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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학자들 ‘비주류 종교 낙인, 명백한 인권 침해’… 한국, ICCPR 의무 이행 촉구”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돼 있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제작·방영되는 종교 관련 다큐멘터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특정 단체를 다루며 교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채널까지 가세해 비주류 종교를 ‘이단·사이비’로 규정짓는 막가파식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종교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네 교수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의 경우 정명석 목사를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교인들이 SNS에 공개되고 조롱을 당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경찰, 군인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가톨릭 신자가 정치에 참여해도 누구도 ‘침투’라 하지 않으면서, 비주류 종교인만 침투라 낙인찍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인트로비네 교수는 아울러 “한국 역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가입국으로서, 비주류 종교 신자의 정치·사회 활동 참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ICCPR 제18조는 모든 개인의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신앙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일반논평 22호는 신흥 종교 교인에게도 공적 영역 참여 권리를 보장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국제난민 종교자유관측소(ORLIR) 로지타 쇼리테 회장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그는 “이 시리즈는 교인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반대자와 탈퇴자의 일방적 증언만을 편집해 보여준다”며 “학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균형을 상실한 보도”라고 평가했다. 이어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범죄율은 일반 사회보다 낮다. 그런데도 언론은 너무 쉽게 종교인을 범죄와 연결한다. 이것이야말로 용납될 수 없는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은 목소리를 내야 하며, 지금처럼 한쪽만 발언권을 독점하는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종교라 하더라도 신자의 기본권은 존중돼야 하며, 종교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라고 지적했다.양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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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받을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늘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연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라는 이유로만 받아들이며 절대적인 믿음을 유지하려 하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성경에서 전하려는 근본적인 뜻을 이해한 뒤에 성경을 봐야 한다. 본 선교회에서는 기독교의 다른 교파처럼 문자주의적 해석을 따르지 않고, 과학과 상식, 이치에 맞는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배우게 되면 신앙에 있어 그야말로 혁명적인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깊은 뜻과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일들에 눈을 뜨게 된다. 까마귀가 가져다 준 밥을 먹은 엘리야 선지자엘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900년 전,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활동했던 인물로 모세와 함께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선지자다. 북이스라엘은 우상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신을 국교처럼 섬겼다. 당시 북이스라엘에 재위했던 아합 왕과 그 시대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극적으로 핍박하고 학대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숨어서 살았다. 이때 엘리야는 담대하게 아합 왕 앞에 나가서 “내 말이 아니면 이 땅에 수년간 비가 안 온다.”라고 선포한다. 야고보서에도 엘리야가 기도하니 실제로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중략)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아합 왕에게 가뭄을 선포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기도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곳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다는 까마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어서 지켜보니,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정성껏 만든 음식을 가져와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그들이 돌아간 뒤 엘리야는 남겨진 그 음식을 먹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신 ‘까마귀’는 실제 새가 아니라, 우상숭배자들 즉 바알과 아세라 신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로 비유하신 것이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물어다 준 떡과 고기는 사실 우상숭배자들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떡과 고기였다. 엘리야는 먹을 것이 없어 그것을 아침과 저녁으로 먹으며 버텼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그때그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합당한 방법으로 도우셨다. 성경 속 기적과 표적은 깨닫고 보면 상식이다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은 잘 믿고, 순리적인 것은 평범하니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만 원한다고 책망하셨다(마태복음 12:38~39). 이렇게 성경을 자극적으로, 표적으로만 풀어 듣는 자도 그대로 믿으면 현실과 동떨어져 삶이 곤고해진다.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성경에는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이는 깨닫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뜻을 은밀히 전하시기 위함이다. 또한 비유로 인봉해 놓으시고 때가 되어 사명자가 그 인봉을 풀고 실천케 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도 “비유가 아니면 말하지 않겠다” 하신 것을 깨닫고, 말씀을 이해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그러면 자극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선교회의 교인들도 정명석 목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예수님을 다시 믿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말씀을 듣고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상숭배자들을 물리치다하나님은 3년 반이 지난 때가 되자 엘리야에게 산에서 내려가 아합 왕을 만나라고 하셨다. 아합 왕도 어떻게든 자기 민족에게 닥친 가뭄을 해결하려고 물길을 찾아 헤매다가 엘리야를 만났다. 왕과 엘리야는 만나자마자 서로 가뭄은 네 탓이라며 싸우다가, 결국 갈멜산에서 하나님과 우상신 중 누가 참 신인지 따져보자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갈멜산의 대결’이다.이 대결을 통해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쾌하게 보여주었고, 우상숭배자들을 속 시원하게 멸했다(열왕기상 18:25~40).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악을 제거하신 후, 3년 반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가뭄을 즉시 해결해 주셨다. 또한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서 초인적인 속도로 달리는 표적을 보이기도 했다(열왕기상 18:41~46).이 소식이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지자, 모두가 엘리야가 믿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임을 믿고 시인했으며, 엘리야는 명성을 떨친 선지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악을 멸하시고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극심한 가뭄에 죽어가던 만물이 단비를 맞고 소생하듯, 고난과 고통에 지친 인생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새롭게 거듭나 살아가게 된다. 왜 엘리야는 고난을 받았을까?엘리야 선지자는 당시에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시대 중심 인물이었는데, 왜 그릿 시냇가에 가서 고난을 받아야 했을까? 그것은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합 왕과 그 시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즉 가뭄이라는 고통을 받은 것이다.아합 왕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종교적으로 부패하니,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이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오히려 엘리야를 핍박하고 고통을 주어 하나님의 역사를 막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들이 엘리야를 대한 그대로 그 시대 그 민족에게 가뭄의 고통을 주어, 그들이 엘리야에게 고통을 준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든 만물에게 가뭄의 고통이 연속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자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주셨고, 그를 억울하게 하면 똑같이 억울함을 당하게 하셨다. 시대가 악하니 엘리야처럼 선하고 의로운 선지자가 핍박을 당하게 되었고, 오히려 악한 자들의 죄를 대신해서 엘리야 선지자가 조건을 세워주는 고난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기독교계의 현실... 젊은이들 떠나고 교인들 감소 추세오늘날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6·25 전쟁 이후 가난을 벗어나 눈부신 성장과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오히려 MZ세대는 하나님을 찾기보다 무속인을 더 찾는다는 보고도 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이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성과 물질에 빠지고 향락과 쾌락에 매여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 기독교는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강한 지적을 받을 정도로 비판받으며, 사람들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선교회 교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삶 속에서 말씀을 지키고자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한 신앙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명석 목사 또한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새 시대 복음을 5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전파해 왔다. 그러나 기독교 교단은 마치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를 핍박했던 것처럼 선교회를 이단시하며 부당하게 비난하고 있다. 거대 방송 매체들 역시 정치적·상업적 목적을 위해 편파 보도를 일삼으며, 그야말로 현대판 종교 박해를 자행하고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엘리야가 활동하던 북이스라엘 시대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겪는 민족적·세계적 고통이 과연 이와 무관한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정리: 강민수 기자 말씀자료 제공: 나명만 목사(기독교복음선교회 교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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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포와 포딕슨 해변 밀물이 멈춘 날, 그곳에 있었다”
특정한 자연현상이나 극적인 체험을 신의 개입으로 해석하는 일은 종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약성경 출애굽기 14장에 기록된 ‘모세의 기적’이다. 성경에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고 기록돼 있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의 상징으로 보지만,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과장된 전승 혹은 자연 현상의 오해로 해석한다.이와 관련해 2010년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CAR)의 연구원 칼 드루스는 얕은 수역에서 강한 동풍이 일정 시간 이상 불면 바닷물이 양쪽으로 밀리며 육지 통로가 드러나는 ‘윈드 셋다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Dynamics of Wind Setdown at Suez and the Eastern Nile Delta,2010) 이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이적과 기적이 실제로 자연적으로도 가능하다는 반론을 제시한다. 1995년 8월 15일, 몽산포에서 밀물이 멈추다1995년 8월 15일, 충남 태안군 몽산포해수욕장에서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청년부 수련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국과 일본 교인들이 과거의 상흔을 딛고 사랑과 평화를 약속하는 자리였다. 광복절 기념예배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축구와 기마전을 마치고 배구대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은 음력 7월 19일로, 서해안에서 해수면이 가장 높고 물살이 강한 ‘백중사리’ 기간이었다. 오후 1시부터 밀물이 빠르게 들어오자 선교회 관계자들은 행사 진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당시 현장에 있던 선교회 관계자 백충경 목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밀물이 몽산포 해변을 향해 빠르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정명석 목사님이 계속 서브를 넣으며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셨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밀물이 멈추게 해달라’는 기도였다”세 번째 배구 경기가 시작될 무렵, 참석자들은 더 이상 밀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주민 A씨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백중사리 날 이렇게 해가 질 때까지 백사장이 물에 잠기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환경 인식이 지금과 달랐던 당시, 주민들은 밀물이 들어오면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민 B씨 역시 그날 쓰레기를 버리려 했지만, 밀물이 들어오지 않아 쓰레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주민 C씨는 “백중사리에 저녁 6시 50분까지 해변에서 배구를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 시간이면 항상 백사장 끝의 콘크리트 계단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현장에서 배구경기를 지켜봤던 이연미 권사도 당시를 떠올렸다.“그날은 밀물이 그저 조금 늦게 들어온 줄만 알았다. 나중에 몽산포 사진을 보고서야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알고, 하나님이 밀물을 멈춰 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더 놀란 건, 밀물이 멈추려면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그날은 배구를 할 정도로 바람이 세지 않았다”국립해양조사원 자료에 따르면, 인근 신진항의 당일 만조 시각은 오후 7시 3분이었다. 몽산포는 약 20분 빠르기 때문에 오후 6시 43분이 만조 시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시각까지도 바닷물은 백사장을 넘지 않았으며, 청년들은 경기를 마친 뒤에야 물이 다시 밀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선교회 교인들은 이 사건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님이 함께하신 표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1년 9월 10일, 말레이시아 포딕슨 해변 밀물이 멈추다2001년 9월 10일, 말레이시아 포딕슨 해변에서 기독교복음선교회 청년부 수련회가 열렸다. 행사에 앞서 먼저 도착한 정명석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3일 동안 해변을 청소했다. 모래사장에 널린 쓰레기를 손으로 치우고, 해변의 검게 변한 물은 삽으로 퍼냈다. 다음 날이면 파도에 의해 쓰레기가 다시 밀려왔지만, 그는 청소를 멈추지 않았다. 이 모습을 신기하게 여긴 근처 리조트 사장이 이유를 묻자, 정 목사는 “지구는 하나님의 정원입니다. 항상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저는 지구촌 어디를 가든 자연을 하나님의 정원처럼 생각해 왔습니다. 평소에도 더러운 곳이 보이면 늘 청소해 왔지요”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이 수련회는 1999년 정 목사가 유럽 선교를 마친 뒤, 해외 회원과 교인들이 문화와 신앙을 교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포딕슨 해변은 열대 우림으로 둘러싸인 적도 부근 지역으로, 연중 기온이 높고 조수 간만의 차가 뚜렷하다. 평균 풍속은 시속 14~25km(초속 47m)로 산들바람 수준이며, 의자나 테이블이 넘어갈 정도의 시속 40km 이상의 강풍은 매우 드물다.당일 오전 7시경, 정 목사는 한국에서 온 교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선교회 관계자 D씨는 “다른 곳은 잔잔했는데, 우리가 있는 곳만 유독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의자가 날아가고 테이블이 넘어갔다”고 회상했다. D씨에 따르면, 정 목사는 바람을 바라본 뒤 “하나님이 오셨으니 말씀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저녁 6시경, 정 목사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자 각국에서 온 교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곧 밀물이 들어올 것이니 짧게 전하겠다”며 유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중심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당시 한 교인에게 모래사장과 물이 닿는 지점에 긴 삽을 꽂아 놓게 하며 “밀물이 얼마나 빨리 들어오는지 보자”고 했다.원래 이 날 만조 예보는 밤 10시 무렵이었지만, 바닷물은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해변을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교인들에 따르면, 말씀이 시작된 후 약 2시간 동안 바닷물은 놀랍게도 그 삽을 넘지 않았다. 당일 현장에 있었던 E씨는 “저는 그때 바닷물을 계속 지켜봤다. 아무리 봐도 물이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도 불었고 사람도 많았지만, 물만은 그대로였다”라고 증언했다.말레이시아 교인 이판 씨도 “예전에 몽산포에서 밀물이 멈췄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정말 놀랐다. 물이 찰랑거리긴 했지만, 넘칠 듯 말 듯 멈춰 있는 모습을 보며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밀물이 멈춘 현장을 보며 정 목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우리가 포딕슨 해변을 깨끗이 청소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시작한 일이다. 우리 생각으로는 그 많은 쓰레기를 치우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미리 깨끗하게 해 놓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들을 증거하니 밀물이 멈추는 표적을 일으켜 주신 것이다”라고 증거했다. 