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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20 22:11:36
  • 수정 2018-05-20 22: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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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종교 속에도 사랑이 존재하고, 역사 속에서도 사랑이 존재하며, 삶 속에 늘 사랑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다른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수 많은 사랑이 존재하기에, 뭉뚱그려진 마음과 감정에 대한 정의로 만들어진 사랑이라는 단어를 도저히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강렬한 느낌의 짧은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 조각이 사랑이라 믿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사랑의 추구가 진리 속에서 진리에 의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동정에서 비롯된 감정이 인간 최고의 감정으로 가장 큰 사랑이라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지금도 사랑에 대해 명확히 정의 할 수 없고 이제는 그러고 싶지도 않다. 몇 년 전에 그리고 그 전에도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규정하려 했지만 매 순간 매 상황에 깨지는 의미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의 감정을 규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그저 위에 나열한, 그리고 미처 나열하지 못한 많은 사랑일 수 있는 감정과 상황과 관계를 모두 사랑이라 생각하며 광범위하게 그 문을 열어 두고 싶다. 사람은 상황, 어떤 시간 속의 일들, 혹은 책과 글귀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이라 쓰이는 단어를 또한 존중한다.


인간과 사이가 좋지 않아 종종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삶 속에서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 연우와 남호의 엇갈린 사랑이 오페라 ‘여우뎐’의 하이라이트이다. 여우와 사람간의 갈등뿐 아니라 사랑, 배신, 질투 와 같은 인간 본연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모습을 사람에게도, 그리고 여우들에게도 그대로 투영하면서 연우와 남호의 사랑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연우의 사랑은 무엇이고, 남호의 사랑은 무엇일까?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천 년의 세월을 보낸 둘의 사랑의 방향이 달랐던 것일까? 천 년이 되는 그 마지막 날 사고로, 남겨진 연우와 사람이 된 남호. 남호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마치 연우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한 천 년의 시간을 그리고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도 그녀를 외면한 것이었다. 남겨진 연우가 자신을 잊은 남호에 대한 슬픔과 다른 사랑에 대한 질투로 무너져 내려 결국 분노와 화로 남호의 새 연인인 인희를 죽이기로 결심 할 때까지 그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작품을 보면서 사람이 된 그가 연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 역시도 화가 솟구쳤다. 자그마치 천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이다. 남호는 그런 연인과의 이별의 순간도 태도도 너무 불성실했다.


결국 연우는 남호가 자신을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 20년 전 여우들이 죽인 사내의 아들, 장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남호가 자신을 모른 척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화나 서운한 마음은커녕 자신을 기억함에 안도하는 연우, 이런 한 여인의 사랑. 이 어찌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을 남호에게 건네는, 그저 한 남자를 온전히 사랑한 연우의 사랑은 보는 이들의 마음도 울렸다.


죽음과 복수심과 복수로 끝나는 갈등 속에서 그리고 배신과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속에서 연우의 사랑은 비록 질투로 악녀의 모습을 보였지만 아름다웠다. 자신의 화와 질투로 타인을 해하려 한 것은 잘못됐으나 한편으로는 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연우가 진정 아름다워 보였다. 많은 감정을 억압하고, 엇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감정들을 그저 어둡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초연과는 또 다른 내용을 중심에 둔 오페라 ‘여우뎐’. 우리의 설화에서 시작한 내용인 만큼 그리고 우리의 언어로 음악과 어우러진 만큼 더욱 친숙하게 그리고 그 감동이 순수하게 전해졌다. 다만 마지막 엔딩의 마무리가 조금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쉽게 연우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희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악녀로 돌변했지만 그저 사랑을 했을 뿐인 연우의 마음이 좀 더 깊이 있게 표현되었다면 그 전달에 더 큰 감동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설화를 서양의 예술과 접목시키고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는 점에, 그리고 캐릭터의 특징과 관계를 통해 인간내면의 감정들을 잘 발현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페라 ‘여우뎐’은 표현과 내용에서 관객들의 공감과 이해를 편안하게 이끌며, 그 동안 어렵고 지루하다는 기존의 오페라의 관념을 깨고 한 발짝 한 발짝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큰 성공을 이루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페라가 대중들과 소통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고 많은 노력을 했음을 느끼며,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창작 오페라의 번영과 발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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