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소극장에서 사무엘 베케트 원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6)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며,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가 제일 먼저 독일에 항복을 하니, 베케트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다 쫓기자 남프랑스 보클루주로 도망해 숨어 지내며 소설작업을 하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 희곡을 탈고한 후 1953년에 몽빠르나스 바빌론 극장에서 막을 올려 성공을 거두고 주변국의 주목을 받았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2막으로 구성되었다. 저녁 무렵 광대나 노숙자 같은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이 텅 빈 벌판에 잎도 없는 나무 한그루 옆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두 인물은 직업이나 나이나 성격도 불명확하다. 에스트라공이 40년 동안 구두를 벗은 적이 없다고 하는 대사로 보아, 나이는50대 후반이나 60대로 생각된다. 게다가 치매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현재나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사만 기억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까지 잊어버리고, 블라디미르라는 이름 대신 고고(Gogo)로, 에스트라공을 디디(Didi)라고 호칭한다.
이어 2막에선 나무에 꽃이 달려 있지만 꽃이 피었다는 것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는Gogo와 Didi의 상태로 보아 치매환자임이 분명하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탄생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군이 프랑스로 진입을 하니, 드골 장군은 국외로 도망을 하고, 프랑스 전역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프랑스인 일부가 레지스탕스가 되어 나치독일에 저항을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대책 없이 지내면서, 그저 막연하게 자유와 해방만을 그리며 지냈다. 보클루주에 숨어 지내던 베케트가 그러한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고 쓴 희곡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처럼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하던 자유와 해방과 평화의 갈망을 조롱하듯 희곡에 반영했다. 특히 이 연극에서 폭압적인 지배자 포조에게 노예처럼 이끌려 다니는 럭키의 모습처럼, 럭키가 장문의 대사를 읊어댈 능력과 발군의 암기력을 갖춘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노예의 신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듯, 프랑스의 지성들의 용기 없고 비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그려 넣었다.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프랑스 지성들의 자아상실과 막연하게 해방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고도를 기다리며’에 묘사해, 향후 프랑스가 다시는 타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프랑스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가한 장한희곡으로 평가되어 사무엘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은, 홍복유 교수의 번역으로 한재수 씨에 의해 1961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단 3회 공연을 충무로 5가 현대연기학원 소극장에서 가진 바 있었는데 한재수 씨는 당시의 연출 소감을 이렇게 잘라 말하고 있다. ‘고도’의 해석부터 문젯거리이며 초현실주의 연출수법으로 이끌어 갔는데 한국관객에겐 아직 이해가 될 수 없는 연극”이라는 것이다. “사실 반극 자체가 언어의 구사와 행동의 자기체면 같은 것인데 우리말에는 말 자체가 굴곡이 없어 양식화하는 길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것의 공연이 있었는데 아직 때를 벗을 수 없는 즉, 상업화 될 수 있는 단계의 연극은 아니라는 것을 金亮基(김양기) (在日劇評家(재일극평가)) 씨도 말한 바 있다. 즉 金씨는 “전위극은 전위극 자체대로 상연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김흥우 관장의 글에서
“1989년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프랑스 아비뇽 아르모니 소극장에서 임영웅이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공연되었다. 우리나라 극단으로서는 최초였다. 더블린 연극제에 참가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1990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더블린 프로젝트 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현지 반응은 대단한 호평이었다. 베케트의 본고장에서도 한국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했다. 객석의 반응에 반신반의하던 임영웅 일행은 다음날 더블린의 일간지에 난 자신들의 사진과 극찬에 놀랐다. ‘The Irish Times’는 정동환(블라디미르 역)과 송영창(에스트라공 역)의 사진을 전면에 실었다. ‘Irish Press’는 타이틀 기사로 “Korean Godot Worth the Wait(한국의 고도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를 내보냈다.
1994년에 폴란드 비브제제 극장에서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초청공연되었고, 1997년에는 세계 연극제 공식 초청공연작으로 선정되어 재공연되었다. 1999년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는 23회 서울연극제 특별초청작품으로 선정되어 재공연되었고 이어 11월부터 도쿄 초청공연에 돌입했다. 같은 해 공연은 안석환(에스트라공), 한명구(블라디미르), 김명국(포조), 정재진(럭키), 류지호(소년)로 구성되었다. 임영웅은 이들의 앙상블이 역대 최고라고 평했다.
도쿄 공연에 대한 평은 “베케트의 연극은 도쿄에서도 외국에서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이만큼 재미있는 무대는 처음이다. 어디에도 바람이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빈틈이 없다. 배우들은 한국어로 대사를 했다. 한국어의 울림이 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고도는 신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고도를 되풀이해서 공연하는 한국인에게 고도는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뭔가를 희구하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아사히신문 역시 “기묘하고 아름답게 현대인의 본질 그려"라는 제명으로 “창단 30년을 맞은 산울림은 그 동안 서울에서 11회에 걸쳐 이 작품을 공연함으로써 '아시아 최고의 고도'로 평가받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러한 평가와 성공은 임영웅이 오랜 기간 한 작품에 집착하고 연구한 결과이다.”-한국의 연출가들 살림출판사 2004년 간행
무대는 얕은 두 개의 단 위에 한그루의 고사목을 세우고, 배경에 보름달을 영상으로 투사하고, 조명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과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이번 공연은 45년간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13인의 명배우들이 등장해 벌이는 연극잔치이다. 초연에 참가한 함현진과 김성옥은 이 작품으로 연기상을 수상했고, 함현진과 김무생은 작고했다. 김성옥과 김인태는 이번 출연을 사양했다.
지난달 12일의 초연에는 한명구, 박상종, 이호성, 정재진, 그리고 소년으로 김형복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2시간 30분의 공연시간동안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자아낸다.
2회 공연부터 5월 중순까지 정동환, 송영창, 박용수, 안석환, 이영석,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등이 차례로 출연해 출중한 기량을 보일 것이다.
기획 임수진 극장장, 예술감독 임수현, 무대 박동우, 조명 김종호, 의상 박항치, 분장 김유선, 조연출 박혜선, 조연출보 윤혜진, 무대감독 연태양, 홍보 극장기획 김보연, 진행 오퍼레이터 최은솔, 홍보물디자인 김희수, 사진 이지락 등 스텝 모두의 정성이 하나가 되어, 극단 산울림의 사무엘 베케트 원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한편의 세계명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