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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리허설 테이크
S#2.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로비. 두 여기자 장민영과 구하나, 배우 박윤희와 인터뷰 중이다.
장민영 : 연출과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인가요?
박윤희 : 박근형 연출과의 술자리는 거의 매일. 하하. 그리고 술자리에서 작품얘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어제도 또 한잔 했는데,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술자리를 통해서 은근히 고민을 많이 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이십 여 년을 넘게 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안 와요, ‘아 공연이 이틀 남았는데 내가 그걸 해결 못했구나’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요. 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화가 필요하고 또 자기점검을 위해 연습 끝난 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거의 가요.
장민영 : 연극만 하면서도 건실하게 가정을 꾸리는 몇 안 되는 남자배우신데요, 어떤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윤희 : 군대 전역한 89년도에 입단한 실험극장부터 연극 이력을 시작을 해요. 그 때 데뷔가 최민식 형과 했던 에쿠우스였구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요. 저는 제가 잘생긴 줄 알았어요. 탤런트가 되고 싶었어요. 사실은 저도 굉장히 막연하게 시작을 했어요. 지금은 근데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됐고, 가장 흥미롭고. 지금은 연극해서 먹고 살지만, 연극해서 먹고 산 지 불과 2~3년 밖에 안됐어요. 이십 여 년은 못 먹고 살았어요. 항상 아르바이트 했구요. 요즘은 또 이렇게 관이나 단체, 국립극단, 명동, 두산 같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니까 저축은 못 하더라도 가족 건사하면서 사네요, 두 딸하고 집사람하고 같이 사는데. 생활비 정도는 돼요.
구하나 : 하다가 막히면 공부를 했다고 하셨는데, 서울예대 연극과도 일을 하다가 뒤늦게 가신 건가요?
박윤희 : 실험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 내가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서 전공을 했습니다. 근래에는 대학원도 수료를 했어요. 늦은 공부를 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지고 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장민영 : 배우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힘들었던 작품 소개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터닝 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하나가 있죠. ‘심판’이라는 작품인데, 그게 제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한 작품이에요. 졸업작품에서 주인공을 하고 대학로로 나갔지만, 매일 단역하고 조그만 역만 하다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 한 작품이에요. 인상 깊다기 보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죠.
장민영 : 그걸로 신인상을 받으신거죠?
박윤희 : 네. ‘심판’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아 이거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죠. 주인공 누가 함부로 안주잖아요. 그렇게 준비했던 게 나름대로 조금 결실을 맺었고, 그 이후에 사실 일이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네, 그래서 그 작품을 잊을 수가 없어요.
구하나 : 연극,뮤지컬,영화,드라마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양한 매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이거 어려워요. ‘여러분들 꿈을 가지세요, 힘을 내세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배우의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 힘든 과정을 20년 동안 버티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에요. 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단기목표를 가졌으면 해요. 그래야 자꾸 슬럼프가 안 생기거든요. 목표를 너무 멀리 두면, 슬럼프가 생겨서 쉽게 지쳐버려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백각이 불여일행’ 이에요. 백번을 깨달아도 내가 한번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연극 하는 사람들 중에 연극을 조금 했다고 비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 번 말 하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행동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든 걸 알고 그걸 견디는 게 중요한 거지, 깨닫는 것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조연출이 다가와서 뭔가 얘기한다
박윤희,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연습장소로 들어간다.
F.O.(편집/조영호, 취재/구하나, 장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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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경호 경비쪽에서 한 획을 긋고 싶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 현대사회는, 고도로 지능화된 다양한 유형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이나 가정뿐 아니라 기업이나 시설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능.사고력.정보를 의미하는 ‘INTELLIGENCE’와 안전.보호.경호를 의미하는 ‘SECURITY’의 의미로, 외국 대통령과 한국의 경호기관에서 다년간 근무했던 요원 및 현장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지닌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 인텔리젼스 씨큐리티 박상현 대표이사를 만났다.
# 현재 한국 경호시장은?
한 마디로 현재는 과도기다. 예전에는 운동 좀 했거나 조직폭력 등의 동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용인대가 국내 최초의 경호학과 개설로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전국 대학에 용인대 출신들이 현재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또 전공자들을 계속 배출하다보니 예전에 있던 사람들과 전공자들이 섞여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정리가 돼 미국이나 일본처럼 원자력발전소, 항만 등이 민간인들에 이양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상승평준화로 한국의 인력이 굉장히 좋아 과도기가 지나면 경호시장은 상당히 좋아 질 것으로 전망된다.
# 그렇다면 ㈜ 인텔리젼스 씨큐리티가 타 업체와 차이점이 있다면?
일반 경비원을 탈피해 고객을 향한 전문 경호와 경비시스템을 운영한다. 외국 대통령 경호 및 한국 대통령 경호 및 기타 공경호 기관 등 풍부한 경호 경력을 활용해 고객의 안전과 행복을 충족시키고 있다. 기존 경비는 60대 이상의 노령화된 근무자였다면, (저희 회사는) 20-40대의 유단자들로 구성됐다. 수시로 경호, 경비요원들의 상황대처능력 교육 및 업무수행능력평가를 통해 범죄자들을 현장에서 제압이 가능하다. 특히 타 경호업체와 비교한다면 마인드가 다르다.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용인대학 경호학과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실기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우수하다.
# 경호원의 자격 또는 구비조건은?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도는 기본이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일반적이 아니다보니 VIP를 위한 희생정신이나 가치관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경호원이라 할 수 없다. 지시만으로는 안 되고 경험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위기대처 능력과 순발력을 겸비해야 한다. 또한 많은 책을 통해 교양을 쌓는 것과 함께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 그동안 경호활동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봉고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는데 야당 쪽에서 과격한 반대로 군인들과 경찰특공대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지금 대통령이 되신 당시의 국방부 장관이 운전중 바리케이트를 넘어서다가 총격을 받기도 했다. 또 말라리아도 두 번이나 걸리기도 했다. 특히 가봉 같은 경우에는 공권력이 세서 사실 치안은 좋은 편이었지만, 개인휴대물로 실탄 50발을 항상 소지했다. 가봉은 프랑스 식민지여서 불어를 사용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6천명-8천명 정도 거주했고, 한국인들은 교민들을 다 합쳐 100명 정도로, 불어로 중국인을 ‘시누아’라고 불렀다. ‘시누아’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돈 많은 중국인이란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하하는 말로 우리말로 굳이 옮기면 ‘짱게’ 정도 된다. 상당히 불쾌해 어떻게 혼내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마이클 잭슨을 경호 했을 때는 숙소 신라호텔 옆방을 경호원들이 사용한 적도 있고, 피아니스트 막심 무라비차 전속 경호담당, 2002년 FIFA WORLD CUP 각종 경호, SM 엔터테인먼트사 소속 연예인 전속 수행경호, 히딩크 감독 수행, 골프선수 박세리, 피겨여왕 김연아, KFA 정몽준 회장, 오페라-아이다, 카르멘 VIP 수행경호 등 각종 스포츠 경기의 경호를 맡았었다.
#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는?
쟁쟁한 대기업이 많지만, 개인적인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그들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자본금이라던가 규모는 작지만 어떤 임무가 맡겨진다면 어떠한 큰 회사보다 더 뛰어난 수행능력이 있다.
