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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10 13: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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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편찬한 ’삼국사기 ‘ 원본(原本)에는 백제에서 바라보는 말갈과 낭랑의 위치가 본래 ’서쪽‘과 ’북쪽‘이었는데, 조선이 1512년에 ’삼국사‘로 뜯어고치면서 ’서쪽‘을 ’북쪽‘으로, ’북쪽‘을 ’동쪽‘으로 바꿔치기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방향을 바꿔치기 한 이유는, 명(明) 대의 사관들이 ‘신당서’와 ‘요사’ 등 중국 23사에 위사(僞史)를 삽입시켜 고구려의 요동성과 평양성 등의 위치를 현재의 요령성 요양시와 이북 평양시 등으로 변이시켰는데, 조선이 ‘삼국사’로 뜯어고치면서 백제와 낭랑 등의 위치를 현재의 우리나라 땅 안으로 잡아넣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백제 900년의 비밀 관미와 고평’ 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강역이 북경시에서부터 황하에 걸쳐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부지역에 있었음을 증언하는 저자 김진경의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고대 지명들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하기 위해 길고도 험난한 길의 발을 뗀 저자가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를 직접 정독하고 해독해 밝혀낸 진사(眞史), 원본의 기록들을 근거해 밝혀낸 사실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진국(발해)의 강역은 황하까지였고 백제와 신라는 황하 남쪽으로 양자강까지 나타나고 있으니..,.어찌 놀랍고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 역사서와 한국의 역사서를 꼼꼼하게 살피고 분석해서 지도에 정확한 지역을 상세히 표시하고, 설득력 있는 하나의 사관(史觀)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는 산더미 같은 고서와 씨름하면서 지난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연구사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조명해주는 단초가 될 것이며 이에 자극을 받은 후배사학자들의 연구에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삼국사기’와 ‘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건국년도가 약 195년 늦추어져서 서기전 18년에 건국된 것처럼 기록돼 있고, 백제뿐만 아니라 부여, 신라, 고구려 등의 건국년도가 모두 200년쯤 늦추어져서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백제의 건국년도가 약 195년 늦추어졌다면, 실제로 백제의 건국년도는 서기전 213년경이므로, 한(漢)보다 11년 먼저 건국됐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주장은 기존 사학계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뒤따라가야 할 것이다.

서기전 202년에 한(漢)을 건국한 패공(沛公) 유방은 현재의 강소성 서주(徐州)시 패(沛)현은 바로 마한의 옛 땅에 속하는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고, 사수(泗水)는 바로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사비성 인근의 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유방은 바로 마한(馬韓) 출신으로서 백제의 관리 출신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으며 ‘한(漢)’이란 나라 이름은 백제의 한수(漢水)와 한산(漢山)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저자가 오랜 시간 자료와 씨름하면서 ‘삼국사기’의 삼국유미상지분(三國有未詳地分:삼국에 속해 있으나 어디인지 알수 없는 땅)에 열거되어 있는 고대 지명(358개)의 본래 위치를 찾아낸 것은 우리나라 사학계에 큰 선물을 안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록문화에서 한국의 자료도 어느나라에 뒤지지 않지만, 사대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스스로 한민족의 영역을 한반도로 축소시키면서 각종 기록물을 변이시키는 우를 범한 것을 짚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의 동부지역인 양자강의 황하에 존재하던 고구려, 신라, 백제를 조선시대 사관들이 변이시켜 각 역사서에 기록된 지명을 임의로 수정, 삭제한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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