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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4-09 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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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은 뮤지컬 ‘원스’의 작가 앤다 월쉬의 ‘월워스의 소극’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 ‘월워스의 소극’은 2007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으면서 ‘First Award’를 수상했다.

소극(笑劇)이란 해학을 기발하게 표현해 순전히 사람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할 목적으로 지은 비속한 연극이란 뜻으로,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이 연극은 극중극형태를 취하고 있다.

무대의 배경은 서울 북아현동(옛 지명; 굴레방 다리)의 허름한 서민 아파트.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인 두 아들은 매일 같은 연극을 하며 일상을 보낸다. 서울로 오기 전 고향에서 있었던 할머니의 죽음과 관계된 단 하루의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이 연극에 어머니, 삼촌, 숙모 등 다양한 역할을 연기한다. 이 희한한 연극이 반복되던 일상에 어느 날 낯선 균열이 생긴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독재 가운데 자란다.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삶에서 도망쳐왔으나 결국 이런 소극 속으로 또 다시 도망쳐버리고 만다. 두 아들을 데리고. 매일매일 반복함으로서 그는 소극 안으로 도망하고, 두 아들은 세뇌 당한다. 반항하지 못하도록 폭력을 사용하는 아버지. 아들들은 몸은 자랐으나 정신적으로는 전혀 자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매일 같이 마트에 가서 연극에 필요한 물품을 사오던 두철은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봉투와 바뀐 봉투를 가지고 오게 되고 이 실수로 인해 베트남에서 온 마트 여직원 김리가 삼부자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와 버린다. 그리고 김리가 나타남으로 삼부자의 연극은 달라지고 두철과 한철의 마음에, 그리고 완강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다.

조작된 진실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자신을 위한 그 끔찍한 폭력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믿게 하기 위해 강요하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 대식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네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보이고 들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임도완 연출은 “삼부자의 폐쇄된 삶이 그들만의 리그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면서, “이 희한한 소극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우리의 부조리한 뇌와 더 크게는 온갖 것이 조작 가능한 이 사회”라고 밝혔다.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극중극 형식에서 다양한 역할을 쉴 새 없이 연기하는 삼부자의 모습은 초반의 이질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판자 인형을 사용한 일인 다역 연기와 쉴 새 없는 대사의 홍수 속에 어느 덧 과거의 사건과 진실, 그리고 현실에서의 모습들이 따로따로 보이기 시작한다.

김리의 등장으로 연극은 중단되고 두철이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과 한철이 혼자만 남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연극이 진실이 아닌 ‘가짜’라는 사실을 이미 두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 등이 밝혀지면서 극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간다.

기괴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통해 ‘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가짜’를 만들어 내고 믿고 심지어 거짓으로 도망치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 연극의 힘은 완전히 역할에 동화된 배우들이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심정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네 명의 배우가 쏟아내는 엄청난 대사 속에서도 주고받는 호흡의 밀도와 치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연극 전반에 흐르는 연변가요 ‘타향의 봄’은 그저 연극이 시작될 때마다의 시그널 같았는데 반복될수록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이제 그들의 연극이 마지막을 향해 부서져라 내던져질 것을 예감하라는 듯.

끝으로 두철의 모습은 너무나 절실해 가슴이 아리다. 문이 다시 닫힌다. 과하게 달린 열쇠걸이들이 잠긴다. 그는 그곳에 서 있다. 그토록 원하던 바닷가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거짓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발버둥 칠수록 죄여오는 거미줄처럼. 그러나 그에겐 발버둥 칠 힘조차 없다.

연출 /각색은 임도완, 번역 김민정, 음악은 김요찬이 맡았으며,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김대식 역에 권재원, 아버지의 폭압에 짓눌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큰 아들 김한철 역에 장성원, 세상 밖으로 나가 행복해지고 싶었던 작은 아들 김두철 역에 이중현, 굴레방 다리를 찾아온 불청객 베트남 출신의 마트 여직원 김리 역에 김다희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배우들이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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