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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08 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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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가득한 달구지 위에 여인과 두 아이가 즐겁게 나들이를 떠난다. 한 사내가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를 잡고 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즐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이중섭 화가의 유화 ‘길 떠나는 가족’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이 그림의 제목을 따왔다.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이중섭 화가의 삶과 예술에 대해 진정성을 담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1991년 극작가 김의경이 대본을 쓰고 이윤택 선생의 연출로 초연, 서울연극제 작품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 주요 연극계의 상을 대거 수상하면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 연극계의 대가들이 된 옛 팀이 함께 모여 작품을 재창조하여 관객과 만나고 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이중섭은 사과를 주면 먼저 그림으로 그린 후 먹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던 그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이 돈과 바뀌는 것을 못견뎌한다. 그의 순수하고도 고집스런 모습을 알 수 있다.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그림이 팔릴 때 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 그림이라며 나중에 다시 그려서 바꿔준다는 약속을 하는 화가의 모습이 어쩐지 아팠다. 그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을 통해 무엇을 이뤄내겠다는 목표 의식 같은 것은 없는 이였다. 그저 그리는 것이 좋고 즐겁고, 그에겐 그것이 삶이었기에.

그래서 이중섭 화가에게는 은지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따라 다닌다. 담배 갑 속에 끼워진 은색 종이에 못과 같이 뾰족한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 것이다. 종이 값이 비싸기도 했거니와 제대로 된 스케치북이나 도구가 없어도, 막노동을 하다 쉬는 잠깐의 시간에도 그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렇게나 서럽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는 그러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 게, 새, 닭, 아이들. 마치 동화처럼 그의 그림은 해피엔딩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제주에 있던 시절,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게에게 미안해서 게를 많이 그렸다는 화가. 그에게 그림은 삶이었고 희망이었고 꿈나라였던가 보다.

어쩐지 오고 오는 세대를 통틀어도 그만한 이가 없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떠올랐다. 너무나 뛰어난 능력 때문에 가족들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고 이용당했던 천재.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그의 음악뿐이다.

화가 이중섭도 그러했다. 그가 조금만 현실적이었다면 어쩌면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가족들과 다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돈과 명예를 다 얻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그림은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수단이나 이름을 높이는 무엇이 아니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소, 새, 해, 달, 그리고 아이들.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나라였고 가족이었고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정신이상에 시달리고 간염으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때는 안타깝고 서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재현된다. 그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 소를 끄는 남자는 분명 화가 자신이 아닐까, 그는 그림으로 꿈을 꾸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길을 떠나는.

목탄으로 그려진 이영란 디자이너의 오브제들은 평면이라서 연극을 더욱 살려준다. 인물의 내면과 상황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화가의 그림체를 본 따서 만든 물고기, 게, 새, 나무 들이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그림이 됐다가 흩어지며 마치 동화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듯 하다.

특히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를 재현할 땐 오브제를 안은 배우들이 그림이 된다. 그 아이들이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화가의 삶 속에 투명한 웃음을 안겨준다. 이러한 장치 덕분에 작품은 신선하고 새롭다. 자연스럽게 그림이 되고 흩어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의 흐름은 바람처럼 자유롭고 선선하다.

화가 이중섭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은 배우 지현준의 호연도 대단했다. 그의 메소드 연기는 마치 그 시대로 들어가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이중섭화가의 그림 ‘황소’를 무대 위에서 그대로 그려낼 때는 감탄을 넘어 선 충격마저 느껴진다.

월드뮤직 그룹 반(VANN)의 라이브 연주가 더해져 연극은 한층 더 깊고 풍성한 감성을 전하고 있고 이중섭화가의 아내 이남덕 여사 역에 전경수, 어머니 역에 문경희, 한갑수, 김은진, 김동완, 배보람, 이승우, 안연주, 변민지, 이기돈, 신경혜, 장재호, 이재훈, 김태현, 배우들이 동화 같은 연극으로 이중섭화가의 삶과 예술을 그려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난 자유로워져. 누구도 내 그림을 간섭할 수 없어.”

자유롭고 아름다운 이중섭화가의 그림과 삶을 만나고 싶다면 오는 13일까지 명동 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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