄여주고 세금도 낮춰주니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대학로에 극장을 짓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부흥정책은 공연장이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주차공간의 부족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대학로에 밀집된 소극장의 환경이 경제논리에 휘둘려 공연예술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고질적인 병폐다.
“예전에는 200석이면 좋은 극장이었지요. 그런 공간을 운영하려면 건물세가 한달에 800-1000만원 정도이니 일회공연에 60-70만원가량의 임대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극단이 그런 대관료를 내고 공연을 하려면 수익구조가 맞지 않아요. 그래서 창작자들이 극장을 만들어버렸어요. 작은 창고극장에서 6개월, 1년 정도 공연을 해야 운영이 되니까 비정상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 지금 대학로에 소극장이 밀집하게 된 배경입니다.”
2010년 서울연극올림픽때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학로를 문화예술의거리로 선포하고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때에도 예총회관을 공연계에 필요한 시설로 전용하고, 지하의 소극장을 지상에 올려 소극장 환경을 개선한다고 했지만 대학로 현실을 모르는 문화행정과 예술현장의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정 이사장은 대학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지구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대학로를 대학로답게 만들고, 인사동을 인사동답게 만들려면 문화지구 특별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별법을 만들면 기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사유재산 용도를 침해하게 되는데 그런 만큼 세금을 감면받게 해줘야 하거든요. 그러려니 기재부에서 왜 세금혜택을 주냐고 들고 일어나고, 다른 지역에서도 그 지역의 잇권에 따라 인센티브를 달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
문화강국인 프랑스의 경우, 문화정책은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가 원칙이다. 메세나 (후원) 제도가 잘 되어있고 지역특구를 지정하여 자율적으로 그 지역에서 기금을 육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무언가가 결핍되면 시설투자나 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짙다. 크게 보면 문화정책이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현상을 수습하고 부족한 면을 메우는데 급급해 삐뚤빼뚤한 처방이 되고 만다.
“좋은 정책이 없어서 실행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의지를 가지고 실행하는가가 관건입니다. 앞으로 문화예산을 2퍼센트 올린다고 하지만 지금의 문화정책은 문화공급자보다 유권자인 문화수요자에게 관심이 있어요.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사랑티켓(? 바우처) 사업도 그런 예입니다. 한가구당 5만원씩 분배해서 그것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구입하거나,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연 한편 보는 것보다 아이들 참고서 한권 사주는 것이 더 절실할 수 있거든요. 분배는 투명해질지 모르나 이러한 정책은 실제 현장에 있는 문화종사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아요. 물론 지역을 찾아가는 순회공연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한 공연이 예술성보다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재미측면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이것이 진정으로 문화를 장려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
이러한 정책은 문화복지가 예술공급자보다 예술수요자의 관점에서 입안되고,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 역시 잦은 부서 이동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2012년에 시행된 예술인 복지법을 둘러싸고도 누구를 예술인으로 규정할 것인가, 얼마만큼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예술인 복지법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예술인에 대한 노동자 의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술가도 노동자 개념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누구를 예술인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요. 일 년에 몇편이상 작품을 한 사람이 예술가인가, 몇 년에 한편 해도 우수한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예술가인가? 그런 자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고민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각 협회 안에서 정리되어야 할 문제라고 봐요. ”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의 대표로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 소극장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대경 이사장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소극장과 네트워킹하면서 외국 소극장과의 국제교류에도 적극적이다.
