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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9-01 08: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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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말은 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단어이다. 특히나 딸들에게 엄마란 사랑하지만 제일 많이 싸우게 되고 늘 마음 한편에서 떠나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연극 ‘가을 소나타(연출 :임영웅)’의 에바가 말한다. "엄마와 딸, 정말 끔찍한 조합이에요. 모든 게 사랑과 걱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되잖아요." 연극은 다가서고 싶었지만 사랑할 줄 몰랐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품으로 스웨덴 출신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가을소나타’를 동명의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 ‘가을소나타’는 소통이 단절된 엄마와 두 딸이 서로에게 남긴 오래되고 깊은 상처를 통해, 가까운 관계일수록 진심으로 소통하기 어렵고 아프지만 또한 그렇게 다가서야한다고 전하는 것이다.

그저 그리운 마음에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에바의 편지를 받고 성공한 피아니스트로서 바쁜 삶을 살던 어머니 샬롯이 찾아온다. 무려 7년만의 재회이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요양원에 있는 줄 알았던 엘레나가 에바의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샬롯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동안 잘 해드리고 싶었던 에바는 결국 오랫동안 쌓여있던 감정을 터뜨리게 된다.

두 모녀의 대화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로를 향한다. 술기운을 빌려 용기를 쥐어짜낸 에바의 상처도 아프지만, 엄마이고 싶어도 표현할 줄 몰랐던 샬롯의 변명 또한 이해가 간다. 피아노로 연주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딸들에게는 전할 줄 몰랐다. 사랑하지만 다가서려고 할 때마다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던 두 사람.

“나는 네 엄마이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하지만 에바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절실히 바랬던 샬롯의 변명이 아픈 것은 기실 사랑하고 싶어도 온전히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를 너무나 좋아해서 연주여행을 가는 엄마를 붙잡고 싶었지만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이미 멀리 떠나 있는 엄마를 알기에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몰래 울기만 한 에바 역시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절실한 마음은 전해지지 않고 빙빙 주위를 겉돌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고 시리고 서글픈 것이다. 심하게 싸우고 급히 에바의 집을 떠난 샬롯과 엄마에게 편지로 사과하며 솔직히 다가서는 에바의 모습은 그래서 두 사람이 여전히 모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을의 나뭇잎은 색이 다르다. 녹음으로 짙푸른 숲도 아름답지만 황금빛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이제 머지않아 사라지기 때문인지 반짝, 빛을 머금고 있다. 무대 위에 가을이 내려앉아있다. 가을 앞에 보이는 평범하고 안락한 어느 집. 쇼팽의 소나타가 들려서 일까, 따사롭고 평온하다. 하지만 평화로운 그 풍경은 곧 전쟁터가 된다. 그처럼 아름답기에 치열한 싸움마저 감싸 안아주는 지도 모른다.

연극 ‘가을 소나타’는 번역본도 없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작으로 연출 60주년을 맞이하는 임영웅 연출을 위한 헌정작이다. 오래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다만 좋아하는 연극을 오랫동안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겸손한 소회를 전했다. 전통적인 어머니를 연기해 왔던 손 숙배우의 독특한 어머니, 샬롯과 대선배에 견주어 치밀하게 호흡을 맞추는 서은경 배우의 호연이 눈부시다.

에바의 남편 빅토르 역에 한명구, 존재만으로도 샬롯의 죄책감을 후벼 파는 작은 딸 엘레나 역에 이연정배우가 함께 하고, 임연출과 오랫동안 작업해 온 박동우 디자이너가 흔한 영상하나, 특수 효과 없이도 아름다운 가을을 무대 위에 펼쳐 주었다. 오는 6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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