# 앞으로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등 사회적인 문제들로 인해 경호의 필요성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럴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만,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급격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의뢰 건수가 조금씩 많아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상현 대표이사는 끝으로 “회사 대표이면서도 지금도 필드를 누비고 있다. 우리나라 경호원이 20만 명 정도로, 운동하던 사람, 주먹 쓰던 사람 등 다양하다. 하지만 경호는 고객의 마음까지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런 가치관과 마음가짐을 가진 경호원들이 구축돼 있어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후배에 떠밀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벌써 7년차가 됐다. 민간 경호 경비 쪽에서 한 획을 긋고 싶은 개인적 인 바람이 있다”면서,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경호업체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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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과 여성적 감수성으로 햄릿 재해석’
2014년은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기를 기념하는 해다. 현대적인 감각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움직임과 다양한 영상이 더해진 극단 물결의 ‘햄릿, 여자의 아들’의 송현욱 연출을 지난 3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났다.
Q. 올해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인데, 특별히 ‘햄릿, 여자의 아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혹은 이 작품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사실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450주년이었다.(웃음) 현재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05년도에 이미 한번 각색해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햄릿을 해석해보고자 했고, 언젠가 꼭 제대로 된 극장에서 올리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었으나 여유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여러모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극장규모, 출연진, 무대...여력이 없어 햄릿을 올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해에 ‘돈데보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이 사후 지원작으로 선정돼 지원받게 됐다. 이게 어쩌면 내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리게 되었다.
Q. ‘햄릿’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각색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인데, 각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A. 햄릿을 볼 때 마다 ‘to be or not to be. Death the question?'의 이분법적인 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삶이고 죽음인지, 그리고 무엇이 사랑이고 증오인지 등의 많은 갈등, 인생에 대한 많은 수수께끼 때문에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에 하나가 여성적인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Let (it) be‘라는 것을 마지막에 얘기한다. ’그냥 놔두자‘ 굉장히 순리를 따르게 되는 말이다. 언제든 올 것은 오고 안 올 것은 안 오고, 신의 섭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햄릿이 분노와 슬픔을 갖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욕망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남자들은 ‘어머니와 창녀’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데, 그런 편견을 넘어서 차츰 변하게 된다. 오필리어에 대한 잘못, 어머니라는 모성신화에 대해 갇혀 있었던 사고들이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간이기에 무엇이 진실인지, 정의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 무수한 고민을 했고, 또한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의 최고봉인 햄릿이 ‘Let be’가 되어가는 과정은 여성에 의한 변화라고 보았다. 오필리어와 거트루트를 통한 변화라고 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는데 사실, 원작에서는 왜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독이 든 것을 알고 마시는지, 모르고 마신건지, 아들에 대한 감정은 어떤 것인지, 남편에 대한 마음은 어떤 것인지 나와있지 않다. 저는 어머니가 독배를 마신 사건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Q. 이 작품에서는 거트루트가 독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마시는 것으로 보았는데?
A. 그렇다, 알고 마신다. 결국은 아들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를 다 포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가 원수일 수 있지만 거기에서 그 누구에게도 신념을 포기하라고 종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두 남자가 극한까지 다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 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쪽모두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적인 세계관이 햄릿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상상해본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마지막 부분이 조금 다르게 연출됐다.
Q. 이 작품은 무용과 연극을 결합시켰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A. 요즘에 TV를 켜면 다양한 채널이 정말 많고 드라마도 영화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TV나 영화와 같은 스타일의 연기를 해서는 거리감도 있고 또 공연장을 일부러 찾아오는 관객에게 같은 스타일의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다 스타일리쉬하고 연극적인 스타일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영향이다. 추상조각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때문에 새미 앱스트랩을 무척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작품이 여성적이고 실존적이거나 스타일은 반추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관객들이 접하게 하고 싶고 이런 새로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갖게 됐다. 즉, 방송이나 매체의 연기와는 다른,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Q.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선이 매우 아름답다.
A. TV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편집의 예술, 그러나 연극은 배우 예술이다. 온전히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몸의 선, 동선마저도 미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그러면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이것은 꼭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A. 저희 극단 스타일이 무용과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고 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좀 어렵게 볼 수는 있지만 (제) 연극을 보는 시간동안은 굉장히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즐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요즘의 시대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현대에 필요한 것은 어머니적인 세계관이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정의를 찾는다는 것은 불의가 있어야 정의가 있는 것이다. 남성들의 세계는 수직와 수평, 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본인들은 수평이라고 하지만 그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고 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상.하, 좌.우로 나눠져 있으나, 여성적인 세계관은 원이다. 모든 것을 두루두루 안아주고 끝과 시작의 경계가 없는 그런 세계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보니, 관객들이 많이 우시던데, 본인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우시는 것도 기대하진 않았지만 좋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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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Rehearsal Take
사진/안토니오 페트리스 연출가
(인터뷰) 연출 안토니오 페트리스-오페라 아티스트 전병호-솔오페라단 노이룸 부단장
S#1. 예술의 전당, Café Bauhaus (Day, In)
이탈리아 연출가 ‘안토니오 페트리스’가 오페아 아티스트 ‘전병호’, 그리고 솔’오페라단 ‘노이룸’과 함께 앉아있다. 그들은 연출가 ‘조영호’와 인터뷰 중이다.
조영호 : (페트리스에게)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떠한가?
페트리스 : 정말 훌륭하다. 음감이 정확하고 해석이 훌륭해서 이탈리아 배우들과의 합작에 전혀 무리가 없다. 기대 이상이다.
노이룸 : 옆에 계셔서가 아니라, 페트리스 교수는 정말 전병호씨 칭찬 일색이다. 민망할 정도다.
전병호 : (쑥스러워하며) 이번이 두 번째라 호흡 맞추는 게 훨씬 편했다. 2년 전에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함께 했다.
조영호 : (페트리스에게) 한국은 두 번째 방문인데, 어떤 것이 주로 인상 깊게 느껴지나?
페트리스 : 방문 기간 내내 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정말 새로운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로 사람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 가장 흥미로운 존재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국인들도 나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조영호 : 나도 이탈리아인 연출가를 만나는 건 처음이라 지금 매우 이 자리가 흥미롭다.
페트리스 : (크게 웃으며) 그거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든다! 경복궁을 가 봤는데, 이런 멋진 공간을 만들어낸 한국’인’들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처럼!
조영호 : 멋지다. 정말 연출가적인 관점이다. (전병호에게) 페트리스 교수는 매우 유쾌한 사람인가?
전병호 : 페트리스 교수는 재미있는 장면을 잘 만든다. 오페라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페트리스 교수가 연출하는 오페라는 완전한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극의 해석으로 인해 코미디를 유발시킨다. 그것이 오페라 연출의 실력인 것 같다.
노이룸 : 실제 코미디를 정말 많이 유발시키는 인물이 바로 전병호씨가 연주하는 네모리노 역할이다. 똑 같은 장면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페트리스 : 코미디는 어렵다. 어렵지만 해결하고 난 뒤 만족감이 크다. 게다가 어느 정도 음악이 해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완성도가 있어서 뮤지컬처럼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병호는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 코미디의 힘이 매우 큰 연주자이다.