“소극장 협회의 정관상 지역교류와 전국네트워킹이 중요한 사업입니다. 지역극단이 대학로에 와서 공연을 하고, 외국의 소극장 팀들이 한국에 와서 공연하는 등 극장 간의 인적교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아비뇽이나 에든버러, 시즈오카 등 해외 연극페스티벌보다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대학로를 동북아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류를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소극장 축제가 3회째에 접어드는데 나름대로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방향을 잘 잡아나가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 연극도 해외로 나아가 활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
예술인들이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수단으로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정 이사장은 삼일로 극장에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어구를 붙여놓았다. 연극은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며 파수꾼이고 거울이다. 진정한 예술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사회의 환부를 비추어 치료할 수 있게 한다. 정 이사장은 음악이나 미술도 그런 역할을 하지만, 연극은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나 다른 매체로 진출하는 연극인들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과학기술이 기초과학의 토대위에서 발전할 수 있듯이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문과학과 순수예술의 기반이 더욱 더 다져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개체단위에 한국의 소극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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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책임질 수 회사로 키우고 싶다”
물은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물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나라도 이제는 물 부족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다. 아니 어쩌면 물부족국가인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의 인체는 70% 이상이 물로 구성돼 있다. 평균 성인이 음식 없이 5-7주간 생존할 수 있어도 물 없이는 5일 이상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물을 따로 마시지 않는다. 어떤 이는 물맛을 좋아하지 않거나 또 주스, 청량음료, 우유 등의 음료수를 마시게끔 어릴 적부터 습관화 됐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음료수를 물로 대용하다보니 육체와 전신의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수분이 부족하면 두통, 요통, 관절염, 피부문제, 소화문제 등 또 다른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미국의 저명한 의사 뱃맨겔리 박사는 “모든 질병은 체세포의 만성적인 물 부족현상으로 인한 대사 장애가 주원인”이라면서, “당신은 아픈 것이 아니라 당신도 느끼지 못하는 목마른 상태”라고 말한다.
권혁복 대표는 알카라이프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에서 가장 적합한 식수는 ph 6.5-8.5사이를 권장한다. 거기에 가장 부합되는 식수로 자연 알칼리 수로서 8.2정도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자연 알칼리수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특히 미네랄 함량, 칼슘, 비타민, 마그네슘 등은 우리 몸 속에서 산성화 된 부분을 중화시켜 주는 성분 같은 것은 현재 다른 제품에서는 없다. 지금 국내의 물들은 산성수가 대다수로, 자연 알칼리수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알카라이프의 특징에 대해 권 대표는 “ph7을 중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보다 높은 수치 8.17을 가진 물은 전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그 중에서도 이 제품은 미네랄 함량이 높다. 호주에서 임상실험을 한 결과에 의하면, 안 좋은 노폐물 같은 것이 혈관에 붙어있는데, 2-3개월 음용하고 나선 떨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결과들이 호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러한 현상들이 자주 발견된다. 이 물에 함유된 미네랄 성분들은 우리 몸속에 있는 산성 노폐물이 쌓이는 것들을 해결해 준다. 그것이 알칼리수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서 제품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권 대표는 이어 “기본적인 필수 마그네슘 같은 경우가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이 있다. 칼슘같은 경우는 국내의 타 제품에 비해 10-15배 정도 많다고 보면 된다. 마그네슘은 물론 음식을 먹다보면 몸속에서 중탄산성분이 몸을 중화시켜준다. 그 성분이 290ml정도 들어있고, 또한 콜라겐을 형성해주는 실리카성분 등이 들어있어 ‘마시는 화장품’으로 명명돼 있고, 위나 폐에 좋은 성분까지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또 “칼슘이 우리 몸의 뼈와 치아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알카라이프를 음용한다면 더 좋다. 특히 나머지 1%가 뇌에 공급되는데 칼슘이 뇌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어린이는 산만하거나 어른들은 성인당뇨나 알츠하이머같은 병에 걸릴수 있다. 요즘 즐겨마시는 탄산이나 커피 같은 것들을 많이 마실 경우 혈액 속에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그런 음료들을 계속 마시다보면 몸속의 혈액이 탁해 질 수 밖에 없고 혈액 속의 노폐물 때문에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지 베이비워트는 수 천년 동굴에서, 호주 천연 보호 지역의 블루 마운틴 근처 현지에서 자연의 상태 그대로 보틀링한 제품으로, 주변의 세균의 존재하지 않아 영.유아가 안심하고 마실수 있는 미네랄 워터. 특히 천연 상태의 미네랄이 깨끗한 몸속에 최적의 비율로 이온화 돼있어 몸에 흡수가 용이해 아이들의 건강에 좋다.
