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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13 15: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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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일 기자]‘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주도로 1910년 세계에 독립 의지를 천명했던 ‘성명회(聲明會) 선언서’ 원본이 107년 만에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가 밝혔다.

‘성명회 선언서’원본은, 지난달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 김광만 PD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회 선언서’는 지금까지 기록과 입소문으로만 전해져왔다. 하지만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선언서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인 8624명이 서명한 것으로 ‘3.1독립선언서’와 비슷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설명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는 이상설과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을 비롯해 이범윤 김학만 등이 함께 뜻을 모은 독립운동단체로, 1910년 8월 강제병합이 전해지면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학교에 모인 한인들은 ‘성명회’를 결성하고 사흘 뒤 성명서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두 달 뒤, 8624명이란 인원이 참여한 성명서가 연해주에서 미국 땅으로 보내졌다.

이상설이 집필하고 유인석이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선언서는 성명회 조직 후 첫 사업으로, 성명회는 독립운동을 위해선 서구 열강의 인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일제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음을 규탄했다.

특히 ‘성명회 선언서’가 당대 정파나 사상을 초월했다는 점이다. 서명록엔 훗날 대한독립군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을 비롯해 김치보 유진율 이갑 등 다양한 인사들의 이름이 들어있다. 당시 연해주는 계파 분열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일반 백성도 고려인파 경성파 함경도파 평안도파 등으로 갈라져 물리적 충돌도 벌어진던 시기였다.

이석형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이상설 유인석 선생 등은 구한말부터 곧은 절개를 지켰던 선비의식이 투철했던 독립운동가”라면서,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투신하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성명서에 담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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