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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3-04 17: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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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에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하루는 목욕재개부터 시작하여, 국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숫 하마 잡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고(왕 제도 이미 존재) 또한 그때의 “풍요와 즐거움의 극치” 가 파피루스에 기록 되어 있다.

기원전 2700년경 에는 제2왕조 때인데 이때부터 태양신 “라“(Ra :라 =나<우리말>)를 처음 숭배하기 시작 하였고 새로운 건축기술이 발달하여 당시 행정담당 서기들의 글과 그림이 파피루스에 남아 있다.

기원전 2500년 쿠푸왕 때는 20년이 걸려 2.5톤짜리 돌 230만개로 대 피라밋이 완성 되었는데, BC 5세기의 그리스 기록에는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라고 기록 되어 있다. 당시 이집트의 역사는 그리스인들이 많이 왜곡 하였던 것이다.<한국과 일본 처럼> 이 기록들은 서양 학자들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당시 피라밋 건축 공정과 책임자 이름도 기록 되어있다.>

또 나일강을 이용하여 돌을 옮기며 시나이반도에서 아스완과 더 밑으로 누비아까지 땅을 개척 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각품 중에 유리로 만든 “눈“과 미 이 라 의 부패방지를 위한 특별 처리까지 하였다.

BC1279~BC1212 파라오 “세띠”의 아들 람세스 대왕 때는 쌍으로 쏠 수 있는 활이 개발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으며, 돌을 쪼개고 다듬는 기술이 개발되어 실용화 된 것이 이미 1000년 이 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한편 아시아의 우리민족 시조 중 한사람인 치우천황은 기원전2700년 경 에 이미 청동기로 무기와 갑옷과 농기구를 만들고 사용 하였지만(동두철액: 머리는 동이며 갑옷은 쇠) 신화로만 기록되어 알려지고 있다.

은나라 때의 “기자가 조 선 으로 갔다” 는 그 조선이 어느 지역이며, 태양족인 우리민족이 살았던 곳 마다 “광명 의 땅 (아사달)”으로 이름 지어, 조선. 부여. 가라(야). 한. 북경. 조양. 평양. 왜. 일본...등으로 기록된 우리 고어가 한자(漢字)로만 표시된 것을 언어학으로 연구 하지도 않는다.

치우천황 보다 약400년 후의 인물인 “단군”(기원전 2333년)도 신화로 만들고, 마치 곰과 호랑이가 변해서 사람이 된 것처럼, 유전학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 표현을 하였고, 비유법 을 직설법으로 의도적인 해석을 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무리하고 고의적인 왜곡된 해석인가.

또한 기원전 551년의 공자와 기원전 372년의 맹자는 대나무에 “옻“으로 글을 써서 기록(과두문 )을 남겼는데, 이글이 현대인들의 생활지침서와 국가 경영을 위한 정치 교과서처럼 지금도 읽혀지고 있다.

진시황제도 기원전 221년에 “분서갱유”를 하였고, 지금도 중국의 서안에는 흙으로 구워 만든 사람과 말들이 발굴 되고 있다.

그런데 공자보다 약500년 후의 사람인, 신라의 박혁세(BC57년)는 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의 동명왕 고주몽도 돌(알)에서 나왔다고 하며, 물고기와 자라가 강물 위로 올라와 사람이 강을 건널 수 있게 다리가 되어 주었다고 하는, 은유법 표현을 직설법으로 고의로 무리하게 해석하여 후세인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으니, 이 또한 신화라고 할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왜 유독 우리역사만 이렇게 신화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태리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에집트의 왕 클레오파트라와 자식을 낳고 살았던 기록과, 한참 후(BC 47년 9월에) 소아시아 젤라 전쟁에서 이기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이 세 마디 의 유명한 보고서를 원로원으로 보낸 사실과,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식민, 간척, 항만, 도로건설, 구제 사업 등과 율리우스력 등 개혁사업을 추진 하다가 BC44년 3월 15일 부하이며 양자인 부루투스에게 칼에 찔려 죽었다.<기록된 역사적 사실>

이웃나라 중국은 공자의 행적을 정확하게 연구하여 지금까지도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며 후손들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태리도 자국의 역사를 소상하게 기록하여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라고 국민들의 역사의식과 자부심을 심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일부러 연구 하지 않는 걸까? 예산이 없어서 연구하지 못한 걸까? 많고 많은 우리 문화와 역사기록들이 이웃나라 옛날 책속에 수도 없이 많은데도 왜 보지 않고 연구하지 못하는 걸까?

역사왜곡의 후유증은 국민들 전체에 다음과 같은 정신적 인“해”를 끼친다고 한다.

1. 교육이 제대로 안되고, 2. 패배주의자와 이기주의자만 양산하며, 3. 서로 신뢰하는 마음(정신)이 없어지고, 4.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5. 남을 헐뜯고 시기 질투 하며, 6. 한탕주의와 일시적인 것에 쉽게 재미를 느끼며, 7. 거짓과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8. 자부심과 자긍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역사의식이 모자라서 먼 훗날을 생각하지 못 한다고 한다.

참으로 심각한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우리민족이 지혜로워질까? 우리자손들을 위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하여,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거짓 역사를 바로 고치고, 신화로 위장되고 축소 왜곡된 국사를 올바르게 고치고 재해석 하여, 올바른 국사책을 새로 만들어서 교육 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길 만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가 보장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우리사회의 지도자이며 어른들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준이며 척도이다. 하루빨리 잘못된 국사 교과서가 올바로 고쳐져서 우리국민들의 정신이 다시 맑아지도록 하는데 여러 어른들께서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

2011년(단기 4344년)2월28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강 동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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