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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13 11: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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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내게 특별한 장소이자 추억의 공간이다. 국제극장에서 아버지와 성룡이 주연한 ‘사형도수’를 보면서 멋지다 못해 감동했다. 사무실과 번드르르한 술집들이 자리 잡은 어른들의 세계로 추락하면서 광화문은 내게 낯선 공간이자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 되었다. 대성학원에서 재수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 문화공간으로 LP 껍데기를 만지작거리면서 행복해했다.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를 만나고, 야근의 고통에 시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일해야 했고,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덕수궁 앞 시위하는 이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훔쳐보고, 월드컵 4강 신화에 환호하는 붉은 응원 열기를 목격했으며, 자살한 대통령의 추모인파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광화문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은 주요 신문사가 모인 정보의 장이며, 회사와 샐러리맨들이 득실거리는 일터이며, 외국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장소이며, 가끔은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성소이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이다. 나는 그곳에서 가끔은, 아니 자주 좀비로 변신한다. 날씨가 어두워지면 광화문 거리에는 술 취한 좀비와 배고픈 좀비, 일에 찌든 좀비, 방황하는 좀비들이 이리저리 서성거린다. 그들은 인간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며,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준비운동을 하기도 한다. 어떤 좀비는 영원히 좀비의 삶을 살기도 하고, 어떤 좀비는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기도 하며, 또 어떤 좀비는 인간에서 좀비 사이를 오락가락한다.”-저자 이봉호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 서울 광화문광장. 근처 지하철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거리는 분주하다. 마치 비 오기 전 개미들의 부산한 행렬을 연상케 한다. 핏기 없는 굳은 얼굴에 어두 칙칙한 정장차림을 한 검은 무리와 배기가스를 내뿜는 자동차가 광화문역 사거리를 가득 메운다. 영혼 없는 그들의 모습은 가볍지만은 않은 듯 무언가에 이끌려 아침행렬에 동참한다. 사각 시멘트 모양을 한 건물은 굶주린 듯 그들을 속속들이 집어삼킨다. TV 속 화면으로 본다면 광화문역 사거리의 아침풍경은 영락없는 좀비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좀비’는 문화 콘텐츠 소재로 인기가 급상승한 캐릭터 중 하나로, 원래,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로 ‘부활한 시체, 살아있는 시체’를 뜻한다. 부두교에서 유래한 좀비는 노동력을 충당키 위해 시체를 좀비로 만들었다. 영혼이 없기에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임금을 지급할 필요도 없고 먹을 것을 줄 필요도 없는 노예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비실거리며 다니는 사람’ 혹은 ‘무사안일에 빠져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으로, 늘 뒷전에만 서 있고 겉멋에만 치중하면서 시키지 않으면 어떤 일도 능동적으로 하지 않는 게으른 직장인들, 피로에 지쳐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직장인들을 소위 ‘좀비족’이라고 빗대서 부르기도 한다.

이들, 즉 노예좀비들은 흔히 돈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에만 온갖 열정을 쏟아 붓는다.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서 사람들의 관능을 자극하고, 오직 물질의 풍요로움을 선동해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함과 삭막한 무한경쟁시대에 오직 성공만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간다. 그들은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대, 정말 지치고 삶이 힘겹다면? 지금이 바로 인생의 궤적을 다시 살펴보고, 삶을 되돌아볼 시기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꿈꾼다.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면서 말이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꿈을 저당 잡은 채 머리와 가슴은 텅 비게 하고, 권력과 탐욕만을 좇게 이끈다. 우리는 왜 지치고 힘들어하는지 그 진짜 이유와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방치한다면 영혼 없는 좀비의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좀비란 괴물의 존재를 낱낱이 밝혀야 하는 이유다.