해양 관측 기록과 목격자 증언…사실로 입증된 ‘밀물 멈춤’선교회 교인들은 포딕슨 해변의 ‘밀물 멈춤’을 하나님의 표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일부 선교회 비방자들은 당시의 기상 데이터를 근거로 사건을 부정했다. 그들은 “포딕슨 해변은 조석 변화가 적고, 당시 아예 썰물 시간이었다”고 주장했다. 양측 주장은 팽팽히 맞섰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없었다. 비방자들이 제시한 자료는 포딕슨 현지의 조위 관측 지점이 아닌 인근 지역 데이터를 사용한 것이었고, 선교회 역시 수치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이후 당시 현장에서 직접 밀물이 멈춘 것을 목격한 한 교인이 과학적 증명을 위해 자료를 찾던 중, 말레이시아 자료가 없어 영국 수로국(UKHO)에서 포딕슨의 조위 곡선 자료를 확보했다. 확보된 조위 곡선 자료에 따르면 오후 4시 50분에 밀물 상승이 시작됐으나, 오후 6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조위 변화가 전혀 없는 ‘정체 구간’이 나타났다. 이후 오후 10시 44분에 만조가 된 것이 확인됐다. 이는 선교회 측 증언과 정확히 일치했다.2001년 포딕슨 해변과 1995년 몽산포에서 발생한 ‘밀물 멈춤’ 현상은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영국 수로국 조위 곡선 자료로 뒷받침된다. 특히 포딕슨의 경우, 약 2시간의 조위 정체는 자연적으로도 극히 드문 현상이라는 것이 해양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후 동일 장소에서 같은 패턴의 조석 정체가 재현된 적은 없다. 이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하나님의 표적으로, 또 누군가는 특이한 자연현상으로 해석한다. 결국 기적과 표적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순한 우연으로 남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의 ‘밀물 멈춤’은 해양 관측 기록과 목격자 증언으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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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짜 생존자’… 왜 그들은 떠나지 않는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찾다선교회에 들어오기 전 교인들의 종교적 배경은 다양하다. 선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기독교 신자, 교회를 다니다 신앙을 떠난 이들, 불교 신자, 무신론자까지 폭넓다.현재 한 기업을 운영하는 김윤철(52)씨는 19세 때 친구의 “성경 배워 볼래?”라는 제안으로 선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인생의 곤고함과 허무함, 가난 속에서 희망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정 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잊혀져 가던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찾게 됐다. 그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과의 새로운 만남은 제 인생을 몸과 마음, 영혼까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았다”고 고백했다.이수연(50)씨의 경우 지금까지 선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정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30년 넘게 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는데 정 목사에 대해 “삶과 말씀이 일치하는 분, 삼위와 예수님의 사랑에 미친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 목사님은 나를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인생으로 변화시켰고, 확실한 인생길을 찾게 해 준 분”이라고 강조했다.한여름, 하늘에 피어난 예쁜 적운을 바라보던 박지민(37)씨는 “하나님, 교회에 가도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 옛날 나사렛 예수와 같은 분은 이 세상에 없을까요?”라고 독백을 했다. 이어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어휴, 그런 분이 있을 리가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박씨는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사심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그때마다 깊은 실망을 느꼈다. “대학에 가서도 그런 분을 못 찾으면 전공을 마치고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그러던 중, 대학 시절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정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정 목사가 전하는 성경에 기초한 말씀을 들으며 그는 꺼져가던 신앙에 다시 불씨를 지폈다. “그분을 만나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그는 정 목사를 통해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실천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 말씀은 그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저도 예수님을 생활 속에 가까이 모시고 살게 됐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밖에 모르는 분...‘인생의 멘토’약사로 일하는 서현민(43)씨는 “내가 만난 목사님은 하나님과 예수님밖에 모르는 분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 목사가 사람의 생명을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는 태도와 문제를 하나님 중심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본주의적 시각이 강했던 그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방법이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고 한다. 대학에 불합격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신앙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성경 속 말세 예언이었다. 그 당시 전도되어 선교회의 성경 강의를 들으며 막연했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비유로 감춰진 성경의 진리를 깨달으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됐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종”최경환(40)씨는 스스로 “목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를 변화시킨 정 목사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생각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종”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세상 사람들은 정 목사님을 오해하지만, 나를 새 삶으로 인도해 준 참 스승이자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평생 하나님을 빼놓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목사님의 삶처럼 지구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자가 되겠다고 결단했다”고 전했다. “잠깐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대만 교인 샤오란(35)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자살을 결심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답을 구했지만 납득할 만한 대답은 없었고,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마지막 선택을 하려던 순간 큰 음성이 들렸다. “잠깐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이 음성을 믿은 그는 삶을 이어갔고, 정확히 3년 뒤 고3 졸업을 앞두고 선교회와 연결됐다. 3개월간 말씀을 들은 그는, 과거에 들었던 음성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2015년 1월 11일, 교회 목회자가 전한 정 목사의 주일말씀 제목은 ‘잠깐만!’이었다. “하나님은 죽음을 앞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잠깐만!’ 하면서 그 사람을 꼭 잡는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는데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20살 여대생 강보라씨. 그러나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불교가 아닌 기독교,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정 목사님이 제게 하나님을 알려주신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강씨는 그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생의 곤고함을 느끼는 사람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리는 사명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과거 그의 고민은 단순했다. ‘무소유냐, 소유냐.’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키는 이유 선교회 교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교리를 지킨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세상의 시선과 언론의 평가와 관계없이 그들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 길을 안내한 정 목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신앙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자신이 살아온 체험에서 비롯된 분명한 선택이었다. 그 믿음은 맹목적인 문자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과학과 상식, 그리고 이치에 맞는 성경 해석을 통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성경 속 의문을 해소하고, 영적인 기쁨을 느끼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많은 교인들은 주일예배와 새벽 단상 등에서 전해진 정 목사의 말씀을 통해 삶의 해답을 찾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설교에는 실천하면 성공할 수 있는 지혜와, 꾸준히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녹아 있었다.그들이 선교회를 떠나지 않고 믿음을 지켜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취재를 마친 기자의 결론은 명확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가 다루지 못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생존자, 그들은 바로 선교회 교인들이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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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인가, 권력인가?’...한국 개신교, ‘제2의 종교개혁’ 기로에 서다
정치의 그림자, 강단을 뒤덮다논란의 중심에는 수십 년간 방송 선교 활동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쌓아온 K목사가 있다. 보수 개신교계의 ‘정신적 지주’로 불려온 그는 최근 자금 유용 및 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으로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그 실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CBS 출신 언론인 B씨는 “기도회라는 명목으로 특정 정치인을 위한 동원과 선전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K목사 측과 정권 중심부의 연계 가능성, 방송 재단을 통한 정치 후원 의혹 등을 제기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보수 신앙의 문제가 아닌 명백한 권력 추종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광장 정치의 선봉에 선 인물들도 있다. 대형교회를 이끄는 P목사는 공개석상에서 특정 정당과 대선 후보를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 칭하며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고, 반대 진영을 ‘사탄’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신앙을 이념 투쟁의 도구로 활용해왔다. 지역 기반의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J목사 역시 종교 예배와 정치 집회의 경계를 허무는 행보로 교단 내부에서조차 “교회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징계 요구에 직면한 상태다. 이들은 입을 모아 ‘나라를 위한 기도’나 ‘영적 전쟁’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종교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침묵의 카르텔과 떠나는 다음 세대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지도자들의 일탈에 대한 교계 내부의 침묵과 방관이다. 재정 비리, 목회 세습, 권력과의 유착 등 교회의 거룩함을 해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수의 교회와 교단은 진실 규명보다 ‘교회의 영광을 가린다’는 명분 아래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위선과 불의 앞에서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은 청년 세대다. 한 교단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청년 출석률이 60%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한국교회의 영적 파산을 알리는 경고등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복음이 아닌 ‘복음 없는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사랑과 겸손 대신 권위와 혐오를 부추기는 강단의 모습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닮은 현재의 개신교한국교회의 현 상황은 16세기 종교개혁 직전 로마 가톨릭의 타락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당시 면죄부 판매, 교황권의 세속화, 성직 매매 등으로 인해 교회는 대중의 신뢰를 상실했고, 마르틴 루터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을 외치며 교회의 본질 회복을 외쳤다. 현재 한국교회 일부에서 벌어지는 ▲정치 헌금과 불투명한 재정 운영 ▲목회자의 정치적 선동 ▲교회를 사유화하는 목회 세습 등은 중세 교회의 타락을 답습하는 행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한국교회는 루터 이전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거울 삼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제2의 종교개혁’은 가능한가 한국교회는 권력의 제단에 바쳐진 믿음을 되찾고, 다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와 거리를 두자’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교회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질문이다. 내부 고발자들과 비판적 언론인들은 ▲강단의 정치적 중립 의무화 ▲독립적 외부 회계감사를 통한 재정 투명성 확보 ▲이념 선동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 회복 ▲평신도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반영되는 교회 구조 개혁 등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화려한 성전을 의지하며 정의와 사랑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예레미야 7;4)고 통렬히 외쳤다. 현재 이 경고는 거대한 조직과 정치적 영향력을 축복으로 여기며 본질을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지금의 타락과 침묵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역사의 무대에서 빛을 잃고 퇴장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진정한 회개와 용기 있는 저항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되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제2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상징이나 슬로건이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속적 권력과 물질 추구에서 벗어나, 정의와 사랑, 겸손이라는 복음의 본질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이는 교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이자,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최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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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사람을 창조하셨을까?...기독교복음선교회 주요 교리 분석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세상을 만드셨을까? 만일 이 질문의 답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게 된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을 두고 만드셨으며, 사람은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 참된 가치와 의미를 얻게 된다.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삶은 인간으로서도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이 된다.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은? 일반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랑’이라 하면 육체관계에서 오는 흥분과 기쁨만을 생각하며, 육체관계가 없다면 사랑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만일 육체적 관계가 사랑의 핵심이며 본질이라면, 육체적 관계가 불가능한 고령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성적인 것을 모르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맡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의 뇌에서 느끼는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보다도 훨씬 더 극치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다.“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육체 사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세상의 성(性) 문화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그로 인해 세상에 남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육적인 것에 빠지게 되고, 갈수록 타락되기 쉬우며, 결국에는 곤고함에 빠질 뿐이다. 남녀 간의 육체관계는 생명이 탄생하고 번성하는 역할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수십만 가지, 수십억 가지를 남기게 된다. 예술, 문화, 건물, 환경, 먹고사는 것까지도 남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람의 뇌를 발달시키면, 위대한 예술과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또한 뇌를 발달시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세계와 구원, 휴거, 천국까지도 얻을 수 있다.뇌 사랑, 정신 사랑, 생각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육신이 늙어도 생각에 따라 무한대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차원을 높여 가는 하나님의 구원역사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도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고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비유의 근본을 깨닫고 이 시대에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달아 믿고 살아간다.누구나 발달된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듯이,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도 발달되고 차원 높은 신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아무 때나 하나님을 신부의 차원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함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종급으로 낮아졌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고 사랑해도 종의 차원이었으며, 실제로 선지자나 중심인물들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종’이라 표현했다.