권 대표는 “일반적인 정수기 방식이 80%이상이 역삼투압 방식으로, 이들 정수기들의 방식은 우리 몸에 필요한 미네랄, 칼슘, 마그네슘 등을 다 걸러낸다. 그러다 보니 증류수에 가깝다”면서, “오지 베이비워트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미네랄이 포함된 물을 먹는 것이 아닌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성장발육과 직결돼 차이점이 크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자연환경이 좋았을 때는 어디서든 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요즘은 환경문제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환경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모든 경제적인 활동까지도 건강해야 한다”면서, “건강을 책임 질 수 있는 회사로 키우고 싶고, 이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통해 사회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전하고 선한 영향을 미쳐서 행복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고 제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풍부한 미네랄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호주천연 알카리수로 유명한 알카라이프(귀두라미샘물대표 권혁복)은 2013년 프로아마농구최강자전 공식음료로 후원한데 이어, 올해에는 대한양궁협회에 공식협찬키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 백화점, 온라인 쇼핑물, 골프장, 그리고 유기농 족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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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이 세상과 소통하다”
자신만의 음악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뮤직 비즈니스라는 전문 분야를 먼저 알아야 한다. 흔히 보통, 음원제작. 유통, 홍보, 공연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뮤지션은 망설이게 된다. 내 음악을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제작비가 들고...수입은 또 얼마나 생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쉽고 명확한 해법을 이플앤 전송이 대표에게 들어본다.
# 이플앤이란?
“이플은 감성연주(Emotion Play)를 뜻하며 앤(&)은 새롭게 인연이 될 가족(파트너)을 의미합니다”
이플앤 전송이 대표는 ‘명작동화 읽어주는 피아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정규앨범 피아노 리트 2(PIANO LIED 2)는 대표적인 스토리텔링피아노 음반으로 소혹성 B612에 살고 있는 어린왕자가 장미 가시에 마음이 찔리자, 장미를 미워하며 명작동화 주인공이 살고 있는 별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믿음, 희생, 용기, 따돌림, 무관심을 배우게 되고 잠시 머무는 에피소드 별에서는 모험, 희망, 거짓과 진실을 경험한다. “소중한건 보이지 않아...”를 깨닫고 자기 별로 돌아간 어린 왕자는 장미와 화해한 뒤, 오랫동안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
||# 이플앤의 주력 사업분야?
음원뱅크 및 DREAM 드림 프로젝트입니다. 클래식 음악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음원 뱅크 사업은 우수한 음악대학 재학생 또는 졸업생, 전문연주자 더 나아가, 모든 음악인을 대상으로 엄선된 작품(피아노, 작곡, 성악, 기악 포함)을 디지털 음원으로 제작, 관리하는 사업입니다.
드림드림 프로젝트는 디지털 아티스트 만들기 프로젝트로, 말하자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뮤지션을 위한 맞춤형 플랜이죠. 도전해보세요 꼭!
장르별 클래식 음원 CONTENTS 및 DATABASS를 바탕으로 전과정을 효율적인 원스톱(ONESTOP)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음원 및 포트폴리오 제작에서 홍보, 유통, 판매까지) 또한 그것은 다양한 온라인 매체 (SNS,유튜브, 스마트폰 벨소리, 국내외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등을 통해서 널리 보급될 예정입니다.
# 하고 싶은 멘트 하나가 있다면?
꿈과 비전을 가진 음악인들이 환하게 미소 짓는 그날까지, 이플앤의 불빛을 밝히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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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코주발 오르세미술관장 “예술혼 불살랐던 거장들의 작품세계 만끽”
"이번 서울전시회에는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고의 작품 총 175점이 출품, 지금까지 해외에서 진행했던 전시회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기획특별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 개관식에 참석키 위해 한국을 방문한 기 코주발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오랑주리 미술관 관장은 지난 2일 가진 기자설명회에서 “서울전은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공동으로 추진해 온 도쿄전의 85점에 비해 규모면에서 월등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브라질, 룩셈부르크, 멕시코, 로마 등 현재 전 세계 6개국에서 오르세 이름을 달고 진행 중인 전시회와 비교해도 제일 크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지난 3일부터 8월 31일까지 기획특별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호 등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거장들의 회화 작품을 비롯해 조각, 공예, 드로잉, 사진 등 175점을 선보인다.