전병호 : 과찬이다. 그건 극의 해석이 만들어주는 재미요소인 것 같다. 페트리스 교수는 그냥 동선만 짜는 연출가가 아니다. 짧은 기간에도 모든 장면을 해석해주고 이해시키는 지적인 사람이다. 그 에너지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다.
노이룸 : 전체적으로 연출가와 전병호씨의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좋아하는 감각도 비슷하고! 이번 솔’오페라단과 로마 오페라극장의 이런 대규모 합작이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웃으며) 사실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 오페라의 대중화와 수준 높은 공연문화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조영호 : 한국의 오페라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이번 [사랑의 묘약]은 상대적으로 큰 사업규모인 것 같은데, 경제논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노이룸 : 경제논리로 보면 이런 의미 있는 작업은 하기 힘들다. (웃으며) 오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총체적인 종합예술이다. 이 분야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탈리아는 이미 대중적인 오페라임에도 대부분 국가지원으로 공연을 이끌어낸다.
전병호 : 많은 한국인들이 음악가로써 세계적인 위치에 있고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행보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학 강의 또는 레슨을 빼면 순수하게 공연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연주자가 드물다. 행사도 약간은 하고...
조영호 : 한국에서의 예술가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백조’란 말인가? 우아하지만, 쉼 없이 발을 저어야 하는…
모두는 웃는다.
전병호 : 이외수씨가 그랬던가. 예술을 선택하고 배부르고자 하냐고…?
조영호 : 연극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오페라 쪽은 그나마 조금 더 부유하게 보였는데… 조금 우울해진다.
전병호 : 밖에서는 그렇게 보이나? 아니다. 우리는 ‘예술일용직노동자’이다.
다시 일동 웃음.||사진/[사랑의 묘약] 오케스트라 지휘자 잔카를로 데 로렌조를 비롯한 출연진(사진 좌측 두 번째 전병호 오페라 아티스트, 좌측 일곱 번째 조영호 선임기자)
조영호 :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산업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유럽에서도 산업혁명 후 소극장 문화가 생기면서 사실주의 연극이 주를 이루었고, 이후 시장이 커졌다. 물론 시대의 요구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대중이 있다. 오페라는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페트리스 : 물론 오페라도 변하고 있다. 현대적인 해석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근본이 흔들리는 재해석 작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매우 파격적인 오페라를 시장에 내놓기도 하는데, 간혹 대중들이 너무 낯설어하며 주제에 대한 왜곡을 하기도 한다.
조영호 : 이탈리아가 오페라 종주국이라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있을 것 같다.
페트리스 : 물론 이탈리아인으로서 오페라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긴 하지만, 뭐든 정형화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근본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걸 즐긴다.
조영호 : 아드리아 국립 음악원에서 오페라 교육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수업을 맡고 있나?
페트리스 : 기초적인 발음부터 오페라연기 훈련은 물론 극장의 역사, 복식사까지 다양한 수업을 하고 있다.
조영호 : 현장에 한국인들도 많이 있지 않나?
페트리스 : 훌륭한 재원들이 많다. 오페라에 국적 혹은 인종의 문제는 없다.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은 해석과 음악의 힘이 실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영호 : (전병호에게) 한국의 오페라 교육은 어떠한가?
전병호 : 지금은 대학과 현장에서 연출가를 키워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연주자는 많다. 대부분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분들이고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이들을 데리고 섬세한 해석으로 무대에 올려줄 연출가가 부족한 현실이다.
조영호 :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페라 공연이 많지 않은 국내 현장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법도 하다.
전병호 : 독일에서 9년간 오페라 공연을 하고 왔는데, 한국은 연출가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작업을 하기 어렵다. 더구나 오페라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작업 환경상 디테일한 연습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연주자가 해석과 표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작업하는 오페라 연주자들만의 과제인 것이다. 좋은 연출가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산업적으로 오페라 시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도 많은 조율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영호 : 결국은 정책이 또 문제다. (노이룸에게) 국내는 현재 스타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한 뮤지컬 시장이 비대해진 상황이다. 기획자로서 오페라만의 매력을 언급한다면?
노이룸 : 단 한가지! 오페라는 몇 천 석 극장에서도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
조영호 : (깨달음) 아하!! 새삼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진다. 완전한 음악적 검증은 오페라에서만 살아있다는 뜻인가?
노이룸 : 바로 그거다. 오페라는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장르이다.
전병호 : 음악이 그렇다. 30대에 시작해서 세계 최고가 된 파바로티가 그 상징 아닌가?!
조영호 : 희망이 느껴진다. (페트리스에게) 마지막으로, ‘솔’오페라단과 다시 한번 작업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싶나?
페트리스 : 음… (고민하다가) 베르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음악적으로 한국 연주가들과의 작업은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에 다시 한다면 O.K.이다.
마침, [사랑의 묘약] 오케스트라 지휘자 잔카를로 데 로렌조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café 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모두 반갑게 인사하며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서서히 F.O.
조영호 선임기자.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칼럼니스트. 現 극단'매미들' 상임연출가, (주)네오무비 대표, 예술교육공동체 NABA CENTER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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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
하남문화원 부설 하남향토문화연구소 이강범 소장은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관내의 유적지 및 일본과 중국의 하남과 관련된 유적지를 일일이 답사하며 적어온 답사일지와 ‘도미나루가 사사하는 백제도성’, ‘한산의 소재연구’라는 두 편의 논문을 모아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책자를 1월 29일 발간하였다. 이강범 소장은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지역에 대한 역사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우리지역의 역사를 등한시 한데서 온 것이라 말하며, 시민이 알아야 하고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져야만 역사 정체성 확립은 가능한 일이라며 본인이 집필한 책이 시민들로 하여금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소장은 본인이 사비를 들여 발간한 1000부의 책자들 중에서 하남시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700부를 하남문화원에 기증,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이 소장이 출간한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의 책 내용은 하남에 산재한 대부분의 문화재 및 유적지가 수록되어 있으며, 일일이 답사하며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저자의 사견을 첨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지역의 문화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고, ‘도미나루가 시사하는 백제도성’, ‘한산의 소재연구’라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하여 우리지역이 한성백제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어 시민들로 하여금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남문화원 유병기 원장은 이 소장께서 사비를 들여 만든 소중한 책자를 기증해 주신데 대하여 매우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고, 문화원 주관으로 출판기념회를 기획하였으나 저자의 고사로 인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책자의 내용이 우리지역의 역사를 알리는데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 뿐 아니라 일찍이 우리지역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료들이 발간되어 시민들에게 홍보 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번 이강범 소장의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는 책의 출간과 함께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지역의 고대 정체성에 대하여 시민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포문을 연 것이라 매우 기쁜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 소장님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시민들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하남문화원은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의 책이 하남에서 널리 읽힐 수 있도록 각계 기관 및 단체, 학교 등에 배포하기 위하여 발송부를 준비 중이며, 아울러 이강범 소장을 모시고 하남시민들을 위한 하남역사 특강을 준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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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김병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을 바꿔 보세요!
하남시 신장도서관은 오는 12월 19일(목) 오전 10시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김병완 작가와의 대화’를 갖는다.
