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4-02-27 02:20:44
기사수정

연극 ‘은밀한 기쁨’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시대적인 상징성을 시작으로, ‘탐욕’이라는 괴물을 절대 절명의 이데올로기로 승화시킨 ‘자본주의’의 파괴력에 잔인한 현미경을 면서 ‘전통적인 가치와 인간성의 붕괴 혹은 그 회복’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지적인 정통 희곡이다.

연극 ‘은밀한 기쁨’은 ‘에이미Amy's View’ ‘블루 룸Blue Room’의 작가 데이빗 해어(David Hare)의 대표작으로, 연극 ‘터미널’ ‘14人(in) 체홉’ ‘벚꽃동산’ ‘갈매기’ ‘디너’ ‘썸걸(즈)’ 등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잘 소통하는 극단 맨 씨어터의 신작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오는 가족 안에서의 돈, 종교, 사랑, 죽음, 진보, 보수, 살인. 100분 동안 러닝 타임이 흐른 뒤에는 1980년대의 영국도 역시 현재와 겹쳐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째서일까, 이사벨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서 온통 손해만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후처 캐서린,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일 텐데 형부와 언니는 거의 떠넘기다시피 이사벨에게 책임을 지웠다. 물론, 이사벨은 거절할 수 있었지만...그녀에겐 죽은 아버지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이 일로 그녀의 작은 회사는 위기를 맞게 되고 관계도 엉망이 된다. 결국 이 일련의 일들 속에서 의견의 차이로 갈등을 빚던 어윈과 헤어지게 된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던 어윈은 이사벨에게 집착하게 된다. 결국, 어윈은 총으로 이사벨을 죽임으로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기껏 멀리 도망쳐 그녀를 휘감고 있던 모든 문제를 다 벗어던지고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었음에도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이사벨. 이사벨에겐 보이는 가치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초라하고 곤란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그녀와 대비되는 인물로 주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형부와 정치적 야심가이며 물질적 욕심을 숨기지 않는 언니 마리온이 나온다. 마리온은 동생인 이사벨에게 뭔가 피해의식이 있어보였다. 이사벨을 몰아붙이기 위해서라면 어떤 꼬투리라도 잡을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이사벨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자매지간은 서글펐다.

어윈은 이사벨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이익 앞에서 둘이서 의논한 일을 한순간에 뒤집는다. 어쩌면 그 때 이사벨은 어윈에게서 거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본질보다는 허세에 넘어가기 쉬운 인간의 본성이 이긴 것이다.

그런 욕망 앞에 자유로운 인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의 에누리도 없는 이사벨이 갑갑하게도 느껴지지만, 뻔한 싸움은 시작조차 하지 않고, 충분히 화낼 상황에도 “화내기 싫어서” 자신을 절제하다니. 그것은 참으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진 자유가 아닐까?

제목인 ‘은밀한 기쁨 The Secret Rapture’은 수녀가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순간의 환희-죽음, 사랑의 죽음, 혹은 삶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이 주위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이사벨은 조금씩 죽어갔던 것이 아닐까? 이사벨의 장례식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그토록 착한 아가씨가 죽다니...애도할 만큼 평판이 훌륭했지만, 그녀는 이상에 맞지 않는 삶의 순간마다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누구의 대단한 신념보다 자기 자신의 소박한 이상이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뜻하지 않았던 죽음은 결국 이사벨에겐 뜻밖의 환희를 주었을까?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오는 3월 2일까지 공연한다. 작품의 연출은 김광보가 맡고, 이사벨 역에 추상미, 어윈 포스너 역에 이명행, 형부 톰 프렌치 역은 유연수, 언니 마리온 프렌치 역은 우현주, 캐서린 글라스 역에 서정연, 론다 밀른 역에 조한나 배우가 치밀한 연기로 ‘은밀한 기쁨’을 전하고 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hangg.co.kr/news/view.php?idx=983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