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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17 15: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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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윤빛나

대학로는 특별한 곳이다. 문화 예술이란 나무가 자라고 꽃피우는.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작은 극단들이 꾸는 꿈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관객들과 나누는 것 뿐 이지만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게 사라져가던 꿈이 되살아났다. 극단 ‘푸른 달’ 이야기이다. ‘푸른 달의 기적’ 그 중심에 있는 ‘대장’ 박진신 연출을 만났다.

Q. 공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어머니 손잡고 간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레미제라블’하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뮤지컬 공연을 봤었다. 중학교 때 집에 가는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투나잇’이 흘러나왔다. 물론 당시에는 그 음악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곡인지도 몰랐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음악이어서 어떤 음악이냐고 물어봤더니 ‘뮤지컬’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때 ‘아! 공연이란 사람들한테 음률이나 이야기가 남겨질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력이 나쁜데(웃음)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Q. 연극하면서 제일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

A. ‘이렇게 힘든 게 행복이구나.’하는 걸 매번 느낀다. 현실에서 꿈꾼다는 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 가끔 다른 현장에 가서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원치 않는 일들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한테 동정을 되게 많이 받는다. 빨리 그만 두라고. 그런데 그분들하고 비교해보면 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너무 힘들지만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게 고맙다.

Q.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가?

A. 1997년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연극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서 얻어야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인 것 같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Q. 글을 보면 힘든 상황들이 계속되어져 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A.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모토가 되었다. 너무 많이 힘들지만 어쩌다 단 하루 웃는 날이 있는데 그 날을 보고 산다고 하시더라. 나에겐 그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했는데 한 명일지라도 공연을 보고 웃어주는 관객이 있을 때였다. 관객이 뭔가 가져갈 때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이 없어도 살아는 가겠지만 좀 더 좋은 삶으로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주로 이미지적인 연출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A. 가난해서(웃음). 상상하는 건 쉽지만 돈 버는 건 힘들다. 대관비를 제외하고 제작비를 최대 30만원으로 예산을 잡기 때문에 간단한 틀이나 꼭 필요한 것들만 제작한다. 이야기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손순’처럼 무대세트를 설치하거나 ‘어둠속에서’처럼 시야를 아예 뺏음으로써 하나의 제약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공연에 통행성이 생겨 이야기 중심에 흐르는 그 언어가 단단히 굳어지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생긴다.

Q. 무대작업을 하는 과정을 소개한다면?

A. 솔직히 말해 무책임한 연출이다. 다 같이 이야기 안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먼저 뽑아내 그 안에서 최종 하나를 정해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결정한다. ‘하녀들’같은 경우,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미지를 반영하기 위해 거대한 틀을 사용했고 ‘보물상자’ 같은 경우 ‘나를 보호해주는 어릴 적 작은 아지트’를 우산으로 표현했다. ‘어둠속에서’는 처음 모티브는 삼풍백화점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에서 가져왔고, 세월호 사고 당시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예 빛을 없앴었다.

‘손순’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을 붉은 실로, 사람이 가져야하는 잣대, 정신, 정서를 대나무로 표현했다. 이런 것들을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던져놓고 도망간다.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알아서 해달라고. 아이디어는 다 배우들이 내고 말하자면 길만 정리한다.(웃음)

▲ ⓒ 사진/윤빛나


Q. ‘푸른 달’에서 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밝지 않은데 이유가 있는지?
A. 가지고 있는 정서가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요즘 다 힘들고 지치는데 이런 이야기는 보러오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사실 기획자가 ‘손순’ 공연을 하자고 했을 때 망설인 이유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속상한 이야기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장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속상한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Q. 이번 ‘손순’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정서는 어떤 것인가?

A. ‘손순설화’는 어렸을 때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모두가 지켜줘야 하는 존재인데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간 자체가 충격이었던 거다. ‘어떻게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려고 하지?’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그 입장이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더라. 사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래서 ‘손순’은 솔직한 현실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공연이 진행되면 내 이야기가 되는 어느 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물이 정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유하만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보다 월등하다. 외형적으로 아픈 아이들은 진짜로 아픈 게 아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에 장애가 있는 거다.

Q. 관객들한테 남겨주고 싶은 음률은?

A. 연극이 삶의 위로를 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 꿈을 봐주는 분들 덕분에 위로를 받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트라우마가 있다. 무대 위에서 공연이 발전된다는 것이다. 공연이 올라간 순간부터 미친 듯이 연습을 더 하기 시작한다. 노트를 안 하면 배우들이 화를 낸다(웃음). 노트하다가 관객들한테 혼날 때도 있다. 그런데 노트를 할 때 참 행복하다. 작품이 발전되니까.

관객들이 같은 공연을 여러 번 찾아보게 하려면 엄청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여줘야 한다. 조금 변화를 주면 관객들이 봤을 때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지점들을 잡아내 지속적으로 수정을 해서 마지막 날에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 나와야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더 좋지 않을까? 어릴 적 친구가 10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예전 모습이 아니라 발전된 모습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지키고 싶은 푸른 달의 초심은 무엇인가?

A. 어릴 때는 혼자 있어도 행복했다. 누굴 만나도 가식 없이. 참 착했는데 지금은 착하지 않게 된 거다, 닳고 닳아서(웃음). 어른이 되면 솔직히 중요한 게 많아지니까 가정을 지켜야 되고, 돈을 벌어야 되고, 사회 유대관계를 맺어야 되고.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인형들이랑 이야기를 했다.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가자 꿈과 열정을 술이라는 문화랑 바꾼 거다. 어느 날 보니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다. 심지어 인형하고도 안 되더라. 그 때 생각했다. ‘아,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리고 잊혀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Q. ‘디씨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이하 연뮤갤)’에 글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된 지금의 일을 ‘푸른달의 기적’이라고 한다.

A. 연뮤갤에 세 번 들어가 봤다. 그저 우리 연극을 보고 후기를 남겨준 관객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궁금해 하시는 부분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하고 감사할 뿐이다. 솔직히 다들 겁먹은 상태다.(웃음) 저희는 그냥 척박한 땅에서 마른 잎사귀하나 피는 정도로 연명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리는 거다. “우와! 갈증이 해소 되겠다!” 했는데 장마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도 좋지만.(웃음)

폐관은 미뤄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감동적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따뜻한 격려가 단비가 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희미해져도 마음 깊은 곳까지 닿은 따뜻한 온기는 남을 테니까.

힘든 것도 행복하다는 박진신 연출의 말을 믿는다. 진심이 담겨있기에 믿어진다. 그 선한 미소와 진심을 계속 만날 수 있도록 기적이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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