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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1-29 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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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이 혼란스러운 작금의 여건에서 노조 운동, 노동 정책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전순옥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을 만났다.

Q 영국에 유학 하신 것으로 아는데 전공은?

A. 전공은 노동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노사관계, 비교노동운동, 비교노동학 석사과정을 공부했고요, 또 비정규직 연구도 했지요.

Q 영국은 1867년과 1884년 수공업자들이 참정권을 획득한다. 노동당 창당 정신은, 또 지지율은 어느 정도인가?

A 최근 지방자치 선거과정에서 보수당 35%, 오래된 농민대표였던 자유민주당이 15%를 차지했다.

Q 노동당의 원칙은?

A ‘공동 생산 공동 분배’가 노동당 강령으로, 토니 블래어가 이 원칙을 포기하면서 당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토니 벤은 50년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유일한 노동당 국회의원이었다.

Q 영국이 인력이 부족해지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영국에 와서 일했는데, 이 시기에 이민 노동자에 대한 영국의 원칙과 이론은 없었는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영국에 와서 일하게 한 역사가 있는데?

A 이민노동자에 대한 원칙이나 이론은 없었다. 이주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의지가 약했다. 단병호 위원장, 그 후 권영길 위원장은 노동자 문제를 다루면서 “이민 노동자를 위한 길, 정책을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0년대 영국으로 온 이민노동자에 대해 학습하다보니 ‘노조 이기주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Q 영국 유학시험보러 갔는데 에피소드는...1982년에 노조를 제압하고 성공한 이가 대처다. 1980년 중반부터 홈리스가 런던에 많아졌다. 당시 대처리즘에 대한 평가는? 영국학교에서 에피소드는...?

A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저학년때 가르쳐야 한다. 대처도 영국민이 노조의지를 강하게 받으면 노조 억압정책을 하지 못하게 한다. 본인은 노동, 자본을 다 중시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 입학 하고 나서 “영국의 실패한 노동 문제를 배우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한 기억이 나네요.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

Q 대처 리즘에 의해 1979년부터 마가렛 대처는 11년간 영국에 큰 영향을 준다. 노조 가입률이 낮아지고 반 노조주의가 나타난다. 대처 리즘에 대한 의원님의 견해는?

A (저는) 대처가 노동 운동 자체를 억압하는 정치를 한 것으로 본다. 그는 광부들의 파업을 진압하면서 자봅의 논리를 먼저 내세운 인물이ㄹ고 생각한다.

Q 대처 수상은 일종의 국가 수익주의, 통화주의, 돈 되는 것은 개입하거나 자본가들의 이익에서 공원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는데, 대처 수상이 한 정치의 내용은?

A 그는 노조를 다루는 경우에도 국민들의 여론을 먼저 듣는 정책을 펼친다. 노조 입장에 대해 국민들이 지지하는 여론이면 그 정책을 안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영미함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Q ‘한국의 기적을 누가 만들었나’라는 책은 잘 읽었다. 내용 중에 ‘6.25를 거친 피폐한 한국이 150억 불을 빌려 발전한 근대화’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압축적인 성장 이면에는 한국 중소 기업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는가?

A 그렇다. 한국인들은 손가락을 이용하는 일의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첨단 제품을 만드는데 한국인의 기술 기능력이 좌우한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노조 운동이 민심을 얻는 경우, 자본 정치는 노조 파업을 막지 못한 것이 영국의 역사다. 그래서 “민심을 얻는 정치를 해야 천하를 얻고,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미국 공화당 출신 링컨 대통령의 주장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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