이번 강연은 ‘독서로 위대한 인생을 살아라!’를 주제로 11년차 직장인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경험과 인생을 바꾸는 독서법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공부법, 독서법, 기업 경영전략 분석, 인물비평, IT 등 경계를 넘나들며 신들린 작가로 불리는 김병완 작가는 2011년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48분 기적의 독서법’을 시작으로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글쓰기’,‘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오직 읽기만 하는 바보’, ‘마흔 즈음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등 1년 9개월 동안 39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김병완 작가와의 만남으로 독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나아가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하였다.
하남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며 12월 3일 신장도서관 홈페이지
(http://hanamlib.go.kr/silib)의 ‘도서관 행사 신청’란을 통하여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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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곡역장, 대통령 취임식 특별초청 대상자로 추천
부천시는 원미구 중4동에 거주하는‘아름다운 철도원’김행균 역곡역장을 2월 25일에 열리는 제18대 대통령취임식 특별초청 대상자로 추천했다.
김행균 역곡역장은 2003년 영등포역 근무 중 역구내 선로에서 아이를 구하고 새마을호 열차에 양발을 잃는 사고를 겪고 1년간의 치료 후 현업으로 복귀, 살신성인의 자세와 불굴의 재활노력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었다.
김 역장은 이후에도 매년 1월 인천, 부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기 위하여 정동진 해돋이 열차여행과 태백산 눈썰매장을 6회에 걸쳐 총 1,620명을 무료 초청하였으며, 역곡역 나눔의 쌀독을 운영하여 총 220포(20kg)의 쌀을 인근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의 정을 실천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신 것 뿐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을 돕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 김행균 역장님이 우리 부천에 계신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귀감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광장에서 열리는 제18대 대통령취임식에 부천시는 김 역장과 ‘자원봉사 실천가’ 이규섭씨, 김만수 부천시장, 한선재 부천시의회의장 등 총 4명을 참석대상자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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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포천 교육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내
어느덧 2011년 한해도 역사의 한페이지로 남기고 대망의 2012년 임진년의 새해가 밝아 오고 있다. 올한해를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다. 연초부터 구제역 파동에 기록적인 폭우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던일...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어렵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우리시 교육현장에도 사상 유래 없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얼마전 공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시가 전국 최하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경기도내 25개 교육지원청 중 3위을 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관인고등학교는 교과부 선정 전국 100대 학력향상 우수학교에 선정되었으며 도평초․이곡초․포천노곡초등학교는 전국 1위라는 영광을 얻었다. 1년 사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데에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교육’ 분야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넉넉하지 않은 시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한 포천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업성취도 향상의 주역은 일선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님들이다. 3년 연속 학업성취도 최하위라는 결과를 받고 교사 및 학생들의 의욕상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의 실망과 질책의 의견을 극복하고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무엇보다 ‘우리 포천도 잘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면에서 이번 결과를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선 교사들이 흔들리지 않고 학업향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며 전심전력을 기울인 이철웅 포천교육지원청 교육장의 공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업성취도 최하위라는 성적표를 받고 교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위축되었을 때 보통의 관리자처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들을 격려하고 학교현장을 더욱 자주 방문하여 교사와 학생들의 사기를 올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포천시청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시청에서 추진하는 학력향상 프로그램인 으뜸인재 육성프로그램과 자랑스러운 학교 육성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총력을 경주하였다.
특히 이철웅 교육장은 포천시청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간담회’ 시 매번 참여하여 교육 전문가로써 또는 가정의 아버지로써 본인이 경험한 자녀의 교육방법을 얘기해서 참석한 학부모들의 공감을 얻은바 있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명문고가 아닌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오히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며 포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키는데 의구심을 가졌던 학부모들을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얼마든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철웅 교육장님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분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하였다.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 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꿈도 꿀수 없는 일이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고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셨던 이철웅 교육장님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포천교육의 앞날이 걱정된다. 이제 막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우리의 꿈이 깨어지지 않도록 이철웅 교육장님이 우리의 꿈이고 미래인 우리아이들 곁에 남아 얼마남지 않은 마지막열정을 쏟아 붓게 할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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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옹기 맥을 잇는 젊은 옹기장, 해남 유영채씨
사라져 가는 전통옹기의 맥을 잇는 젊은 옹기장의 도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유영채씨(48세). 지난해 ‘땅끝전통옹기’의 문을 열고 장독 등 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이곳 공방에서 생산되는 옹기는 전량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 지고 있어
살아 숨쉬는 옹기 본연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기계화된 방식으로 옹기가 대량생산되면서 전통옹기를 찾아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옹기는 찰흙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내서 적당한 습도와 통풍이 가능한 것인데 아무래도 기계로 찍어내서 그대로 붙이게 되면 옹기 특유의 특성이 사라지게 되죠”
수작으로 옹기를 만드는 일은 일일이 흙을 치대고, 여러 개의 판을 이어붙이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이 기계화된 방식에 비해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한사람이 하루종일 만들어내는 옹기가 최대 8말크기(160ℓ) 기준 8개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솔잎재와 부엽토 등 자연에서 얻어낸 순수한 재료를 이용해 천연 유약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차이점이다. 음식이 직접 닿는 그릇이기 때문에 특별히 유약제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합성 유약을 쓴 옹기보다 색깔이 옅은 것이 특징이다.
장을 담가먹는 가정이 줄어들고, 가볍고 실용적인 용기들이 넘쳐나면서 옹기를 만드는 옹기장의 대부분이 60~70대일 정도로 전통옹기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유씨는 10여년 전부터 옹기의 매력에 빠져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발효식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옹기입니다. 이렇게 좋은 옹기의 맥이 끊기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고향인 땅끝에 옹기공방을 차리게 됐죠”
다행히 최근 웰빙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전통장류 사업들이 다양하게 추진되면서 수작업으로 옹기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고.
유씨는 우리 옹기를 옹기를 생활속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땅끝을 전통옹기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땅끝을 찾는 관광객들이 옹기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전통의 우수성을 느낄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켜 옹기를 알리는데 역할을 하고싶습니다”
전통의 길을 찾아나선 젊은 옹기장의 물레질 소리에 땅끝 해남에서 옹기가 다시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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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순수를 화폭에 담다”
행복하여, 행복에 겨워 그래서 더욱 행복한 모습을 말이라는 모델을 통해 순수한 행복을 표현한 작가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 수송동에 있는 갤러리 고도에서는 박동진 이라는 순수하고 행복한 작가의 개인전을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6일까지 전시하며 행복리라는 개념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골목길을 달려가는 꼬마들 행렬의 끝이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에 따라 갔다가 발견한 목마의 모습에서 밝고 순수한 아련함을 보고 말을 작품에 등장시킨 박동진 작가는 “말이 저예요”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띄운다.
박동진 작가는 7년전 위암 수술을 받아 현재 온전한 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다. 자신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한 작가는 작품에서도 과거의 암울하고 어둡던 것을 벗어 던지고 밝고 희망찬 작품들로 변화되어 있다.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와 ‘행복한 동행’, ‘자유를 꿈꾸며’, ‘낙원’에서는 작가의 순수와 행복이 극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희망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베어나오고 있다.
‘북경에서 온 바람’에서는 다소 대조적인 붉은 말과 흰 눈을 대조시키고 있지만 포근함이 묻어나고 있으며, ‘낯선’에서는 꽃향기에 취해 잠시 갈 방향을 상실한 듯 하지만 희망과 행복이라는 주제는 변함이 없다.
