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실시된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남 28.8%, 여 21.9%)이다. 이는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에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정신질환의 일년 유병률은 11.9%(남 12.2%, 여 11.5%)였다. 지난 1년 동안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약 470만 명으로 추산된다.
# 턱없이 부족한 중증 정신질환자 재활 시설
정부는 중증 정신질환자 수를 전 국민의 1%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2016년 12월 현재, 전국적으로 정신장애인 및 정신질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정신재활 시설의 정원은 7,081명이었다. 전 국민의 1%(50만 명)를 중증 정신질환자로 추정할 경우 ‘정신재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정원은 중증 정신질환자 대비 1.4%에 불과하다. 아래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마저도 정신재활 시설이 수도권에 집중(51.6%)된 점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는 시설의 공급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다.
또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으로 병원으로부터 탈원화는 용이해졌다. 그러나 원가정이나 지역사회로 돌아갈 곳이 없는 정신장애인들은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거나 노숙인으로 전락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표 2>는 우리나라 정신재활 시설의 유형별 현황을 보여준다.
# 침해 가능성이 높은 정신장애인의 인권
플라톤은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고 말했다. 이 글로부터 짐작해보자면, 장애인 인권 침해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중세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중에는 정신장애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식적 이해의 수준이 높지 않았던 관계로 이들은 개인과 국가에 의해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왔고 정치적·사회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일본 등이 전쟁 과정 중 인간에게 행한 각종 생체 실험이나 유태인 집시에 대한 집단 학살, 정신장애 아동에 대한 안락사 등은 인간 생명에 대한 차별과 경시로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경각심을 높이고자 ‘세계 인권 선언’이 마련되었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불임을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 부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1990년 6월, 호주의 브라이언 버드킨에 의해 탄생한 ‘버드킨 보고서’는 세계 최초의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보고서로 다양한 측면에서 정신장애인의 삶을 조사했다. 당사자 중심의 변화, 정신보건 재정의 확충,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 정신과 병상 수의 감소, 소비자와 보호자의 참여 증가, 그리고 편견 해소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이 보고서는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해도 조금의 손색도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2년 4월 발표된 미국의 부시 보고서는 미국의 정신보건서비스 체계 구축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직업 및 주거, 사례관리, 재활과 의료서비스의 융합을 통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포괄적 정신보건서비스 체계의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소비자 중심의 옹호 활동 증가에 따른 정신장애인과 가족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신장애인에게 인권이란 다른 집단에 비해 침해의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차별, 낙인, 배재 등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보호와 증진이 어려운 만큼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 외부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정신장애인 정책의 문제점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인간의 기본적 자유과 권리를 선언한 최초의 국제문서인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되었다. 여기에 규정된 대부분의 권리는 오늘날 국제 관습법의 일부이다. 그래서 규범적 성격의 「세계 인권 선언」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 결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규약」과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이 1976년 발효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2개의 국제인권조약 이외에도 「인종차별 철폐 협약」, 「여성차별 철폐 협약」, 「고문 방지 협약」, 「아동 권리 협약」 그리고 「장애인 권리 협약」에 가입해 있다.
장애인 권리 협약이란 어떤 종류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이다. 장애인 권리 협약에서 장애는 발전하는 개념으로 장애인은 사회 참여가 어려운 장기간의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 이는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에 보다 주목한다는 점에서 의학적 손상만을 근거로 장애인을 규정하는 국내법보다 더 발전적인 것이다. 장애인 권리 협약 위원회는 2014년 9월 30일에 열린 165차 회의에서 최종 견해를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 결정과 등급제 시스템을 재검토하여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에 따라 개별화하고, 정신장애인도 욕구에 따라 복지서비스와 함께 개인별 지원이 되도록 확장시킬 것을 권고했다. 또한 신체의 자유 및 안전 측면에서 정신보건법을 근거로 자유를 박탈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정신장애인을 그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채 장기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을 비롯해서 정신장애인의 높은 시설 수용 비율에 우려를 표현했다.
이에 앞서, 2013년 OECD가 발표한 ‘한국 정신건강 정책 리뷰와 제안 사항’을 통해 OECD가 바라본 대한민국의 정신건강의 수준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온 OECD의 권고 사항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정신건강 모델의 변화: 입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Changing the model of mental health from institution to community care)’를 제시했다. 둘째,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 정신적 스트레스 인식 및 해결(Population wellbeing: recognition and addressing mental distress in Korea)’로 공공보건 계획의 일부로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정신건강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권고했다. 셋째, 정신건강 관리 체계와 리더십(Governance and leadership)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 보편적 인권에 관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올해 5월 30일은 정신건강복지법을 시행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입·퇴원에 관한 것으로 이 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입원에 관해 심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호 입원과 행정 입원 시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판단하여 입원하며, 입원 치료가 필요한 요건이 자·타해의 위험 요건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런 변화로 강제 입원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당수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는 매우 빈약하다.
