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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3-25 1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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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자신이 주창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사퇴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 3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기업이 연초에 설정했던 이익보다 연말에 초과이익이 났을 때는 그 이익을 협력사에게 제공하자는 “초과이익공유제”라는 화두들 던진 지 17일 만이다. 그 동안 정운찬식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 정치권에서는 정치에 입문한 정치욕망에서 나온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경제계에서는 자유시장원리를 거스르는 반시장적인 좌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거센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 중 하나로 제시된 개념이 초과이익공유제이다. 원래 기업의 이익배당은 주주들과 사원들의 몫이었던 기존 개념과 달리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이익을 나누자는 동반성장의 개념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Win-Win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초과이익공유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과 동반성장이 정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대기업이 누리는 이익만큼 중소기업이 누리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대기업이 적절한 가격으로 물품을 납품받고, 중소기업의 특허기술을 보전해 주는 것과 같이 타당한 대우를 해준다면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정책자체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생각은 없다. 보통 정책대안을 평가하는 기준인 소망성과 실현가능성을 중심으로 볼 때, 그 정책이 소망성에 있어서는 참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바람직한 대안이지만, 실현가능성에 있어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말도 안 되는 대안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작년 연말 삼성전자의 직원들은 연말 성과급으로 50%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성과급 잔치를 한 데 비해,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불리는 하청업체들은 큰 이익을 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그런 소식이 들릴 수 있도록 해 보시라고 이건희 회장께 청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번 정운찬 위원장의 사퇴 언급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았으면 한다. 사실, 정운찬이 처음 MB정부의 국무총리로 들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걱정했으며 일부에서는 “왜 그토록 비판적이던 정부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비난의 화살을 겨눈 경우도 있었다. 그 때 정운찬은 “MB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어 보니, 큰 의견차는 전혀 없었다. 얼마든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던 것 같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은 아마도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험난한 정치권에 들어가서 못 쓰게 망가지지나 않을까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즉, 사람을 키우기 보다는 ‘깎아내리고 죽이는’ 우리의 정치문화의 왜곡되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정운찬 위원장의 사퇴언급이 그런 정치문화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표현인지, 아니면 굴복하기 전의 마지막 몸짓인지는 모르겠다.

작년에 모 일간지에서 “키워서 대통령 되나?”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글의 주요 논지는 총리를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아보려 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국무총리가 된 사람 가운데 한 명도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가 키워준다고 대통령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가볍게 듣는다면 사실은 맞는 말이고 또 그래야만 할 것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대통령이 키워 주는 사람이 계속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일당독재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본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면 냉혹한 정치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고, 또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고 많은 인재를 키우고 든든한 리더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작년 8월 ‘39년만의 40대 총리’로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깜짝 발탁한 데 대해 예측할 수 없고 검증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을 가지고 과연 선진국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자고 나면 갑자기 그냥 누가 나타나는데 누군지, 왜 그렇게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예측이 전혀 안 된다. 그러니까 과연 청문회는 통과할 수 있는지,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경력을 쌓아서 어떻게 검증을 받아서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이런 것들에 대한 국민들의 예측과 검증된 역량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서울대학교 출신에 젊은 시절에는 노동운동을 통해 치열하게 현실적 고민에 아파해 본 적도 있고, 누가 봐도 어려운 수도권 지역구에서 연속 승리했고 특히 재선을 쉽사리 용인해 주지 않는 경기도민들에게 뚜렷한 소신을 보여 줌으로써 지금의 지지를 만들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당시의 김태호 후보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아직도 정치라는 냉혹한 게임에서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강인한 전사와도 같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만을 원하고 있을까? 더구나 지금 사회는 어느 특정한 한 명의 리더의 고뇌에 찬 결단과 의지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리더들이 서로 협력하고 지혜를 나눔으로써 함께 이끌어가야만 하는 혼돈(Chaos)의 시대이고 불확실성(Uncertainty)의 시대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가끔 인용할 정도로 세계 최고이고,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한 욕심과 그로 인한 눈물겨운 노력은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큰 리더가 되도록 서로 가꾸고 격려해 주는 일에는 너무도 부족한 것이 동시에 우리 민족이다. 흔히 미국은 영웅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자기들과 어쩌면 아무 관계도 없는 김연아를 위해 ‘김연아의 날’을 만장일치로 제정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도 어떤 사람을 깎아내리고 짓밟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웅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촛불시위를 하는 나라가 된다면 그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사회만이 밝은 미래가 있으며 진정한 선진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운찬은 늘 말한다. “삶에서 배워야할 대부분을 나는 스코필드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중학교를 다닐 학비가 없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소년에게 직접적인 도움과 함께 사랑 그리고 신앙을 전수해 주면서 오늘의 정운찬을 키운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온 스코필드(한국식 이름, 석호필) 박사라는 사실에 우리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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