이날 설명회에서 코주발 관장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세기의 수도’로 일컬어지면서 파리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그 시절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예술혼을 불살랐던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후기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이번 전시는 19세기 근대 도시로의 시간여행으로 인도한다. 건축 드로잉, 사진 등을 통해 19세기에 새롭게 정비되기 시작했던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의 도입부는 오늘날 파리의 원형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흔히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로 불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초상화와 드로잉, 아르누보 공예품들은 이 시기 파리인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코주발 관장은 “서울전에는 그동안 대여가 금지돼 오르세를 방문해야만 구경할 수 있었던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명화이고 오르세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이 대표적으로, 1930년 한 컬렉터에게서 기증받은 것으로 서울전이 해외 첫 나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광학적 시각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신인상주의, 원시적 삶을 동경한 퐁타방파, 세기말적 시각을 추구했던 상징주의 화가들의 대표작들을 엄선했다”면서, “회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드로잉, 조각, 공예 등 모든 예술품을 망라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작, 클로드 모네의 후기 작품에서부터 관학적 시각을 반영한 신인상주의, 도시와 문명을 떠나 원시적 삶을 찾아 나선 폴 고갱과 퐁타방파, 독자적 세계를 찾아 나선 빈센트 반 고호와 폴 세잔을 비롯해 세기말적 시각을 반영한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개성 넘치는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인상주의를 넘어, 강렬한 색체와 평면적인 화면으로 자연의 구조와 원시적 삶,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이들의 작품은 근대 미술에서 현대미술로 미술사적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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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프랑스' 이지하, “잘 나가는 김성령 왜 연극하나 싶었는데...”
연극 ‘미스 프랑스’ 기자간담회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열렸다.
배우 이지하가 이날 40대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이지하는 이날 ‘미스 프랑스’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작품을 할 때도 김성령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내가 더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배우가 왜? 지금 잘 나가는데 연극을 왜 한 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편으론 열정이 있고 도전적으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용기를 내서 해보자고 생각했다”면서, “나는 연극하는 사람인데 이걸 못한다면 말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서 김성령을 보며 배우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나이를 먹어 가니까 40대라고 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는 연기를 잘 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내 삶이 그대로 연기에 묻어나고 그런걸 실제적으로 내가 몸으로 느껴가고 있다”면서,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많이 느끼면서 연기하게 된다. 무대 설 때도 그렇고 그런게 배우로서 좀 더 편안해지면서도 더 깊어간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극 '미스 프랑스'는 배우 조재현이 대표로 있는 수현재컴퍼니의 첫 번째 제작공연이다. ‘미스 프랑스’를 선발하는 그룹의 조직위원장으로 아름답지만 무능하고 허영심이 많은 플레르와 그녀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닮았지만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 호텔 종업원 마르틴, 유흥업에 종사하며 플레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거칠고 냉소적인 성격의 쌍둥이 여동생 사만다까지 세 가지 캐릭터를 김성령, 이지하가 1인 3역에 도전한다.
프랑스 초연에서 고전적이고 예술적인 다수의 연극 사이에서 키치적이고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웰메이드 연극으로 어필해 관객의 신선한 호응을 얻은 ‘미스 프랑스(원제: JAMAIS 2 SANS 3)’는 프랑스의 유명 배우이자 샹송 가수인 리앙폴리(LianeFoly)가 출연해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김성령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극 ‘미스 프랑스’는 지난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해 3개월간 전석매진을 기록한 코미디 연극으로, 오는 15일부터 7월 13일까지 수현재씨어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사진설명/오른쪽부터 연출가 황재현, 배우 김성령, 이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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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배우 김성령, “나의 한계 뛰어넘고 싶다”
40대 여배우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 김성령이 6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2일 오후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진행된 연극 ‘미스 프랑스’(연출 황재헌) 기자간담회에는 황재헌 연출, 김성령, 이지하가 참석했다.
김성령과 이지하는 연극 ‘미스 프랑스’에서 미스 프랑스 조직위원장인 플레르와 쌍둥이 여동생 사만다, 플레르와 닮은 호텔 종업원 마르틴 역을 맡아 1인 3역을 연기한다.
김성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표적’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성령은 “저 뿐만 아니라 이미숙, 김희애 등 많은 분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나이 들어도 그 일을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면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면서, “20대 때 열심히 안 했더니 30대 때 잘 안 되더라. 30대 후반 들어서 열심히 했더니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계산 없이 하루하루 삶을 열심히 살았다”고 밝혔다.
김성령은 “요즘 ‘제 2의 전성기가 왜 이렇게 늦게 왔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똑같은 일상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저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지금 그 동안 뿌린 씨를 수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어떤 모습이든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성령은 6년만에 연극을 다시 한 것에 대해 “이끌림이 있었다. 연극은 진짜 시간이 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만 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연극에 대한 그리움이 드라마를 하면서도 은연 중에 있었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 끝나고 나서 연극 스케줄을 먼저 잡았다”고 말했다.
