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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6-28 0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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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천 기자]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으로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한용운 선생의 서거 제73주기를 기리는 ‘만해 추모재’가 오는 29일 오후 4시 AW컨벤션센터(서울 종로구 소재)에서 열린다.

(재)선학원(이사장 법진)에서 주관하는 이 날 행사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구남신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다.

한편, 같은 날 오전 10시 심우장(서울 성북구 소재)에서는 성북문화원(원장 조태권)에서 주관하는 ‘만해 한용운 선생 73주기 추모 다례재’가 열리고, 불교계 주요인사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1879. 8. 29.~1944. 6. 29.)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고,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 등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05년에 인제의 백담사로 들어가 승려가 됐다.

1910년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 주권을 박탈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격려하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로 유랑하다가 1913년 귀국해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같은 해에는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했고 1914년에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해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했다.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 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면서 민중계몽운동과 문화계몽운동을 전개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진 뒤 일경에 체포됐고, 선생은 이로 인해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는 등 저항 문학에 힘썼고, 1927년에는 신간회에 가입해 중앙집행위원으로서 경성지회장을 맡았다.

1931년에는 ‘조선불교청년회(朝鮮佛敎靑年會)’를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靑年同盟)’으로 개칭해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월간지 《불교》를 인수해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민족이 나은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이며, 독립투사였던 선생은, 1944년 6월 29일 열망하던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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