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극단 성난 발명가들과 극단 디딤돌 합작, 잉바르 암비에른센(Ingvar Ambjørnsen) 원작, 김시번 번역 연출의 ‘엘링(Elling)’을 관람했다.
잉바르 암비에른센(Ingvar Ambjørnsen)은 노르웨이 현대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1956년 노르웨이 남부 라르빅에서 태어났다. 작가가 되기 전에 막노동을 비롯해서 식자공, 정원사, 정신병원의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삶의 소외된 면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자전적인 소설 ‘23번째 줄’(1981)로 데뷔한 이후 ‘인간쓰레기’(1986)라는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스무 권 가량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주로 작품 속에 아웃사이더들을 등장시켜 존재의 어두운 면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그리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고 있다.
‘엘링 연작소설’은 평단과 독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노르웨이에서만 총 25만부의 판매를 기록한 그의 대표작으로서 전 세계 14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엘링을 통해 ‘자폐된’ 현대 사회에서 소실되어버린 삶의 근원적인 가치에 관한 질문을 독특한 방식으로 던진다. 특히 연작소설의 세 번째 작품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는 영화화되어 2002년 아카데미상 최우수외국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것을 비롯해서 토론토, 산세바스티안, 스톡홀름, 시애틀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인 엘링(Elling)은 전화 걸기나, 공중이 이용하는 장소에 발을 들여놓는 일상적 행동들도 실행하기 두려워하는 이른바 사회 부적응 자다. 대개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되기 일쑤지만 '엘링 '에서는 훨씬 더 소박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엘링은 사회부적응자이지만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런 면이 나중에 그를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시인이 되게 만든다.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다. 왜 그가 양배추 시인이 되었는지는 연극을 통해 확인하면 게 훨씬 재미있다.
엘링에게는 룸메이트인 쉘비욘이 있다. 섬세한 감수성의 초식남인 엘링과 달리, 쉘비욘은 성욕과 식욕이 굉장히 왕성한 육식남이다. 하지만 40이 넘도록 쉘미온은 총각딱지를 못 뗀 것으로 설정이 된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일들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둘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끈끈한 우정을 보이기도 한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같이 살아가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평범한 삶의 진리를 두 사람을 통해 희극적으로 그려지고, 가슴이 뭉클한 감동까지 맛보게 된다.
노르웨이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임을 증명하듯, 두 사람은 사회 부적응 자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다가, 감독관에 의해 아파트로 옮겨진다. 어느 날 이들의 집 앞에 어떤 여자가 술을 마신 채 쓰러져 있고, 임산부인 이 여인의 이름은 레이둔이다. 엘링과 쉘비욘은 바로 자기 위층 아파트에 사는 라이둔을 집에 잘 데려다준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쉘비욘과 라이둔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 둘의 사랑을 엘링이 도와주면서 연극은 점점 흥미를 더해 간다.
또 한 명의 등장인물로는 엘링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주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주는 은둔시인 알퐁소가 있다. 알퐁소는 부인과 사별한 뒤, 20년간 절필하고 홀로 지내고 있는 유명시인이다. 그와 엘링은 시낭송의 밤에서 만나서 나이를 떠난 친구가 된다.
이후 알퐁소는 엘링과 쉘비욘, 그리고 라이둔의 조력자 역을 맡아 하지만, 그보다도 엘빙의 일기장에 적힌 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결국 한 사람의 명 시인으로 탄생시키는 천사의 역할을 한다. 엘링과 쉘비욘을 담당하던 감독관도 시인의 탄생을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엘링’은 사회 부적응 자들의 생각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문학적이나 예술적 위업을 이룩하는 사실을 감동으로 그려낸 연극이라 평하겠다.
무대는 커다란 사각형이나 마름모 형태의 무늬가 들어간 벽과 흰색의 옷장이 정면에 자리를 차지하고, 여러 개의 널판을 연결하고 다리를 달아, 침상처럼 만든 조형물 두 개를 나란히 배치해, 요양원 장면에 사용하고, 장면이 바뀌면 그 침상을 이리저리 이동해 변화에 대처한다. 옷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동선처리로 주인공의 성격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정면 벽에 선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으로 극적효과를 상승시키고, 조명의 강약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임산부의 배를 시간이 경과될수록 불룩하게 만들어 출산일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이채상이 엘링, 송준영이 쉘비욘, 이성원이 알퐁스, 박소리가 라이둔, 김민성이 감독관, 안지윤이 여자시인으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PD 임덕희, 영상 금중호, 의상 김시정, 조명 유성희, 음악 김진호, 홍보 오보람, 사진 권 선, 그래픽디자인 김태균, 조명오퍼 송명주, 음향오퍼 양동근, 영상오퍼 한준호, 조연출 이주현 등 스텝 진의 기량과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성난 발명가들과 극단 디딤돌 합작, 잉바르 암비에른센(Ingvar Ambjørnsen) 원작, 김시번 번역 연출의 ‘엘링(Elling)’을 명품 희극으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