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이 정해져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삶과 죽음이라는 어렵고도 실제적인 질문 앞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면, 어쩌면 스스로 생을 끊어내는 일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해보고 싶은 일이 남아있다면 살아갈 이유 또한 충분하니까.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는 사고뭉치에 늘 어긋나있는 삐딱한 소년 강구와 정해진 운명 앞에 스스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소년 해기의 이야기이다. 지난달 13일부터 공익 목적을 위해 청소년, 군인 등을 위한 특별공연을 해왔고, 연극 ‘더 로스트’의 김현우 연출, 뮤지컬 김종욱 찾기, ‘심야식당’의 김혜성 음악감독 등 정상급 크리에이티브들이 참여했다.
소년원에서 막 출소한 양아치 록커 강구, 버릇처럼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한통의 전화가 온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통보! 병원으로 간 강구는 그곳에서 진짜 시한부 환자인 해기를 만난다. 해기는 강구에게 고액의 알바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버킷리스트 실행에 동행해 달라는 것이다. 이름 하여 플라시보 프로젝트!
한 가지 소원을 아무 조건 없이 이뤄 준다고 하면 대부분 거창한 것을 말한다. 뭔가 대단한 걸 생각하느라 정말 자신이 그걸 원하는지는 생각해볼 여유도 없다. 다시없을 기회니 말하고 보자는 식이다. 보통사람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진짜 시한부환자들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소소하지만 이제 할 수 없게 될 일들이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경호원들이 달려들면 자신을 보호해달라더니 예쁜 아이돌 누나에게 혼인 신고서를 내밀고 사인 해달라는 해기의 엉뚱한 버킷리스트에 폭소가 나온다. “내가 너랑 급이 같냐?”면서 투덜대지만 어느새 해기의 버킷리스트를 번호대로 외우고 있는 강구는 점점 사랑스럽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억지로 슬픔을 자아내거나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다만 두 소년의 버킷리스트 실행기에 동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해진 죽음 앞에서 하루하루 힘없이 죽어가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로 남겨진 시간을 채워나가려는 해기의 맑은 마음과 가끔 어긋나기는 하지만 어느 샌가 해기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강구의 마음. 커져가는 두 소년의 우정이 참으로 예쁘다. 강구는 알고 있을까, 변해가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하나씩 리스트가 지워질 때마다 연습실에 모이는 기념품은 두 사람의 역사가 된다. 원치 않았던 이별이기에 아프고 슬프지만 이제 해기를 보낸다고 고백하며 그가 남긴 노래를 부르는 강구는 어느새 훌쩍 자라있다. ‘내가 아는 넌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어주는 진짜 친구를 만나 그저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한걸음 나아가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해기의 버킷리스트는 강구의 삶을 시작하게 했다. 힘이 들 때마다 꺼내보며 미소를 짓겠지. 따스한 온기와 생각만으로도 용기가 나는 든든한 추억이 남겨진 것이다. 외롭게 기다리다 끝내 비뚤어졌던 강구에게 이제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이유도 생겼다. ‘진짜 친구’란 그런 힘을 가졌다.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은 여리고 따뜻한 양아치 소년 강구 역에는 배우 박유덕, 이규형, 주민진, 강구의 진짜 친구가 되는 시한부 환자 해기 역에는 배우 배두훈, 이지호, 김태경이 함께한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