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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12 08: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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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밑에 사람들, 아무래도 우릴 잊어버린 것 같아"

두 우주비행사의 대화로 시작되는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국 현대 연극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데이빗 그레이그의 작품이다. 비밀리에 발사된 이후 12년간 우주를 떠돌며 지구와의 교신을 위해 애쓰는 두 우주인과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어떤 느낌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잊혀진 채 우주 공간을 떠돌며 그리운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언젠가는 교신이 될 거라고 희망하던 올레그와 카시미르는 끝없이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어느 날, 남편이 사라지자 그가 남긴 넥타이를 들고 그림에 나온 장소로 찾아가는 비비언, 세계은행에 근무하면서 돈 잘버는 에릭, 12년 전 우주로 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자유로운 댄서 나스타샤, 그녀를 예뻐하고 언제부턴가 곁을 지키는 실비아, 쓰러진 이후 새로운 세상과의 교신을 꿈꾸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던 베르나르. 연극에서의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어달라고 떼쓰지도 않는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는 하는 걸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남편이 사라지자 무슨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 비비언. 심지어 여자 경찰관이 말한다. "바닷가에 양복이 개어져있고 넥타이가 올려져 있었어요. 차가 헤드라이트로 그걸 비추고 있었죠. 이건 메세지예요. 나를 찾지 말라는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비비언에게 굉장한 상처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소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말'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폭력이 된다. 그렇다고 알면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러니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은 얼마나 오만할까. 아무 말없이 사라져버린 남편 이언은 왜 비비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걸까? 미안해서, 혹은 어떤 말로도 자신을 이해시킬수 없어서, 혹은 그럴 수 밖에 없었기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언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혹시라도 어떤 메세지일까 싶은 비비언은 그의 넥타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스코틀랜드로 간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너무 험해서 오직 베르나르 혼자 사는 곳까지 올라간다. 서로 확실한 뜻이 전해졌는지 모르는 언어를 쓰면서도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이끌린다. 자세한 속내까지 다 말해 버려도, 추하고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각자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몰라도 되는 일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중요한 교감은 이루어지니 어쩌면 '언어'를 초월하는 교감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싶다.

1막에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잦은 암전과 함께 던져지기만해서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2막에 가면 모든 이야기가 자리를 잡아 가면서 하나의 흐름마저 만들어 내는 신선한 연극이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지 않아서 그 또한 좋았다.

이상우 연출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공연장에 와서 실컷 별을 보고 가게 하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영상이 참 예뻤다. 약 140여 분(쉬는 시간 제외)의 공연 시간 동안 120분이나 등장하는 영상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태왕사신기’를 비롯 영화 ‘해운대’ ‘화산고’ ‘7광구’ 등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가 맡았다. 별이 가득한 우주도 좋았지만 시내의 불빛과 야경, 전차와 자동차까지 움직이는 모습들이 꼭 하늘 어딘가에서, 아니 우주 그 어딘가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같았다. 일상의 그 모습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우주일지도 모른다.

재밌게도 런던 밤무대 댄서 나스타샤 역의 김지현외에는 모두 1인 2역을 맡고 있다. 아무 이유없이 아내를 떠나는 남편 이언과 비행물체와의 통신을 시도하는 베르나르역에 최덕문, 이언의 아내 비비언과 재밌는 여자 실비아 역에 김소진, 자본주의의 성공한 인물인 에릭과 하일랜드의 술집 주인 역할에 이희준, 클레어와 공항 카페주인은 공상아, 올레그와 뇌졸중 환자로 이창수, 카시미르와 술집주인 역에 홍진일이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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