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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3-17 1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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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6개 지방자치단체가 51조 5천억 원 규모의 경전철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경종이 울렸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경전철 사업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 3월 1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경전철 도입인구 기준을 현 50만 명에서 70만~100만 명으로 상향조정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경전철 도입을 검토할 때, 노선설계나 재원 부담 등에 대해 사전에 광역자치단체와 의무적으로 협의하도록 했다. 결국, 핵심은 경전철 건설 조건을 강화한다는 것이고,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에 심각한 재정 압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조정을 가능하게 한 것이 중앙정부의 치열한 정책검토나 외국의 경전철사업건설에 대한 소위 얘기하는 사례분석이나 벤치마킹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경전철을 추진하고 있는 10여 곳의 지방자치단체자체가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놀란 마음에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특히, 지난 해 준공된 용인경전철과 올해와 내년 차례로 완공을 앞둔 부산~김해 그리고 의정부경전철이 대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이다. 아니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경전철을 개통하면 그 순간부터 경전철은 ‘세금 먹는 하마’가 되어 지방재정이 위기를 지나 파산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 정도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시작은 터무니없는 이용 수요예측이다. 정부는 1992년 부산~김해 경전철사업을 국내 첫 경전철 시범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용역을 주어 이용수요 예측을 하게했다. 그 결과가 민간사업자의 예측결과(2011년 17만6,358명)보다도 더 높게 나와 결국 부산과 김해시는 민간사업자의 이용수요예측을 적용해 민간사업자와 BTO(Build Transfer Operate: 수익형 민자사업)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소유권은 부산과 김해시가 갖되 민간사업자에게 30년간 운영권을 주어 투자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MRG(Minimum Revenue Guarantee: 최소운영수익보장)라는 조항이 있어서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적자가 나면 메워주기로 한 것이다. 이 MRG를 부산~김해 경전철의 경우 개통 후 10년간은 80%, 11~15년은 78%, 16~20년은 75%로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부산, 김해시가 자체 분석한 결과 올 2011년 경전철 이용수요는 3만5,000명으로 조사되어 2011년 예측결과인 17만6,358명의 20% 수준으로 나타났다. 용인경전철도 비슷해서 당초 하루에 14만6,000여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 예측으로 3만2,000~7만2,000명 정도만 이용할 것으로 보여 연간 시가 부담해야 하는 돈만 850억 원이다. 의정부 경전철도 상황이 다르지 않아 하루 이용수요를 7만9,049명으로 예측했는데 수요예측이 과대 예측되어 하루 1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게 국무총리실의 설명이다. 그나마 의정부경전철은 개통 초기연도부터 5년간 목표 운임수요의 50~80%까지 운임수입을 보장해 주도록 되어있어 이용수요가 50% 미만이길 바라야만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민자사업에 왜 MRG가 도입되었을까? 정부는 1994년 도로, 항만 등 부족한 SOC(사회간접자본) 조기 확충을 위해 민간투자제도를 도입했지만 초기에 사업에 있어서의 재원부담 및 성공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민간 참여가 극히 부진했다. 특히 IMF이후 재정위기에 직면한 정부는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SOC를 확충하기 위해 민자사업을 적극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민간의 부담을 줄여 주고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말 그대로 획기적인(?) 제도인 MRG를 1998년 전격 도입했다. 제도 도입 후 민자사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민자사업 활성화를 위한 ‘보증수표’로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적자보전이라는 안전망을 믿고 교통량 수요를 사업타당성이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과잉예측하면서 민자사업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은 해마다 가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급기야 지난 2006년 민간제안사업에 대한 MRG를 전면 폐지하게 되었다.

참으로 이번 경전철 사업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은 경전철사업 추진검토 당시의 지방자치단체와 교통수요 예측 용역업체, 시행사를 대상으로 수요가 부풀려진 민자사업을 조기에 추진하게 된 경위를 확실히 따져,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시의회 역시 견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또한 중앙정부가 예산지원을 해주느냐 안 해 주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결론을 내리는 타당성 검토를 시행하는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의 검증도 잘못된 것인지, 무슨 문제가 있어서 민간사업자의 이용수요 예측이 그대로 확정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이를 전체적으로 감독 및 통제해야 할 중앙정부도 책임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김해, 용인, 의정부 경전철처럼 지방자치단체가 MRG약정을 하고 민간투자사업 형태로 추진한 사업의 경우 사업초기 수요예측 잘못으로 막대한 적자가 예상되며, 지방재정상황에 비춰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인 만큼 정부의 책임 및 지원이 필요하다. 본래 철도는 가장 기본적인 대중교통시설이자 사회기반시설로서 이윤을 창출해내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운영적자 보전이나 운영비용 보조를 해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철도의 운영비용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부담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건설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위 B/C분석(편익비용분석)이다. 그런데 이게 참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한 마디로 ‘요지경’이다. 지방도시에서 도시철도를 필요로 할 때 건설비용, 운영비용, 이용승객 등을 따지면 대부분 B/C가 1보다는 한참 미달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이용수요 예측 시 과대 부풀리기를 할 수 밖에 없고, 의정부 경전철과 같이 도심조차도 지상으로 관통하는 고가구조의 경전철로 건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부산~김해, 용인, 의정부 경전철 등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경전철사업들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법정논쟁과 시간 끌기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로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는 경전철을 지방자치단체의 상징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환경에서는 경전철 이용 수요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도 힘들고, 인구를 급속히 증가시킬 방법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로의 이익을 앞세워 계속 대치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더욱 큰 손실을 초래하고 결국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간사업자(업체)도 더 이상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따져 부속사업(임대나 광고)만을 요구하지 말고, 특혜성 논란 등에 대한 부담이 적고 실제적으로 이용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부대사업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이 중앙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결단이다. 이번 부산~김해, 용인, 의정부 경전철의 문제발생으로 인해 정부는 제대로 학습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예상되는 적자(사실은 학습비용)이 무려 예상되는 금액만 각각 1조6천억 원, 2조5천억 원, 1,000억 원 등 세 군데 경전철에서만 4조2천억 원이다. 그럼 정부의 이렇게 큰 학습비용을 왜 전부 새로운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가, 왜 지역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가? 그 책임의 일부는 분명히 중앙정부에게 있다. 이제라도 중앙정부답게 책임지는 큰 결단을 기대하며, 이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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