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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05 18: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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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돈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곳 무대 뒤 곧 분장실이 아닐까? 단순히 배우들의 쉼을 위한 공간만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진행되는 곳이 '분장실'이 아닐까?

연극 ‘분장실’은 일본의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의 희곡을 조영호 연출이 각색했다. 이를테면 태평양에서 죽은 여배우는 6.25전쟁에서 피폭되는 인물(여배우A)로, 남자친구 때문에 자살한 여배우는 5.18민주화 항쟁 때 약혼자를 잃고 자결한 인물(여배우B)로 그려진다. 좀 더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그리기 위함이고 그래서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이 A, B 두 여배우는 끊임없이 얘기하고 연기한다. 주연여배우로 분장실의 주인인 여배우C와 그 여배우의 프롬프터만 몇 년을 해온 여배우D가 등장해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계속 무대 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날,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것을 억울해하기도 하고 혹은 날려버렸던 기회 때문에 슬퍼하면서. 또한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연극 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쟁으로 피폐했던, 중국과 일본의 공연을 그대로 카피했던 시대, 이어서 다음 시대 여배우의 연기, 또 그 다음 시대의 연기...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차이점이 보여 상당히 흥미롭다.

자신은 주인공 옆에 있던 작은 조연임에도 주인공의 대사를 다 외우고 있는 모습들은 재미있지만 한편으론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와 겹쳐져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나이가 들고 알콜 홀릭으로 인해 내내 지켜온 배역의 대사마저 외우지 못하고, 프롬프터가 있어야만 하는 주연여배우(여배우 C)와 가끔씩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청춘을 바쳐 프롬프터로 있어온 여배우 D의 상반되고 불꽃 튀는 대결에 앞선 복선처럼도 느껴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배우D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약속을 지키라”면서 “주인공 니나 역을 내놓으라”는 그녀의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어지는 조소, 나이에 대한 경멸어린 시선. 빼앗으려면 우선 지키려는 자를 무너뜨리는 것이 먼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키려는 자를 자극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어지는 주연여배우의 독백은 서글프고 애처롭기가지 하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도 이미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지키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아닐까?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시간은 움켜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버리니까 말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하다가도 "시간이 됐다"는 말에 그녀는 의상을 갖추고 어쩌면 눈물 같은 술을 따라 마시고 다시 무대로 향한다.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드레스의 뒷자락은 어쩌면 분장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분장실에는 어쩌면 A, B와 같은 영혼들이 가득하다. 매일같이 분장실에 들어오는 배우의 뒤에서 모든 대사를 따라하는 보이지 않는 영혼들. 이룰 수 없는 꿈을 여전히 품은 채 매일같이 함께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어린 영혼이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잔잔히 들려오는 피아노 반주에 가냘프고 서툴러서 오히려 음산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나는 갈매기. 아니 여배우...”

안톤 체홉의 ‘갈매기’의 대사 첫 부분은 마치 이 연극을 위해 쓰인 듯 인상적이다.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오는 16일까지, 이애란 고혜란 조영호 김선혜 최우인 등이 출연한다.(문의 010-3033-0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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