“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그러나 아담 이후 약 4,000년 만에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을 종급에서 자녀급으로 끌어올리시며 구원 역사를 한 차원 높이셨다. 예수님은 자녀 차원의 말씀을 전하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를 이루셨다. 이로써 사람은 구약시대보다 더 높은 차원인 ‘자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신부’가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처럼 사랑하고, 믿고, 섬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하나님의 역사는 때에 따라, 시대에 맞게 진행되기 때문이다.“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과학자들은 이 세상(우주)이 창조된 지 수백억 년이 지났고, 지구는 약 45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으로 볼 때,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6,000년의 구원 역사는 2,000년 전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한 차원 더 높아졌다.실상 아담과 하와는 지구상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은 신앙의 조상이자 종교의 조상이다. 안타깝게도 아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셨던 역사가 펼쳐지지 못했고,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녀급 차원의 구원 역사가 진행되었다.이제 이 시대는 성경에 예언된 때가 되어,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오셨고, 신부급 구원 역사를 펼쳐가고 계신다. 하지만 이를 모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하나님은 분명히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의 영을 위해 육체를 만드셨고, 그 육체가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한 환경으로 지구를 창조하셨으며, 지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이 세상, 즉 우주를 만드신 것이다.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진정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시며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가 되어야 가능하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배우고, 믿고, 따르며,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사람도 말씀을 듣고 성장하며 자신을 만들어 가고, 때가 되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기독교복음선교회 교인들은 창립 이후 50여 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으로서 모습을 보이며 살아왔다. 성경을 근본으로 하여 ▲술, 담배, 마약 등 하지 않기 ▲동성애 금지, 성장한 후 건전한 이성 교제하기 ▲성경을 중심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등 건전하고 은혜로운 종교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선교회의 이러한 신앙 문화를 보고 ‘극성스럽다’, 혹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실 때 만족하실 정도로, 한 개인과 한 가정, 한 민족, 그리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상이야말로 바로 ‘지상 천국’이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땅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을 알고 진정으로 믿으며, 모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고, 곤고함도 사라지게 된다. 나아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면, 결국 자기의 소원도 이루며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된다. 신앙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독교복음선교회는 말씀을 통해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정리: 강민수 기자 말씀자료 제공: 나명만 목사(기독교복음선교회 교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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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역사와 사연’, 신앙 여정 담은 영상 순회… 교인들 깊은 공감 이끌어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지난해 12월 대전 지역회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영상 프로그램 ‘섭리역사와 사연’을 진행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교인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 영상 프로그램은 정명석 목사의 초기 신앙 여정부터 현재의 활동, 선교회의 발전 과정을 다양한 영상 자료와 간증을 통해 소개한다. 특히 교인들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선교회 초창기 장면들과 정 목사의 과거 영상을 보기 위해 프로그램에 큰 기대를 갖고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명석 목사는 9세 무렵,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의 100년이 넘은 낡은 초가집에서 신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예수 사랑하심은’, ‘내 주를 가까이’ 같은 찬송가를 부르며 시작된 그의 신앙은, 한남대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윌리엄 린튼 목사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본격화됐다.정 목사는 해당 장소를 회고하며 “당시에는 굉장히 커 보였던 이 집이 지금 와서는 작고 보잘것없는 곳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이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예배에는 약 15~20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보이며, 좁은 공간 탓에 여러 방이 대기실로 활용되었다. 종소리는 산소 용접통을 이용해 직접 울렸고, 예배 후에는 집 앞의 앵두나무에서 열매를 따먹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전했다.영상 속 ‘사랑방 교회’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말구유를 연상케 했다. 비록 3칸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선교회는 현재 세계 77개국 규모로 성장했다.영상은 정 목사의 일상도 담고 있다. 그는 새벽 설교로 하루를 시작하며 월명동 자연성전에서 교인들과 함께 작업하고, 운동하며, 아픈 이들에게는 월명수를 떠다주고 기도해주는 바쁜 일상을 이어간다. “건강은 하나님의 도구를 잘 관리하는 길”이라며 땀이 날 때까지 운동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특히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정 목사가 소나무 가지치기 작업에 직접 참여해 하루에 2,800회 이상 소나무 가지를 다듬는 모습이다. 같은 날 연못 둘레길 공사, 세 그루의 소나무 관리, 설교와 모임, 운동까지 이어지며,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모습도 담겼다. 이에 대해 한 선교회 관계자는 “정 목사님은 하루를 천 년같이 사용하는 분”이라고 전했다.프로그램에는 정 목사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영상도 포함돼 있다. 1978년, 몇몇 교인들과 함께 ‘노아 할아버지’ 찬양을 부르던 젊은 시절의 장면과,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제자들과 함께 같은 찬양을 부르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 상영됐다. 이는 시대와 환경은 달라졌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은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영상 중간에는 지역 교회 교인들의 간증도 이어졌다. 선교회를 통해 신앙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고난과 회복의 과정,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체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연 등 생생한 고백들이 소개되어 참석자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많은 교인들은 간증을 통해 지난 시간 동안 세간의 비난으로 상처 받았던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고 밝혔다.정 목사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경 속 요셉과 다니엘의 삶이 떠오른다. 그들 역시 믿음 때문에 오해와 비난을 받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었다.구약성경 창세기 39장에 따르면,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고,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했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뒤 무고를 당해 감옥에 갇힌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종이 여주인을 모욕했다면 곧바로 처형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뒀다. 이는 그의 인품에 대한 보디발의 신뢰가 일부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고 애굽의 총리에 오른다. 기근이 닥치자 요셉은 식량을 구하러 온 형제들과 재회하고, 형들은 과거의 죄를 두려워하지만 요셉은 말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창세기 50:19). 그는 형제들의 악행마저 하나님의 선한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미움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그들을 품는다.요셉의 삶에서 보이는 용서와 신뢰의 정신은 정명석 목사의 신앙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 역시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한편, ‘섭리역사와 사연’ 프로그램은 지역 교회별 상영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떤 지역회에서는 정명석 목사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 표적과 사연 등이 담긴 영상을 상영했다. 선교회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번 순회 영상 프로그램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교회의 신앙 여정을 되짚으며 교인들에게 “우리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교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신앙의 궤적을 돌아보게 하고, 공동체로서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문화 사역으로 평가받고 있다.홍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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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복음선교회에 대해 묻고 답을 듣다
Q. JMS는 정명석 목사의 이니셜인가요?A.JMS는 흔히 정명석 목사의 이니셜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로 정명석 목사의 이니셜이 아닙니다. 게다가 선교회의 공식 명칭 역시 아닙니다. ‘새벽별’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계시록 22장 16절에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신 말씀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이름에는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밝혀주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이러한 뜻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JMS는 특정 인물의 이니셜이 아닌, 성경적 의미에 뿌리를 둔 신앙적 표현입니다.Q. 선교회의 가르침은 기존의 기독교 교단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A. 선교회 교리는 성경의 말씀을 기존 문자주의 해석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해석하며 개인의 삶의 변화와 실질적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가르칩니다. 더불어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절대 중시하며 기존 교단의 다소 정형화된 형식과 달리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1:1 교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Q. 선교회를 향한 부정적 시선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A.선교회는 오해나 편견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꾸준한 소통과 진정성 있는 삶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되, 정직하고 성실한 신앙 실천으로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믿습니다. 더불어 대외적 소통 활동 강화와 교류를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합니다.Q. 정명석 목사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요?A.선교회는 정명석 목사의 무죄를 주장하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일부 언론이 반 JMS세력과 전 JMS교인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부각하며 왜곡 보도해 온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선교회는 사법 절차를 존중하나,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선교회의 본질인 말씀을 중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 역시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입니다.Q. 선교회에서는 구원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나요?A. 선교회는 지금 이 시대를 하나님의 구원역사 6천년의 기반 위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실현되는 마지막 천년 역사라고 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주인공이자 사명자입니다. 그렇기에 시대의 말씀을 듣고,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을 이루며, 복음을 전파하며 사는 삶을 강조합니다. 이는 성경에 예언된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들의 사랑의 역사’를 이 땅에서 실현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Q.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재림해 믿는 자들을 휴거시킨다고 했는데, 선교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나요?A. 선교회에서는 2천년 전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육이 아닌 영으로 부활했다고 해석합니다. 이 시대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은 그 앞에 영적 신부로서 사랑의 조건을 세운 사람을 사명자로 삼아,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 시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지상에선 나의 삶이 천국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 영계에선 성장한 영(Spirit)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선교회는 ‘휴거’로 해석해 전하고 있습니다.Q. 선교회에서 기성 기독교 교단에 비해 청년층과 대학생들이 많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A. 선교회는 말씀을 통해 청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 인생의 참된 방향과 의미를 찾도록 돕고 있습니다.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자기계발, 진로, 인간관계 등 현실적인 고민에 해답을 제시하며 공감대를 형성해왔습니다. 게다가 청년들에게도 사명과 역할이 적극 부여되어 주체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신앙과 예술, 문화가 어우러진 환경도 젊은 세대의 감성을 끌어당기는 요소입니다. 이처럼 신앙과 현실, 감성과 실천이 융합된 환경은 자연스레 청년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Q. 선교회 교회를 다니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A.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교육을 중요시합니다. 각 지역의 선교회 소속 교회에 처음 방문하는 분은 기초 성경공부를 통해 복음의 핵심을 배우고 일정 기간 말씀과 삶을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앙의 의미와 방향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후 본인의 뜻에 따라 정식으로 예배 공동체에 참여하게 됩니다. 모든 과정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Q. 선교회의 결혼 제도인 ‘축복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축복식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으로 성장한 남녀가 결혼할 때가 되어 부부로 언약을 맺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선교회 청년들은 창세기 1장 28절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에 따라, 먼저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최우선으로 사랑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후 일정한 나이와 가정을 이룰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롭게 상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충분한 대화와 만남, 기도를 통해 결혼 여부를 결정합니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은 축복식을 통해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룹니다.Q. 선교회에서 ‘신앙스타’는 어떤 역할을 하는 부서인가요?A. 축복식이 육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면, 신앙스타는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처럼 결혼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서약하고 결혼하지 않고, 전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며 사는 영적 신앙의 삶을 말합니다. 신앙스타는 남녀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 정명석 목사도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변치 않는 영적, 정신적 사랑을 드리며 신앙스타의 표상적 삶을 살아왔습니다. 축복식과 신앙스타 두 길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길이며, 본인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Q. 선교회에서 사사부와 대외협력국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알고 싶어요.A. 선교회에는 다양한 직군의 회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사부’는 구약 성경의 사사(士師) 개념에서 유래한 부서로, 조직의 명칭 또한 ‘백합’, ‘아가페’, ‘기드온’, ‘시온’, ‘미카엘’ 등 성경에서 차용된 이름이 많습니다.‘대외협력국’은 외부 기관과의 소통, 민원 응대, 갈등 예방 등을 위해 구성된 공식 부서로, 일반 교단의 사회선교국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는 교회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정상적인 조직입니다.양오석·최윤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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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왜 그들은 떠나지 않는가?
