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국내외로 셰익스피어 축제가 열리는 가운데 게릴라 극장과 충무아트홀이 ‘셰익스피어 문화 축제’를 연다. ‘셰익스피어의 자식들’이란 부제 아래 젊은 연출가들의 작품이 게릴라 극장에서 공연되며,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연극’이란 부제로 독일의 알레시스 부크와 양정웅, 이윤택 연출가의 작품이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는 이 셰익스피어 축제의 첫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 독일의 극작가 모리츠 링케(Moritz Rinke)의 원작 ‘여자 벗은 몸을 아직 보지 못한 사나이’를 젊은 연출가 이채경이 각색한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 “왜 아무도 오지 않느냐”며 절규하는데, 어느 순간 방안엔 나체의 젊은 남자가 들어와 있다. 린넨 천으로 몸을 감싸고 그는 헬름 브레히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남자는 극장의 조연출 펠릭스로 그는 연극연습을 위해 극단의 배우들을 기다리던 상황. 그러나 아무도 도착하지 않고 그는 헬름 브레히트와의 소소한 대화에 오히려 안심한다.
그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펠릭스의 불안은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그는 연극을 완성시키려고 연습실에 나와 배우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그곳에 있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헬름 브레히트와의 대화에 안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펠릭스가 준비하는 씬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씬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낭만적인 발코니 씬을 완성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사랑’이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온전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펠릭스의 연인으로 무너져가는 세상을 뚫고 달려온 여배우 안나. 처음엔 이질적인 헬름 브레히트를 밀어내지만 같이 연극 연습을 하면서 그녀는 그와 진정한 교감을 나눈다. 그녀의 등장으로 같이 있는 것만으로 안정을 느끼던 펠릭스와 헬름 브레히트는 묘한 경쟁심을 갖게 된다,
펠릭스와 헬름 브레히트가 같이 추는 춤, 또 헬름 브레히트의 리듬감 넘치는 대사들, 안나의 줄리엣 연기. 짧은 연극이지만 볼거리가 많다. “세상이 멸망하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하던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거기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미스쥴리’에서 안정적이고 호소력 짙은 연기를 보여줬던 강호석이 끝까지 연극을 완성하려는 연출가 펠릭스역을 맡아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귀엽기까지 표현하고 있는 헬름 브레히트 역에 임현준, 현실주의자이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달려온 안나 역에 배보람이 열연하고 있다.
젊은 연기자 세 사람이지만 극장을 꽉 채우는 아우라로 끝까지 긴장의 끝을 붙잡게 만든다. 조금은 예상을 빗나가는 반짝임이 아쉬웠지만 놓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자식들’이란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거나 혹은 원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작품들로 짜여졌다. 첫 번째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4월4~27일 게릴라극장)를 시작으로 오세혁 작.연출의 ‘늙은 소년들의 왕국’, 백하룡 작·연출의 ‘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일본 극단 신체의 풍경의 ‘맥베스’, 극단 골목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어질 예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맥베스’를 재창작한 작품들로 젊은 연극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키는지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