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효자동 가진화랑(02-738-3581)에서 운석(雲石) 안동해(安東海)의 ‘또 서예와 유치 찬란 展’을 관람했다.
안동해는 서울출생으로 40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다. 학남(鶴南) 정환섭(鄭桓燮)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하고, 퇴직을 한 1990년 9월부터 서예작품전을 시작으로, 1998년 서예와 함지박전, 2004년 부채 전 ‘대장아 청산가자’, 2005년 부채 전 ‘근심 없던 시절’, 2006년 색지작업 전 ‘유치 찬란’, 2009년 서예와 유치 찬란, 2012년 작은 유치 찬란, 그리고 이번 ‘또 서예와 유치 찬란 전’까지 활발한 작품전시회를 하고 있고, 효자동에 있는 자신의 서실 금서재(琴書齋 02-720-1033)에서 후학을 지도한다. 현재 서연회(瑞硯會) 회장,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운석 안동해는 독서광으로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구입해 읽는다. 영화광으로 일주일에 두 세편의 영화를 관람한다. 연극관람도 남보다 많이 하는 편이라, 현재 우리나라 최고령극단인 신협동우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연극과의 인연은 명동 ‘카페 떼아뜨르’ 맞은편에서 ‘티롤’이라는 고전음악다방을 운영하면서, 추송웅, 함현진, 그리고 필자와 가까워진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 ‘티롤’에는 연극인과 문인, 그리고 음악인이 많이 드나들었고, 그들과의 친교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예서(隸書) 작품이 눈길을 끈다. 8폭 병풍에 쓴 ‘반야심경(般若心經)’은 운석 안동해의 열정과 정성이 서려있다. 또한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의 ‘가고파’를 한글서예로 8폭 병풍에 쓴 작품은, 운석의 50년간 공들인 필체가 드러난 명작이다.
‘여의(如意)’, ‘행운유수(行雲流水)’, ‘상락(常樂)’, 그 외 작품에 고아(古雅)하면서도 깊이 있는 예술적 정취가 배어있듯이, 서예와 그림이 함께 들어있는 시화 ‘인생은 작은 인연으로 아름답다’와 ‘오늘은 우리의 남은 삶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같은 작품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의 발길을 장시간 멈추도록 만든 작품이다.
운석 안동해가 색종이를 찢고 오려서 풀로 붙여 만든 지화전(紙畵展) ‘유치 찬란’은 제목과 작품이 절묘하게 어울려, 관객의 시선을 그림에 고정시킨다.
도시의 숲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고향이라 이름 붙인 여기에’라는 지화는, 어릴 적 살던 비좁은 골목길과 기와집들이, 현재 고층빌딩으로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것을 새삼 생각하도록 만들고, ‘석양에 비낀 갈매기 소리’라든가, ‘우리와 동등한 생명들’, 그리고 ‘사라지는 생명들’ 같은 환경문제를 다룬 지화는 예측불허의 미래를 암시하는 작품이기에, 관객의 발길이 장시간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타샤의 왈츠’, ‘물랭루즈’ 같은 작품은 영화의 명장면을 떠오르게 하고, ‘유성기 시대의 아련한 여운’은 음악광이기도 한, 운석 안동해의 유성기와 관련된 추억이 곁들여진 작품으로 유성기를 다루던 세대에게는 각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해가 거듭할수록 운석 안동해의 작품은 고품격이면서도 친 대중적인 정서가 표현되어 있기에, 그의 작품전에는 항상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많은 연극인의 모습을 운석 안동해의 전시장에서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