돋을새김(점묘법) 기법을 통해 말의 형상을 점을 모아 완성하고 있지만 이 또한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갤러리 고도 김순협 관장은 “박동진의 작품에는 무지개 빛 말들이 화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거나 즐겨 사용하는 원기둥 구 등의 상징적 기호와 함께 나오거나 때로는 가로수를 배경으로 등장한다”며 “모두 꿈을 꾸는 말들이며 어딘가를 향하는 말들이다. 우리는 그가 인도하는 길로 같이 동행할 뿐. 한 재능 있는 작가에 의해 행복한 세상이 열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 박동진은 “목마 위에 앉아 함박웃음을 지은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그 아이를 지탱하고 있는 목마의 흔들림을 보고 있자니 ‘살아있는 순수함’이 어떠한 것인지 절로 느낄 수 있더군요. 목마의 떨림, 그 순간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하면서 말(목마)은 제 그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또한 “끊임없이 위협받고 공격당하는 순수성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는 듯 힘찬 움직임을 자랑하는 말부터, 돋을새김의 점을 통해 완성되는 형체로서의 말까지. 비록 모습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지만, 이들을 통해 끝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며 “그림 속에 말을 전면으로 내세움으로써 ‘순수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믿음을 지켜내려는 제 스스로의 노력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박동진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현재는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환경영상미술제실행위원장, 인천아트페어운영위원장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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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오늘 행복하여라”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며 사랑한다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살아생전 “사랑실천”을 위하여 무던히 노력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사랑실천”을 따라하는 꼬마작가가 있어 감히 “꼬마천사”라는 표현을 써 본다.
인사동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서 8월 2일까지 펼쳐지고 있는 경인미술관초대 이데레사 개인전 “그대 오늘 행복하여라”에서는 추기경의 “사랑실천”이 넘쳐나고 있다. “수익금 전액을 장애시설 ‘미카엘라 집’ 건축기금으로 기부한다”는 이데레사 작가는 자신의 전시회에 동참하고 있는 딸에 대하여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 서양화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표현하고 있는 작가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작품을 보며 자라 이미 화가라는 칭송이 어색하지 않는 9살 천재화가의 어우러짐이 전시장 가득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9년부터 전시회를 가져온 꼬마천사 미카엘라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기 직전 혜화동 거처에서 산책을 함께한 몇 안되는 사랑의 대상이었으며, 고 김수환 추기경도 일찌감치 꼬마화가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사랑실천”의 전수자로 생각한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작품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몇 줄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으로 받은 몇 장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고 추기경의 “사랑실천” 정신을 작은 손으로 앙증맞게 표현하고 있는 꼬마천사 미카엘라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한없는 편안함과 순수함, 순수한 정신세계에서만 표현될수 있는 해학을 동시에 엿볼 수 있어 행복하다.
초대작가 이데레사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움과 사랑이 가득히 표현되고 있다. 한국미협과 한국예술여성작가회, 신미술회, 전통미술대전초대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꾸밈없는 사랑과 절대자유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또한 환경단체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오염되고 있는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에도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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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과학이 만나다”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이 2차원적 평면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입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시도되고 있지만 3차원적 입체작업에 과학적 기술을 접목시키는 화가가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면적 작업을 뛰어넘어 입체적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성기 화백이 2002년 가나아트센터인사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을 당시 국내 미술계는 상당한 동요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 동요를 태풍으로 만들고 있다.
이성기 화백은 자신의 여행지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을 화폭을 통해 전달하고 있으며, 3차원을 넘어 그림에 과학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선보이고 있어 놀람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화백의 작품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평면작업을 마친 뒤 2차적으로 입체를 가미하고 있으며 이 위에 3차적 작업과 과학적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갤러리 각에서 오는 6월 7일까지 전시되는 작품에서 작가의 실험과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으며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961년 부산사범대를 졸업하고 미술교사의 길을 걷던 이 화백은 45세가 되던 1986년 돌연 미국행을 선택하여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대학 1학년부터 다시 공부하는 특이한 행보를 보여준다.
저지시티 스테이트유니버시티를 거쳐 아트 스튜던트리그 오브 뉴욕에서 1995년까지 공부를 다시한 화백은 이후 독창적인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연출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그림을 통해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다.
2002년에 이르러 이성기 화백의 작품은 평면을 떠나 3차원적인 입체로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당시 이 화백의 작품을 접한 많은 젊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체적 작품을 이어가던 화백은 2011년에 이르러 과학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또 다른 미술의 영역을 탄생시키고 있으며, 작가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이성기 화백은 “빛을 통해 생명력을 창출하고 싶었다”며 “평면이면서도 뒷면을 볼 수 있는 3차원을 통해 통쾌함을 맛봤다”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만족감를 표현했다.
또한 “평면에 그리고 입체감을 준 뒤 과학적 기술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음 전시에서는 또 다시 바뀐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이성기 화백의 오프닝 행사에는 장미 작가로 유명한 심명보 화백이 동참하여 축하해 주었으며, 갤러리 각 한형배 관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작품으로 작품성과 창조성 모두가 아주 우수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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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각, “이근신 특별 초대전 열다”
“나는 그리도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동물이나 신이 아닌 사람인지라 언제인가부터 술을 들게 되었다. ...... 그러더니 그놈의 술이 한 술 더 떠서 슬그머니 나를 들려 하지 않는가? 술이 사람을 들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 이근신의 “술을 끊고” 서문
화력52년 및 고희기념화집 발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진원로작가 “이근신 화백의 특별초대전”이 인사동 ‘갤러리 각’(대표 한형배)에서 열리고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특별초대전은 4월 2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196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였고 1980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이근신 화백은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화를 선사하고 있으며 현재 상형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근신 화백은 이미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중견원로작가로서 평론가 김인환 전 조선대교수는 “이근신 작품세계의 특징을 말한다면 추상충동에 의한 구상적 표현의 절충양식에서 비롯되는 초월적 이미지의 발현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고 평론하고 있다.
또 “이근신의 새로운 작품에서 느껴지는 ‘개방성’은 과거의 작품이 지녔던 중간 톤의 암울한 색조와 안으로 조여드는 구심적 구성이 노랑을 주조로 하는 명랑한 색조와 평면적 구성으로 바뀌면서 어우러지는 열린 느낌이라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김인한 평론가는 “의도적인 이지적 구성 보다는 우연적인 잠재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결과인 듯하다”며 “따라서 이렇게 빚어진 화면은 유연성을 발휘하여 현대사조의 특징 중 하나인 ‘열린 사조’와 맥을 같이하게 된다”고 평했다.