현재 ‘입원 적절성 심사위원회’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을 앞둔 상황이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을 시행함에 있어 부득이한 경우 동일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2명의 판단으로 입원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만들거나 위와 같이 유예기간을 두는 등으로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그래서 법률의 변화 요건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지는 의구심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자의 입원률’이 높아진 것이다. 201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35.6%였던 ‘자의 입원률’은 2017년 4월 30일 기준으로 38.9%에 그쳤다. 그런데 2017년 6월 23일 ‘자의 입원률’은 53.9%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약 2개월 만에 약 15%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법률 시행 이후 자·타해의 위험이 없는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이 설득을 통해 스스로 입원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견해도 일부 존재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정신보건법이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병원 내의 인권으로 한정해서 다루었다면, 정신건강복지법은 복지서비스가 명시되었고 정신질환자의 주거, 고용, 평생교육, 복지서비스 등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게 되었는데, 이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정신보건정책과 전달체계에서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은 여전히 입원·입소 중심의 서비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정신건강복지법에 근거한 정신질환자의 재활, 복지, 권리 보장(자기결정권, 절차참여권, 도움을 받을 권리 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예의주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의사결정 지원 제도의 확대를 통한 후견인 사업과 절차 보조인 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올해 2월 국가인권위가 정신장애인 복지시설 이용 제한 지자체 조례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정신장애인의 사회복지관 같은 복지시설 이용 제한이나 퇴장을 가능케 하는 조례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인데, 현재 총 74개 기초자치단체에서 128개의 시정조치가 필요한 운영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또한 5월 8일, 국가인권위는 정신장애인의 자격 및 면허 취득 제한 제도의 개선을 권고했다. 현행 법령에서 정신장애인의 자격 및 면허 취득 제한 관련 27개 결격 조항이 폐지 또는 완화될 수 있도록 범정부적인 정비 대책의 마련 및 시행을 권고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법률적 정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 정신장애인의 인권 증진, 당신의 목소리를 더해 주세요!
아래의 글은 2017년 10월 정신재활시설 ‘컴넷하우스’에서 발간한 보:통 잡지에 실린 글이다. 다함께 아래의 글을 한번 읽어보자.
정신정애인의 낙인에 대한 연결구과에 따르면, 정신정애인이 경험하는 낙인은 사회적 상황에서의 차별대우와 같은 대인관계나, 미디어나 광고 등을 통해 경험하는 대중적차원, 정신건강서비스나 정책 등에서 경험하는 사회구조적차원, 고용의 어려움 등 사회적 역할 차원에 걸쳐 삶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나는 일전에 청년자원봉사단체를 대상으로 위의 글귀를 가지고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정신재활시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어렵지 않게 글을 읽어 내려가는 데 비해, 자신을 공대생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또박또박 오타를 힘겹게 읽어 내려갔다. 아마도 정신건강서비스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분이라면 많은 오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글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정신장애인을 접하지 않았거나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경우라면 위의 글은 마치 외국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달음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열악한 정신보건서비스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느라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보편적 인권 관점의 논의를 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2005년 이후 지방이양 사업이 된 정신재활서비스는 낮은 재정자립도와 복지사업 예산의 부족으로 별다른 발전 없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낮은 예산 지원의 결과, 전체 장애인(16.3%)에 비해 높은 수급률(54.5%)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은 높은 사회적 편견과 사회적 배제로 인해 큰 차별을 받고 있다. 공공서비스 강화와 보건을 넘어선 부처 간의 합의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거주와 직업재활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5월 4일, 문학동네 SNS에 “책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실어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문학동네를 통해 곧 출간될 『세계 인권 선언문』에 인권에 관한 독자의 생각을 담고 가제본 신청을 통해 배포하는 이벤트였다. “너무 작아서 세계 지도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입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사는 동네,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다니는 회사… 작은 곳에서 인권을 구하는 시민들의 힘이 없다면 더 큰 세계에서도 진보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 인권 선언문 작성을 이끈 엘리너 루스벨트의 1958년 연설 인용문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너와 나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담으려는 멋진 시도라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 집이 필요하다’, ‘정신장애인도 낮 동안 갈 곳이 필요하다’, ‘정신장애인도 함께할 친구가 필요하다’, ‘정신장애인도 경제적 활동을 할 일자리가 필요하다.’
‘정신장애인도 다른 장애인이나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같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 선언문에 이와 같은 정신장애인 인권에 관한 목소리가 제대로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보편적 인권 증진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포용적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