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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1-07 01: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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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청 상무부 지질광산연구소에서는 1948년에 ‘울릉도독도학술조사’를 추진했다. 옥승식은 그 조사단으로 참여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 지형, 지질 등에 관해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는 미 군정청이 이미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 울릉도 독도 조사보문(鬱陵島 獨島 調査報文)


미 군정청 상무부 지질광산연구소에서는 1948년에 ‘울릉도독도학술조사’를 추진했다. 옥승식은 그 조사단으로 참여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 지형, 지질 등에 관해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는 미 군정청이 이미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 울릉도 독도 조사보문(鬱陵島 獨島 調査報文). 1948년. 17.5cm×26cm. 독도박물관 소장


#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일본 관리인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도주의 명을 받고 오키섬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해 보고한 보고서이다. 일본의 사료 중 독도에 관해서 처음 기록된 내용이다.


▲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일본. 사이토 호센. 17세기. 16.2cm×23.6cm.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오키섬 서북쪽에 송도와 죽도가 있는데 이 두 개의 섬들로부터 고려를 보는 것은 마치 운슈(雲州)에서 오키섬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쪽 경계는 오키섬으로 끝이 난다.”고 기록해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임을 분명히 했다.


# 독도 지적편찬 문의


일본은 근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전국을 측량해 지적도(地籍圖)를 작성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시마네현으로부터 내무성에 질의서가 들어왔다. 그 내용은 죽도(울릉도)와 그 밖에 또 하나의 섬인 독도를 시마네현의 관할구역에 포함시킬지의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 독도지적편찬 문의. 일본. 내무성(內務省. 1877년.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내무성이 조사한 바로는, 1692년 안용복이 도일(渡日)해 항의한 이후에 한일간에 왕복한 문서를 검토한 결과 두 섬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지적(地籍)을 조사해 일본의 판도(版圖)에 넣을까 뺄까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내무대신은 태정관에게 최종 결정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는 내무대신을 대리해 내무부 차관이 국가 최고기관인 태정관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에게 보낸 문서이다.


# 동해략도(東海略圖) <사해(史海)>


1948년에 창립한 조선사연구회(朝鮮史硏究會)는 창간호에서 독도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신석호는 ‘독도 소속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다. 이 글의 마지막에 한글로 맥아더선(MacAthur Line)이라고 그려진 지도를 소개했다.


이 지도는 1946년 6월 22일 연합국총사령부가 각서 제1033호로 정한 일본 어선의 조업 구역을 표시한 지도인데, 이 지도에서도 독도가 한국 땅임이 잘 드러나 있다.
 

▲ 동해략도(東海略圖) . 한국. 조선사연구회. 1948년. 15cm×21cm. 독도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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