김성령은 이어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된다. 이 기분 때문에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또 연극을 찾게 되는 것 같다”면서, ”연기력이 좋아지는 걸 바라고 연극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막연한 이끌림으로 연극을 하고 연습을 하는 동안 연출과 얘기를 하면서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성령은 또 “관객들 앞에서 생생하게 연기를 한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뛰어넘지 못했던 내 한계점을 뛰어 넘는 일”이라면서, “이를 위해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고 연극에 대한 매력을 나타냈다.
김성령은 “코믹 연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면서, “연습을 하면서 후회가 살짝 되더라.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땀 흘리면서 매 10시간씩 연습하는데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성령을 비롯해 이지하 노진원 김하라 안병식 이현응 김보정 등이 출연하는 연극 ‘미스 프랑스’는 오는 15일부터 7월 13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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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리허설 테이크
S#3. 세종문화회관 뒤뜰 노천카페
중년의 배우 이창직과 조영호 인터뷰 중이다.
조영호 : 대학로 터주대감 이창직 배우님을 세종로에서 뵈니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이창직 : 허허허, 다르긴. 하긴 오늘 영호연출이랑 인터뷰 한다고 좀 차려 입고 나왔지.
조영호 : 아… 차려 입으신 거군요;; (웃음)
이창직 : 그럼, 맨날 광화문에 츄리닝 입고 출근하는데. 집도 가까우니까 대충 편하게.
조영호 : 삼청동 대저택에 사신다는 소문이 대학로에 파다합니다.
이창직 : 대저택은 무슨,, 대출 받고 몇 십 년 된 집 한 채 겨우 장만한 거지.
조영호 : 아니 그래도, 연극 배우 생활하면서 전세 집 살기도 힘든데 자가소유 주택을, 그것도 시내 한복판 삼청동에 가지고 계시는 것 자체가 이슈거든요.
이창직 : (민망해하며) 허허허. 이사 수 십 번 다니고 대출에 대출 끼면서…
||조영호 : 오늘 ‘연극인생 33년, 부동산 장만하기’를 소개해주세요.
이창직 : (민망해하며) 허허허. 공연 관련한 인터뷰 아니었어?… 뭐 연출하는 사람이 부동산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
조영호 : 부동산에 관한 독립영화도 하나 찍었어요. ’더하우스’라고. 개봉해야 하는데 극장도 부동산장사라, 쉽지가 않네요.
이창직 : 대한민국 뭐든 그렇지. 부동산이랑 꼬여있다고.
조영호 : 그래서 더 궁금해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연극하면서 주택장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창직 : 그래! 비법을 알려줄게. 처음 결혼을 하고 91년도에 계동에 500에 7만원짜리 월세집에서 신혼을 시작했어. 그 다음에 1500짜리 전세로 옮겼지. 이때까지만 해도 단칸방 생활에서 못벗어났는데, 애가 태어나고 방2개짜리 전세로 옮겼지. 그러면서 96년도에 빚을 내서 대학로에 승희(아내이자 연극배우)가 ‘허수아비’라는 막걸리집을 시작한 거야.
조영호 : ‘허수아비’ 정말 유명했죠. 현금을 막 퍼날랐다는 전설의 막걸리집!
이창직 : 그정도는 아니었고, 막판에는 적자가 좀 있었어. 암튼 난 그 뒤에 난타를 한 3년 하면서 세계 방방곡곡 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때 장모님과 합쳐서 아이들을 맡기고 온가족이 힘을 모아 일을 했거든. 그러다가 2003년에 시립극단 오디션을 보고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하게 된거야. 연봉이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한거지. 그 해에 삼청동에 엄청난 대출을 끼고 집을 산거고, 지금도 이자를 엄청 쏟아 붓고 있어요. 허허허.
조영호 : 2003년이면 대출 왕창 해주던 부동산 거품시기네요.
이창직 : (웃음) 그런 식이지. 허허허. 그 바람에 집 있어서 연극인 지원 혜택 같은 거 신청도 못해보고 굶으면서 살고 있다우.
