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정 기자]지난 2003년 전례 없었던 한 편의 한국영화가 개봉됐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이다.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여자)이 출연한 SF로, 충무로는 천재감독의 등장이라면서 환호했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그리고는 ‘저주받은 걸작’이니 ‘충무로의 컬트’니 하는 명성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지구를 지켜라’는 지난해 연극으로 탈바꿈해 무대에 올랐다. 올해 다시 한 번 충무로아트센터에서 연극팬을 만난다.
대한민국 20대 청년 병구는 조력자 순이와 함께 유제화학 강만식 사장을 서울에서 납치해 강원도 태백의 은신처로 옮긴다. 병구는 강사장에게 그의 신분 즉, 안드로메다 PK-45 행성 출신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는 임무를 띤 총사령관이자 로얄분체교감 유전자코드를 이식받아 그들의 왕자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외계인임을 자백하라면서 고문을 시작한다. 병구가 왕자를 만나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기한은 개기일식까지 앞으로 단 6일 뿐이다.
‘범우주적코믹납치극’인 이 작품은 마음속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병구와 그 상처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극의 전체적인 문제해결의 키를 갖고 있는 강만식의 심리게임이라는 구조를 차용해 영화가 보여줬던 미스터리적 긴장을 유지시켰다.
초연을 성공으로 이끈 연출가 이지나는 이번 공연에서 병구와 만식의 캐릭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둘의 대결구도를 발전시키는 데에 힘을 쏟았다. 이번 공연에서 병구는 외계와 외계인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만한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그가 처한 환경 때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청춘의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강만식은 지난 공연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중년의 사업가 느낌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타고난 외모에 부모의 재력이 맞물려 탄생한 안하무인의 재벌3세로 캐릭터의 톤을 변경했다.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에서는 ‘지구를 지켜라’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국청년이 겪어야하는 병폐를 빠짐없이 투영했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대결 뿐만 아니라, 금수저 재벌3세와 흙수저 루저를 대비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오늘의 현실을 풍자한다.
공연 하이라이트장면 시연에 이어 간담회에서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한 샤이니 키는 “원작 영화의 굉장한 팬이기도 하고 초연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참여하게 됐다”면서, “지구를 지켜라는 작품 안에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투영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단편적인 내용을 담기보다 만식과 병구의 대화를 통해, 또 작품의 여기저기에 녹이고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만식 역을 맡은 윤소호는 “재벌 3세와 흙수저 청년이 어떤 식으로 대립하는지 중점을 뒀다”고 말했고, 또 다른 만식역의 허규는 “현대사회의 악에 대한, 나쁜 악의 표본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대한 비열하고 얍삽한 모습을 연기하겠다”고 전했다.
10일 첫 공연을 시작한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오는 10월 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