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5-04-26 19:44:25
기사수정

정말 이상한 모습이다. 전쟁이 났는데 아내와 어린 딸에게 집을 지키라면서 돈과 장구만 달랑 들고서 혼자 피난을 떠나는 아버지라니.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연출:박근형)’는 지난 2006년 초연 당시 올해의 예술상, 대산 문학상 희곡상, 히서 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연기상/신인연기상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2007년, 2010년 두 차례 재 공연됐고, 2009년에는 KBS 2TV 4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된 탄탄한 작품이다.

전쟁이 터지고 혼자 피난을 가더니 3년이 지난 어느 날 수용소에서 신세를 진 형님이라며 꺽꺽이 삼촌을 데리고 와선 꿈을 펼치러 간다며 아버지는 또 떠난다. 몇 년이 지나 어머니는 삼촌의 아이를 갖게 되고 갑작스레 집에 찾아온 아버지는 상황을 살피고는 다시 집을 나가더니 굳이 이사한 집을 찾아내서는 새엄마를 데리고 온다. 이 가족, 괜찮을까?

수현재씨어터와 수현재컴퍼니 1주년을 기념해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가 돌아왔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경숙아버지를 통해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요즘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그러나 배우들의 눈부신 호연은 무겁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기막힌 타이밍으로 어지러운 시대, 천방지축 어이없는 아버지는 미워할 수가 없다. 새엄마에게 구박만 받는 천덕꾸러기로 살아서 사랑받지 못해 할 줄도 모른다는 빤한 이야기가 없어도 정착할 줄 모르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도 훌쩍 돌아와 어메와 경숙이를 보고 또 길을 나서는 아버지. 마치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못 볼꼴을 잔뜩 보이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다가 경숙이 졸업식에 홀연히 나타나 구두를 주고 또 떠나는 아버지. 매몰차게 외면하다 결국 경숙은 떠나는 아버지의 등에 묻는다.

"아부지, 아배요, 어딜 그래 갑니까? 아직도 그래 갈 데가 그리 많이 남았습니까?"

참 이상하다. 그렇게도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모습만 일관되게 보여준 아배가 왜 그렇게 그리운 걸까, 그런 아배를 잡는 경숙이의 모습이 왜 이렇게 짠하고 슬플까. 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릴까. 아마도 ‘가족’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관계가 무엇인지 함께 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도 아배는 불현 듯 돌아왔다가 훌쩍 떠날 테지만.

아배요 어매요 하는 경숙이의 천진난만한 사투리, 그때 그 시절을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진한 향수, 구성진 장구 가락과 엉뚱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한 경숙아배, 애잔한 감정으로 가득 찬 어매와 경숙이. 진한 감성이 가득한 공간에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한다.

정말 아역처럼 보이는 주인영이 경숙이로, 특유의 자연스런 연기로 아베를 받드는 어매 역의 고수희, 답이 없는 아버지임에도 밉살스럽기보다 그저 미워할 수 없는 아배 김영필, 진지하지만 기침소리만으로도 존재감을 보이는 꺽꺽이삼촌 김상규, 어매에게 느끼는 바가 많아 형님동생하며 살게 된 자야 황영희 등 만만치 않은 내공의 배우들이 어쩌면 너무나 오랜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되돌려 무대를 확실하게 채우고 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hangg.co.kr/news/view.php?idx=2408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