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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30 18: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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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폭. 벽면 하나를 완전히 채운 액자 안에는 한 가지 색으로 가득하다.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레드’. 얼핏 단순해 보이는 그림 앞에서 울컥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 그림을 그린 이는 ‘마크 로스코’. 그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날 수 있다. 연극 ‘레드’이다.

연극 ‘레드’는 2009년 런던에서 초연, 2010년 브로드웨이 진출 제 64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등 주요 6개 부문을 휩쓸며 최다 수상의 영예를 얻은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강신일, 강필석 두 연기파 배우의 호연으로 객석 점유율 84%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었고 2013년 뮤지컬배우 한지상의 합류로 95%를 기록, 큰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작가 존 로건은 화가 로스코의 사건에 모티브를 뒀다.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 받은 마크 로스코가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사건이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에 켄이 조수로 들어온다.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즈의 벽화를 작업 중인 로스코는 켄에게 물감을 섞고, 캔버스 틀을 짜고 만드는 단순한 일을 시키고 어느덧 놀라운 습득력으로 스승의 요구를 소화해낸다. 처음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스코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거침없는 말로 자극해온다.

본명 마르쿠스 로트코비치 (Marcus Rothkowitz).1903년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크 로스코는 191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지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21세가 되어서야 미술에 입문한다. 화가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다 마흔이 넘어 특유의 색으로만 가득한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연극 <레드>의 배경이 되는 시그램 빌딩 레스토랑 벽화 사건, 하버드 대학교 벽화, 로스코 채플 벽화 등 공공미술의 형태인 벽화 작업에 몰두, 그러다 1970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화가로서의 삶은 분명 성공적이었던 그였지만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한 것은 무엇일까.

미술사에 대해 문외한이라 해도 로스코와 켄의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은 흥미진진하다. 초반 대답조차 못하던 켄이 단순한 조수에서 점점 잔소리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고 후반부에 가면 스승과 제자를 넘어 아버지와 아들처럼 끈끈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라며 시대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새로운 것이 고전을 삼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서로를 발전시키던 어느 날 로스코는 켄을 내보낸다. 어느새 자신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오는 켄이 기특하지만 곁에 묶어두기보다 너만의 세상을 찾으라며 독려한다. 깊은 애정이 자리 잡은 그의 말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조수에서 제자로, 그리고 아들처럼 여겨 어리광까지 부리게 된 자신을 혼자로 만들려는 것 같아 서글펐다.

예술가란 그렇게 날선 감정을 가져야만할까.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겠지만 또한 진정한 예술 혼을 가진 이의 당연한 과제일까, 인류에게 그만한 가치를 남겨야하는 것은. 다만,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벽 앞에서 벅찬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힘, 그것이야말로 예술이기에.

초연 연극을 보고 꼭 하고 싶었다던 정보석과 단단한 내공을 지닌 한명구가 천재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 역을, 연극계의 떠오르는 신성 박은석과 첫 연극임에도 충분히 진가를 보여주고있는 박정복이 조수인 켄 역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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