서구 종교사회학자의 분석... 믿음은 왜 지속되는가?2019년 3월과 6월, 정명석 목사를 직접 인터뷰한 서구 학자인 이탈리아 종교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 교수는 종교 전문 매체 비터윈터(Bitter Winter)에 연재한 기고문을 통해 정 목사와 선교회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인트로비네 교수는 정 목사가 수감 중일 때도 선교회의 교세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가 전한 말씀의 파워와 조직력이 공동체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명석 목사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교인들은 여전히 그가 무죄임을 믿고 있으며 종교운동은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법적 판결이 종교적 믿음과 공동체 유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또한 인트로비네 교수는 선교회의 핵심 교리인 ‘30개론’과 정명석 목사의 독창적인 말씀, 영적 체험이 교인들에게 확고한 신앙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하나님의 묵시를 전하다정명석 목사는 21년간의 수도생활을 마친 뒤, 1978년 6월 1일 서울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47년간 하나님의 생생한 묵시를 기록하고 증거해왔다. 어디에 있든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펜으로 기록해왔으며, 현재 육신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말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선교회 측의 설명이다.그가 수감 중에 펜끝으로 기록한 묵시는 볼펜 5천 자루에 이를 만큼 방대한 분량에 달한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각국의 목회자들은 그의 말씀을 주일과 수요예배에서 대언하고 있으며, 선교회는 매주 금요일 성경학교를 통해 교리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나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정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고, 십대 시절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2천 회 이상 통독하고 연구해왔다. 그는 성경을 삶에 실천하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성경의 비유들을 과학과 이치에 맞게 명쾌하게 해석했다.21년간의 수도생활 동안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오직 하나님’ 사상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섬기며 신실한 신앙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나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사선을 넘는 혹독한 연단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성경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밝혔다.정 목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통찰하며, 인간 창조의 목적과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본질적으로 해석해 전하고 있다. 그의 말씀은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삶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그는 “무지한 자들이 비진리를 진리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하며, ‘구름 타고 온다’, ‘육이 부활한다’, ‘세상이 불탄다’, ‘육이 휴거된다’는 등의 표현은 문자적 해석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하늘 구름’은 ‘사람 구름’, ‘불’은 ‘말씀의 불’, ‘육 부활’은 ‘영의 부활’을 의미한다.새벽을 깨워 기도, 낮은 자세의 리더십과 실천의 삶정명석 목사에게 기도는 일상의 일부였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 매일 새벽을 깨워 세계와 민족,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왔다. 그 기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교인들에게 신뢰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낮은 자세’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교단체의 수장이지만 남녀노소, 인종, 신분을 불문하고 누구와도 격 없이 소통하며 어려운 상황에 대해 경청했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 입은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 해결해주고자 노력해왔다.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그의 삶 역시 교인들을 선교회에 머무르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그의 말씀은 깊은 기도 가운데 받은 하나님의 묵시이기에, 이를 삶에서 실천할 때 결실을 맺는다고 교인들은 말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신앙과 생활의 균형 속에서 인격과 내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기독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정명석 목사는 지난 47년간 국내외 77개국에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이끌어왔다. 1978년 서울에서 대학생 전도를 시작으로 교회를 세우고, 지방 개척과 해외 선교를 통해 교세를 확장해왔다. 그의 사역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기존 교회들이 성경의 난해한 부분을 맹목적 문자주의로 해석하는 반면, 그는 성경을 과학과 상식, 이치에 맞게 설명하며 사람들의 인생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청년과 엘리트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기성 기독교계의 반발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교단은 기존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는 성경 속 인물들처럼 고난과 박해를 겪었지만, 이를 딛고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자연성전 ‘월명동’을 건축했고, 이곳을 중심으로 기독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지난 47년의 행보는 단순한 목회가 아니라,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기독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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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사법·검찰 개혁’ 왜 필요한가
이재명 정부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사법·검찰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과거 정권들 역시 유사한 구호를 반복했지만, 이번 정부는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대법관 증원 및 임명절차 개편’ 등 권력기관 구조 개편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고 있다. 야당은 이를 정치적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사법·검찰권의 남용과 국민 신뢰 저하라는 오랜 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채널A 사건’·‘사법농단’ 이후 커진 개혁 요구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행사하는 구조적 특성상, 견제받지 않는 권한 행사로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20년 채널A 사건 당시 한동훈 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간 비호 의혹, 법무부 감찰 차단 논란은 ‘제 식구 감싸기’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검찰 권력의 독립성·중립성 훼손, 정치적 개입 의혹이 불거졌고, 국민적 비판이 거셌다.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검찰의 독립성 논란은 계속됐다. 대통령실과 여권 인사 관련 의혹 수사에서는 미온적이면서, 당시 야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및 소속 의원에 대한 수사는 집중적으로 이뤄져 정치적 편파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특정 정치 일정과 맞물린 수사 착수, 검찰 인사에서 윤 대통령 캠프 출신 인사 중용 등도 논란을 키웠다.법원 역시 ‘사법농단 사건’으로 치명적 신뢰 위기를 겪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법관 블랙리스트 운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법부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됐다. 해당 사건의 수사와 재판이 지연되거나 정략적으로 활용됐다는 비판 속에,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급격히 추락했다.피의사실 공표·여론재판 폐해 여전사법·검찰개혁 요구의 또 다른 배경은 피의사실 공표와 여론재판 관행이다. 대장동 사건의 김만배·정영학 녹취록 유출,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 등에서 확인되듯, 수사 초기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훼손되고 여론재판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빈번했다.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이 같은 여론재판 사례는 지속됐으며, 한 연예인 성범죄 사건의 경우 1심 무죄 이후 상급심에서 사회적 여론에 편승해 판결이 뒤바뀌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JMS 정명석 목사 사건의 경우, 물증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피해자 진술을 주요 증거로 삼아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사회적 관심과 여론이 뜨거웠던 사건인 만큼 판결에 여론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양날의 검…개혁의 우려와 현실적 장벽사법·검찰 개혁은 긍정적 기대와 동시에 현실적 문제도 안고 있다. 검찰 권한 분산 과정에서 새로 생겨나는 중수청·공소청 등 기관이 또 다른 권력 독점의 주체로 변질될 우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여전하다. 또한 검찰 수사 기능 축소로 인한 전문성·노하우 공백 문제도 지적된다. 경찰이나 중수청이 단기간에 이를 보완할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워, 주요 범죄 수사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입법 구조의 한계와 헌법적 제약도 현실적 장애물이다. 검찰청 폐지 등은 국회 동의가 필수이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야당은 ‘정권의 방탄용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개혁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12조의 ‘영장청구권 검사 독점 규정’은 개헌 없이는 변경이 불가능해 개혁 추진에는 험난한 정치·법적 과정이 불가피하다.시민 감시·참여로 사법 정의 회복해야이재명 정부의 사법·검찰 개혁은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닌, 법치주의 체질 개선을 지향한다. 그동안 누적돼온 폐단은 일부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 권력구조의 문제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특히 JMS 정명석 목사 사건과 같이 형사 재판에서 무죄추정 원칙과 증거 재판주의 원칙이 무너지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여론재판을 방지하고, 증거 기반의 공정한 재판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개혁 지지자들은 “개혁의 길은 험난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의는 실현될 것”이라며, “사법 정의는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 공동체 전체의 책임”임을 강조하고 있다.김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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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정부, 사법·검찰 대개편 전격 예고… ‘검찰청 폐지’ 카드까지 꺼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사법·검찰 대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1주일 만인 지난 11일,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 법안’이 전격 발의되며 정치권과 법조계가 격랑에 휘말렸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이 권력 남용과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초래해 국민 기본권 보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이관하고, 검찰은 기소 전담 기관으로 전환하는 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사법부 개혁도 핵심 과제다. 정부는 대법관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임명 과정에 국회와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새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재판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권위주의적 폐쇄 문화를 개선해 사법부와 국민 간 거리를 좁히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번 개혁안은 단순한 제도 손질을 넘어, 대한민국 권력기관의 근본 작동 원리를 재설계하려는 구조적 시도로 평가된다. 권한 집중에서 분산으로, 폐쇄에서 투명으로, 일방적인 지배에서 상호 견제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개혁은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법치 체질을 바꾸려는 중장기 프로젝트”라며 “국민이 일상 속에서 사법 정의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이를 ‘방탄 개혁’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검찰과 사법부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까지 포함돼 있어 향후 개혁 실현 가능성과 속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김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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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기독교복음선교회, ‘구국기도회’ 잇따라