조영호 : 아티스트답게 엔딩을 씁쓸하게 표현하셨지만, 실은 그 사이에 승희선배님은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장사, 밤에는 공부를 해서 대학교수까지 하시고 현재 통합예술치료 박사과정도 밟고 계시니;; (조영호 연출은 작년 2013년에 이창직의 아내 이승희 와 연극[분장실]을 공연한 바 있어 근황에 빠삭하다)
||이창직 : 그러게 승희가 고생 많았지. (웃음) 속 사정 잘 알면서 뭘 물어봐.
조영호 : 인터뷰잖아요. (웃음) 그러는 와중에 방송이나 영화 출연도 짬짬이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창직 : 응, 2008년 영화 ‘신기전’부터 시작해서 최근 ‘관상’까지 꾸준히 했지.
조영호 : 서울연극제 연기상도 수상하신 적 있죠?
이창직 : 외부작업을 통해 상을 받긴 했지. 2004년에. 세종은 배우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니까.
조영호 : 꾸준히 연간 몇 작품씩 세종 무대에 서시지만, 이번 ‘봉선화’ 앵콜은 좀 뜻깊으신 것 같아요. 얼마 전 대학로에서 뵈었을 때도 강추하시고.
이창직 : 아, 이 작품 정말 한국청년이라면 꼭 봤으면 하거든. 친일파와 애국부인(위안부 독려하던 부인들)이 사학재단을 만들고 대학이사장이 되어 부를 독식하는 가운데, 그들이 위안부의 아들을 사위로 맞게 되면서 집안의 근본을 파헤쳐나가는 외손녀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이야기인데, 작년에 초연 때보다 더 사실적인 배경을 그려주고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해.
조영호 : 아, 저도 올해 12월 국립극장에서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땅싸움을 소재로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각색해서 올라갈 예정인데, 정말 요즘 같은 현실은 과거로 돌아가서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야 할 때 같아요.
이창직 : 그렇다니까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작품이 올라간다는 것은 한국 연극인들의 의식세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기도 하지.
조영호 :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니까요!’ 그럼, 식사하러 가실까요?
이때 봉선화에서 외손녀딸 및 위안부로 출연하는 여배우들을 만나 한 컷 찍는다.
이창직과 조영호, 노천카페에서 일어나 세종로 뒷골목 맛집의 세계로 떠난다.
사진/'봉선화' 여배우들 사진 순서 (왼쪽부터) 이경, 김현정, 박수현, 강보미, 김정아(조연출)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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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조영호의 Rehearsal Take
S#1. 무용연습실
고등학생들이 한창 무용연습을 하고 있다.
그들 중 여고생 조영호의 모습도 보인다.
곧 청년 박윤희가 연습실로 들어와 훈련에 합류한다.
S#2. 탈의실 앞
남녀 탈의실에서 각각 나오고 있는 박윤희와 조영호.
박윤희 : (불쑥) 학생, 무용과 가나봐?
조영호 : (잠시 주저하다가) 아니요, 취미로 하는 거에요…
박윤희 : 좋네, 고등학생이 취미생활도 하고! 대학은 안 가?
조영호 : (자신있게) 연극과 갈거에요!
박윤희 : (놀라며) 그으래..?! (가방을 뒤적인다) 나도 연극 하는데!
조영호에게 연극 초대권을 내미는 박윤희.
S#3. 공연장 안
객석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연극을 관람 중인 조영호.
Camera pan, 무대 위 수많은 ‘말’ 중 하나로 출연 중인 박윤희.
‘앨런’으로 출연 중인 배우 조재현이 “에쿠우스!”를 외치면서 F.O.
S#4. 서울예대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과 신입생들이 모두 드라마센터 대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북을 들고 있는 조영호.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린다.
뒤돌아보면,
환한 미소로 서 있는 박윤희 C.U.
자막 : 24년 후
S#5.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로비.
두 여기자 장민영과 구하나, 배우 박윤희와 인터뷰 중이다.
장민영 : 박근형 연출과의 작업은 이로써 2번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윤희 : 배우들한테 많이 맡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연극에 대한 어떤 틀이나 기본 등, 지켜야 하는 것들을 많이 파괴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재능이나 그런 걸 자유롭게 많이 열어주시는 분이세요. 아주 꼼꼼하게 대사 읽는 것부터 하나하나 체크해 주시는 분들과도 작업해 봤는데, 박근형 연출은 무대 올라가서 정 아닌 것만 빼달라고 요구 하는 분이에요. 그리고 일단은 본인 극단 작업 외에 나머지 외부 배우들을 데리고 할 때는, 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긴가? 잘하는 배우들을 캐스팅 하시는 분이세요. 검증된 배우들을 캐스팅 하는 분이죠. 그러니까 스스로 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아무튼 배우들한테 자유롭게 많이 맡기시는 분입니다.
