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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8-24 17: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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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명동예술극장 제공.

연극 ‘유리동물원’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유명한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1945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이래 뉴욕 극평가상, 시드니 하워드상, 도널드슨상을 휩쓸면서 테네시 윌리엄스를 스타 극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경제 대공황으로 위기를 겪어야했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삶과 상처를 통해 현대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자식들이 다 외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살아가는 아만다와 수줍음이 너무나 많아서 친구도 사귀기 어렵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로라,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지만 현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창고에서 일하고 있는 톰. 이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두 명의 등장인물이 더 있다. 가족을 버리고 멀리 여행을 떠난 아버지와 암울한 삶을 비춰 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톰의 친구 짐이다. 아버지는 이 가족의 공통된 상처이고 그의 부재로 인해 세 인물은 더욱 자신만의 세계에 집착하게 된다. 짐은 한마디로 ‘희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 가족을 구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축음기와 유리세공으로 만들어진 동물들을 돌보는 일로 삶을 채우는 로라. 직업을 갖게 하려고 아만다가 어렵게 보낸 대학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중퇴하고 만다. 아만다는 로라의 미래를 위해 톰에게 로라와 데이트할 남자를 한 명 데리고 오라며 종용하는데 결국 톰은 같은 창고에서 일하는 짐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첫 등장할 때 이미 이 작품이 ‘기억’을 위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톰. 작가가 되기 위해 가족을 떠났던 자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암울하고 절망적이지만 한편으로 사랑스럽고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한 장면마다 흐르는 첼로의 선율은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흘러 현악기 한 대만으로도 풍성하게 여백을 채우고 있다.

유리 세공으로 만들어진 동물들을 돌보며 아버지의 축음기로 음악을 듣는 로라의 모습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벗어날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이 ‘절름발이’이기 때문이라지만 그러나 첫사랑이던 짐이 저녁식사 초대에 오고 함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 설렘에 달뜬 모습은 여느 아가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로 만들어진 유니콘의 뿔이 부러진 후, 이제 혼자가 아니니 괜찮다고, 다르다고 괴롭힘 당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잘되었다고 말하는 로라의 마음이 안쓰러운 동시에 사실, 그녀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열등감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힘겨운 것은 하나가 끝났다하여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뿔이 있기에 유니콘은 특별한 존재였다. 뿔이 부러지자 그는 보통의 말처럼 보인다. 겉모습이 비슷해졌다하여 과연 그 본질도 달라진 것일까? 겉모습을 비슷하게 치장하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것일까? 연극은 ‘기억’을 통해 이야기 하지만 마치 현실처럼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래서 분명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번지르르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짐의 말들은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오히려 ‘푸른 장미’인 로라의 모습이 남는다.

짐을 통해 이루려했던 목표를 잃자 아만다와 로라, 톰은 좌절한다. 그리고 톰이 말한다. 너무나 화려한 빛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제 그만 누나의 촛불을 끄라고. 근원적인 열망을 버리라고. 날개가 땅에 묶여있는 사람들, 윙필드(Wingfield). 그들의 이름처럼 그들은 날기를 포기함으로 세상에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안화차’ ‘아워타운’으로 유명한 한태숙 연출이 암울하지만 작은 위안마저 전하고 있고, 김성녀 배우가 아만다로 분하고 있다. 수다스러운 어머니, 옛날을 회상할 때는 수줍은 처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호흡이 일품이다. 섬세하고 여린 모습의 정운선배우가 로라 역을, 연극계의 신성, 이승주배우가 화자인 톰 윙필드, 그의 친구인 짐 역에 심완준배우가 함께한다.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유리동물원’은 오는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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