6월 3일 제22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 교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연속적으로 진행했다. 선교회 정명석 목사는 평소 국가는 ‘제2의 나’라며 나라 사랑과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으며, 스스로 기도의 본을 보이며 실천해 왔다. 정 목사는 “에스더와 요셉, 야곱처럼 하나님께 나라의 일을 고하고, 국가와 민족, 국방을 위해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으면 그 죗값을 받는다”고 늘 당부해왔다. 특히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교인들에게 “나라가 어지럽고 힘들다고 하나, 네 나라가 아니지 않느냐”며, “하나님이 총 지휘하신다. 나라 위해 기도하라. 주권자 위해 하나님 뜻에 합당한 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선교회 교인들은 새벽예배와 주일예배 말씀이 끝난 이후 또 각자 처소에서 하나님 뜻에 합당한, 대한민국을 위해 일을 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전국 각지 교회를 이끄는 선교회 교역자들은 매월 1회 충남 금산 월명동 자연성전에서 정기적으로 ‘월례 기도회’를 열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올려왔다. 지난 6월 19일에도 월례 기도회가 이어졌으며, 교역자들은 나라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전쟁 위기 때마다 구국기도회… “기도로 역사를 바꾸다”선교회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늘 안고 있는 국방과 안보의 위기를 두고, 수십 년간 구국기도회를 개최해왔다. 정명석 목사는 지난 47년 간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펼쳐오면서 전 교인들과 함께 기도의 불이 식지않게 해왔다. 한반도 정세는 구약성경 요시야 왕 시대 갈그미스와의 관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 상황에 처할 때가 많았다. 그동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따라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일촉 즉발의 대치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선교회의 대표적인 구국기도회를 살펴보면 1994년 6월 12일,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 고려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선교회 지도자 1만여 명이 모여 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이후 6월 16일부터 17일까지는 월명동 자연성전으로 장소를 옮겨 철야기도를 이어갔다. 기도회 이후 21일 만인 7월 8일 새벽 2시,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며 전쟁 위기가 자연스레 해소됐다. 당시 정명석 목사는 “전쟁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고 기도했다. 총보다 더 강하고, 원자폭탄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기도로 풀었다”고 밝혔다.이 같은 선교회의 구국기도회 전통은 2023년에도 이어졌다. 2023년 10월 15일, ‘민족과 세계를 위한 화합과 평화의 기도회’가 서울 여의대로에서 개최됐으며, 여의도 현장에 20만여 명, 73개국에서 수십만 명이 온라인으로 동참했다. 해외에서도 2,000여 명의 외국인이 한국을 직접 찾아 기도회에 참가하는 열기를 보였다. 이날 교인협의회 관계자는 “정명석 목사는 쉬지 않고 국가와 민족, 세계를 위한 기도를 계속해 왔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구국기도회를 열어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며, “그동안 우리는 전쟁의 위험에서 한반도를 구하기 위해 기도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기도했다. 마음을 모아 기도했을 때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지켜주셨다”고 전했다. 이어 “정명석 목사의 생명 사랑을 본받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세계평화 그리고 민족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민족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불’ 타오르다이날 기도회 1부 행사에서는 ‘세계평화와 화합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이를 인도한 A목사는 “전 세계가 대지진, 기록적인 홍수, 산불, 그리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며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께 있다. 정명석 목사는 평화는 사랑에서 비롯되며, 사랑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했다. 우리 모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강조했다.이어진 2부는 민족을 위한 기도회로 진행됐다. B목사는 “북한의 지속적인 전쟁 분위기 조성과 경기 침체,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우리 선교회도 가짜뉴스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민족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또 전쟁 유발 분위기를 막기 위해 하늘 앞에 진정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선교회에 따르면 2024년 9월 27일, 전국에서 모인 지도자들이 월명동 자연성전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선교회 측은 “앞으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지속적인 구국기도회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정명석 목사의 국가를 위한 기도 잠언-는 ‘자기 것’이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기 손해다.-기도해야 하나님이 보시고 처리해 주신다. 기도하지 못한 만큼, 이미 손해가 간 것이다.-하나님은 을 위해 기도한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다 드러내고 행하셨다.-는 ‘자기에게 속한 기도’이고, 는 ‘가정 단위, 교회 단위의 기도’이고, 는 ‘세계 교회, 민족과 세계, 경제와 정치와 국방을 위한 기도’다. 마치 자기가 책임을 지듯 간절히 기도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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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참전, 기도로 ‘기적’을 일으킨 한 병사의 실화
한국군, 베트남 전쟁에 첫 해외 파병1960년대,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내부의 공산화, 외부 세력의 개입 등으로 3차례에 걸친 전쟁을 겪었다. 그 중 제2차 베트남 전쟁(1964~1973)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자유 진영이 남베트남을 지원하며 공산화 세력에 맞선 국제전이었고, 한국군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외 파병된 전쟁이기도 했다. 이 전쟁에는 약 32만 5천 명의 한국군이 참전했으며, 전사자만 5천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 중심 시기인 1966년부터 1969년까지 가장 치열했던 그 전선 한복판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명석 병장이 있었다. 그는 1966년 2월 23일 입대 후, 훈련을 마치자마자 백마 9사단 28연대 3중대에 배속되어 베트남으로 향했다. 당시 한국군 중에서도 특히 많은 전투를 치렀던 ‘기동타격중대’ 소속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실전을 수행해야 하는 중책이었다. 전쟁터에서는 ‘하루가 일 년’ 같고 ‘한 발자국이 생사’였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특이하게도 정 병장은 목숨을 걸고 포로를 생포했다. 어떤 일을 지시해도 절대 복종했지만, 생포한 포로를 죽이라는 명령만은 따르지 않았다. 그가 살려준 포로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아군에 제공했고,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왜 그는 두 차례나 월남전에 파병된 것일까?그는 전쟁터에 처음 투입되었을 때, 마음 깊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밤마다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들은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였다. “네가 가는 이 길은 단순한 병사의 길이 아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생명 사랑’을 증명하라. 너를 통해 내 뜻을 역사 가운데 남기고자 한다.”그는 1차 파병(1966년 8월 30일~1967년 9월 24일) 13개월 동안, 실제로 그 말씀을 전심을 다해 실천했다. 죽이지 않고 살리는 전쟁, 적군까지 품는 기도, 백전백승의 실전 기록과 중대원들의 기적 같은 생존. 그러나 그가 귀국한 후 5개월 동안, 그가 없는 부대에는 연달아 전사자가 발생하며 패배가 이어졌다. 당시 정 병장의 소대장이었던 최희남 예비역 대령은 민찬기 중대장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기동타격대였던 우리 부대가 이상하게도 희생자가 적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어떤 기운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명석 병장이 귀국한 뒤 희생자가 늘어나 그를 찾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고자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 병장은 대부분의 군인들이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던 시기에 자원해 2차 파병을 신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그곳에 다시 가야만 부대원들을 살릴 수 있다는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생한 역사와 뜻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최희남 회고록 『나의 푸른날 베트남 전쟁터에서』 발췌)실제로 2차 파병(1968년 2월 18일 ~ 1969년 3월 4일) 직후, 그가 소속했던 부대는 전사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전투는 연승으로 이어졌다. 훗날 정 병장과 같은 중대 전우였던 정원도 씨는 정 병장이 자신에게 월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인간의 의지나 전술이 아니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함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최희남 회고록 『나의 푸른날 베트남 전쟁터에서』 발췌) 이처럼 그가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전에 참전한 배경에는 단순한 군 복무를 넘어선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행보는 극한의 전쟁터에서도 절대 순종의 조건을 세우며,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려 했던 신앙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준다.수백 번의 실전 속에 기적이...‘전사자는 없었다’ 그가 속한 3중대는 연간 작전 횟수가 200회 이상, 파병 기간 총합 3년에 걸쳐 약 600회가 넘는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국군 전체 작전 기록을 보아도, 그의 부대만큼 전투 참여가 많고 치열했던 부대는 드물다. 최희남 대령은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군단급 작전인 ‘오작교 작전’과 ‘홍길동 작전’에서 3중대가 기동타격대였기 때문에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전사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명석 병사가 생명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1차 귀국 후 5개월 사이, 3중대에는 전사자가 급증했다. 그런데 2차 파병 이후, 다시 전사자는 나오지 않았다. 작전은 연속해서 승리했다. 일반적인 전쟁의 논리는 간단하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논리를 거부했다. 적군조차 살리기 위해, 생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의 생명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키려 애를 썼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자, 기록의 증거다. 그가 베트남 전쟁 당시 두 번이나 파병되어 보여준 ‘전사자 제로’, ‘백전백승’, ‘기동타격중대의 기적’은 결코 신화가 아니다.이 모든 과정은 2018년 발간된 그의 저서 4권으로 구성된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에도 실감 나게 담겨 있다. 18년에 걸쳐 정리된 이 기록은 단순한 전쟁 체험담이 아니다.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전쟁터에서 몸으로 지킨 자의 고백이며, 총칼보다 강한 기도의 힘이 실제 전투를 어떻게 뒤바꾸었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1차 파병 당시 그의 중대장이었던 민찬기 대위, 소대장이었던 최희남 예비역 대령 등의 회고도 이 기록을 뒷받침한다.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평화의 전쟁’이 장면은 구약 성경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모세와 아말렉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패배했다. 그가 전쟁터에 함께 있을 때는 중대가 승리했고, 떠나자 패배와 사망이 잇따랐다. 그는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적의 생명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러기에 그의 전쟁은 ‘죽여서 승리하는 전쟁’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하는 전쟁’이었다. 전쟁 중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그는 포로를 생포했고, 그를 죽이라는 상관을 설득해 그 생명을 지켰다. 그로 인해 아군은 중요한 정보를 얻어 큰 희생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사랑과 평화, 전쟁 중에도 실천하다월남전 참전 이후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수많은 이들을 전도해 세계적인 선교단체를 설립한 정명석 목사는 회고록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병장이었지만, 내 책임은 단순한 계급을 넘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한 명도 죽지 않게 해주세요. 제 생명을 걸고 중대를 지켜주십시오.’ 이 기도는 작전 전에 드리는 가장 절박한 나의 조건이었다.”정명석 목사는 현재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며, 사람을 살리고 평화를 이루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가 몸으로 보여준 이 실화는 단지 과거의 전쟁 기록이 아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신앙인으로서 총칼을 앞세우기 보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며 생명을 살리는데 집중했던 그는 “사랑과 평화는 전쟁 중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참전 기록은 단순한 전공 기록이 아닌 신앙인이 ‘하나님의 뜻‘을 신념과 사명감으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실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최윤로·홍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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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죽다’… 요시야 왕의 최후와 하나님의 역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억울한 일이 있다면, 몰라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 중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린도전서 2:8)”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예정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 이야기 가운데, 요시야 왕 시대에 있었던 전쟁 사건을 통해 몰라서 오해하고, 결국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크게 실패했던 사연을 전하려 한다.요시야 왕과 당시 이스라엘 상황구약성경 역대하(35:16~27)에는 요시야 왕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요시야는 BC 640년경, 8세의 어린 나이로 남유다의 17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과 아버지인 아몬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 므낫세 왕은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 신들을 섬기고 각종 사술과 신접한 자, 박수(무당)를 신임하며,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스리고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 그 뒤를 이은 아몬 왕 역시 악행을 일삼다 결국 암살당했다.반면, 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는 므낫세 왕과 아몬 왕 때 어그러진 신앙을 바로잡아 나갔다. 그는 히스기야 왕 때보다 더 철저한 종교 개혁을 추진하며 31년간 안정된 국정을 이끌게 된다. 솔로몬 왕 시대부터 남아 있던 모든 우상과 신당을 철거하고, 북이스라엘 지역의 우상까지 없애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모두 제거했다. 또 성전을 정비하고, 종교 질서를 바로잡는 등 왕이 직접 주도해 개혁을 이끌었으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의 기도라면 어떤 것이든 들어주실 만큼 의로운 왕으로 평가받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유다 내부는 안정적인 국정을 이어갔지만, 주변국 상황은 좋지 않았다. 솔로몬 왕 사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고, BC 722년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남유다 역시 주변 강대국들에 비해 국방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는 앗수르, 북동쪽에는 바벨론, 남쪽으로는 애굽(이집트)이 위치해 있었고, 앗수르의 서쪽 갈그미스 세력은 항구 도시이자 무역 도시로 번창하며 남유다를 위협했다. 이들은 추수 때마다 남유다를 침입해 식량을 약탈하는 등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다. 주변국들의 군사적 압박과 외침(外侵)에 시달리던 요시야 왕은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요시야 왕, 평안한 죽음 약속 받았으나, 전쟁에서 갑자기 죽게 되다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왕이었던 요시야 왕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인물이었다(열왕기상 13:2). 