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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19 1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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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예술단

지난 2006년 서울 예술단의 ‘바람의 나라, 무휼’이 공개된 후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뮤지컬이냐 아니냐의 논란마저 야기됐는데, 이미지를 강조한 작품이 신선했으나 어렵게 느껴진 까닭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향한 호기심과 관심 또한 대단해 2006년 한국 뮤지컬대상 안무상과 기술상, 2007년 더 뮤지컬어워즈에서 안무상과 조명 음향상을 수상하는 등 2년동안 총 9개 부문 후보작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더 나아가 2007년, 2009년 재공연을 올렸고 올해 5년 만에 ‘바람의 나라, 무휼’이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났다.

‘바람의 나라, 무휼’은 김 진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만화 애호가들이야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고구려 개국 초기 3대의 가족사와 역사를 다룬 대작이라 과연 얼마나 무대에서 재현이 가능할까 의문이었다. 판타지적인 요소들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 부분을 설명하기보다 이미지화 시켜 무대는 자유롭고 신비로워졌다. 결론적으로 전문적인 분야가 나뉘어있는 서울 예술단이기에 가능한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창작가무극 ‘바람의 나라’는 역사와 신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리왕과 그의 두 아들, 해명태자와 대무신왕 무휼, 손자 호동의 이야기까지 아우르고 있다. 아직 고구려가 나라로서 강대한 힘을 갖기 전으로 ‘부여’의 대소왕이 죽기까지의 시점을 두어 무휼이 왕으로서 꿈꾸는 부도(정치적 이상향)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유리왕의 부도, 해명태자와 무휼의 부도, 그리고 호동의 부도까지. 부도에 대한 다른 시각은 왕으로서의 무휼, 아버지로서의 무휼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갈등 또한 비춰준다.

바람의 나라에서 배우들은 감정을 연기하기보다 춤과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어쩌면 대사가 적기때문에 한마디 한마디가 절실하고 중요하게 다가온다.

첫사랑 연이, 정략적 결혼으로 왕비가 된 이지, 동생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나 무거워 안타까움에 그를 지키려는 누나 세류,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스스로 죽어야했으나 동생의 힘이 되어주는 해명태자, 해명태자를 사랑한 무녀 혜압, 하늘의 꽃 가희, 신수 백호를 가진 장수 괴유, 어서 커서 아버지를 닮고 싶다던 작고 어린 호동왕자. 많은 인물들이 오직 부도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그 중심을 잡고 있는 무휼의 뒷모습에선 무거움마저 전해진다. 더 이상 약하기 때문에 내 땅의 사람들이 눈물흘리도록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왕. 굳은 의지가 그를 지탱하는 힘이었을까.

호동의 신수가 자신의 신수와 상극이라는 것을 알고 봉황이 되기 전에 활을 쏘아 죽이려는 냉정함 뒤에 자신과 같이 무거운 짐을 진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깊은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작고 어린 너” 호동을 향한 짦은 대사에 첫사랑인 아내에 대한 애틋함이 슬프다. 그토록 사랑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니 그 아들이 얼마나 귀했을까. 그러나 그가 물려줄 것은 결의와 힘이 없으면 결코 지켜낼 수 없을 나라였다.

무휼의 애틋한 부정과 왕으로서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나는 가운데 어리고 사랑스러운 호동의 부도는 꼭 그 아이처럼 어여쁘다. 소중한 사람들을 다 잃은 전쟁, 적의 수장을 베었으나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전쟁에서 '퇴로를 열어라!' 명령해야하는 그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고 서글프다. 무휼과 호동의 대비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길을 가야하기에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또한 슬프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무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배우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홀로 추는 춤에는 역동성과 바람 같은 울음이 담긴 듯 비장하다. 오직 12분 동안 고구려와 부여의 마지막 전쟁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경이롭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의 군무와 맡은 배역에 따른 독무의 향연이 펼쳐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전해져 온다. 창작 가무극 ‘바람의 나라, 무휼’은 여전히 불친절했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새로운 미학을 잃지 않았다. 초연 때와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더해 이 작품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절대적인 무휼로 여겨지는 배우 고영빈이 원 캐스트로 돌아왔고 최근 뮤지컬계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오가 왕자 호동 역을, 신비한 장수 박영수와 조풍래가 괴유, 극 전체를 해설하는 혜압 역에 수석단원 고미경, 비운의 태자 해명 역에 최정수, 이시후, 무휼의 하나뿐인 사랑 연이 역에 유경아, 박정은, 세류역에 차 엘리야, 이지 역에 김건혜, 가희 역에 하선진, 호동의 신수인 병아리와 젊은 새타니(혜압)역에 김혜원, 그리고 아름답고 수준 높은 최고의 군무를 보여주는 무용단원들과 타악연주팀까지 서울 예술단이 총출동한다.

예술감독은 정혜진, 연출은 '서편제' 등에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 이지나, 화려한 안무는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작곡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 음악을 대표하는 이시우, 음악감독은 자타 공인 최고의 김문정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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