||갤러리 베아르떼 수석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박종철 화가는 이근신 화백의 작품을 “범속하지 않은 리얼리즘”이라며 “일반적인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표현주의적 추상미술 작품이다. 천진난만한, 누구나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근신 화백은 “예술은 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하나의 화가가 그 시대의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시대양식을 이끌어가던가 아니면 적어도 그 양식의 범주에서 낙오되면 안될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우리는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변화를 도모할 때에도 그 변화의 방법을 인간이라는 목적에서 분리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인간 본연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근신 화백은 “가르치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은 다 같이 서두르지 않는 여유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미일 것”이라며 본인은 화가인 동시에 교육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근신 화백의 특별 초대전 오프닝 행사에는 홍익대 동창들과 고교 동기들 그리고 많은 지인들이 동참해 축하해 주었으며, 상형전 박성현 회장이 축사를 맡았고 김자숙 시인이 “참 좋은”이라는 시로 열기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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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o, 내용보다 음악으로 이해해 주시길” 희망
“네가 군대 가던 날 너무 많이 울어서 네가 떠나가던 마지막 모습도 볼 수 없었어/ 네가 떠난 그날 밤 너의 친구들이 모여서 나를 위로해 준다며 그 자리에 나를 불렀어/ 모두 취한 밤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너와 제일 친한 녀석과 둘이 남아서 이런 저런 얘기 주고 받다가 한 잔 두 잔 술잔 주고 받다가/ 오. 나 어제 기억이 안 나 정말 도데체 무슨 일이 생겼었는지/ 나 아무 기억이 안 나 정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애써 웃어 보이며 기다린다 했지만 사실 이년이란 시간은 나에겐 너무 벅찼었어/ ............... 솔직히 말할게 나 기다리지마”
군에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실을 솔직-담백하게 폭발적인 가창력을 갖고 노래로 선사하고 있는 가수가 있어 네티즌들이 뜨거운 찬반논란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전세계를 강타하는 와중에 SM엔터테인먼트의 ‘신비’라는 아이돌그룹으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은 가수 오상은. 그러나 신인 그룹과 가수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축구의 열풍은 이들이 스타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냉정한 현실을 감수해야 했던 오상은은 이후 백제예술대학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본인만의 음악세계를 가다듬어 왔으며, 2009년에는 ‘미스에스’ 객원보컬로 활동을 했고 현재 테일런스미디어에 안착해 “NeMo”(니모)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스타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테일런스미디어 ‘티-프로젝트’ 선두 주자로 나선 가수 “니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와 음악에 대한 열정, 장래의 희망을 들어보았으며, 가수로서 대중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소중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된 “통보”의 가사가 일부에서는 ‘선정적이며, 버림받은 이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어떻냐’ 등 찬반의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반응에 가수 “니모”는 “어느 정도는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했지만 이정도로 나타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가사의 내용보다는 음악으로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자신의 간절한 희망을 피력했다.
가수 “니모”는 ‘빅마마’와 ‘4MAN’, ‘바이브’와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하면서 이들로부터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고 있어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특히 ‘바이브’의 류재현이 PD를 자처하여 멘토링을 해주고 있으며 함께 의기투합해 큰 성공을 이루기를 희망했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가수 “니모”는 ‘아이돌과의 대결에서 이겨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고 아이돌은 아이돌의 영역이 있는 것이고 저는 저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의 추세와 현재 음악차트를 보면 보컬리스트들이 사랑받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보컬로서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장래의 희망에 대해 “제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다”며 “꾸준히 노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은미 선배나, 이소라 선배처럼 늘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으면 한다. 나만의 스타일의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단독콘서트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니모”라는 이름에 대하여 질문하자 “우연히 결정하게 되었는데 원래 물을 좋아하는데 물속에서 더빙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돼서 물고기 니모의 이름을 생각했고 그걸로 정해서 오상은이 아닌 니모가 된 것”이라며 활동명의 선정이 우연한 계기로 정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158센티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폭발적 가창력을 선보이고 있는 가수 “니모”의 승승장구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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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보 교수 “연기는 빈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느낌의 작업”
“연기를 통해 보는 세계는 늘 새롭게 다가온다. 연기를 하면서 늘 갈망한다. 또 다른 세계를 계속 찾아 가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연기에 대한 욕심을 채워 가고 싶고, 학생들에게 그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고 또 전달하고 싶다.”
스스로 대학교수가 아닌 ‘배우 장인보’라고 주장하는 장인보 교수의 흔적을 뒤돌아본다.
- 배우이자 교수인 장인보와의 첫 만남.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를 알게 됐다. 기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 하며 늘 그렇듯이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왠지 모를 정체성에 자꾸 머릿속에 돌고 도는 이 남자...훈훈한 미소를 가진 이 남자. 끌린다.
인터뷰를 하기까지 망설이고..생각하고...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그와 만났다.
교수이기에 배우 장인보 라는 사람은 조연으로서 여러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서 많은 활동을 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떤 작품을 위해서 늘 긴장하고 준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연기과 교수로 미래의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 수줍은 많은 소년, 연기의 꿈을 꾸다.
그의 나이 서른 중반. 아직 배우로서의 욕심과 수많은 도전이 한창 일 때이다. 아직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이른 나이(?)아닐까? 배우와 교수로서의 삶을 들어 보기 위해 그의 짧은 인생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심지어 모델 활동까지 한 장인보 교수.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을 것 같은 그에게서 들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실로 놀랍기 까지 했다. 초등학교 4~5학년 까지는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새 학기를 맞이하고 거의 1년이 지난 후 같은 반 친구에게서 “너 우리반 이였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 였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가정 형편과 사채업자들의 방문(?)은 그를 더욱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끌고 갔다. 그러다 고1, 친구들 장난에 떠밀려 억지로 나가게 된 학급 장기 자랑에서 노래를 부르고 받은 박수는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에 대한 주목과 박수에 미묘한 매력을 느낀 그는 그 후로 누군가에게 박수 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때 그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어둡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가요제에 나가서 인기상을 타게 되었고, 그 후로 이란 공연에 섭외가 되었고, 뜻하지 않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많지도 않은 대사를 잊어버려 많은 NG를 내면서 오히려 연기에 대한 도전과 열정이 더해 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기를 잘해 보고 싶다는 욕심,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지금까지 연기를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수줍고, 정체성 없었던 소년에서 남들 앞에 서는 배우로의 인생 최대의 반전을 시도했다.
- 조연 배우에서 대학 교수로
현재 그는 배우에서 교수로 잠깐 외도중이다. 교수라 하면 오랜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인생의 굴곡을 겪은 후 생기는 연륜 등을 겸비한 중년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장인보 교수는 이제 갓 서른 살의 교수다.
오히려 현장 감각과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젊고 매력적인 교수. 방송연예학부 전임교수라는 자리를 얻기 위해선 높은 경쟁률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경험과 노련한 나이 지긋하신 유학파 출신들의 교수들도 많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잠시. 어떻게 보면 그의 현장감각과 열정이 한성전문대 총장에게도 인터뷰 때 큰 점수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그의 대학교수로서의 시작도 가슴 아픈 사건에 의해 시작된다. 대학시절,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위험한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 때,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고, 나만의 욕심보다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작된 연기 학원 강사일과 과외를 시작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점점 더 큰 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성전문대학교에서 방송연예학부 전임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자신감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밀어 붙였다.
총장님과의 면접에서 자신의 열정과 자신감, 배우로서의 현장감 등으로 어필하여 결국 전임교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동안 교수의 꿈을 늘 꾸고 있었습니다. 배우 활동을 하면서 그 꿈을 계속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 시기는 제가 중년이 된 후를 목표로 삼아왔던 것이지, 이렇게 빨리 교수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어요. 후회는 없지만 너무 빨리 찾아온 이 큰 자리는 배우로서의 꿈을 잠시 접어야 할지, 병행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갖게 합니다.”라며 배우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았다.
