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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1-30 19: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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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한강의 물줄기를 전편에서 기술했듯이 한강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포용하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선사시대의 한강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한강변을 따라 발달된 비옥한 옥토와 한강이 제공하는 수산물들로 인하여 선사시대에도 이미 한강을 기준으로 많은 문명들이 존재하였으며, 채집과 수렵이 동시에 발달되는 모습을 유적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면목동 구석기유적은 서울의 한강 유역에서 발굴 조사된 유일한 구석기유적이다. 아울러 한탄강의 전곡리 유적과 금강의 공주 석장리 유적과 대비되는 후기 구석기유적으로 서울 지역의 구석기 문화생활의 실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유적의 앞쪽으로 중랑천을 배경으로 한 넓은 들판이 펼쳐 있어 구석기인들의 일시적인 생활거주지로 좋은 여건을 형성하고 있다. 유적은 면목지구 택지 건립을 위한 공사장 에서 1967년 황용훈을 비롯한 경희대박물관 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석기들이 약 30평 정도의 면적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건설 등 도시개발로 인하여 유적지가 모두 파괴되어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발굴된 석기는 대부분 몸돌석기로 외날찍개·양날찍개·찌르개·긁개·망치돌 등이 있고, 격지석기로 찌르개 옆날긁개·끝날긁개 등이 있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을 살펴보면 토기와 석기 및 골각기 등이 발견되었으며, 구릉이나 야산에서 집중적인 채집활동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원초적인 어로기법인 낚시어법이나 자돌어법이 성행하여 창 또는 작살을 이용한 어로행위가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은 개인적인 단독기법으로 수확량의 한계가 있으며 이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어망을 이용한 채집활동인데 여러 유적에서 근거가 되는 어망추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망을 이용한 어로행위는 단독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행위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선사시대에도 이미 공동체적 활동과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동체적 활동과 생활은 결국 대량생산을 통한 잉여생산물 축적과 환경에의 적응으로 이어지며 그 속에서 문화가 형성, 발전되며 결국 고대국가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사시대의 한강유적은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왕성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청동기문화를 거쳐 한강유역에 고대국가가 설립되는 밑걸음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호에는 청동기와 철기유적을 살펴보겠다.

류덕선 전경기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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