그리고 실제로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섬긴 왕이었다(열왕기하 23:25).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전 왕들과 달리,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역대하 34:3~7), 성전을 재건했으며 율법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했다(역대하 34:8~30). 또한, 유월절을 솔로몬 시대 이후 가장 성대하고 거룩하게 지킨 왕으로도 기록되어 있다(역대하 35:18~19). 그러한 신실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에게 평안한 죽음을 약속하셨다(역대하 34:27~28).그러나 역대하 35장 20~27절을 보면, 이렇게 훌륭했던 요시야 왕이 어느 날 애굽왕 느고가 사신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리하게 전쟁에 나서게 된다. 애굽왕 느고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갈그미스를 치러 가는 길이니, 길을 비켜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고 전했으나, 요시야 왕은 이 말을 끝내 듣지 않고 싸우다가 결국 전사하고 만다. 왜 요시야 왕은 그토록 하나님께 신실했음에도 이런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느고 왕에게 명령... 요시야 기도 들어주시려 했던 하나님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사랑하셨기에, 그를 위해 국방 문제를 해결하시려 했다. 그러나 요시야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의 느고 왕을 통해 행하시려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이를 모르고 오해한 요시야는 느고 왕을 적으로 여기고 길을 막아 전쟁을 벌이려 했다. 물론 느고 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갈그미스를 치러 가는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요시야의 기도 또한 응답하시려 하셨다. 당시 남유다의 국방력으로는 갈그미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연이 있다. 요셉 시대 애굽에 흉년이 들어 모든 백성이 굶주릴 위기에 처했을 때, 애굽의 바로 왕조차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 문제를 대비케 했다. 애굽은 이스라엘 유다 민족에게 그 은혜를 갚을 기회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요시야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애굽의 느고 왕을 통해 해결하게 하시려 한 것이다. 즉, 선조 때의 은혜를 갚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시야 왕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한다. 모르면 오해하고, 오해가 원통하고 비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요시야 왕은 몰라서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무지 속의 상극 세계’마치 요셉 때 바로 왕이 “네가 다 하라”고 했던 것처럼, 요시야 왕도 느고 왕에게 “네가 다 하라”고 하며 길을 열어주고, 대접하고, 응원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요시야 왕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시야는 몰라서 오해했다. 느고 왕과 의논하여 전쟁을 피하겠다고 해놓고는 도리어 변장하고 자신을 숨긴 채 전장에 나가 지휘했다. 그리고 활 쏘는 자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 이는 성경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나중에 애굽 군대가 실제로 갈그미스로 가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고,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할 필요 없는 전투에 휘말렸음을 뒤늦게 깨닫고, 오랫동안 슬피 울며 애곡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요시야 왕뿐 아니라 많은 군인과 백성이 목숨을 잃었고, 애굽 군대도 피해를 입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려던 일을 요시야 왕이 몰라서 막아버린 셈이었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평안히 해결해 주실 일이었는데, 공연히 싸우고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위해 일하시는 중이셨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구원할 자로 보낸 느고 왕과 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고, 남유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당했다. 잔칫집 같던 나라가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무지 속의 상극(相剋)’이라 표현한 것이다.모르고 오해하면 안된다. 배우고 알아야 한다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는 반드시 배우고 알아야 한다. 모르면 오해하고, 그 오해가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요시야 왕에게 느고 왕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응원하고, 칭찬하고 감사했더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선조 때부터 애굽을 적대시해 온 의식에 사로잡혀 믿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푸는 분이시다. 때로는 나에겐 원수 같지만, 하나님께는 원수가 아니며 그 원수를 통해 내 소원을 이루시고 내 운명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 23:5)”하나님께서는 때로 원수 같은 자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기도 하신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원수였던 이와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기회를 주시기도 한다. 그러니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영적 강림을 맞은 선교회와 정명석 목사를 통해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고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기독교인들은 2000년 동안 그토록 기도하며 간구하고 기다렸음에도 몰라서 오해하여 싸우게 되었다. 선교회 말씀을 들어보면 정명석 목사는 예수님의 말씀의 원자 폭탄을 가지고 사탄과 무지와 이단을 치러 왔다는 것을 시인한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 진리로 사탄과 싸우는 일을 하는데 이를 모르고 정명석 목사를 적으로 보고 싸운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재림, 의문을 품고 있던 성경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와서 말씀을 들어보라.정리: 강민수 기자 말씀자료 제공: 나명만 목사(기독교복음선교회 교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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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M 자원봉사단 대구지부, 매월 대구 시내와 달성군 화원읍 등서 환경미화와 거리청소
CGM 자원봉사단 대구지부는 대구 시내 및 달성군 화원읍 등에서 매월 1회 환경미화와 거리청소를 하고 있다. “지구는 하나님의 정원”이라는 정명석 목사의 말씀에 따라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 등을 주우며 대구지역 주변 환경을 보다 깨끗하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이와 함께 CGM 자원봉사단 대구지부 교인들이 속해 있는 대구 성자 말씀교회는 2019년부터 매년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 100만 원을 기탁하고 있다. 교인들이 모은 성금과 연말 바자회 등으로 마련된 금액을 전달하며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을 실천해 주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대구지부 이직종 장로는 “큰 금액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정성으로 모은 금액을 나눔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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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복음선교회 “앞으로도 쉬지 않고 지구촌에 시대 복음 전파해 나갈 것”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는 해마다 6월 1일이면 충남 금산 월명동 자연성전에서 ‘알파날’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은 1978년 6월 1일, 정명석 목사가 서울에 올라 복음 전파를 시작한 역사적인 날로, 선교회는 이날을 알파날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로 47주년을 맞은 6월 1일 알파날 역시 정 목사가 복음 전파를 시작한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선교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교회 관계자는 “현장에는 국내외에서 모인 새 신자들과 인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전 세계 77개국 수십만 명의 교인이 생중계를 통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선교회는 새신자 전도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행사도 새 신자 초청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어 처음 교리를 접하는 이들이 진리 말씀을 듣는 것은 물론 월명동 자연성전의 웅장함과 신비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월명동 자연성전은 선교회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정명석 목사가 수도 생활을 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새 시대 복음을 배웠던 곳이자, 영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실현한 역사적인 날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월명동 자연성전은 하나님 새 역사의 시작과 완성을 상징하는 '복음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선교회가 밝힌 ‘알파날’의 의미선교회에 따르면 ‘알파날’은 요한계시록 21장 6절의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라는 성구에서 영감을 받은 명칭이다. 이는 새 시대 복음의 시작이자 하나님의 창조목적 실현을 위한 첫 발걸음을 의미한다. 성경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지난날 역사한 사연을 기억하고 기념하자는 취지로 여러 절기가 나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과 장자가 죽는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고자 ‘유월절’을 민족의 명절로 기리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성만찬 절기를 지키고 기억하며 2천 년 동안 믿음과 신앙을 굳건하게 다져왔다. 이처럼 특정 시점의 신앙 사건을 절기로 기념하는 전통은 성경 역사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알파날 역시 이와 같은 신앙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날로, 선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 역사가 시작된 날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의 육과 영이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전환되는 ‘종교적 해방’의 의미로도 해석된다.문자적 성경 해석 넘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밝히다정명석 목사가 지난 47년간 전해온 선교회 교리인 30개론의 핵심은 기성 기독교의 문자적 성경 해석을 넘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근본으로 신앙의 본질을 다시 세운다. 주요 내용으로는 ▲문자 신앙에서 벗어나 실천 중심의 신앙을 강조 ▲말세란 단순한 종말이 아닌 시대적 전환의 때라는 해석 ▲육신의 부활이 아닌 영혼의 변화와 부활을 강조하는 등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선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는 ‘창조목적’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창조목적이 완성된다는 신앙적 사상이다. 이 교리는 방황하는 수많은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자,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왔다.정명석 목사가 걸어온 47년 여정 돌아보며 선교 의지 다지다알파날은 단지 하나의 기념일을 넘어 선교회를 창립한 정명석 목사가 걸어온 47년의 여정을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정 목사는 수도 생활을 마친 뒤,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서울로 올라가 복음을 처음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정확히 1978년, 정명석 목사가 34살이 되던 해로,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의 33년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을 상징하는 때이기도 하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선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명석 목사와 선교회는 외부로부터 오는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다. 현재에도 선교회와 정명석 목사는 기성 기독교의 이단 시비와, 선교회 교인들의 변질,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지켜온 정명석 목사의 사상과 말보다 실천을 앞세운 그의 삶은 지금도 수많은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선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내부적으로 선교회 핵심 교리를 재교육하는 장이 마련되면서 진리 말씀에 대한 가치를 회복하자는 열풍이 일고 있다. 한편으로는 월명동 자연성전에서 선교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선교회 관계자는 “47년 전, 한 청년이 홀로 서울에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 하나로 출발했던 그 심정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고 있다”며, “지금 선교회는 환난의 바다를 지나고 있지만, 정명석 목사도 선교회라는 방주의 선장으로서 변함없이 서 계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절대 믿음으로 하나 되어 다시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선교회 교인들에게 알파날은 단지 과거를 회고하는 날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 “새 역사로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미 새 역사를 맞은 이들도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복음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선교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쉬지 않고 지구촌에 이 시대 복음을 전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양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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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20여 년의 수도 생활, “나의 스승은 오직 예수님”정명석 목사는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집 주변인 월명동 골짜기와 대둔산 용문골 등에서 깊은 기도 가운데 영으로 나타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성경 말씀을 20년 넘도록 배웠다. 이를 위해 혹독한 추위와 쓰라린 배고픔을 견디는 수도 생활은 피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한 군 복무 중이던 20대 초반,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혹한 전장 한복판에서도 ‘생명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절대적으로 지켰다. 전장일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정 목사는 줄곧 변함없이 ‘나의 스승은 오직 예수님’이라고 외쳐왔다. 그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며 ‘영적 신부’로서 조건을 세우면서 예수님께 말씀을 배웠다. 