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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19 01: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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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예산 수덕사의 작은 암자에 머물던 만공(滿空)은 일본이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다음날인 16일에야 들었다. 신자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암자에서 내려오면서 길가에 핀 무궁화 꽃, 몇 송이를 땄다. 내려와서는 무궁화 꽃에 먹을 찍어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네 글자를 쓰고 낙관 대신 근화필(槿花筆)이라고 썼다.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만공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들까지도 부처로 보아야 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몇 년 전 바로 그 ‘근화필 세계일화’를 복사해 만든 액자를 서초 벼룩시장에서 샀다. 붓 대신 꽃으로 써서 그런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선기(禪氣)가 느껴지는 글씨였다. 나는 그 액자를 그때 막 창립, 개소한 정수일의 문명교류연구소에 보냈다. 문명교류연구소의 지향과 딱 들어맞는 글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액자는 지금도 연구소의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다.

세계일화는 어떤 꽃일까

그 뒤 언젠가 아산 인취사에 연꽃 보러 갔다가 사경(寫經)을 하는 주지스님의 방에서 만공이 붓으로 쓴 ‘세계일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근화필과는 달리 잘 정제된 글씨였다. 1990년대 초 독일에 갔을 때 1970년대에 광부로 가 정착한 이종성의 집에서 ‘세계일화’라고 쓴 액자를 또 보았다. 그것은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가 쓴 것으로 무척이나 단정했다.

불교와 기독교에서 각기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두 분이 ‘세계일화’라는 글씨를 즐겨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두 분이 공히 ‘세계일화’를 꿈꾸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생각한 ‘세계일화’는 어떻게 생긴 꽃일까. 또 그분들이 바라는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단 한가지 색깔이나 품종으로 된 거대한 한 송이 꽃, 세계정부 아래 하나로 흡수통일된 세계일까. 아니면 다양한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꽃이 되는 그런 세계일까.

언제부터인가 봄이 오면 꽃을 찾아 나서는 관광여행이 풍미하고 있다. 한려수도의 동백, 섬진강변의 매화, 구례산동의 산수유, 화개장터의 십리 벚꽃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온갖 꽃들이 신록과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북한산을 볼 때에 우리들의 눈은 얼마나 호강하는가. 일찍 폈다가 진 남도의 벚꽃보다 만산의 신록 속에 뭉클뭉클 피어있는 산벚꽃은 얼마나 싱그러운가.

저 혼자 일찍 핀다고 봄이 아니라, 다 함께 피어야 비로소 봄인 것을 저절로 알겠다. 공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말해서 어울리되 내가 남과 다른 것을 굳이 내세웠지만 나와 네가 다르지만, 기꺼이 어울리기를 선택한 부동이화(不同而和)를 실감하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의 산천에서다. 나는 이때 문득 서로 어울려 하나의 꽃으로 장관(壯觀)을 이루는 바로 거기서 ‘세계일화’의 참모습을 본다.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조화

‘세계일화’를 생각하면서 시대의 화두요 대세로 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세계인의 관심과 애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세계는 하나다. 그러나 세계화가 온 세계가 하나의 색깔로 일사불란하게 하나 되어 가는 것, 가장 앞서가는 나라, 가장 힘이 센 나라를 표준으로 하여 거기에 맞추어 하나 되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진정한 세계화란 다양한 민족과 지역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마음껏 펼쳐져 전체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화엄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바로 ‘세계일화’일 것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세계화와 민족주의에 대해서 사려 깊은 통찰을 한 바 있다. “세계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집이 되어 사는 것이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의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이 아니다.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어서 다른 민족과 서로 나누고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족주의요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확실한 진리이다.”(「나의 소원」에서)

이런 일화가 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胡志明)이 냉전시대 어느 날 스탈린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스탈린은 작심하고 물었다. “당신은 민족주의자로 남고 싶소, 아니면 국제주의자로 남고 싶소?” 이에 호치민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민족주의자와 국제주의자로 남고 싶소.”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 그것이 바로 ‘세계일화’다. 이 봄날 우리나라가 세계일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과 중심이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김 정 남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
평화신문 논설주간
민주일보 논설위원
민주화 역정 30년 집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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