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1-03-04 16:55:18
기사수정

장인봉(신흥대학 행정학과 교수)


제자폭행 의혹으로 물의를 빚은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가 끝내 파면됐다. 서울대 징계위가 밝힌 김 교수의 파면 사유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61조 '청렴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다. 그 동안 김 교수는 제자폭행 의혹을 비롯한 강의 태만, 금품 수수, 음악회 티켓 구매 강요 등의 의혹을 받아왔다. 아직 법적 절차가 남아 있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때 우리 사회에 꽤나 유행했던 ‘대학교수와 거지’의 공통점이란 개그가 있었다. ‘항상 뭔가를 들고 다닌다’, ‘작년에 한 말 또 한다’, ‘어렵지만 한번 되기만 하면 더없이 편하다’, ‘맛들이고 나면 결코 그만 둘 수 없다’, ‘출퇴근이 자유롭다’, ‘목소리가 크다’ 등으로 기억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큰 스승으로 존경을 받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폴리페서, 철밥통, 논문표절 등으로 근간에 계속 인구에 회자되는 교수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개그 소재가 된 것이다.

지금 ‘수난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 대학교수들의 자화상을 보니, 중세유럽의 대학이 생각난다. 대학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390년경에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Academia)에서 찾지만,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현대적 의미의 대학은 중세 말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특히, 중세 말기 서양의 대학을 대표하는 최초의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대학과 프랑스의 파리(Paris)대학이다. 당시의 중세 유럽 대학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당시에 영향력이 강했던 집단은 교수들이 아니고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유럽의 각지에서 모여 든 학생들은 그 당시에 이탈리아에 널리 퍼져 있던 동업조합인 길드(guild)를 모방하여 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길드조직을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고 서로 돕는 영향력을 키워 가게 된다. 그 당시의 대학들은 지금처럼 고정된 건물이나 강의실이 아니라 자유롭게 이동을 해 가면서 강의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가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길드를 통해 교수들과 강의에 대한 계약을 맺는 등 교수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간다. 특히, 학생조합의 요구에 의해 당시 교수들은 단 하루도 허가 없이 휴강해서는 안 되었으며, 학생 대표에게 잘 가르치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교수들은 중세 유럽대학의 교수만큼은 아니지만, 참으로 ‘대학교수 수난시대’에 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대학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봉사의 3가지이다. 비교적 젊었을 때는 교육 및 연구에 전념하게 되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 교내 주요보직에 대한 업무를 통해 학내봉사를 하게 되고 대외적인 봉사활동도 활발해 지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대학교수는 방학이 있어서 참 좋겠다고 한다. 물론 방학 때는 주어진 학교 강의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1년 내내 입시홍보에 내몰려야 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평가를 받기 위해 강의준비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재임용이나 승진을 위해서는 좋은 논문을 많이 써서 권위 있는 학술지에 기고하는 데에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 와중에 그래도 명색이 교수이니, 대내?외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참으로 1년 365일 8,760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는 늘 개그의 단골소재이고, 오죽하면 ‘불륜’으로 점철되는 소위 막장드라마의 단골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김인혜 교수의 사태를 보면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수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 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누구나 알고 있는 참으로 간단한 것이다. 처음 신임교수로 임명장을 받았을 때, 그 때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 교수로 임용되었을 당시에 누구나 결심했을 ‘교수다움’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수답기 위해서는 가르침의 도리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되 강제로 끌어당기지 않으며, 세게 다그치되 짓눌리지 않게 하며, 문을 열어 주되 끝까지 데리고 가지 않는다. 이끌되 끌어당기지 않으니 부딪침이 없고, 다그치되 짓누르지 않으니 어려움이 없고, 열어주되 끝까지 데리고 가지 않으니 스스로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딪침이 없이 조화롭고, 어려움이 없이 용이하며, 스스로 사고하도록 이끄는 것, 이것이야말로 잘 가르치는 모습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 나오는 가르침의 도리다.

지난 2007년에 대학 교수들이 2007년의 새해 소망을 담아 선정한 사자성어는 ‘반구저기(反求諸己)’였다. 반구저기는 “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글귀로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의 탓을 하기보다 그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8년에 선정된 사자성어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이는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의 뜻으로, 훌륭한 인품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잘 다스려진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교수들이라, 본인들의 지금의 어려운 처지를 예측한 것은 아닐지, 참으로 지금의 대학교수들에게 꼭 필요한 사자성어로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이제부터라도 심기일전해 대학교수로서의 소명의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교수다움’을 갖추기 위한 초심(初心) 찾기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hangg.co.kr/news/view.php?idx=130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