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안화차(작/연출 한태숙)’는 지난 2003년 초연된 이후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은 작품이다. 2003년, 2004년, 2008년 세 차례 앙코르 공연과 중국 공연(2005년)을 올렸다. 올해 서울문화재단 예술 창작지원 사업 연극분야에 선정되면서 6년 만에 관객들과 만난다.
‘서안화차’는 진시황의 무덤이 있는 중국 시안(西安)으로 가는 기차라는 뜻이다. 중년의 남자가 흔들리는 기차에서 창을 내다보면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연극은 하지만 비뚤어진 소유욕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용하긴 커녕 소용돌이 속에 들어간 듯 격렬해진다. 침착하기 그지없는 그의 목소리와 모습은 어느 순간 기괴하고, 어느 순간 가엾다.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 서안의 여산 릉 여행길에 오른 상곤은 진시황의 지하 궁전에 갇혀 최후를 맞이한 인부들과 노예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아들을 키우며 녹록치 않았던 그의 어머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직원 등 과거의 편린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 그가 절대적으로 원한 사람, 찬승. 어린 시절의 상처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성을 동경하는 상곤은 찬승에게 외면당하면서도 그의 뒤를 좇으며 그의 모습을 조각하는 일에 몰두한다.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그와 만난 상곤은 자신의 작업실에 그를 초대한다.
끝내 자기 자신마저 가두어버리는 절대적인 사랑은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 불과했던 진시황에게 불로초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처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일까, 상곤은 가슴에 안았다고 느낀 찬승에 집착한다. 다른 사랑을 해보려 노력해 봐도 마음은 당연한 듯 그를 향한다. 턱에 남겨진 상흔처럼.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원래부터 있었던 듯 없어지면 어색할 만큼 당연히.
진시황의 무덤에 순장된 노예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감정과 생각들을 유추해보는 상곤의 모습과 중국어로 들려오는 고대 시는 예언처럼 들려서 섬뜩했다. 그는 그들의 진짜 마음을 제대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가둬지길 원했으나 결코 들어가지 못한 곳을 동경했을까.
결코 다른 어떤 곳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오롯한 마음. 주인이어도 어찌할 수 없는 강렬한 욕망은 결국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랑을 가둬버린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그토록 원했던 말을 들려준다. 그를 토용에 가두고 서안화차를 탔으나 상곤 또한 작업실 그 어딘가에 자신을 두고 왔을지 모르겠다. 이제야 자신의 것이 되었으니 함께 있고 싶지 않겠는가.
장생불사에 집착했던 진시황. 강력한 힘마저 가졌었기에 그는 불가능한 것마저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어쩌면 마지막엔 장생불사가 아니라 ‘불로초’라는 미지의 것을 향해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망상 안에 갇힌 것이다. ‘사랑’을 얻고자 했으나 갖고 싶은 마음, 그 안에 갇혀 일생 아팠던 상곤처럼.
지난해 연극 ‘안티고네’, ‘레이디맥베스’, ‘단테의 신곡’을, 올해 창극 ‘장화홍련’을 선보인 한태숙 연출이 극단 물리와 함께 재 공연한다. ‘서안화차’는 동성애를 소재로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소유욕, 집착, 어둠을 진시황의 장생불사와 대비시킨다. 초연배우 박지일, 최일화, 이명호, 지영란, 윤현길 등이 출연하고, 다음달 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