문화중독자는 “무의식중에 정신과 육체, 우리의 미래를 갉아 먹는 탈진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원하는 미래를 형상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구속하고 망가지게 하는 조종자가 누구인지, 노동의 노예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멀쩡한 사람을 무뇌아로 변신시키는 자본과 미디어의 마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상징하는 자본과 미디어는 느리지만 절대 멈추지 않은 채 갖가지 방법으로 사회를 잠식하고 이곳저곳 이리떼처럼 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웅크린 탈진이란 괴물은 점점 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우리 자신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중독자는 “누구나 영혼 없는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탈진의 정체를 파악한 후, 그것에 ‘대응할 힘과 용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의지가 약해지는 순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다시 벌떡 일어서야만 한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선과 버텨낼 수 있는 자신만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 탈진사회의 민낯-대한민국의 현주소 ‘탈진사회 1번지’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탈진사회 1번지. 주위에 좀비의 눈동자를 한 이들이 우두커니 무리지어 있다. 이들은 사회라는 링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한 곳만 바라보면서 단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직장형 좀비의 삶을 살고 있다. 복제된 기계처럼 살며 서서히 탈진하는 그들의 모습은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전형적인 좀비의 얼굴이다. 하나같이 즐거움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21세기형 좀비다. 광화문뿐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좀비만이 가득한 세상, 이곳은 탈진사회다.

다양한 좀비들로 이뤄진 시스템사회는 인간도 사회도 좀비바이러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감염돼 있다. 바퀴벌레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좀비는 비감염자를 감염시켜 자기를 복제한다. 자기 흔적을 새기면서 모든 것을 다 먹어 삼키고, 모든 것에 달라붙는다. 살아있는 것을 공격해 죽이는 것은 기본이고 결국 그들마저 영혼 없는 좀비로 만든다. 당혹스러운 건 이 모든 행위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그들을 동료괴물로 만든다. 감염의 경로도 발병원인도 모르는 이 정체불명의 전염병. 모든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현대사회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리워지고 있다.

소비만 부추기는 쓰레기 광고부터 유해성분이 가득한 미디어, 미디어 쓰나미 속에 침몰해 가는 인간관계, 빈익빈 부익부로 치닫는 경쟁제일주의 사회, 1등 지상주의에 빠진 학교, 창의력과 꿈보다 취업.취직을 우선시하는 교육, 자본의 첨병을 자처한 대학, 정치권 인사의 탐욕, 성공이란 가면을 쓴 위인양성 시스템, 경쟁력이란 핑계로 선봉에 선성형중독,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하게 복제된 삶, 언제나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이것이 파생시킨 임시직이라는 불안정한 직장, 쪼들리는 월급, 좀비양성소로서의 역할로 자리매김한 영혼이 부재한 기업 등은 현대판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 세상을 건설하는데 일조한 대표적 해악들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근원적인 모습과 행복,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사회에 무지막지한 민폐를 끼치는 ‘좀비들이 가득한 탈진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부와 물질만 좇다가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영혼 대부분이 탈진된 채 현대를 힘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씁쓸한 초상이자 자화상이다. 모든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현대사회의 좀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탈출팁, 탈진사회를 구성하는 악성인자, 막연히 상상하던 탈진의 진짜 정체 및 그 해악에 관해 하나하나 파헤친다. 탈진사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탈진사회의 원인과 정체를 확실히 알고, 탈진을 요구하는 사회구조와 ‘탈진의 역사적 현실’을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것. 탈진은 노동에너지를 담보로 하기에 감추려 했던 ‘탈진의 역사’를 끄집어내면 탈진을 부추기는 사회의 심장부로 다가갈 수 있다.

유행처럼 번진 ‘위인’ 시스템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부터 남자들의 삶과 사회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록키’ 이야기,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축소판인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하고자 한 말, 창조경제 신드롬과 허상, 줄 세우기 문화의 일등공신 숫자중독, 1등만 강요하며 숫자놀음의 노예로 사는 한국사회, 1% 자본가들만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비딱해진 자본주의 시스템, 계급사회의 빛과 그림자, 군대.정부.국가.학교에서 양성하는 복제인간, 자본 앞에서 항문을 벌리는 대학,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괴물이 된 미디어의 본색, 멈출 줄 모르는 오늘날의 전자세계, 광신적인 소비현상 등의 이야기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솔깃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은 더욱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우리의 삶과 영혼을 지배하려고 애쓰고 있다.

현대 도시생활의 반복일상으로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다면? 돈과 권력의 노예가 돼 정체성을 상실한 채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영혼 대부분이 ‘탈진’되었다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갈구하고 탐색하고자 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직장좀비, 취업좀비, 스펙좀비, 성형좀비, 학점좀비, 정치좀비, 전월세좀비, 엄마좀비, 아빠좀비, 자식좀비, 할부좀비, 재테크좀비, 노후좀비, 건강좀비 등 인간세계의 오류로 파생된 다양한 ‘좀비들의 삶’. 이곳으로부터의 탈출 프로젝트가 다각도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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