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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29 18: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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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박이소: 기록과 기억’전을 이달 26일부터 오는 12월 16일까지 MMCA 과천 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 전시장 내부

 

[강병준 기자]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박이소: 기록과 기억’전을 이달 26일부터 오는 12월 16일까지 MMCA 과천 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박이소(1957~2004)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뉴욕의 미술현장을 이끄는 미술담론과 전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한국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여러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두 미술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당시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으로 양분돼 있던 국내 미술계에서 그가 보여준 ‘경계의 미술’, 예컨대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처럼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순적인 반응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그의 미술세계는 이후 세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한국현대미술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색했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1997), ‘타이베이비엔날레’(1998), ‘요코하마트리엔날레’(2001), ‘베니스비엔날레’(2003)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했고, 2002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던 중인 2004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박이소: 기록과 기억’은 작가 사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작가의 유족이 대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규모 회고전이다. 당시 기증된 자료는 박이소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984년경부터 작고한 2004년까지 약 20년간의 작가노트를 포함한 드로잉, 교육자료, 전시관련 자료, 기사, 심지어 재즈 애호가였던 작가가 직접 녹음, 편집한 재즈 라이브러리에 이르기까지 수 백점에 이른다.

 

 

▲ 전시장 내부

 

 

전시는 서로 교차되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시간적 흐름을 따라 펼쳐진 한 축은 작가 박이소의 연대기로, 뉴욕과 서울로 이어지는 약 20년간의 작품 활동을 대표 작품과 드로잉, 아카이브 등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시간을 자르면서 가로지르는 다른 한 축은 세 겹의 층으로 구성된다. 가장 중심에 작품의 씨앗에 해당하는 20년간의 작가노트들을 두고, 드로잉을 포함한 아카이브가 이를 둘러싸고, 끝으로 실제 작품이 그 모두를 한 번 더 감싸는 구성이다. 이 다층구조를 통해 관객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싹이 튼 후 실제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작가노트 21권은 1984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졸업에서부터 2004년 작고 직전까지 작업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것으로, 뉴욕 유학 당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후기 대표작인 ‘당신의 밝은 미래’(2002) 아이디어 스케치까지 엿볼 수 있다.

 

설치 드로잉은 1990년대 중․후반 회화에서 입체와 설치로 확장․전환되는 시기에 다수 제작된 것으로 각각의 드로잉은 완결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다양한 전시환경에 따른 전시효과를 검토하고 개념을 다듬기 위해 꼼꼼히 적은 정보와 지시문은 마치 설계도처럼 정교하다.

 

이번 전시에는 ‘2001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출품한 ‘무제를 위한 드로잉’(2000)과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받은 해에 그린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2002) 도 소개된다. 이와 함께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쓰리 스타 쇼’ ‘블랙홀 의자’ ‘당신의 밝은 미래’ ‘베니스 비엔날레’ 등 대표 작품 50여 점을 통해 박이소 작품세계의 전개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호모 아이텐트로푸스, 종이에 아크릴 물감, 콜라주, 76x56cm, 1994

 

뉴욕에서는 본명 박철호 대신 ‘박모’(某:아무개)라는 이름을 사용한 작가는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작품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동시에 펼쳐나갔다. 특히 브루클린 지역에서 실험적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해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 리더로서 주목 받았다.

 

당시 작가가 아닌 사회 활동가로서의 기록들과 서로문화연구회, 집필활동, 스터디모임 등의 자료들은 화려한 전시회 이면에서 진행됐던 박이소의 숨은 노력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1995년 신설된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의 교수직을 맡아 귀국 후에는 ‘박이소’(異素: 낯설고 소박하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새로운 방식의 미술교육을 정립키 위해 애썼다.  SADI,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작성한 강의계획서, 평가서 등 각종 교육 관련 아카이브는 당시 그가 고민했던 미술교육의 대안 모델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함께 작가는 생전에 약 200여 개의 재즈 테이프를 직접 편집하고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이제부터 남은 생애 동안 이것만 들을 생각’이라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재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달랐다.

 

특히 빌리 조엘의 ‘Honesty’를 한국어로 번안해 직접 부른 ‘정직성’은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왜” 그리는가의 질문으로 초점을 바꾼 자신에게 던지는 답인 것처럼 그의 삶의 태도와 맞물려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박이소는 1980~9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면서, “작가의 작품세계가 집약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지형도에서 그의 위치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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