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어서면 표를 받아주는 이가 말한다.
“잠시 만요, 아직 빨간 불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파란 불이 켜지면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정말 건너편에는 신호등이 보이고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다.
연극 ‘당신의 눈’(작/연출 윤정환)은 추리연극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관객들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극단의 작가인 정아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극단의 배우들은 공동창작을 통해 대본을 완성시켜나간다. 죽은 작가의 죽음을 둘러싸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고 가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여러 가지 각도로 그려낸다. 진실을 유추해 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의 추리를 이끌어 낸다.
작가인 정아가 복사를 부탁하자 할아버지는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에게 일을 시킨다. 건강이 안 좋아지자 할머니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 같은 장면이 두 번 나오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과 정아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사는 똑 같지만 정아의 눈에 비친 인물들의 모습은 다른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너에게 일어난 일들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가 없다.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느꼈던 감정이나 컨디션, 상대방에 대한 호의 같은 것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연기하지만 주체가 되는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무대와 객석간의 거리를 좁히다 못해 없애버린 것도 파격적이다. 관객석 바로 옆에 배우들이 앉아 함께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던 사람이 일어나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가 연기를 마치고 다시 들어와서 앉는다.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다양한 시선으로 연극은 다채로워진다, 바로 ‘당신의 눈’을 통해서.
무엇이 진짜일까를 일부러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극이 진행되는 것에 집중한다면 좀 더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실이라 믿을 뿐, 진짜는 과연 무엇일까?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눈이 찾아낸 ‘진실’은 ‘진짜’일까.
연극이 끝나고 들어올 때와는 다른 문으로 퇴장하게 되는데, 그곳은 배우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또 다른 시선을 갖게 만드는 곳. 당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알아봐달라는 당부 같아서 조금은 산만하게 어지러운 공간이 정겹게 느껴진다.
연극 ‘당신의 눈’은 다양한 시선을 통해 진실을 확인하려하지만 드러날 진실보다 다양하고 솔직한 시선, 그 자체가 주인공 같다. 그 시선이 연극을 완성시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도 신선하고 소중하지 않을까?
작가 정아 역에 서미영,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수 역에 김조연, 정아가 다니던 문구점의 할아버지 덕선 역에 신현종, 맹인 할머니 귀녀 역에 이선주, 이 밖에 백우람, 이세영, 이건영, 하지웅, 주선희, 노희석, 맹대식, 이정근, 경선, 김솔 배우 등이 출연한다. 오는 7월 6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