영으로 그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오늘은 창피하지만 배우고, 내일은 과분하지만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라. 내게 배워서 너도 선생이 되어라.”고 했다.정 목사가 수도 생활을 한지 20여 년이 지난 1978년 5월 23일, 예수님은 “내가 네게 가르친 것을 모두 가르쳐 주라.”고 감동을 주었고, 정 목사는 그동안 배운 새로운 예수님의 말씀을 본격적으로 전하기 위해 고향 월명동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맞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이끄심을 따라, 정 목사는 6월 1일 전에 서울에 도착해서 그동안 예수님에게 배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원래 정 목사는 그가 배운 새로운 말씀을 그의 고향인 ‘금산’이나 ‘진산’에서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서울은 정치·경제·학문·종교의 핵심지로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 ‘복음의 핵심지’다. 여기서 말씀을 크게 전하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어야 한다.”며 그의 인식을 바꾸셨다.교리 핵심 정리한 30개론 도표 제작...이를 가지고 서울로 향하다정명석 목사는 서울로 떠나기 전, 그동안 수도 생활을 통해 배운 30개론 도표를 제작해 끈을 달아 어깨에 메었다. 007가방에 ‘30개론 축소판 도표’와 도표를 보여 줄 ‘슬라이드 영사기 한 대’를 넣어서 길을 떠났다. 그는 “는 마치 ‘시대를 살리는 양식’ 같았다. 는 마치 ‘원격 조종 레이더’, 은 하늘의 비밀이 들어 있는 ‘실탄 통’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서울에 가기 전, 천안에서 일주일 간 머물면서 충남 온양 쪽에 위치한 배방산에서 극적인 기도 조건을 쌓았다. 이후 5월 31일 서울에 도착했다. 정 목사는 이튿날인 6월 1일, 이 시대를 향해 새로운 복음의 서막을 조용히 열었다. 선교회에서는 현재 이날을 ‘알파날’로 정해 지난 시련을 딛고 드디어 시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몸부림쳤던 정 목사의 생명사랑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1978년 6월 1일, 복음 전파의 첫 발을 내딛다1978년 5월 31일 밤, 정명석 목사는 서울 신대방동의 한 교수 아파트에 도착했다. 우연히 만난 두 청년과 함께 상경한 그는, 청년 중 한 명의 형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6월 1일 아침, 복음 전파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튿날, 그 집의 초등학생 자녀가 갑작스러운 두통과 고열을 호소했는데 정 목사가 기도해 주니 아이의 증세는 깨끗이 호전되었다. 이 일로 가족들은 놀라워하며 정 목사를 3일간 더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후 그는 서울 삼각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6월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여서 정 목사는 이곳에서 한 평 비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삼각산 기도원에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지독한 가난과 추위 속에서 전도 활동이 1년 가까이 계속됐다. 주변 사람들이 삶아준 라면이 식어 한 덩어리가 된 뒤에야 거처에 도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고된 생활을 견디지 못해 떠나는 제자들을 보내면서도 그는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았다. 정 목사는 ‘삼각산’에서 ‘종로’, 그리고 ‘행당동’, 이후 ‘성북구’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기도로 아픈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며 복음의 터전을 조금씩 다져 나갔다.그러던 중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암 환자가 치유되면서, 그가 감사의 표시로 준 현금으로 1980년 3월, 남가좌동에 첫 교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정신질환자를 고쳐주고, 그가 준 현금으로 어머니가 팔려고 했던 고향 월명동 생가터를 매입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으나 극적으로 하나님의 자연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핵심지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남가좌동 교회에서 정 목사는 공식 직분도 없는 평신도였기에, 목회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상에 서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교회를 다른 이가 맡게 되었고, 정 목사는 몇십만 원만 가지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대학생들 사이에 새 시대 말씀의 반향은 컸다 정명석 목사는 같은 해 8월, 좌절하지 않았고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좁은 문간방, 한 평 정도 되는 방을 얻어 이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등 이념 논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정 목사는 신촌 지역에서 1 대 1 전도를 중심으로 선교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기성 기독교의 문자주의적 주요 교리를 뒤집으며 성경을 이치에 맞고 과학적으로 풀어낸 말씀은 진리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정명석 목사가 상경한 이후 처음 3년간은 전도가 잘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본격적인 전도가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달 만인 1980년 10월, 성북구 삼선교 지역의 사회복지 기관 건물로 옮겨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철거 직전의 낡은 건물이었지만 밤낮으로 대학생들이 매일 모여들어 말씀을 배웠다. 좁은 방에 사람들이 밀려오니 정 목사가 벽장 속에 들어가서 강의를 할 정도였다.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았고, 이때 전도된 사람들 중에서 선교회의 초석이 된 신앙 지도자들이 배출됐다. 이들 중에는 현재까지 선교회의 중직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정 목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 강의에 몰두했고,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미약하게 시작되었으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도되면서 새 시대 복음의 역사의 주춧돌이 놓이게 되었다.1987년부터 지방 개척...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선교의 역사 이뤄져정 목사의 복음 전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삼선교에서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면서 교인들이 늘어나자, 정들었던 삼선교를 뒤로하고 1982년 종로구 혜화동 소재 테멘 소극장을 빌려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5월엔 지금의 코엑스 건물 근처인 40평짜리 영동 지하실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예배를 단독으로 드릴 수 있는 공간과 정 목사가 거처할 장소가 마련되면서 본격적인 선교회 체제로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3년 6월 세검정(구기동)으로 교회를 옮겼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국내 지방 개척과 해외 선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1986년 잠원동으로 교회를 이전했고 정 목사가 이끄는 선교회는 9월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이란 독립 교단으로 정식 등록이 되었다. 1987년 서울 낙성대로 교회를 옮겼으며 이때 지방 개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졌다.새 시대 복음의 중심지, ‘월명동 자연성전’ 정명석 목사는 진리를 찾아 몰려오는 사람들이 제재를 받지 않고 밤낮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광 돌릴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월명동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월명동에서 수련회 등 행사를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월명동이 새 시대 복음의 중심지, 하나님의 자연성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1991년부터 하나님이 주신 구상에 따라 월명동을 제자들과 함께 자연성전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정 목사는 설교와 집회, 각종 모임, 해외 순회와 여름 수련회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1998년 5월, 6번째 만에 월명동 자연성전의 핵심인 야심작 돌조경을 완공하기에 이른다. 이후 월명동 자연성전은 세계 각국의 성도들이 찾아오는 신앙의 중심지가 됐다. 월명동을 중심축으로 선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 아프리카까지 말씀이 번역되고 전파되었으며, 정명석 목사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가 국내외에 세워졌다. 1978년 6월 1일 정 목사 홀로 복음의 씨를 뿌리며 시작한 선교회는 2025년 현재, 세계 77개국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각 나라에 교회가 세워져 수십만 명이 함께하는 선교 단체로 급성장했다. 복음의 불, 시련에도 활화산처럼 타오르다올해 6월 1일,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창립 47주년을 맞이한다. 한 사람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결실을 맺어 거목으로 성장하면서 수십만 명의 세계인이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로 연결되는 기적의 역사를 일으켰다. 정명석 목사가 이끈 선교회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단순한 종교운동을 넘어 새 시대 하나님의 섭리 역사라는 큰 획을 그으며 펼쳐져 나가고 있다. 정 목사가 전한 복음의 불은 온갖 시련을 뛰어넘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수많은 이들을 옳은 길로 이끌고 있다.양오석·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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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단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요즘 한국 기독교를 보면 사랑과 희생, 관용 등으로는 대변되는 기독교가 아니라 부끄럽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힘들게 하는 기독교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이번 호에서는 기독교복음선교회를 향한 기독교의 이단 논쟁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성경에는 말세에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온다고 했기에, 선교회와 특정 교회를 핍박하고 적대시하기도 한다. 이 역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과는 멀어진 모습이 아닐까.(마태복음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신앙인으로서 신실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용서하고 품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적어도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신앙의 세계에서도 잘못된 것은 분명히 회개하고 고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계에서 기존의 기독교 교파가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이단시하는 행태는 맞다고 수긍하기 어렵다. 과연 성경에서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알아보자.이단(異端)이란! 이단은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그리고 정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음악계의 이단아’, ‘과학계의 이단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종교적 의미로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론이나 행동을 뜻한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특히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이단에 대한 개념이나 기준이 역사적으로 조금씩 변해왔다. 문제는 이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하지 않은 채로 무조건 자기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이단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첫째,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이다.(요한1서 2:22)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둘째,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이다.(요한1서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셋째,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자가 이단이다.(마태복음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7:21). 하나님의 뜻이란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나 교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요한복음 6:29). 즉, 노아 때는 노아를, 모세 때는 모세를, 예수님 때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안 믿는 자가 이단이다. 성경에서 이단시되어 고통받았던 선지자들 성경을 보면 안타깝게도 구약시대 선지자들은 갖은 핍박과 고통을 받았다.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악행으로 인해서 오히려 핍박을 받아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야 했다. 다윗 왕은 사울로부터 7년을 쫓겨 다녔으며, 스가랴 선지자는 악한 자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어떤 자는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을 당하고 옥에 갇혔으며, 칼에 맞아 죽거나 심지어는 톱으로 켜 죽이는 죽임임을 당하기도 했다. 하나님 앞에 오히려 선한 자들이 양과 염소의 가죽옷을 입은 채 궁핍한 삶을 살면서 갖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 전 예수님 때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 죄로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말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출교시키고 멸시와 핍박을 자행했으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스데반을 비롯한 수많은 성도들이 신성 모독과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16세기경에는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고 교황권이 강화되어 교회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로마 교황청과 성직자들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패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하나님은 루터와 칼뱅을 통해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당시 천주교회는 이들을 이단자로 몰아 화형을 시키기도 하는 등 엄청난 핍박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핍박받던 신교는 지금의 기독교로 크게 성장했다. 이런 이단 논쟁은 비단 종교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1610년경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한 결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는 것을 발견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전의 천동설을 주장하며 태양이 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은 갈릴레오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재판에 회부했다. 이로 인해 갈릴레오는 여러 번 재판을 받아야 했다. 당시 종교인들은 성경 말씀(여호수아 10: 12~15)을 근거로 하여 갈릴레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했다. 