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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3-25 12: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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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윤빛나

아직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찬바람이 부는 늦은 겨울,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매화. 가지마다 동그마니 사랑스러운 봄이 서두르듯 성큼 피어난.

창작 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은 서울예술단이 선보이는 올 해를 여는 첫 작품으로 움직임에 대한 철학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 임도완 연출과 배삼식 작가, 내노라하는 크리에이티브들과의 협업으로 또 한 번 멋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13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탐매(探梅)행을 떠난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 매화에 대한 그림들, 그림마다 사연이 있다. 과거와 현대, 공간조차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쩌면 이야기 속에만 머물 수 있는 시공간이 따로 생겨난 듯하다. 남편을 잃고 그가 남긴 매화 가지를 돌보는 늙은 여인, 중국의 설화 ‘나부춘몽’, 고려설화 ‘매화와 휘파람새’ 등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신의 색으로 매혹한다. 아름답게, 풍자적으로, 품위를 잃지 않고서.

“한없이 어둡고 한없이 밝아서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무겁다.”

눈 내린 나뭇가지에 살며시 피어난 매화를 본 적이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른 것과 늦은 것 사이에 존재하는 잊혀지지 않는 삶의 순간들을 ‘매화’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맞물려 중국의 설화와 현대 설산에서 조난당한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보임으로 시공간마저 초월하고 있다.

신비로운 내레이션과 느닷없는 랩, 랩을 하면서 탈춤을 추고 유머러스하고 아기자기한 대사들이 신선하게 보는 이들을 탐매(探梅)로 초대한다. 다양한 형식들을 통해 자유로움이 느껴진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정해진 틀인 이야기조차 자유롭게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

▲ ⓒ 사진/윤빛나

아무 이유 없이 떠나보기도 하고, 가끔은 그저 한번 웃어보기도 하고. 꼭 앞뒤가 맞아 들어가고 논리적이라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차가운 바람 속, 무에 그리 급해 여린 꽃송이 피우는 나무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한숨, 그 꽃송이에 털어놓으며 그저 잠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듯이.

저음의 내레이션과 무전기 소리처럼 삑삑 불규칙한 잡음이 섞인 목소리. 맞물려 어지러이 섞인 단어들의 나열. 절제되고 단아하지만 열정적인 춤사위. 매화 가지를 따라 생기는 길. 신비로운 음악, 단출했으나 수없이 변형되어 환상적인 시공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던 큐브까지, 다만 눈이 녹아 봄이 되듯, 새롭고 아름답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심금을 울리는 작곡가 김철환,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드는 안무가 정혜진, 남수정, 무대 가득 매화의 향기를 펼쳐낸 영상·무대디자인 정재진, 최근 주목받고 있는 김은영 음악감독, 빛의 조율사 신호 조명감독 등 탄탄한 제작진이 함께 했다.

고미경 김도빈 김백현 김성연 박영수 박혜정 변재범 오선아 오현정 유경아 정유희 조풍래 최정수 하선진 형남희 15명의 서울예술단 단원들이 숨소리마저 신호로 사용한, 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오는 29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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