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늘푸른 연극제(정대경 위원장) 극단 뿌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도훈 연출, 김정근 협력연출의 <유리동물원>을 관람했다.
김도훈(1942~) 선생은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출신의 연출가로, 1990~1991 서울 연출가 그룹회장, 1998~2000 거창국제 연극제 조직 위원장, 2001~2005 영호남 연극제 조직위원장, 2001~2002, 2015 거창국제연극제 예술 감독 겸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 연극 예술상 수상(주최: 한국연극협회 1987.10), 서울 연극제 대상 및 연출 상 수상(1992.), 서울 연극제 대상 및 연출상 수상(1997), 예총 예술 문화상 대상 수상(2001),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2012), 서울연극협회 공로상(2012), 보관문화훈장(2015), 제4회 연극인대상 공로상(2017) 등을 수상한 훤칠한 키(183cm)에 반듯한 용모를 갖춘 미남 연출가다.
연출작으로는 <보잉 보잉> <등대> <조용한 식탁> <이성계부동산> <굿모닝 파파> <가스펠> <품바대장 술꾼> <성호가든> <유리동물원> 그 외의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원로 연극인이다.
필자가 처음 <유리 동물원>을 관람한 것은 1967년 11월에 명동국립극장에서 극단 동인극장의 노덕선 기획, 오화섭 역, 정일성 연출의 정혜선, 오지명, 손 숙, 최지민이 출연한 연극이다.
정혜선이 아만다, 손 숙이 로라, 오지명이 톰, 최지민이 짐으로 출연했다. 정혜선은 TV출연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어머니 역으로 적절했으나, 로라 역을 부각시키려고, 연출이 아만다의 대사를 대폭 삭제한 공연이었기에 어머니라는 역할만 드러났을 뿐 작품에 따른 제대로 된 성격창출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톰 역의 오지명은 당시 햄릿을 비롯해 동인극장 연극의 주역을 도맡아 했기에, 해설자 겸 시인인 톰 역을 마치 햄릿 역을 하듯 멋들어지게 연기했다. 손 숙은 연극 초년병이었으나, 미모와 호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최지민(본명 최종화)은 한양대학교 영화과 출신답게 성격창출이나 연기 면에서 탁월함을 보였다.
그런데 오지명이 TV출연으로 공연 펑크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극단 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아내 손 숙의 연기를 연습장에 와서도 지켜보던 김성옥이 오지명 대신 무대에 올라섰다. 연습장면과 공연장면을 보았으니, 물론 동 선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사를 외우지를 못했기에, 대본을 들고 연기를 했다. 톰이 시를 쓰니, 시를 쓰는 노트로 대본을 설정하고, 대본을 들여다보며 했어도, 김성옥이 워낙 능숙하게 연기를 해, 객석에서는 대역으로 출연한 것인 줄을 전혀 몰랐다. 물론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도 커튼콜에 쏟아졌다.
그 공연 이후 극단 대표였던 노덕선은 자취를 감췄다. 오지명은 연극무대에서 사라졌다. 연출을 한 정일성은 미국으로 갔다가 30년 뒤에 귀국해 다시 연출을 시작했다. 50년 전 일이지만 엊그제 일 같아 소개한다.
2014년 명동예술극장 제작, 한태숙 연출의 <유리동물원>도 기억에 남는다.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은 김성녀의 아만다 역을 완벽하게 부각시켰다. 김성녀 역시 출중하고 탁월한 연기와 성격창출로 아만다 역을 100% 살려냈다. 로라 역의 정운선도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톰 역의 이승주도 젊은 연기자답게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 자신일 수도 있는, 톰의 시인으로서의 풍모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듯도 싶었으나, 그의 훤칠한 용모와 호연은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짐 역의 심완준은 그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연기자였다. 그리고 무대 상수 골목 한 귀퉁이에서 거리의 악사처럼 첼로를 연주하는 최 영, 그의 연주에 따른 극적 분위기의 창출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에 날개를 달아 하늘높이 비상토록 했고, 한태숙의 연출력이 감지되는 설정이었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자신이 소속한 MGM사에 <유리동물원>을 제출하기 전에 유리동물원의 여러 가지 초안을 썼다. <유리동물원>은 윌리엄스의 단편소설이다. 처음에는 “The Gentleman Caller”라는 이름의 희곡으로 발표되었다.
<유리동물원>은 1944년 시카고에서 초연되었다. 시카고의 연극평론가 Ashton Stevens와 Claudia Cassidy의 호평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공연되었고 1945년에는 New York Drama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첫 번째의 성공적인 작품이었고, 향후 미국에서 손꼽히는 극작가가 되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1948년 단편소설 “Portrait of a Girl in Glass”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해설자는 <유리동물원>의 해설자인 Tom Wingfield이고, <유리동물원>의 독백들도 이 소설에 있다.
연극평론가들은 <유리동물원>을 윌리엄스의 자전적 연극이라고 평한다. 윌리엄스의 가족 역시 연극의 배경인 남부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살았다. 윌리엄스 자신도 톰처럼 낮에는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집필에 몰두했다. 윌리엄스의 누나는 정신 분열증을 앓았고, 그녀의 모습이 <유리동물원> 속 로라 역으로 설정되었는데, 누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리워했던 윌리엄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테네시 윌러엄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유리 동물원>은 발표직후, 미국을 떠나 전 세계 연극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윌리엄스의 출세작인 <유리 동물원>은 그 나름의 독특한 내적 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슬픈 이야기다. 우리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슬픔이 아니라 마치 봄비가 꽃잎을 살포시 적시듯이 가슴에 스며드는 아련한 슬픔의 이야기이다. 사실 환상이란 얇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허상 같은 것이다. 한 아름의 환상을 잡으려고 허우적대는 운명이 <유리 동물원>의 로라 역이고, 톰이고 아만다 역이다.
