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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4-05 16: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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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개량 가야금, 기타, 피리, 아코디언, 북, 그리고 소리. 물이 일렁인다. 속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더럽지는 않은 검은 물이. 극장 안에 흐르는 음악이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마치 로르카가 사랑한 땅, 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악의 제목은 오히려 사랑노래였음에도.

월드뮤직그룹 반(VANN)이 작은 음악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새 배우들이 무대 위에 한명 두 명씩 등장한다. 스페인의 심장이라 칭송받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연극 ‘피의 결혼(Bodas de sangre)’이 시작된다.

남편과 큰 아들을 여의고 작은 아들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머니. 아들의 결혼문제로 심란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려 한다. 결혼을 앞 둔 신부의 옛 남자(레오나르도)가 신랑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과 친척인 이유다. 밤마다 신부의 창밖을 서성이는 레오나르도. 결국 결혼식을 치룬 날 저녁, 신부는 유부남인 레오나르도와 야반도주를 감행하고, 분노에 찬 신랑은 그 뒤를 쫓는다.

로르카의 비극 3부작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특히나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특히 이번 명동 예술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피의 결혼’은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콜롬비아 보고타)에 초청작으로 올 4월 세계인들과 만나게 된다. 축제 참가에 앞서 국내 관객들에게 먼저 선을 보이고 있다.

이윤택 연출은 플라멩코와 우리 장단의 만남을 시도해 스페인과 우리의 전통 문화 융합을 이뤄냈다. 플라멩코의 3대 필수 요소에 들어가는 기타를 포함시켜 전통 국악 남도 소리위에 탭 슈즈를 신고 발을 구르는 군무는 독창적이고 매력적이었다. 특히 12박자를 강약으로 조절해 박수와 발소리, 거기에 국악기의 소리가 덧입혀져 흥이 절로 나는데 원래부터 하나였던 듯 느껴질 만큼 절묘하다.

공연을 연출한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일상적인 언어만이 남은 연극이 아닌, 가무악시사가 넘치는 볼거리 많은 연극, 춤추고 노래하고 육체적인, ‘연극적인’ 연극을 해보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을 연출하면서 일상적인 것을 뛰어 넘어 존엄성과 명예, 사랑,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플라멩코와 우리 전통 국악기의 콜라보에 익숙해 질 즈음, 상모돌리기를 보여주고, 조각보가 공중에 걸려있고 사모관대를 한 신랑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결혼식을 올린다. 탭을 이용한 대사들은 발의 울림과 함께 묘한 여운을 남기고 난장이 펼쳐질 때면 들리는 피리 소리는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

극의 후반부, ‘달’을 구현해서 땅이 가진 신비로움과 더불어 인간의 운명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어쩐지 욕망을 위한 희생제물이 자신의 목숨인지도 모르고 사력을 다해 뛰어온 것처럼 보인다. 아들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들을 쫓으라고 말한 어머니의 마음과 원하는 사람은 분명 신랑이었음에도 레오나르도를 따라 끌려온 신부의 마음은 너무나 복잡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은 욕망에 이끌려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 다만 그리 변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 결혼. 같이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 갈 때쯤엔 절절하게 다가왔다. ‘피’가 상징하는 한이, 결혼이 상징하는 축제가, 삶의 절정을 향한 몸부림이 있다면 피를 흘릴지라도 함께 발을 구르고 살아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 살아 돌아온 신부의 말에 어머니가 말한다. “이 여자는 잘못이 없다. 나도 없다. 그럼 누가 잘못한 것인가?”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면, 남는 것은 눈물뿐일까. 그래도 한번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살아있으니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보이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대가가 죽음일지라도 숨이 다할 때까지 뛰어보았으니 된 것일까.

어쩌면 단순한 치정극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내는 극적인 순간을 연희단 거리패의 훌륭한 배우들이 퍼포먼스와 함께 심도 있게 보여준다. 특히 어머니 역할의 김미숙 배우는 소리와 대사를 자유로이 오가고 있고, 극의 중심에 서 있다. 그녀의 작은 아들, 신랑 역에 이승헌, 레오나르도 역에 윤정섭, 신부 역에 김하영, 이 외에 이주영, 차희,이재헌, 이유신, 김아라나, 이승우, 김호윤, 신명은, 방성혁, 양승일, 이은창, 최용림, 박아진, 변정원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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