- 제자들이 진정한 배우로 탄생하기 위해
진정한 배우라면 꼭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단번에 “그야 당연히 진실성이죠.”라고 대답한다. 배우가 진실함으로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배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단호한 생각이다.
“배우가 본인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내가 나를 믿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진 내 이미지에 스스로가 갇히게 되고 연기를 하면서도 외로움과 회의 등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가식이 아닌, 진실성을 강조해요.” 그 진실성을 위해 수업 초반에는 자서전 쓰는 것을 과제로 낸단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유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 수업을 진행하면서 거칠기만 했던 한 남학생이 본인 얘기를 하면서 그동안 숨기고 억눌러왔던 눈물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또한 장 교수는 학교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타 학교에 비해 하드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롱런하는 배우들보다 반짝 배우들이 많은 현실은 쉽게 테크닉만 익혀서 연기를 하려는 지망생 또는 연습생들과 기획사의 짧은 생각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테크닉만 익혀서 하는 연기는 곧 깊이에 대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로 인해 연기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방황하는 연기자들이 많다고 하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의 하드 트레이닝은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먼저 연기의 한계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들이 그 안에서는 잘 자라다가 비닐을 걷어내면 쉽게 죽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쉽게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다.
- 꿈..인생..고독..두려움 그리고 연기
다가올 미래에 대한 꿈을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환한 미소와 강렬한 눈빛으로 장애인 센터 극장을 세우는 것이라고 답한다. 장애인들이 좋은 공연을 쉽게 즐기고, 또 그들이 직접 공연을 할 수도 있는 자신의 이름을 건 센터. 하지만 이 큰 꿈을 빨리 이루기 위해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란다.
오랜 기간의 준비와 계획을 통해, 내가 당당하게 내 이름의 센터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해 나갈, 평생의 꿈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학생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고 싶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교수라는 자리에 안주해서 자기 개발을 미루는 안일한 삶은 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본인 역시도 배우로서 언제든 활동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그와 더불어 생생한 현장 경험까지 전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 연기의 완벽함??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장인보 교수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참 무서운 게, 예술과 연기는 내가 이제 좀 하네 라고 스스로 잘한다 싶으면 그 때부터 무너지는 게 연기라고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연기란 완벽함이 없는 예술이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현재 제일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유능한 노배우, 노연출 예술가(학과장 전임교수)들이 학교에서 내려오지 않는 부분이다.
“역시 사람인지라 생활이 편해지게 되면 다시 어려운 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안정직에 있다 보니 예술(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 부분이죠. 다시 배고파지고 피곤해 질테니...”라며 그는 끝내 말끝을 흐렸다.
또한 장 교수는 배우는 죽을 때 까지 끊임없이 배워야 해서 배우라고 한다. 자기중심과 깊이와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미래의 상상을 하며 정진하라고 그는 얘기한다.
그와 나눴던 몇 시간의 인터뷰. 일반 인터뷰가 아닌 막 짧은 연극 한 편을 우리가 만들어 공연을 하고 나서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진정 그의 연기 철학과 그에게 배우는 학생들만큼은 세상의 찌든 그 어떤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진실 담긴 연기를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최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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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샤프펜슬로 완성한 작품” 박미현 작가의 “연습”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 이를 갈고 닦아 예술의 최고 경지에 이른 이들의 작품을 우리는 명작이라는 표현으로 예찬하고 있으며, 그 작품들은 고가에 거래되어 소장자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인고와 노력을 해야 하고, 작가들은 혈실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상을 추구한다. 그러한 결과물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또한 작품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 유화를 비롯하여 수채화, 판화, 묵화, 조형, 조각, 금속공예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료와 소재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오늘은 본 기자가 우연히 만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인상이 날카로운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예리한 모습을 본 것은 작년 11월 24일 종로에 있는 갤러리 고도에서였다. 본인의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친구의 전시회 오픈을 축하해 주기 위한 자리에서 동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지에 샤프펜슬로 완성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박미현 작가. 첫 번째 주장은 “류 작가만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애교 섞인 항변이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기자들에게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며, 덕분에 본 기자의 입에서 “박 작가님 기사도 실어 드릴게요”라는 약속을 얻어낸 상황이 발생했다.
나름대로는 미술작품을 많이 보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막상 작품도 보지 않고 한 약속이 ‘경솔한 것 아니었나’ 고민하는 찰라 박미현 작가가 슬그머니 건넨 엽서 트기의 “練習(연습)”이라는 초대장을 보고는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하는 감탄과 약속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B4 크기의 종이를 두 번 접어 연하장 크기로 만든 초대장에는 작품 10점과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며, 한지와 샤프펜슬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조화를 이루어내는 또 다른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한지 위로 샤프펜슬의 흑연이 퍼져 나가는 느낌은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면서도 펜에 비해 필압이 덜했다”며 “처음에는 기름 먹인 두꺼운 한지였는데 유지는 장판지로 쓰일 만큼 견고한데다 연필과의 궁합이 나쁘지 않았다. 유지에 묻은 흑연은 잘 지워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색도 좋았지만 유지를 주재료로 하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며 한지를 선택한 배경을 이야기 했다.
||박미현 작가는 “기름이 고르게 배이지 않은 유지는 같은 종이 안에서도 건조 시간이 달랐다. 특히 한여름에는 기름을 많이 먹은 부분이 끈적거려 작업에 적절한 상태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표면을 잘 다져 비교적 매끄럽게 만든 한지가 압착으로 표면의 밀도가 높아 수채화지나 판화지보다 흑연이 뭉치지 않고 잘 퍼진다.”며 한지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박 작가는 “비록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유지가 가진 매력도 포기할 수 없어 적절한 표현방법을 모색 중”이라며 “새로운 재료들과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중”이라고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작품전의 제목을 “練習(연습)”이라고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몸에 習(습)을 붙이는 일과 다름없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내친 김에 사전을 찾아보니 연습에는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이라는 뜻도 있었다. 작업은 내게 주어진 조건들을 잘 살피고 단련하여 익숙하게 하는 일이므로 연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내 모든 작업이 ‘練習(연습)’인 셈이다”라고 겸손함을 표현했다.
작품에 나타난 형상들에 대하여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이미지에 대한 선호가 있으나 이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언젠가 플라톤이 우주의 생성을 요소론으로 설명하려 한 내용을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며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단테는 ‘신곡’에서 불행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은유로 사람은 착한 사각형, 정육면체라고 노래하기도 한다”며 처음부터 플라톤의 입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그 연관을 발견하고 의식하게 된 것임을 설명했다.
또한 “좀처럼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의 소박한 답을 얻었다”며 “어설프게나마 내가 얻은 답이 담겨 있다. 그리고 형상들은 대체로 ‘기둥 모티프’의 조합과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형태의 조각이 각기 다른 조합들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며 자신이 완성한 작품에 대한 접근법을 알려 주었다.