로라는 자신이 가진 신체적 장애 때문에 현실을 회피한 채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한 유리동물에 집착하며 그 안에 살기 바란다. 다른 등장인물인 그녀의 오빠, 톰은 자신을 짓누르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한다. 로라와 톰은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저편의 이상향을 꿈꾼다. 이에 반해 어머니인 아만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적응해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로라를 괜찮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위해 심신을 쏟고, 매일 밤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톰을 붙들기 위해 톰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한 가정, 한집안에 살고 있는 세 인물이지만 서로가 너무도 다른 것들을 꿈꾸기에 그들의 욕망은 깨진 유리동물의 파편처럼 되어 서로 충돌한다.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한 장식장 속 유리동물들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욕망이자 그들 자신의 모습이다.
<유리동물원>은 극의 대부분을 허름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로라, 톰, 아만다가 살고 있고 그리고 짐이 이 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이 극이 주는 주제와 의미는 단순히 어느 한 가정, 한 인물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허상을 보여준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자하는 로라,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고, 남들처럼 잘살고 싶은 아만다 역시 결국 우리 안의 내제된 욕망의 표출이며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무대는 한자 높이와 가로 세로 수많은 사각형 안에 엇갈린 무늬목 문양이 들어간 마루로 바닥을 깔았다. 배경 가까이에 이 집의 식당을 설정하고 식탁과 의자를 배치했다. 식당과 거실 사이에 벽 대신 엷은 커튼을 쳐, 조명효과에 따라 식당이 보이지 않도록 연출했다. 커튼 오른 쪽 상단에 이 집 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식당은 무대 좌우에 가로 늘어뜨린 커튼 사이로 들어간다. 거실에는 낮은 탁자와 의자 그리고 긴 벤치 같은 나무등받이의자가 있고,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유성기를 올려놓은 대가 있다. 거실 상수 쪽에 이 집 출입문이 있고, 밖은 골목길로 설정이 된다. 상수 쪽에서 출발한 골목길은 무대 앞부분을 돌아 하수 쪽으로 이어져 외곽으로 통한다.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에 유리로 만든 동물과 유리조형물이 아래 위의 단으로 된 작은 진열대 위에 놓여있고, 부분조명으로 유리 진열대를 다시 말해 유리동물원을 강조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겨울옷과 중절모를 쓴 톰이 반백의 머리로 등장해 자신이 1930년대에 살던 옛집 앞 계단위에 서서 집과 주위를 둘러보며 회상에 잠기듯 해설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톰이 집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 장면이 재현된다. 남편과 사별을 하고 딸과 아들을 키운 어머니 아만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누나 로라, 그리고 글을 쓴답시고 만날 영화관에만 들락거리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소개가 된다.
지체 장애로 인해 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취직은 물론 연애상대조차 없이 유리동물에게만 매달려 있는 딸 로라를 대하는 어머니 아만다의 안타까운 모습이 펼쳐지고, 딸에게 짝을 지워주려는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과 지극정성이 극에 절실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 톰에게 로라에게 소개시킬 괜찮은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당부를 한다. 하도 조르는 어머니의 말에 톰은 훤칠한 키에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 짐을 데리고 온다.
그런데 원래 로라와 짐은 같은 반 학생이었고, 잘 생긴 모습에 노래까지 잘 하는 짐에게 로라는 연모의 정을 품을 적이 있었기에 짐의 방문으로 로라는 충격을 받는다. 두 사람을 가까이 하도록 하려고, 아만다와 톰이 자리를 피하자 마침 정전이 되니, 촛불을 켠 로라와 짐은 상대에게 다가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래 이야기 그리고 로라가 짐을 연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은 키스까지 하게 된다. 아만다가 두사람 사이가 진척된 것으로 판단하고 포도주를 들고 등장한다. 그러나 짐은 약속시간이 되었다며 6월에 결혼을 할 상대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며 떠나간다. 로라의 절망과 아만다의 분노, 그리고 곧 결혼할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톰을 꾸짖기 시작한다. 이 일로 해서 톰은 영영 집을 떠나게 된다. 대단원은 다시 이 집 문밖 골목길 계단에서서 해설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종원이 톰으로 출연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친다. 차유경이 어머니인 아만다로 출연해 원작의 아만다 역을 200% 살리는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전지혜가 로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호연을 해 보인다, 장우진이 짐으로 출연해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격 그리고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김성헌의 감성적인 연주가 4인의 출연자의 극 분위기 창출과 상승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연출 정은지, 무대디자이너 민병구, 조명디자이너 탁형선, 의상디자이너 채필병, 음악 작곡 이정선, 드라마트루크 한윤섭, 안무 김윤실, 분장 김선희, 무대감독 이경은, 기획 김현증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늘푸른 연극제(정대경 위원장) 극단 뿌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도훈 연출, 김정근 협력연출의 <유리동물원>을 세계정상급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박정기 공연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