구하나 : 연습 중 연출과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인가요?
박윤희 : 박근형 연출과의 술자리는 거의 매일. 하하. 그리고 술자리에서 작품얘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과거 얘기하기 좀 그렇겠지만, 그전에 제가 처음 시작 할 때는 술자리에서 정말 연극얘기 정말 많이 했거든요. 작품 얘기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그랬죠. 근데 어느 순간 그런 자리가 없어졌어요. 서로 너무 과하게 배려하다 보니 술자리에서는 작품 얘기 잘 안 하게 되고, 서로 간섭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이제는 선후배 배우들 간에 갭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박근형 선생님은 워낙 술을 좋아합니다. 정말 달콤하게 술을 마시는. 어제도 또 한잔 했는데,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술자리를 통해서 은근히 고민을 많이 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이십 여 년을 넘게 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안 와요, ‘아 공연이 이틀 남았는데 내가 그걸 해결 못했구나’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요. 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화가 필요하고 또 자기점검을 위해 연습 끝난 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거의 가요.
장민영 : 연극만 하면서도 건실하게 가정을 꾸리는 몇 안 되는 남자배우신데요, 어떤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윤희 : 군대 전역한 89년도에 입단한 실험극장부터 연극 이력을 시작을 해요. 그 때 데뷔가 최민식 형과 했던 에쿠우스였구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요. 저는 제가 잘생긴 줄 알았어요. 탤런트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우가 되려면 기초를 쌓으려면 연극을 해야 된다. 지금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이 많잖아요. 사실은 저도 굉장히 막연하게 시작을 했어요. 지금은 근데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됐고, 가장 흥미롭고. 그리고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이십 몇 년을 하더라도 정말 연기 하는 거 어렵고, 캐릭터 만드는 거 어렵고, 받았던 지적을 또 받고... 매일 그래요. 근데 그게 너무 재밌어요. 지금은 연극해서 먹고 살지만, 연극해서 먹고 산 지 불과 2~3년 밖에 안됐어요. 이십 여 년은 못 먹고 살았어요. 항상 아르바이트 했구요. 요즘은 또 이렇게 관이나 단체, 국립극단, 명동, 두산 같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니까 저축은 못 하더라도 가족 건사하면서 사네요, 두 딸하고 집사람하고 같이 사는데. 생활비 정도는 돼요. 처음엔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연극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면 곧 어려움이 닥치죠. 하다가 막히면 공부도 하고 알면 알수록 점점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계속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도 봤지만 떨어지고... ‘그래, 연극을 하자.’ 참고 버티다 보니 지금 이제 연극배우가 된 겁니다. 어찌되었든 연극은 지금도 여전히 제게 가장 흥미로운 일입니다.
구하나 : 하다가 막히면 공부를 했다고 하셨는데, 서울예대 연극과도 일을 하다가 뒤늦게 가신 건가요?
박윤희 : 제가 공부를 못해서 다른 전문대에 갔었는데 적성에도 안 맞았죠. 그 뒤 실험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연극을 하면 안 되겠구나.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서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이 나이에, 근래에는 대학원도 수료를 했어요. 늦은 공부를 하다 보니, 점점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지고, 알아야 될 것도 많아서 공부는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장민영 : 지금은 남산아트센터로 바뀐 드라마센터에서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작품 주인공을 꿰차서 당시 대학로의 엄청난 기대주였다고 들었어요. 배우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힘들었던 작품 소개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다 힘들어요. 연극은 다 힘든데, 다 재미있구요. 음, 사실은 근래 했던 작품은 다 인상 깊어요. 역할도 좋은 역할을 맡았고, 좋은 연출가들하고 작업하고, 할 때마다 사실 관심을 가져주셔서요. 하지만 터닝 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하나가 있죠. ‘심판’이라는 작품인데, 그게 제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한 작품이에요. 대학 졸업작품에서 주인공을 하고 대학로로 나갔지만, 매일 단역하고 조그만 역만 하다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 한 작품이에요. 인상 깊다기 보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죠.
