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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23 17: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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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이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년 기념으로 ‘멕베스’ ‘노래하는 샤일록’에 이어 또 하나의 명작, 연극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렸다. 주제나 기교면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템페스트’는 폭풍우라는 뜻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주인공인 프로스페로의 입을 빌려 셰익스피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동생의 음모로 밀라노의 대공이었던 프로스페로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아직 어린 딸 미랜더와 함께 추방된다. 노대신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외딴 섬에 정착해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법을 익히게 된다. 마침내 기회를 잡은 그는 마법으로 폭풍우를 일으켜 동생일행이 탄 배를 난파시키고 복수하려한다.

연극의 첫 장면은 프로스페로가 일으킨 폭풍우에 휘말린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혼란으로 시작된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배 안에서의 상황들,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론 치열한. 결국 그들은 프로스페로와 미랜더가 있는 섬에 표류하게 된다. 꽤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마녀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프로스페로의 도움으로 살아나 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에어리얼, 폭풍우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그 와중에 딸 미랜더와 왕자 페르디난도가 사랑에 빠지고 술주정뱅이 스테파노와 트린큘로는 마녀의 아들인 괴물 캘리번의 주인행세를 한다.

후기 로망스작품인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피는 피로써 갚는 전작들과는 달리 용서와 화해를 내세우고 있다. 복수의 기회를 잡기 위해 동생 안토니오의 일행이 탄 배를 난파시킨 프로스페로지만 결국 그는 마법을 내려놓는다. 그의 힘의 정수였던 지팡이을 부러뜨려 그는 힘을 모두 잃은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복수하기 위해 마법의 힘을 마음대로 쓰기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분노의 폭풍우가 갑자기 멈춰버린 듯 그렇게.

그렇다고 그가 복수하려했던 안토니오와 나폴리의 왕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 것도 아니다. 나폴리 왕은 아들 페르디난도를 잃은 줄 알고 낙담하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만 동생인 안토니오는 왕의 동생에게 자신과 똑같은 짓을 하라고 부추기다가 에어리얼에게 혼이 날 뿐이다.

사진/국립극단 제공

결국 용서란 진심으로 뉘우치는 누군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프로스페로 자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복수할 것인가, 용서하고 화해할 것인가.

사실 힘이 있으면 그걸 사용해보고 싶은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지 알고 싶은 것이다. 힘을 휘두르고 후회할지라도 손을 뻗어 휘저어놓는다. 그러나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는 그 힘 자체를 내려놓았다. 혹 훗날에라도 사용하고 싶어질까 그랬을까? 힘의 상징인 지팡이를 부러뜨린 것은 아예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것이 아닐까.

참으로 대단하다. 그는 용서를 통해 사람들과 스스로를 구원하길 선택했다. 복수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오직 프로스페로의 영혼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위협하다가 어느새 잔잔해 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결국 그 어떤 명분의 복수보다 용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포를 일으키던 정령들을 이용해 마법을 부렸으나 결국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려준다. 대단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에 현혹되는 인간들에게 본질을 바라보라 경고하는 것처럼.

마치 어느 작은 소극장 무대처럼 의자들이 띄엄띄엄 놓인 작은 무대에 마르고 구부정한 프로스페로가 서서 말을 건넨다. 이 무인도에 잡아두지 말고 여러분의 박수갈채로 이 몸의 족쇄를 풀어달라고. 프로스페로가 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오영수 배우의 묵직한 대사에 뭉클하다. 노배우의 명연기만으로도 이 작품을 봐야할 이유가 있다.

프로스페로 역에 오영수, 알론조 역에 임홍식, 곤잘로 역에 곽은태, 캘리번 역에 오달수, 트린큘로 역에 황정민, 세바스챤 역에 백익남, 안토니오 역에 이형주, 스테파노에 오동식, 에어리얼에 김종태, 페르디난도 역에 이강욱, 미랜더 역에 심재현등, 멋진 연극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연극 ‘템페스트’는 오는 2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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