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환도열차’는 지난해 연극 ‘여기가 집이다’로 2013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한 장우재가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베니싱 현상을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바라보고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탁월하다. 단 한명의 생존자, 지순의 눈에 비친 현재의 서울,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NASA에서 파견된 조사관 제이슨과 토미는 기이한 현상, 특히 베니싱 현상(순간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이 없어지는 초자연 현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고하는 전문가이다. 열차 운행을 하지 않는 오래된 철로에 1953년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도착한다. 2014년 서울에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다.
두 조사관 중 제이슨은 과거 한국에서 전도유망한 과학자였으나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고 그러한 상황에 환멸을 느껴 미국에 망명한 그는 과거 자신의 일처럼 이번 일도 모종의 음모가 있다며 모든 것을 의심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사람, 남편을 찾으러 서울에 올라온 이지순. 1953년 그 때의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고 진술에 일관성이 있어 토미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제이슨은 지순조차도 의심한다. 제이슨의 조사 과정을 통해 지순의 그 때 그 시절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사진처럼 스톱모션으로 배우들이 등장,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꼭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만 같아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그러나 돈이 없어도 힘내라고 몰래 먹을 것을 퍼주던 사람들. 지순의 이야기는 차라리 아름답다. 전쟁 후 피난민들의 삶과 대비돼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가족이라면서 돈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2014년 현실의 사람들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전쟁 중이다.
60년의 시공을 초월해서 만났지만 90세가 된 남편 한상해는 과거 지순이 믿고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업적 이권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왔고, 성공해서 거부가 되었지만 늘 강박에 시달린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에 손을 대고 후회하고...죽을 날만 기다리면서도 패악을 부린다. 누구도 믿지 않는다. 자식까지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을 만났고, 오고 싶었던 곳에 있지만 지순은 외롭고 지쳐간다. 다시 부산의 시장 통으로 돌아가고 싶다. 자신에게 기다리겠다고 말했던 석홍이 그리워진다. 그를 뒤로하고 남편을 찾아온 것이 후회된다. 지순은 현대의 서울과 부산을 보고 싶다 졸랐지만 볼수록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마침내 그녀는 비명을 지른다.
“이것은 이야기애요, 나는 이야기 속에 있는 거애요! 눈먼 왕의 이야기처럼 이것은 이야기애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애요!”
파편에 맞아 다리를 절었지만 지식인이었던 석홍이 몸 불편한 오빠와 지순에게 읽어주던 눈먼 왕 이야기(오이디푸스왕)와 어릴 때 들었다는 사당패이야기는 인물들과 맞닿아있다. 정말 그리워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내 마음조차 알 수 없으면서 과연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는 있을까?
처음 작품의 개요만 읽었을 때는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베니싱 현상을 도입으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인간이 살기 위해 변해가는 모습이야말로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오랜 향수를 일깨우고는 다시금 사라져버린 환도열차. 사라져가는 기적소리와 조명이 마치 긴 터널에 들어선 듯 했다.
이번에 도착하게 될 곳은 어딜까?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까?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종착역이 있다. 기차는 그 곳에 멈출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과거로부터 시간을 초월해 2014년, 서울에 나타난 지순의 순박한 시선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연극 ‘환도열차’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오는 4월 6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