장민영 : 그걸로 신인상을 받으신거죠?
박윤희 : 네. ‘심판’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 작품을 준비할 당시, 집이 경기도였는데 연습실까지 왕복으로 3시간 반이 걸리더라구요. 그 시간을 아껴서 연습을 하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사람의 양해 하에, 연습실 위에 있는 고시원을 잡아서 생활했습니다. 원래 집에서 나오는 시간에 연습장으로 내려와서 연습하고, 배우들이 다 가고 나서도 계속 연습하다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고시원으로 올라와서 자고 그랬죠. 그렇게 두 달을 했어요. ‘아 이거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죠. 주인공 누가 함부로 안주잖아요. 그렇게 준비했던 게 나름대로 조금 결실을 맺었고, 그 이후에 사실 일이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네, 그래서 그 작품을 잊을 수가 없어요.
구하나 : 연극,뮤지컬,영화,드라마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양한 매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이거 어려워요. ‘여러분들 꿈을 가지세요, 힘을 내세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배우의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 힘든 과정을 20년 동안 버티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에요. 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단기목표를 가졌으면 해요. 그래야 자꾸 슬럼프가 안 생기거든요. 목표를 너무 멀리 두면, 슬럼프가 생겨서 쉽게 지쳐버려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백각이 불여일행’ 이에요. 백번을 깨달아도 내가 한번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연극 하는 사람들 중에 연극을 조금 했다고 비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 번 말 하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행동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든 걸 알고 그걸 견디는 게 중요한 거지, 깨닫는 것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S#6. 서재
인터뷰 장면이 한 장의 사진으로 Dissolve되어 책상 위 모니터에 나타난다.
Camera track out 되면, 듀얼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조영호.
그녀는 기사의 마지막 문구를 적고 있다.
모니터 위로 신문명조체의 글자가 빠르게 타이핑 된다.
자막 : “혹자는 백 번의 움직임보다 한 번의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오늘 배우 박윤희는 깨닫는 것보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하루하루를 견디라고 말하고 있다."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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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1세기의 세계화 시대, 창의력 갖춘 전문 기술인 양성”
사진설명/김포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양승돈 학과장, 김영현 교수, 고영욱 교수와 학생들(사진)
정보산업사회의 고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면서, 지와 덕을 겸비한 인간형성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이론과 기술을 연마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고 있는 김포대학교. 지난 12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4 청정-가평 제23회 전국합기도선수권대회에서 경찰행정학과 양승돈 학과장을 만났다.
# 이번 합기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비결과 소감은?
우수한 학생의 입학은 질 높은 학교 교육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상 입학하는 학생의 경우 무도단증 1-2개는 기본적으로 취득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수업시간 외 시간을 활용해 집중지도 한 것이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 이번 대회는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이 관련대회에 더 많이 참가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학과장님이 학생들에게 가장 중점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요즘 학생들이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지만 인성이 배제된 자기개발은 사상누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정신력을 함양하고 기본적 인성을 가진 전문인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경찰행정학과의 어떤 학과인가. 교육목표와 비젼은?
국민의 안전과 신체를 보호하고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데 근간이 되는 경찰 분야와 개인의 사유재산의 안전.보호하는데 근간이 되는 경비.경호 분야를 중심으로 경찰 분야 및 경비.경호 산업 등에 관련된 체계적인 기초지식 및 이론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서북권지역 유일학과로 특성화, 공항 등 지역과 연관된 경비.경호 분야 취업루트 개발이라는 세 가지 교육목표를 수립해 공공안전인력이라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 그렇다면 경찰행정학과 운영방향은?
경찰행정학과는 서북권내에 위치한 대학교 중 우리대학교에만 신설한 유일한 학과로, 우리 사회는 갈수록 ‘위험사회’의 요소들이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직윤리와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전문과목 및 행정분야의 다양한 지식, 실무능력을 습득해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사회의 복잡 다양한 문제해결을 위한 관련분야의 전문지식을 함양해 증가하는 치안 및 민간 안전관리 분야의 전문지식을 배워 치안과 민간 안전 분야의 수요와 군의 전문화된 인력 수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필요성을 반영해 사회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봉사와 일치시킬 수 있는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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