유화로도 드로잉처럼 작업 하고 있다고 밝힌 박미현 작가는 새로운 소재의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유지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 더욱 정진할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8월로 예정되어 있는 박 작가의 전시회를 더욱 기대하게 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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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직 7급 필기시험 출제경향과 대비전략에 대한 수험전문가들의 조언
2010년 7급 공채 필기시험이 지난 9일 경기, 강원 부산 등 12개 지역에서 치러졌다. 이번 시험에서는 원서를 제출한 2만 1,180의 수험생 중 9,708명이 응시해 45.8%의 응시율을 보였다. 각 시도에서는 이번 시험을 통해 총 52명을 선발한다. 이처럼 선발인원이 소수인데다가 올해 마지막 공무원시험이어서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험생에서 부터 내년에 재도전을 노리는 수험생들까지 수험가 분위기는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벌써부터 수험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시험의 출제경향을 파악하고 향후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등 분주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에 온라인 교육사이트 에듀스파(www.eduspa.com)와 남부행정고시학원 수험전문가들이 함께 이번 7급 지방직 시험의 출제경향과 내년도 대비전략을 정리했다. 국어 이미 치른 국가직 7급과 같이 대체로 무난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이번 지방직 문제의 특이한 점은 독해가 8문제가 출제되었다는 점이다. 그 밖에 문법 문제는 7문제가 출제되었으나 쉬운 편이었고, 한자, 한문 문제는 4문제가 출제가 출제 되었으나 무난했다. 문학은 시문제가 1문제 출제됐는데 시어를 파악하는 문제였다. 유두선 교수는 “국가직에서도 독해 문제가 강조되었다는 것을 볼 때 내년도 수험생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라며, “독해는 지문이 길어지고 문제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체계적인 독해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어 2010년 국가직 7급은 어휘 2문항, 숙어 1문항, 문법 4문항, 영작 3문항, 생활영어 2문항, 독해 8문항이 출제된 2010년의 국가직 7급과 비교하면, 어휘, 생활영어에서는 늘어났고 문법, 영작은 줄어들었으며 숙어와 독해는 동일한 문항이 출제됐다. 심상대 교수는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지방직에는 일단 원서는 접수하고 난 다음 자신감이 없는 많은 수험생들은 시험당일 응시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국가직보다 결시율이 높다보니 외견상 어휘나 숙어, 독해 등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 2010년 국가직 7급 한국사가 워낙 난이도가 낮았기에 그에 비해서는 좀 난이도가 올라간 듯하나, 사실 한 두 문제를 빼고는 중상 정도의 평이한 문제였다. 또한 이번 7급 시험에서 한국사 전범위에 걸쳐 기본 개념을 제대로 공부한 수험생들은 세계사와 우리 역사의 동시대를 묻는 문제와 낯선 사료 1, 2문제를 빼고는 무난하게 풀 수 있었다. 선우빈 교수는 “2009년도 지방직과도 문제 수준은 크게 차이는 없었고 몇 년 전 부터 7급에서도 부각되는 수능형 지문문제나 한국사 능력검정시험문제처럼 다양한 화보와 사료 제시형 문제가 많이 제시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법 국가직 7급과 지방직 7급의 경우 난도와 출제경향 모두 대동소이했다는 분석이다. 총론문제가 14문제, 각론문제가 6문제 비율로 출제된 것도 동일하다. 그 이외에는 기출지문의 재활용 등 이미 출제된 내용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최신판례도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난이도는 지방직 7급이 다소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김유환 교수는 “지방직 7급의 경우 각론에서 지방공무원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국세기본법의 구체적 내용을 묻는 문제가 출제돼서 법령에 관한 암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다소 까다로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학 지문이 많이 길어진 것이 올해 국가7급과 작년 지방7급 시험에 비할 때 가장 큰 특징이다. 매우 지엽적인 문제도 2문제나 출제되어 학생들의 체감난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험이다. 하지만 지문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기본개념에서 평이했다는 분석이다. 방성은 교수는 “앞으로 긴 지문에 익숙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단순 암기식 공부패턴에서 벗어나 기본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비정형적 문제에 대한 이해력과 사고력을 묻는 문제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헌법 2010년 국가직 7급시험이 예년에 비하여 쉽게 출제된 것과는 달리 2010년 하반기 지방직 7급시험은 지금까지의 출제경향의 중간정도의 난이도였다. 결론적으로 이번 지방직 시험이 국가직 시험에 비하여 다소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정인홍 교수는 “헌법을 기본서의 목차에 따라서 헌법총론, 기본권론, 통치구조론 등으로 크게 3등분할 수 있는데, 헌법재판이 포함되어 있는 통치구조론이 가장 출제빈도가 높았던 기존의 경향을 유지했다”고 조언했다. 또한 정인홍 교수는 판례에서도 “헌법문제는 헌법이론을 묻는 문제, 헌법조문을 묻는 문제, 부속법령을 묻는 문제, 판례의 내용을 묻는 문제 등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판례의 내용을 묻는 문제의 비중과 문항수, 난이도 등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조언했다. 경제학 수탁 방식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지방직 7급 경제원론 시험은 국가직 경제학 시험에 비하여 난이도가 다소 높게 출제되었으며 특히 계산문제의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지방직 7급 경제원론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시행됨에 따라 그 출제수준과 경향에 관심이 높았다. 박지훈 교수는 “미시경제학 9문제, 거시경제학 9문제, 국제경제학에서는 국제무역이론에서는 출제 되지 않았으며, 국제수지이론에서만 2문제가 출제되었고 이 중에서 계산문제는 6문제였다. 특히,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동향지수, 미국의 금리 동향 등과 같이 시사적인 문제들이 2문제 출제되었으나 기초적 시사상식과 이론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론 너무 평이하게 출제되어 변별력이 떨어져 행정학의 지방행정파트 만으로도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이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에게 지방운영의 사활이 걸릴 정도로 아주 중요한 테마인 지방재정 파트가 1문제밖에 출제되지 않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방성은 교수는 “올해 지방7급은 첫 시험이니만큼 아주 쉽게 출제되었으나 내년 시험에서는 기존 서울시 자치론과 같이 지엽적인 문제가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니, 깊이 있는 학습과 기본개념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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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시(시장 조현일)는 29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성공적인 교육발전특구 추진을 위한‘경산형 교육발전특구 지역협력체 간담회 및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경산시장과 경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여 교육기관, 대학 및 유관기관 등 23명으로 구성된 지역협력체 위원과 박채아, 차주식 도의원 및 전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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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군-조선대학교, 지역발전과 글로벌 도약을 위한 업무협약
- 신안군은 지난 4월 30일에 조선대학교 본관 청출어룸에서 지역발전과 글로벌 도약을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식에는 박우량 신안군수를 비롯한 신안군의 문화, 관광, 예술, 교육, 정원 분야의 관련 공무원들과 김춘성 조선대 총장, 조윤성 미술체육대학장, 김현우 대외협력처장, 위성옥 대외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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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군, 5월 정례조회 개최 … 현장행정 통한 능동적인 업무 추진 강조
- 담양군(군수 이병노)은 1일 군청 면앙정실(구. 대회의실)에서 공직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월 정례조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례조회는 어린이날과 보건의 날 유공대상자에 대한 표창도 함께 진행됐다. 이병노 담양군수는 4월 한 달 ‘금성면 고비산 산벚꽃 축제’, ‘수북면 몽성산 피라미드 축제’ 등 각종 축제 및 현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