여호수아 시대 때는 태양이 움직인다고 믿었던 천동설 시대였기에 성경에 그렇게 기록한 것을 모르고, 잘못된 생각으로 오히려 과학적으로 맞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핍박했다.성경에서 가장 이단으로 공격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요한복음 8:48), 먹고 탐하기를 즐기는 경건함이 없는 자(누가복음 7:34), 창녀와 세리들과 어울리는 음란한 자, 율법 파괴자(마태복음 5:17), 거짓말쟁이, 적그리스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자(요한복음 10:33), 이단 종교의 교주(사도행전 24:5)로 여기며 범죄자로 만들어서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2천 년이 한참이나 지난 현재에도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어렵지만, 말실수를 해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손해를 당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면 그 죗값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절대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함부로 악평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회에 와서 진리 말씀을 들어보라 선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섬기며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뿐 아니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선교회 교인들을 직접 만나게 되면 이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선교회를 이단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디 한 번이라도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들어본 뒤에 선교회에 대해 판단하기를 바란다. 50여 년 전 정명석 목사는 2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에게 배운 놀라운 진리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드디어 정 목사는 1978년 6월 1일부터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인식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던 청년들은 정명석 목사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청년들과 엘리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깨끗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면서 기존의 기독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경에 나오듯 예수님이 말씀의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고 그 불이 붙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누가복음 12:49). 말씀의 불의 역사는 뜨겁게 타올라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현재 전 세계 77개국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또 이치에 맞게 명쾌하게 풀어낸 성경말씀을 듣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선교회 말씀을 들어보기를 적극 권한다.정리: 강민수 기자 말씀자료 제공: 나명만 목사(기독교복음선교회 교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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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유지가 먼저…세월 흐른 뒤 진실 드러나다
니콜라 테슬라가 사망한 이후, 미국 정부는 테슬라의 연구 노트와 설계도를 외국인 자산관리국을 통해 압수했고, 일부는 FBI의 손에 넘어갔다. FBI는 “별다른 과학적 가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하며 일부 자료를 공개했지만 여전히 많은 기록은 미공개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그가 고안한 기술 중 일부가 거대 자본의 이익에 저해될 수 있어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물론 테슬라의 워든클리프 타워는 당시 기술과 자본 여건으로 볼 때 실현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단지 한 과학자의 이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의 비전이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인류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전 세계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에너지 불균형이 줄어든 세상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손씻기 주장하고 추방당해 폐혈증으로 삶을 마감한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기득권에 의해 억압받은 과학자와 이론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19세기 중반, 헝가리 출신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는 산모 사망률이 높은 원인을 추적하던 중, 의사의 손이 감염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병원에서는 해부를 마친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바로 분만에 참여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그 결과 산욕열로 인한 산모 사망률이 10%를 넘었다. 제멜바이스는 1847년 염화칼슘 용액으로 손을 씻도록 한 뒤, 산모 사망률이 1~2%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의료계의 권위와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의사의 손이 더러울 수 있다’는 그의 전제는 동료 의사들의 불쾌함을 유발했다. 결국 그는 병원에서 해임되어 의학계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뿐 아니라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구타로 인해 패혈증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그가 생전에 그토록 막고 싶었던 패혈증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수십 년이 흐른 뒤 루이 파스퇴르의 세균설과 로베르트 코흐의 병원균 이론이 정립되면서 제멜바이스의 위생 개념은 비로소 과학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 그는 손 씻기의 아버지, 감염병 예방의 선구자로 불리며 현대 의학계에서 꼭 기억되어야 할 인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과학보다 앞선 경쟁 기업의 마케팅에 희생된 제품들 과학적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이지만 경쟁업체의 마케팅 전략과 오해로 인해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오해받고 있는 제품들이 있다. 본질적으로 몸에 해롭지 않지만 ‘몸에 나쁜 인위적인 제품’이라는 부당한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화학조미료라는 낙인이 찍힌 MSG(글루탐산 나트륨),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MSG는 감칠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화학조미료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발효 조미료로 사탕수수 원당과 당밀을 발효시켜 만든 아미노산의 일종이다. 이런 아미노산은 버섯, 토마토, 우유 등의 천연식품에도 대부분 들어 있는 성분이다. 1956년 출시 이후 미원은 1세대 조미료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미원의 아성에 도전하고자 수많은 조미료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미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 마법의 가루로 불리며 시장을 굳건히 지키던 미원에 큰 시련이 다가왔다. 미원의 아성을 누르고자 A사에서 MSG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MSG는 화학물질이며 몸에 해롭다는 마케팅을 펼치며 미원의 아성을 위협했다. 그로 인해 경쟁사에서 출시한 무MSG 제품은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론칭에 성공한 줄 알았던 제품은 금방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2010년 MSG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게 되는데, 이때 미국 FDA와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기관에서 MSG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MSG가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은 계속되고 있다. 근래에는 미원의 감칠맛이 나트륨의 섭취를 줄여줘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카제인나트륨’ 논란, 믹스커피 시장 흔든 공포 마케팅 국내 믹스커피 시장의 절대 강자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는 지난 30여 년간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1990년대, 믹스커피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후발주자 B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이 평온한 판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B사는 신제품 출시와 함께 당시 톱스타를 모델로 내세우며, “프림은 걱정된다”, “화학적 합성물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문구를 전면에 내건 광고를 집행했다. 이는 곧 동서식품의 맥심에 사용되는 프림이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소비자에게 인식되도록 유도한 캠페인이었다. 이 광고는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맥심의 매출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업계는 ‘카제인나트륨’이라는 생소한 성분에 주목했고, 소비자 사이에서도 커피믹스 원료에 대한 불신이 확산됐다. 카제인나트륨은 우유의 주요 단백질인 카제인(casein)을 수산화나트륨 등 알칼리로 처리해 물에 잘 녹도록 만든 식품첨가물이다. 유화제와 결착제 기능을 하며, 우유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가공식품에서 부드러운 식감을 제공하는 역할로 널리 사용된다. 문제는 이 성분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화학물'로 낙인찍히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B사의 다른 제품군(분유 등)에도 카제인나트륨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다.전문가들은 “카제인나트륨은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식품첨가물이며, 과학적 근거 없이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B사는 시장점유율이 일시적으로 20%대까지 상승했지만, 동서식품이 이후 ‘카제인나트륨 무첨가’를 강조한 리뉴얼 제품을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고, 결국 1위 자리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정치권력 등과 언론의 유착…언론의 공적 역할 위협 받아앞서 살펴보았듯 기업의 마케팅 과정에서 언론 또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중들은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행되는 언론 홍보전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숨겨진 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기업의 마케팅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언론의 공적인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정치권력과 언론의 유착, 기업 광고 의존 문제로 인해 언론의 공적 역할이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언론은 단순한 뉴스 전달이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공론장을 형성하며 공동체의 건강한 소통을 이끌어 나가는데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특정세력의 이해관계로 새로운 가능성 차단된다면 사회 발전 위협받을 수도 기득권 등 특정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새로운 가능성이 차단된다면 앞으로 사회 발전 역시 위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신기술과 새로운 이론 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낯설고 불편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낯섦을 이유로 배척하기보다는, 과학적 검증과 합리적 판단을 통해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비로소 공공의 자산으로 또 변혁을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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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기득권에 가려진 현실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일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주류 사회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려 한다. 대부분은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굳이 들여다보거나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인류 역사는 발전을 거듭해왔다.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문을 품고 새로운 학설 등을 제기하며 변혁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들로 인해 새로운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일부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막혀 혁신적인 사상과 기술이 외면받거나 억압받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미비나 오해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이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변화에 대해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러한 억압은 새로운 사고와 기술의 확산을 지연시키고, 인류 발전의 속도를 늦춰 온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1856년,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는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고안한 무선 송신, 전자기파 이론, 회전 자기장 원리는 오늘날 무선 충전, 통신 기술, 전기 모터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그의 가장 대담한 꿈 중의 하나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워든클리프 타워(Wardenclyffe Tower)’였다. 이 계획은 단지 무선 통신을 넘어서, 전기를 무선으로 송신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상이 담겨 있었다.당시 금융 재벌 J.P. 모건은 처음엔 이 프로젝트에 비전을 느껴 투자를 단행했다. 그는 테슬라의 타워가 무선 통신, 즉 수익성이 보장된 신기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점차 무선 전력 송신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전기를 무선으로 보낼 경우, 누가 얼마나 사용하는지 측정이 어려워 유료화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모건은 결국 2년 만에 투자를 중단했다. 그러나 단순한 수익성 문제만이 아니었다. 모건은 석유, 전력, 철강 등 전통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었다. 만일 테슬라의 비전이 실현된다면, 이들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모두가 무료로 전기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기존의 사업모델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테슬라의 이상은 ‘자유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했고 그는 점차 사회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말년을 뉴욕의 허름한 호텔에서 보냈으며, 1943년 빈곤 속에 생을 마감했다. 사망 후 그의 업적은 재조명되었으며 현재는 ‘전기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